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일치와 분열을 칼빈은 어떻게 말하는가?

칼빈 탄생 500주년기념 지상강좌(3)
교회일치와 분열을  칼빈은 어떻게 말하는가?

칼빈은 참 교회의 표지를 두 가지 즉 올바른 교리의 선포와 올바른 성례의 집행으로 보았다. 그는 하나님의 진리가 올바로 선포되고 성례가 올바로 집행되는 곳이 참 교회라고 믿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는 어느 교파 할 것 없이 맹렬한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그 중에도 그 난립상이 가장 심각한 교파가 자칭 한국 개신교회 장자 교단이라는 장로교회다. 현재 한국에는 100여개 이상의 장로교단이 있다. 이들 교회는 저마다 정통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를 표방한다. 그러나 이들의 교회론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칼빈의 입장과는 전혀 다르거나 심지어 반대되는 것도 있다. 한 마디로 대부분의 한국 장로교회 교회관은 분리주의적이다.

이들에게는 교회의 하나 됨에 대해 칼빈이 가졌던 그 집요한 열정과 애착을 좀처럼 발견할 수 없다. 이렇게 대단히 중요한 신학의 한 영역에서 칼빈의 견해와 정반대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칼빈주의 전통에 충실한 상속자들이라고 외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필자는 본고에서 기독교강요를 비롯한 칼빈의 여러 글에 나타난 교회 분열과 일치에 대한 칼빈의 견해를 소개함으로써 현재도 진행 중인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상이 얼마나 비(非) 칼빈주의적인 것인가를 밝히고자 한다.

1. 참된 교회의 표지

종교개혁 시대는 로마 가톨릭교회, 루터파, 개혁파 등이 어떤 교회가 ‘참 교회’인가에 대해 불꽃 튀는 논쟁을 하던 때였다. 이 같은 현상은 오늘날과 달리 당시로서는 동방교회를 제외한 유럽의 중세교회가 천년동안 하나의 교회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참 교회’가 둘 이상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결코 용납할 수도 없었다.

칼빈은 “그리스도가 나누어지지 않는 한 참 교회도 둘이나 셋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로마 가톨릭교회가 ‘참 교회’라면 루터파, 칼빈파는 ‘거짓 교회’가 되게 되고 개신교가 ‘참 교회’라면 로마 가톨릭교회가 ‘거짓 교회’가 된다. 따라서 어떤 교회가 ‘참 교회’이며 그 증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양자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이때 칼빈은 참 교회의 표지를 두 가지 즉 ‘바른 교리 선포’와 ‘바른 성례의 집행’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진리가 바로 선포되고 성례가 바로 집행되는 교회만이 ‘참 교회’라고 믿었다.

칼빈에 의하면 말씀과 성례의 사역이 ‘건전하고 부패되지 않은’한 ‘어떤 도덕적 과오’나 ‘질병’도 교회가 교회이기를 중지시키지 못 한다. 말씀을 순수하게 가르치고 성례를 순전하게 집행하는 것은 어떤 그리스도인의 집단을 참 교회 되게 하는 충분한 보장이요 보증이다. 이처럼 바른 설교와 바른 성례가 참 교회의 표지로 간주되는 이유는 그것을 행하게 될 때 틀림없이 ‘열매’가 맺히고 교회는 ‘하나님의 복에 의해 번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2. 교회의 하나 됨을 강조한 칼빈

칼빈은 보편적으로 교회는 설교와 성례에 의해 통일성을 보존하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설교와 성례가 있는 교회의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칼빈은 “주님은 교회의 권위를 매우 귀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그것이 침해당하면 마치 자기 자신의 권위가 침해당하는 것처럼 여기신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적 영혼들’은 항상 교회의 하나 됨을 분쇄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칼빈은 비난했다. 교회의 일치를 깨뜨리려는 행위를 칼빈은 마귀적이라고 격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은 교회에서 함부로 분리하는 행위를 ‘배교’라고 보았다. “주님은 자기 교회의 교제(交際, communion)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교회를 거만하게 떠나는 것을 기독교에 대한 배신이요 배교로 여기신다.”

