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성례관

개혁주의 성례관

28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9, 참고 28:19,20)

1. 성례의 정의

(1) 그리스도가 세운 예식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92문에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거룩한 예식인데, 그리스도와 그 새 언약의 유익을 감각적 표호(感覺的 表號)로 표시하며 인(印) 치신 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대 교부들은 통상적으로 ‘성례는 무한한 은혜의 감각할 수 있는 표호’라고 정의하였으며, 어거스틴은 ‘유형한 말씀’ 또는 ‘내면적이며 영적인 은혜의 외면적이며 유형한 표호’라고 하였고 칼빈은 ‘성례는 불가견적 은혜의 가견적 표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설명들을 종합하면 성례는 주께서 정하신 것인데, 말씀에 근거하여 무형한 은혜를 유형한 표호로 나타내는 것으로, 신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예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2) 말씀 예식

성례는 주께서 정하여 주신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예식인데 그것은 또 말씀에 근거하여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말씀에 근거하지 아니하면 전신 목욕을 해도 그것이 세례가 될 수는 없으며, 떡과 포도즙을 배불리 먹어도 그것이 성찬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례의 본질은 신령하고 내면적으로 볼 수 없는 은혜를 감각적이고 외면적이고 볼 수 있는 표호(表號)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신령한 은혜는 볼 수가 없으니 이 볼 수 없는 은혜를 볼 수 있게 물질적 표호를 가지고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성례는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만 적용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성례를 베풀 수는 없습니다.

2. 성례의 종류

로마 가톨릭교회는 세례, 성찬 외에 견진(堅振), 고해, 신품, 혼배, 종부 등 다섯 가지를 추가하여서 7성례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다섯 가지는 예수께서 친히 정하신 것이 아니고 또 어떠한 것은 성도들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 사람 누구에게나 다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성례(거룩한 예식)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고로 개혁 교회에서는 예수께서 직접 그리고 친히 제정하여 주신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라고 인정합니다.

3. 성례의 양식

성례는 예식이기 때문에 이 예식을 거행하는 데는 가시적인 어떤 양식이 필요합니다.

(1) 세례의 양식
세례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신앙고백 하는 성도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 로 물을 적용하여서 행하는 예식입니다. 마태복 음 28:19에 보면 주께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 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주께서 친히 세례 예식을 제정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세례는 물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푸는 것이나 그물을 적용하는 데는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침수례(浸水禮)라고 하여서 몸을 전부 물에 잠그는 방식이 있고, 관수례(灌水禮)라고 하여서 물을 붓는 방식이 있고, 쇄수례(灑水禮)라고 하여서 물을 뿌리는 방식이 있습니다.

침례교회서는 예수님께서도 침례를 받으셨고 성경에 있는 세례는 다 침례였다고 하나 그런 것은 아니고 또 성경에 사용된 세례라는 밥티스마(Baptisma), 밥티조(Baptize)라는 말은 다 침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나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침례는 세례가 아니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세례라고 인정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침례만을 세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례의 근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세례는 죄를 씻는 그 은혜를 유형적,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물을 적용하여서 씻는 의미를 상징하면 되는 것이지 물에 전신을 잠그는 그 예식 자체가 죄를 씻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례는 물을 뿌리거나 붓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또 실제로 이렇게 세례를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2) 성찬의 양식

성찬은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세례 받은 성도들에게 베푸는 성례입니다. 마태복음 26:26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떡을 주시면서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하시고 또 잔을 주시면서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주께서 친히 성찬 예식을 제정하여 주시는 말씀 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1:23이하에서는 주께서 떡을 떼 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하시고 또 잔을 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96문에서는 “주의 성찬은 곧 성례이니 그리스도의 정하신대로 떡과 포도즙을 주 받는 것으로 그 죽으심을 나타냄이 … 믿음으로 그의 몸과 피에 참예하여 자기의 신령하게 받은 양육과 은혜 중에서 장성함이 그의 모든 은혜를 받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성찬은 떡과 포도즙을 주고받음으로 주께서 죽으신 살과 피의 고난과 은혜를 기념하면서 감사와 충성을 다짐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찬의 떡과 포도즙과 주님의 임재에 관하여서는 화체설(化體說, 가톨릭), 공재설(共在說, 루터), 기념설(記念說, 즈빙글리), 영적 임재설(靈的 臨在說, 칼빈) 등이 있는데 개혁 교회에서는 우리가 주님의 성찬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면서 성찬을 받을 때에 주께서 영적으로 임재 하셔서 은혜를 주시며 또 성도들은 이 은혜를 감사하면서 충성을 다짐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 성례의 필요성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례가 사람이 구원을 받는 데 절대조건으로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개혁 교회에서는 주께서 이 성례를 은혜의 방편으로 명령하셨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성례가 구원의 절대조건으로 필요하다 하고, 개혁 교회에서는 성례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성례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고 의무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여도 교회에서 성례를 고의적으로 회피한다든가 거부하면 그것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불순종의 과오를 범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교회에서는 성례를 반드시 말씀대로 잘 거행해야 합니다.

5. 성례의 유효성

성례에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성례를 베푸는 사람과 성례를 받는 사람과 성례에 사용되는 재료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례는 이 성례를 베푸는 사람의 공로나 덕행 때문에 성례가 은혜가 되는 것은 아니고, 또 이 성례에 사용되는 물질적 재료 이것이 무슨 신령한 효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례는 정당한 양식과 정당한 수령자의 믿음을 보시고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성례는 신령한 효력이 있고 은혜의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1) 합당한 집례자

성례는 베풀 수 있는 자격 있는 사람이 베풀어야 합니다. 누구나 다 성례를 베푼다고 해서 그것이 성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2) 합당한 세례와 성찬

주께서 정하신 양식대로 해야 합니다. 덮어놓고 물을 바르고 떡과 포도주를 먹는다고 해서 그것이 성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3) 합당한 수찬자

성례를 받는 사람에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도 없는 사람이 아무리 세례를 받고 성찬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요건이 구비될 때에 성령께서는 이 성례에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이 성례는 효력이 있어서 은혜의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글쓴 이 / 한 병기 목사(전 부산 부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