개혁주의 관점에서 본 기독교 세계관의 역사적 흐름

PARTⅠ

개혁주의 관점에서 본
기독교 세계관의 역사적 흐름
시작하는 말

세계관(Weltanschauung, worldview)은 세계와 인생을 보는 안목(眼目, view of the world)이다. 세계관의 시야는 이성이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학문이나 예술의 조망보다 훨씬 깊고 넓은 전(全) 인격적인 것이다.

물론 사람은 세상과 삶을 주어진 그대로 그냥 바라만 보지 않는다. 사람의 안목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관점(view for the world) 또는 반퍼슨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또 세계관은 브라이언 월쉬(Brian J. Walsh)와 리처드 미들톤(J. Richard Middleton)의 책 제목처럼 세상을 바꾸는 비전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 람의 안목을 통해 만들어진다. 사람 의 눈높이가 삶의 태도와 질(質)을 좌 우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관이 인간만이 누리는 세계와 삶 즉 문화의 토대가 되는 것은 이 근 본적 성격 때문이다.

기독교 세계관 연구자 제임스 사이어(James W. Sire)는 세계관을 “우리가 사는 세계를 기본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가 견지하고 있는 일련의 전제들이다.”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 역시 세계관의 근본적 성격을 보여 준다. 이 정의에 따르면 21세기를 위한 성경적 세계관을 제시하는 일은 성경의 기본 전제를 통해서 다가올 한 세기를 전망하는 일과 같다고 할 있다.

세상은 변할지라도 성경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진리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21세기를 위한 성경적 세계관을 제시하기 위해 우리가 새로운 세계관을 창출하는 작업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성경적 세계관으로 현재와 미래의 상황을 조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즉 21세기의 예상되는 상황을 전통적 기독교 세계관의 빛 아래서 살펴 21세기 사회와 문화가 나가야할 바람직한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개혁주의 신앙의 전통은 다른 교파들에 비해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해온 것이 특징이다. 또 그로 인해 자연히 문화에 대한 사명의식과 종말론적 비전이 강하다. 개혁주의는 문화를 배격하거나 반대로 무비판적으로 동화됨 없이 늘 문화적 책임을 인식하고 앞서 문화를 성경적으로 변혁하는 자세를 지켜왔다. 이 점에 있어 개혁주의는 다른 교파들보다 바른 성경적 안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경적 세계관이 세상적인 세계관과 구별되는 것은 죄와 악으로 어두워진 세상을 구속적 안목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를 위한 성경적 세계관 역시 다가오는 한 세기를 하나님 나라의 구속적 비전속에서 바라본다. 그것은 기독교 세계관 교재로 널리 사용되는 ‘창조, 타락, 구속’의 저자 앨버트 월터스(Albert Wolters)의 말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계의 회복(구속)과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는 동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1세기를 위한 성경적 세계관 정립은 구속(救贖)의 관점에서 문화를 변혁하려는 개혁주의 전통을 따라 미래의 세계를 보다 성경 진리에 가깝도록 변화시키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해야 한다. 즉 우리가 처한 현재와 미래의 상황을 성경의 구속적 진리의 빛 아래서 주의 깊게 검토하여 우리시대의 소명을 감당할 실천적 조망을 제시해야 한다. 이 과제를 올바로 수행할 지혜를 얻기 위해 먼저 지난날 개혁주의자들은 어떻게 그들의 사명을 감당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1. 아브라함 카이퍼
– 성경적 삶의 원리를 역설한 신(新) 칼빈주의자 –

Abraham Kuyper
Abraham Kuyper

철학에서 개발된 세계관이라는 용어를 채용하여 ‘기독교 세계관’으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사 람은 화란의 개혁주의 목사요 신학자며 정치가 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였다. 카이퍼가 이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처한 역사적 현실에 대한 신앙적 책임을 절실하게 깨달은 데서 비롯되었다.