교회의 하나 됨을 칼빈은 이처럼 중시했기 때문에 교회의 교제에서 이탈한 자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보았다. 모든 피택자들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모든 다른 지체들과 연합되지 않는다면 장차 기업을 받으리라는 소망이 없다.” 그러나 연합에는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동일한 신앙고백 즉 ‘믿음의 일치’였다. “지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할 때 의지도 상호간의 호의로 결합된다.” 그러므로 칼빈에 의하면 교회의 분열이 정당화되는 유일한 경우는 교리적 차이가 있을 때였다. 신앙고백이 다르면 교제(交際, communion)가 유지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리상의 차이가 항상 교회를 떠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교리가 다 동일한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교리는 결정적인 것이고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았다. ‘신앙의 보루(堡壘)’라 부를 수 있는 교리들이 있다. 이를테면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유일신 사상,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메시아 됨에 관한 교리,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다는 ‘오직 은혜로!’의 교리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기독교의 이런 핵심 교리들이 부정당하면 기독교회는 마치 심장에 치명적 상처를 입은 사람이 죽게 되는 것처럼 틀림없이 죽게 되어 있다. 그러한 것들은 ‘필수적 교리의 요약’(the sum of necessary doctrine)이요 기독교의 존립에 본질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교리들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이의 없이 동의해야 했다.
그러나 칼빈은 교리들 중에도 결정적이지 않은 교리 혹은 다소 지엽적인 교리들이 있다고 보았다. 주된 교리(chief doctrine)가 아닌 부수적 교리들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한 비본질적 교리들에 있어서의 ‘사소한’ 오류들은 용서되어야 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영혼은 죽은 후 바로 천국에 가느냐 아니면 일단 다른 장소에 가 있느냐?”하는 등 사후 상태에 관한 견해 차이 같은 것은 칼빈이 볼 때 ‘비본질적인’ 문제들이다. 그러한 지엽적인 교리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에 교회를 갈라 나가서는 안 된다고 칼빈은 역설했다. 인간은 모두가 조금씩은 다 ‘무지’로 인해 ‘마음에 구름이 끼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뼈대에는 무관하고 또 ‘구원에 관계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의견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칼빈은 교회의 통일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더불어 분리주의에 대한 절대적 반대를 표명했다. 그러나 칼빈은 또한 교회가 하나 됨의 통일의 조건이 있음도 동일하게 분명한 어조로 천명한다. “바울이 교회의 통일성을 말하는 근간이 되는 원칙은 한 주님, 한 믿음, 한 세례, 한 하나님 곧 만물의 아버지가 계시고 그가 우리를 한 소망으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엡 4:4-6 참조) “교회 안에 가라지나 불결한 그릇들이 있어 보인다고 우리가 교회를 떠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알곡이 되고 금 그릇 은그릇이 되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

3. 교회 분리주의자들의 오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 시대에도 교회의 교제(交際, communion)로부터 쉽게 이탈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재세례파(再洗禮派, Anabaptist)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완전하게 성결하다는 그릇된 확신을 가지고 ‘인간 본성의 잔재’가 드러나는 모든 이들과의 교제를 거부했다. 칼빈은 이러한 영적 교만 때문에 교회의 교제에서 이탈하는 그들을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모든 분파들을 책망했다.

고대의 노바티안주의자(Novatianism)들이나 도나투스파(Donatus)나 어떤 재세례파들은 칼빈이 보기에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 분리주의적 노선을 택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의에 대한 빗나간 열심’ 때문에 분리주의적 노선을 택했다.

