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순교사화(28) 유럽과 아시아에서 핍박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개신교인들을 살해한 피에몬테 로마 가톨릭교회
15. 17세기 피에몬테 골짜기의 더 혹심한 핍박사건(2)

이런 대답에 화가 잔뜩 난 신부들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잔인한 방법으로 그의 결심을 흔들어 놓기로 했다. 그들은 그의 손가락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매일 손가락을 한 마디씩 자르도록 명령했다. 그다음에는 같은 방법으로 발가락을 잘랐다. 그가 그 고통을 끝까지 참아내며 확고부동한 결심으로 믿음을 지키는 것을 보고 그들은 그의 심장을 칼로 찌른 뒤 그의 시체를 개들에게 던져 주었다.

– 상당히 탁월한 신교도 신자 피터 가브리올라는 군인들에게 붙잡였 으나 그의 신앙을 부인하기를 거절하자 그들은 그의 몸에 화약을 서너 주머니 매달아 불을 질러 그를 날려 버렸다. 또 한 마리아 니그리노와 가련한 백치인 그의 딸은 숲속에서 조각조각 잘렸고 시체는 들짐승들의 밥이 되도록 그냥 버려졌다.

-콘스탄티아 벨리온느라는 한 신교도 귀부인은 그녀의 믿음 때문에 체포되었다. 한 신부가 그녀에게 마귀를 멀리하고 미사에 나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마귀를 멀리하라고 가르치는 신앙가운데 자라왔습니다. 그러나 내 가 만약 당신의 요구에 따라 미사에 나간다면 나는 거기서 여러 가지 형태의 마귀를 만날 것입니다.” 신부는 그녀에게 취소하지 않 으면 잔인한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러나 그녀는 담대하게 어떤 고통을 주어도 두렵지 않으며 어떤 고문에도 믿음 을 굳게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신부는 그녀의 몸에서 살 점을 서너 점 떼어 내도록 명령했다. 그녀는 그것을 가장 놀라운 인내로 견뎌내면서 신부에게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나는 지금 사 소하고 일시적인 고통을 취지만 당신은 지옥에서 얼마나 무섭고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될는지!” 이 표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신부는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군인들로 그녀에게 총을 쏘게 해서 그녀는 즉시 숨졌다.

-폴 젠르와 데이비드 파글리아는 아들과 함께 알프스 산택으로도망 가려다가 추격당해 넓은 들판에서 군인들에게 붙잡혔다. 여기서 군 인들은 그들에게 속임수를 써서 칼로 그들을 몰아 그들이 지쳐 떨 어질 때까지 달리게 만들었다. 그들이 완전히 지쳐 더 이상 야만 적인 스포츠를 시킬 수 없음을 알고 군인들은 그들을 칼로 난도질 해서 죽여 버렸다.

-보비오의 젊은이 미카엘 그리브는 라토르에서 체포되어 다리로 끌 려가 강물 속으로 던져졌다. 그러나 그는 수영에 능란했기 때문에 강물을 헤엄쳐 건너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강 양쪽 둑에서 군인들과 군중들이 따라와서 돌을 던져 관자놀이에 그중 한 개를 맞고 가라앉아 빠져 죽고 말았다.

-경건한 신교도 이사야 맨던은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무자비한 핍 박자로부터 도망쳐 바위가 있는 절벽으로 가서 아주 몹쓸 고생을 했다. 왜냐하면 한 겨울에 그는 맨 돌 위에서 덮을 것도 없이 누 워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먹을 것이라곤 비참한 처소 가 까이에서 캐낸 나무 뿌리였다. 그리고 그가 목을 축일 수 있는 것 이라곤 눈덩이를 녹을 때까지 입에 넣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군인들 몇 명이 그를 발견하고는 그를 무자비하게 때린 뒤 그를 루체른 쪽으로 몰고 가면서 내내 뾰족한 칼끝으로 그를 휘몰았다. 그는 몸이 쇠약해진데다가 돌풍을 맞아 지쳐서 길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그를 때려서 앞으로 가게 했다. 결국 그는 무 릎으로 기어가다가 군인들에게 자기를 이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 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결국 그들은 그 말에 그렇게 해 주겠다고 동의했다. 한 군인이 그의 머리를 총으로 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 이단자야! 네 요청대로 되라.”