당시 유럽은 프랑스혁명의 본격적인 여파로 인해 세상이 날로 인본주의화 되어 가는 추세에 있었다. 그는 이러한 추세에 대항하여 효과적 인 치유의 길은 개혁주의 신앙에 기초한 삶의 변화라고 믿고 이를 부흥시키려 노력했다. 물론 그의 노력은 어떤 새롭고 독창적인 체계를 제시하기 보다는 이미 과거 기독교역사 속에서 그와 같은 정신을 가지고 노력했던 전통의 회복에서 그 실천 방법을 찾으려 했다. 카이퍼는 이것을 역사적 칼빈주의 전통에서 발견했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우리에게 알려진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출발점인 아브라함 카이퍼의 공헌은 종교개혁 시대에 뿌리를 둔 칼빈주의로부터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전해내려 오는 바 사도들이 전한 성경적 진리의 체계에 기초하여 그가 처한 현실 속에서 필요한 삶의 안목을 새롭게 제시하고자 하는데서 비롯되었다. 카이퍼를 중심한 이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신(新) 칼빈주의(Neo-Calvinism)로 불리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카이퍼는 성경의 가르침을 철학이나 이념적인 체계 보다 훨씬 근본적인 종교적 진리로 인식했다. 여기서 종교적이란 철학이나 이론이 머무는 이성적 분석과 논의의 차원보다 훨씬 깊은 차원, 즉 삶의 궁극적 토대가 세워지는 근본적 차원에서의 진리요 삶의 안목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적 진리를 가장 순수하게 보존되어온 체계라고 확신하게 된 칼빈주의가 일종의 철학 체계일 뿐이라는 인식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삶과 세계의 조망’(levens-en-wereldbeschouwing)이라는 다소 어색한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유명한 1889년 프린스톤 대학의 스톤 강좌의 다음과 같은 말속에 잘 드러나 있다.

“칼빈주의는 교회제도에 그치지 않고 생활원리(life-system)로 발전했으며 교리의 구성을 위하여 진력했을 뿐만 아니라 인생과 세계관(life and world view)을 창조했다. 칼빈주의는 과거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현재에 있어서나 어떠한 시대에 있어서나 모든 생활의 부문에서 인류의 발전을 위한 모든 단계의 필요성에 자신을 적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카이퍼는 자신이 처한 위기의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은 성경적 삶의 원리인 칼빈주의를 삶의 모든 국면에서 실제적인 규범으로 삼는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사실 카이퍼는 총체적 삶의 체계로서의 기독교적 세계관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하나의 통일된 사상체계를 만들어내는 면보다는 신학자로 목회자로 그리고 정치 및 사회 지도자로서 더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 같은 카이퍼의 유산을 토대로 하여 보다 항구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체계적이고 철학적 바탕을 일구어 낸 것은 그가 설립한 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ait of Amsterdam) 출신인 철학자 헤르만 도예베르트(Herman Dooyeweerd, 1894-1977)였다. 도예베르트는 카이퍼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가 일으킨 운동이 문화의 모든 영역에 정착되려면 운동 차원을 넘어서 포괄적인 세계관의 체계로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칼빈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삶을 조망하는 사상적 체계를 만들어내는 학문적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

2. 헤르만 도예베르트
– 통합된 문화의 동인이 되는 성경적 세계관 –

도예베르트는 본래 법학자였다. 그는 개혁주의에 입각한 정부의 원리를 연구하다가 하나님의 법과 주권이 피조물 전체를 위한 존재의 기반이 됨을 새롭게 발견하여 그 연구의 폭을 넓혀 거시적 안목을 체계화했던 것이다. 그의 사상 체계를 우주법철학(cosmonomic philosophy)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의 철학체계 밑에는 인간과 그의 이성이 세계의 기초가 된다는 서구문화의 상식에 대한 혁명적 도전이 담겨있다. 사실 오늘날 서구세계가 경험하는 위기는 이성주의 토대가 붕괴하는데서 오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법을 기초로 주장하는 그의 안목은 철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특히 그의 사상체계는 그 무엇이건 종교적인 기초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시대와 사상의 흐름을 기독교적으로 비판하고 바로잡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소위 ‘초월적 비판’(transcendental critique)이 바로 그러한 그의 연구결과이다.