이들은 ‘복음의 가르침에 상응하는 삶의 질’에서 미달되는 신자들을 보면 즉시 ‘거기에는 교회가 없다’고 판단하고 합법적 교회로부터 이탈했다. ‘완전한 순결과 삶의 순수함’이 없어 보이면 즉시 그것을 ‘거짓 교회’라 단정하고 자기들만의 ‘참 교회’를 이루기 위해 뛰쳐나갔던 것이다. 그들은 권징에 있어 주께서 ‘온유함’을 요구하시는 것을 모르고 ‘지나친 엄격성’을 발휘하고자 했다.

분리주의자들이 자기들의 분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성구는 교회의 거룩성에 관한 에베소서 5:26의 본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나 칼빈은 이 본문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의하면 교회가 거룩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였다. 주께서 주름 잡힌 것을 펴며 티를 씻기 위해 매일 수고하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는 아직 완전히 거룩하지 않다. 그러므로 교회는 매일 진보하면서도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는 의미에서 거룩하다. 즉 하루하루 진보를 이루고 있지만 아직은 거룩이라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엄격한 인물이라는 일반적 인상과 달리 칼빈은 아주 현실적인 교회론을 견지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교회에는 “선인과 악인이 동시에 뒤섞여 있다.” 천국에 관한 주님의 비유가 그것을 보여 준다. 칼빈은 여기서 천국에 교회를 대입하고 있다. 교회는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아서 물가로 끌어낼 때까지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르지 않는다. 교회는 좋은 씨를 뿌린 밭과 같다. 거기에 원수가 가라지를 뿌렸으나 추수하여 타작마당에 모아들일 때까지는 그것을 뽑지 않고 버려 둔다. 교회는 또 곡식을 모아 놓은 타작마당과 같다. 키로 알곡을 가려 곳간에 들일 때까지 알곡은 쭉정이에 덮여 있다.

칼빈이 볼 때 이러한 비유를 통해 주께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은 교회가 ‘최후 심판 날까지 이러한 악들 밑에서 고생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아무 흠이 없는 교회를 찾는 것은 헛수고’라는 것이다.

4. 반론에 대한 답변

이상과 같은 칼빈의 견해에 대해 어떤 이들은 반론을 제기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파렴치한 죄를 범한 자를 그들의 교제에 받아들였다고 책망하면서 그런 죄인들과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하였다(고전 5:2,11)는 것이다.

칼빈은 먼저 그러한 이의(異義) 제기가 일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교회 안에는 “신자라는 이름과 외모만 있고 그리스도는 전혀 없는 위선자들도 섞여 있고 야심적이고 탐욕스러우며 시기하는 사람들 또 중상하는 사람들이 심히 많고 아주 불결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얼마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일시 교회에 용납되는 이유는 권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질서가 잡힌 교회라면 그런 ‘악인들’을 품고 있지 않았을 것이고 ‘합당치 않은 자들’을 무분별하게 성찬에 참여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노골적 죄인들’이 성도의 무리에 끼여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잘못’ 된 일이며 그것에 대해 변명할 마음은 없다고 칼빈은 솔직히 인정한다. ‘그러나’ 하고 칼빈은 반전을 시도한다. 교회가 권징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교회를 떠나는 것은 잘못이다. “사악한 자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멀리하는 것과 그들이 밉다고 교회와의 교통을 끊어 버리는 것은 별개다.” 권징과 분리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것이었다.

권징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교회를 이탈해서는 안 된다. 칼빈은 사악한 자들과 함께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신성모독이라는 생각을 바울보다 더 엄격한 생각이라고 평가했다.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거룩하고 순수하게 성찬에 참예하라고 권했던 것은 우리 각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온 교회를 검사하라는 말이 아니라 단지 “각 사람이 자신을 살피라.”(고전 11:28)는 의미였을 뿐이었다. 합당치 않은 자가 우리와 함께 성찬에 참예한다 해서 우리가 더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주의 몸과 피를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의 죄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일 뿐이다.(고전 11:29)

칼빈은 개인이 설령 범과(犯過) 자들보다 거룩하고 경건하다고 하더라도 권징권을 사사로이 행사할 수 없다고 보았다. 권징의 권한은 교회 전체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성찬에 참예할 수 있고 누구는 할 수 없는가에 대한 결정권은 “개개의 교인들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교회에 문제가 많은데 교회가 그 문제와 관련된 범과(犯過) 자들을 권징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떠나서는 안 된다. 칼빈은 시프리안(Cyprian)의 말을 인용한다.