-한신교도 메리 레블은 길을 걷다가 등에 총을 맞고 땅에 쓰러졌다. 그러나 겨우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무릎을 끊고 두 손을 하늘을 향해 쳐들고 전능하신 분께 아주 열렬한 기도를 드렸다. 그 때 군 인들이 가까이에서 그녀를 향해 일제 사격을 가해 순식간에 그는 비참한 상태에 종말을 고했다.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수많은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큰 동굴로 도망갔다. 거기서 그들은 몇 주 동안 간신히 지내면서 두 사람이 꼭 필요한 물건을 구하러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감시를 당하다가 동굴이 발견되어 즉시 로마 가톨릭 군대가 동굴 앞에 나 타났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과 이웃이 며 아주 잘 아는 사이였고 심지어 친척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신 교도들은 밖으로 나와서 친절을 베풀어서 그리고 혈연관계와 이웃 임을 고려해서 그들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맹신으로 눈이 먼 가톨릭교도들은 이단자에게는 자비를 베풀 수 없으 니 모두 죽을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상대방의 맹신 을 알고 신교도들은 땅에 엎드려 마음을 하늘로 향한 채 그들의 운명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로마 가톨릭교도들은 즉시 그들을 칼로 쳐서 토막을 내기로 결정했다.

개신교 신자들의 피가 이렇게 피에몬테의 모든 도시와 마을을 물들이고 있을 때 집단 살해를 모면한 곳이 한 군데 있었다. 그곳은 로라라는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로라는 발도파 교인들의 구역 중 가장 작은 구역 가운데 하나였다. 로라는 다른 마을보다 남쪽으로 더 멀리 떨어져 있었고 산 가운데 고립되어 있었다. 시 비앙카 산봉우리가 솟아 있고 몬토 비조가 산봉우리들에 가려져 그 골짜기에 마을이 파묻혀 있었다. 그 마을은 프리우랜드 산의 분류를 막고 앞으로는 밤나무들이 펼쳐져 있었다.

사보이 공작의 한 장교인 크리스토퍼 백작은 만일 가능하다면 자기가 앞장을 서서 500명의 부하들을 인솔해 갑자기 그 마을을 쳐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을 알고 용감한 신교도 장교인 여호수아 지아나블 대위를 작은 농부들로 구성된 군대에 앞장을 세워 좁은 길목에서 적들을 공격하려고 매복해 있었다. 군대가 나타나 그 길로 들어서자마자 신교도들은 지시대로 적을 향해 날쎄게 공격했고 그러고 잡목 뒤에 숨어 적들에게 자기들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많은 군인들이 죽었고 나머지 군인들은 공격자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자 허둥지둥 후퇴했다.

이 작은 마을 사람들은 즉시 사보이 공작의 피아네사후작에게 자기들이어절 수 없이 무기를 들었음을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사건 경위서를 보냈다. 그러나 군대가 쳐들어오겠다는 통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들은 놀랐다고 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작은 구역 내에는 군인들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으므로 그들은 힘에는 힘으로 대항했으며 다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지만 않다면 그들은 군주인 사보이 공작에게 모든 의무와 순종과 충성을 다하겠노라고 했다.

로라에 있는 신교도들을 속이고 놀라게 만들기 위해 후작은 그들의 행동에 완전히 만족한다는 말을 전달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옳았고 쳐들어간 군대는 자기 군대가 아니라 얼마동안 자기 군대를 괴롭히던 도적의 무리였으므로 오히려 그들은 나라에 봉사를 한 셈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바로 다음날(1655년 4월 25일 부활 주일) 사람들이 자기의 속임수에 안심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후작은 500명의 군사를 일으켜 질풍처럼 쳐들어갔다. 그러나 지아나블 대위는 그렇게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 군대에 대한 두 번째 복병을 배치해 두었다가 그들에게 상당한 손실을 입히고 물리쳤다.
두 번째 시도에도 실패하고 살육을 좋아하는 후작은 더욱 강화된 군대로 또 세 번째 시도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즉시 700명의 정예군으로 원정을 보냈는데 그들은 신교도들이 총을 쏘아대는데도 불구하고 로라로 들어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죽이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앞장을 서 있던 지아나블은 비록 정로는 빼앗겼지만 마을의 가장 풍요하고 좋은 부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대항을 했다. 여기서 그는 계속 총을 쏘아 대어 성공했다. 사격의 명수인 그의 부하들이 큰 위력을 발취했던 것이다.