또 아브라함 카이퍼의 일반은총론이나 영역주권 사상을 보다 깊고또 보다 건실한 성경적 기초에서 해석하고 보편적 철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도예베르트의 공헌은 서구문화의 역사를 분석하여 그 바탕에 깔린 네 개의 다른 뿌리를 밝힌 점이다. 오늘날 기독교 세계관운동의 이론적 기원을 도예베르트에게 돌리는 것은 그의 문화와 사회를 종교적 동인(動因)에 의해 분석하는 새로운 입장을 만들어낸 그의 업적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도예베르트는 서구문화의 동인(動因) 네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가장 고전적 동인으로 희랍의 세계관을 들었다. 그것은 아리스토 텔 레스의 구분을 따라 형상과 질료의 동인이라 명명된다.(철학)

– 성경적인 동인(動因)은 창조-타락-구속의 진리에 기초해있다.(성경)
– 스콜라철학에서 기원한 ‘은총’과 ‘자연’의 혼합적 세계관이다. 이는 성경적 종교의 동인과 희랍적 종교의 동인을 한 체계 내에 함께 수 용하고자 했다.(스콜라철학 + 자연)

– 15세기 르네상스에서 싹튼 자연과 자유의 정신에 기초한 인본주의적 세계관이다.(인본주의)

Dooyeweerd
Dooyeweerd

물론 도예베르트의 네 개의 세계관 이론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여기에는 동양적 문화 동인에 대한 연구와 이 해가 빠져있다. 동양적 문화동인 역시 하나가 아니 며 그 안에 샤마니즘적 동인, 힌두교적 동인, 불교 적 동인, 유교적 동인, 도교적 동인 등 여러 형태 의 문화적 동인이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적 동인 들 가운데도 보다 세분하면 변증법적 유물론의 동 인, 낭만주의적 동인, 실존주의적 동인, 포스트모던적인 동인 등으로 세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성경적 동인 외에 다른 동인들이 서로 상반되어 도저히 융합될 수 없는 두개의 종교적 원리가 기이한 조합으로 하나가 되어 있음을 제시한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도예베르트는 이 구조를 ‘종교적 또는 변증법적 대립’(religious or dialectical antithesis)의 성격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도예베르트가 지적한 이런 세계관의 근본적 대립은 헤겔이 변증법적 구도로서 시도한 소위 정-반-합(正反合)의 이론적 통합으로서도 해결될 수 없는 것 즉 본질적으로 화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같은 서구문화의 동인들의 ‘내재적 긴장과 대립’의 극복과 화합은 서구철학의 과제였다. 그러나 가장 야심적인 종합의 철학인 변증법을 구상한 헤겔의 종합도 결국 이론적인 종합에 불과하였고 그것의 붕괴가 서구철학 전통을 위기로 몰고 갔다. 도예베르트가 지적한 것처럼 헤겔 이후 서구 철학은 결국 1) 이런 동인들의 불화합성에 대한 발견이거나(프로이드), 2) 거기에 깃들어 있는 형이상학적 폭력에 대한 고발이거나(니체), 3) 헤겔적 변증법에 대한 뒤집기(포이에르바하, 막스엥겔스) 등이었다. 뿐만 아니라 요즈음 거론되는 포스트모더니즘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도예베르트는 이 같은 비성경적 세계관들은 모두 다원론적인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통일된 문화의 기초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 어느 하나가 억압된 상태로 발전하다 그것이 지나치게 되면 붕괴하게 된다는 사실을 역사적 예를 들어 분명히 보여주었다.

반면에 창조-타락-구속의 통일된 성경적 세계관은 분열되거나 흔들림이 없는 문화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강조했다. 결국 도예베르트의 근본 의도는 서구 세계관의 유형분석을 통해 성경적 세계관의 특징과 유일성을 비교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성경적 세계관만이 다른 세계관과 달리 창조부터 완성에 이르는 일관된 비전을 제시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성경적 세계관이야말로 혼돈과 분열로 얼룩진 그래서 그의 말처럼 황혼에 접어든 서구 문화와 문명에 대한 참다운 도전이요 대안이라는 것을 보이고자 한 것이다.

3. 개혁주의 세계관의 전승
– 화란에서 한국까지 –

카이퍼와 도예베르트 이후 칼빈주의적 신앙 전통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발전시킨 이 세계관의 수혜자와 계승자는 여럿이다. 이 운동은 본고장인 화란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교에 머물지 않았다. 1876년 화란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진 미국의 미시간 주(州) 그렌레피드 시(市)의 칼빈대학교(Calvin College), 아이오와 주(州)의 돌트대학교(Dordt College), 캐나다 토론토에 1967년 세워진 기독교학문연구소(Institute for Christian Studies) 등 여러 대학과 연구기관이 북미대륙,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 캐나다의 기독교학문연구소는 작지만 세계관에 대한 많은 근본적 연구로서 신(新) 칼빈주의의 신학과 철학이 갖는 세계관적 함축을 개발해내어 세계 각국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 화란의 기독교 철학자가 도예베르트 탄생 백주년 기념사에 말한바와 같이 카이퍼, 도예베르트 등의 성경적 세계관은 비록 미약할지라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기독교 세계관 운동임에는 의심할 나위 없다.