“교회 안에 가라지나 불결한 그릇들이 있어 보인다고 우리가 교회를 떠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알곡이 되고 금 그릇 은그릇이 되도록 전력을 다 해야 한다. 질그릇을 부수는 것은 오직 주께만 맡겨진 일이며 그에게는 철장도 주어져 있다.”(시 2:9; 계 2:27) “아무도 하나님의 아들만의 것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말며, 쭉정이를 키질하고 짚을 타작하거나(마 3:12; 눅 3:17), 인간적 판단으로 모든 가라지를 갈라내면 충분하다고(마 13:38-41) 말하지 말게 하라.”

말씀 선포와 성례가 바르게 보존되고 있는 한 다른 결점이 많더라도 우리는 교회를 배척하고 그 단결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칼빈의 생각이었다. 비록 ‘도덕적 과실’ 혹은 ‘사소한 과오’가 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그 교회의 합법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칼빈은 다음의 두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첫째,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전이 집행되는) 교회의 외적 교통에서 자발적으로 탈퇴하는 사람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둘째, 소수의 죄악이나 다수의 죄악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교회 의식(儀式) 속에서 우리가 신앙을 제대로 고백하지 못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목사나 평신도인 다른 개인이 무가치하다고 해서 경건한 양심이 상처를 입지는 않는다. 불결한 사람이 성례를 집행한다고 해서 거룩하고 올바른 사람에게 성례가 덜 순수하고 덜 건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5. 교회 분열의 죄

주께서는 교회의 성도간의 교통을 심히 중시하시기 때문에 신자의 공동체를 떠나는 사람은 배반자요 배교자이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정하는 사람이라고 칼빈은 못 박는다. 즉 교회의 권위를 침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소한 의견 충돌 때문에 경솔하게 교회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고 교회를 떠나는 것은 도나투스파나 재세례파가 빠졌던 완전주의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의에 대한 잘못된 열성’이 선한 사람들까지 교회를 떠나도록 유혹하는 때가 있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이 ‘분리(分離)’를 주장하는 이유는 ‘거룩에 대한 진정한 열성’보다는 ‘자만심과 교만’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대담하게 교회 탈퇴를 선동하며 기수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모든 사람을 경멸하며 자기가 제일 잘났다는 것을 보이려 하는 것 외에 별다른 이유가 없다. 이들은 자기 자랑을 좋아하는 평범하고 약한 사람들을 끌고 가거나 적어도 분열시키려 한다.

칼빈은 완전주의(完全主義)를 거부한다. 그는 ‘철저하게 순결하고 진실한 삶’이 없는 곳에는 교회가 없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규정했다. 신자들이 복음의 교훈대로 살지 않는 것을 보고 즉시 거기에는 교회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었다. 주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거룩하고 순전한 사람들이 대중 속에 묻혀 눈에 띄지 않을 수 있고 또 지금은 병든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재삼 분발하여 더 고결한 성도의 생활을 추구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지극히 성결한 사람도 심히 유감스러운 과오를 범하는 수가 있으므로 사람을 한 가지 행동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칼빈은 권징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교회 개혁을 위한 권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교회를 이탈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권징에 대한 과도한 열심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어거스틴의 다음과 같은 말들을 인용했다. “교회 개혁이나 권징을 위한 태도는 항상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엡 4:3)을 힘써 지키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 져야 한다. 상호 자제(自制)의 명령을 지키라고 바울은 명했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치유책(治癒策)으로서의 처벌은 과잉이 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해져서 결국 그 때문에 아무 치유책이 되지 못한다.”

칼빈은 권징의 책임을 유기하는 교회 속에 있는 성도가 취해야 할 자세에 관한 어거스틴의 경구를 소개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자비롭게 교정하라. 할 수 없는 것은 인내로 참으며 사랑으로 슬퍼하며 울라. 하나님이 고치시거나 교정하시든지 아니면 추수 때에 가라지를 뽑고 겨를 채질하실 때까지…”

6. 성경적 근거들

칼빈은 문제 많은 교회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다. 고린도교회는 여러 가지 심각한 죄들에 감염된 교회였다. 도덕적으로 고린도교회에는 분열과 분쟁, 시기, 무질서, 탐욕,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이들이 있었다. 교리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중요한 진리를 부인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는 복음 선포와 성례 집행을 계속하고 있었으므로 바울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교회로 인정했다.

칼빈은 또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의 복음을 버린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 사이에 교회가 있음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갈 1:2) 칼빈은 선지자들의 선례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보았다. 이사야, 예레미야, 요엘, 하박국 시대의 예루살렘 교회는 종교적, 도덕적으로 무서울 정도로 부패했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 즉 방백들과 관원들 및 제사장들을 비롯한 온 백성들이 크고 많은 비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그 곳을 떠나 자기들의 교회를 따로 세우는 대신 악인들이 모인 한 가운데에서 깨끗한 손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것은 그들이 교회의 하나 됨을 갈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칼빈의 주장은 일부 신자들의 도덕수준이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거나 신앙고백에 모순된다고 해서 교회의 교통으로부터 즉시 탈퇴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보여준 모범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매우 불경건했고 일반인들은 방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와 제자들은 그들과 한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종교 의식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악인들과 함께 같은 의식에 참여한다고 해서 자신들이 더러워지는 것은 아님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7. 칼빈의 교회일치 열정에 대한 역사적 증거들

칼빈과 루터 등의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편적 교회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깊은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칼빈의 에큐메니즘에 대한 몇 가지 증거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그는 스위스개혁교회 교파들 사이의 일치를 추구했다. 1537년 2월 그는 베른의 목사들에게 ‘형제들의 모임’을 열어 논쟁을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1538년에는 불링거에게 편지하여 ‘우리들 사이에 일치’를 모색하는 대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1540년에는 불링거를 스트라스부르그의 지도자들과의 보다 형제적 관계로 인도할 길을 모색하면서 “나로서는 언제나 이 목적 즉 교회의 일치를 위해 그리스도의 모든 종들과 우정을 발전시키는 일을 위해 일할 것을 맹세한다.”고 선언했다.

나아가 칼빈은 범 개신교회들의 일치에 적극적이었다. 우선 그는 루터파와 개혁파 사이의 연합에 열성을 보였다. 1540년 멜랑크톤이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을 출판하자 그는 그것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1545년 트렌트공의회가 개최되어 로마 가톨릭교회 측의 부흥이 전망되자 칼빈은 개신교의 연합을 더욱 갈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544년에는 “만일 우리(제네바와 쮜리히)가 반나절만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성찬론에 대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낙관했다.

1549년 10년의 협상 끝에 티구리누스 협약(Consensus Tigurinus)에 의해 성찬 문제에 대한 26개 항목에 걸친 합의가 도출되었다. 칼빈은 루터파와의 연합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칼빈은 한 번도 루터파를 다른 교회로 여긴 적이 없었다. 그는 일찍이 스트라스부르그에 있던 시절인 1540년 성찬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한 쯔빙글리파와 루터파 사이의 균열을 막기 위해 주님의 성만찬에 대한 소론을 저술했다.