한국에서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 당시 대학 사회는 주로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적 혁명사상에 기초한 운동권의 사회변혁 이데올로기와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과 같은 기독교 사회운동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이들의 유일한 복음주의 사상운동으로 주로 예수교장로회 합동 측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시대적 도전에 맞서고자 했던 자생적인 연구모임에서 비롯되었다.

이 모임은 현재 기독교 세계관 교재들 가운데 대표적인 ‘세상의 변혁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비전’, ‘현대문화와 기독교 세계관’, ‘창조, 타락, 구속’, ‘하나님의 마스터플랜’ 등과 보다 학문적인 ‘기독교 철학입문’, ‘기독교 세계관’, ‘서구사상의 황혼에서’와 ‘서구문화의 뿌리’와 같은 본격 기독교 철학서들을 번역하여 한국교계에 소개했다.

초창기에 대학생들의 연구모임이었던 이 운동은 80년대 중반에 ‘기독교학문연구회’와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로 발전하였다. 지금은 당시 연구모임의 주축을 이루던 학생들의 대부분이 국내외에서 공부를 마치고 교단에 서게 되어 두 모임 다 각 방면의 교수들로 이루어진 전문가 집단이 되었다. 특히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는 ‘통합학회’를 조직하여 ‘통합연구’라는 연구지를 내고 있다. 또 최근에는 기독교학문연구회의 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기독교철학회’를 조직하고 ‘한국철학회’ 산하의 공식 학회로 가입하여 본격적인 학문 활동을 시작했다.

4. 전통과 개혁 병행

이상에서 간략히 살펴본 바와 같이 개혁주의 성경적 세계관 운동은 항상 성경의 진리를 순수하게 보존하려 애씀과 함께 주어진 상황의 도전에 맞서려는 매우 실천적인 동기로 가득했다. 이 운동은 오늘날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흔히 볼 수 있는 반(反) 문화주의요 은둔적인 자세로서 자신의 경건을 지키고 복을 비는 신앙과는 거리가 멀다.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며 복음전파와 더불어 문화를 변혁하려는 소명감에 불타있다. 그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자신의 소명을 바로 인식하고 매사에 충성하는 자세로 살았다. 이러한 개혁주의 전통의 문화 변혁적 자세가 오늘을 사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되살아나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의 특성은 전통의 정신을 현실에 살려내는 변혁적 입장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개혁주의 성경적 세계관 운동의 분명한 후예로 서기 위해 두 가지 조심할 점이 있다. 그 하나는 진보를 강조할 때 흔히 생기는 부작용인 세속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통을 강조할 때 생기기 쉬운 후진성이다.

개혁주의 세계관 운동의 전통을 바로 이어가려면 우선 전통으로부터의 이탈과 특히 오늘날의 추세인 세속화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 그와 함께 오랜 전통과 훌륭한 역사를 가진 공동체일수록 과거 지향적이 되고 보수적이 되며 그것이 발전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는 점을 유의 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마치는 말

한국 장로교의 전통은 성경적이며 동시에 개혁주의 신앙이다. 종교개혁의 전통에는 잘못된 현실고수를 방지하려는 ‘하나님의 교회는 언제나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dei semper reformenda)라는 표어가 있다. 개혁이란 과거를 부정하는 파괴나 혁명이 아니다. 전통의 바르고 귀한 것들 가운데 시간이 가면서 퇴색한 부분들을 고쳐 본래의 정신을 되찾되 생명력 있게 그것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정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일을 위해서는 그 전통의 정신을 충분히 이해하는 연구와 더불어 그것을 현실 속에서 의미 있게 살려내는 해석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성경적 진리는 영원불변한 것이지만 그것을 삶의 원리로 하여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부딪치는 상황은 항상 변화하기 때문이다.(*) 글쓴 이 / 신국원 교수(총신대학교) 출처 / http://cafe.naver.com/solideogloriafaith.ca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