그로부터 거의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인 1549년에는 티구리누스 협약의 성사에 힘입어 루터파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 했으나 루터파에서 온건하고 칼빈과 가까운 멜랑크톤의 영향력이 감소한 반면 강경 루터파들(genesio Lutherans)이 득세하여 ‘제2의 성만찬 논쟁’을 재기하는 바람에 그의 의도는 다시 좌절되었다.

엄격한 루터주의자 요아힘 베스트팔(Joachim Westphal)이 Farrago를 써서 칼빈과 티구리누스 협약을 공격했던 것이다. 베스트팔의 계속적인 공격에 대해 내키지 않는 반박을 시작하면서 칼빈은 그 논쟁이 교회의 연합을 해치게 되는 것을 개탄했다. “본인은 15년간 불화를 피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해 왔다.” 결국 개신교는 루터교와 개혁교회로 분열되어 갔으나 칼빈은 두 교회 간의 연합에 대한 소망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칼빈은 영국 성공회와의 일치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감독들이 복음적이기만 하다면 감독제가 개신교 연합에 방해가 된다고 보지 않았다. 1552년 영국의 대주교 크랜머의 제안에 대해 칼빈은 종교개혁 이후의 교파적 분열이 커다란 죄악이라고 지적하면서 교회 일치에 대해 더할 수 없이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칼빈은 말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교회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들 간에는 현세적이거나 인간적인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갈기갈기 찢겨 있습니다. 신자들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찢겨 있다면 그 몸은 피를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에 제게 큰 관심사이므로 만일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필요한 일로 여겨진다면 저는 이 일로 인해 열 개의 바다라도 건너기에 인색치 않을 것입니다. 성경의 원리에 따라 분리된 교회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나 수고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같은 해 칼빈은 모든 곳에 흩어져 있는 개신교 목사들의 모임을 제안하는 편지를 대주교 파커(Parker)에게 보냈다. 1554년 칼빈은 베젤(Wesel)에 있는 영국 피난민들에게 그들이 그곳 루터파 교회의 예배가 마음에 안 든다고 그 교회의 성찬을 버리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영국 피난민들 중 영국교회의 예배 모범인 공동기도서를 거부한 이들에게 그것을 존중하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교리, 교회 정치, 그리고 예배에 있어 조그마한 차이가 있는 교회들끼리 거리낌 없이 교제할 것을 권했던 것이다.

그는 루터파, 영국 성공회, 왈도파, 보헤미안 형제들과의 교제를 아주 소중히 여겨 초교파적 관용(interconfessional tolerance)을 발전시켰다. 칼빈의 열린 태도를 보여 주는 극적인 증거는 그가 로마 가톨릭교회 내의 일부 교인들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을 서슴지 않고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재통일도 구상하고 있었다. 1560년 그는 ‘모든 기독교를 재통합’하기 위한 ‘자유롭고도 보편적인 교회 회의’를 제안하면서 교황이 그 회의의 결정에 승복하기만 한다면 그 회의의 의장이 되어도 좋다고까지 선언했다.

오늘날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를 자처하면서 개신교회는 고사하고 심지어 장로교회 안에서조차 사소한 교리적 정치적 이유만 있어도 분리를 외치는 편협하고 폐쇄적이며 독선적인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가? 교회의 일치에 대한 칼빈의 이러한 열정을 아는 역사가들은 그를 ‘에큐메니칼주의자 칼빈’(Calvinus Oecumenicus)이라고 호칭하기까지 했다.

결 론

한국처럼 작고 교회 역사가 짧은 나라에 백 수십 개의 장로교단들이 있다는 것은 사회와 다른 나라 교회가 보기에 웃음거리가 될 부끄러운 일이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미성숙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즉 그것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상호 용납의 부족,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 능력의 부족을 보여 준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지체들을 오래 참으며 용납하며 인정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국의 분열된 수많은 장로교회들이 정말 칼빈주의 신학을 신봉한다면 그의 교회론을 보다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쓴 이 / 양낙흥 교수(고려신학대학원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