로마 가톨릭 사령관은 이 저항에 깜짝 놀라 사면초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계속 진격하려고 애썼지만 겨우 한번에 12명밖에는 나갈 수 없었고 신교도들은 흉벽이 있어 안전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희망이 끊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군대를 잃은 데에 격분했지만 패할 것이 두려워 그는 퇴각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하들을 들어 왔던 길로 도로 나가게 하는 것은 위험하니 피안프라라는 다른 길로 해서 비라로 쪽으로 퇴각하기로 결심했다. 그 길은 접근하기는 어려웠지만 내리막길이라 좀 쉬운 길이었다.

그러나 여기 숲 속에서도 그는 군사 몇 명을 배치해 두었던 지아나블을 맞게 되었고 그들은 군대를 크게 괴롭혔다. 그들이 넓은 길로 나설 때까지 뒤를 쫓아갔다. 피아네사 후작은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고 그가 사용한 책략이 소용없었음을 알고 공개적으로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로라의 이교도들을 향해 무기를 드는 자들에게는 후한 상금을 주기로 했고 그들을 근절시키는 장교에게는 그에 따른 보상을 내리겠다고 선포했다.

맹신적인 가톨릭교도이며 극도로 악한 마리오 대위는 이 상금에 자극되어 원정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루체른, 바르그스, 브비아노, 카버, 바그놀에서 군대를 모으기 위해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1,000명의 군사를 모집했다. 그 군사로 그는 별 대항이나 어려움 없이 그 마을로 들어 갈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계획을 안 신교도들은 군대를 산꼭대기에 매복해 두었다. 그들은 거기서 공격을 시작했다. 한 쪽에서는 계속해서 총격을 맹렬히 퍼부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주 무거운 돌들을 굴려 떨어뜨렸다.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왈도파의 한 여성도

이렇게 해서 그들은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격으로 인해 죽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돌에 맞아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져 죽었다. 마리오 대위 자신도산 밑 강 쪽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오래 동안 상처로 않다가 결국은 루체른에서 죽고 말았다. 피아네사후작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게 실패한 것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그들을 추방시키거나 파멸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러한 목적으로 그는 피에몬테의 로마 가톨릭 국민병을 소집해서 훈련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해서 그는 8,000명을 정규부대에 합세시키고 그들을 세 부분으로 나눈 후 로라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응낙하지 않는다면 대대적인 공격을 동시에 세 군데에서 시도할 계획을 세웠다.

– 무기를 든 것에 사과한다.
– 그들 때문에 일어난 원정으로 인한 모든 비용을 지불한다.
– 교황의 무오성을 인정한다.
– 미사에 참석한다.
– 성자들에게 기도한다.
– 그들의 성직자들과 교사들을 인계한다.
– 연옥에 있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헌금을 한다.
– 지아나블 대위와 교회 장로들을 무조건 포기한다.

용감한 주민들은 이러한 제안에 분개해서 그들이 만약 그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재산은 몰수되고 그들의 집은 다타버릴 것이고 그들은 살해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에 분통이 터진 후작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간결한 편지를 보냈다.

로라에 사는 고집스러운 이교도들에게

너희들 요청대로 해 주겠다. 너희를 약탈하고 태우고 죽이려고 단 단히 무장한 군대를 보었으니까… – 피아네시

따라서 세 부대가 이동되었고 다음과 같은 공격 명령이 내려졌다. 제1대는 비라로 산으로 공격한다. 제2대는 바그놀 길로 공격한다. 제3대는 루체른 정로로 공격한다. 기대했던 바와 같이 수가 워낙 우세해서 군대는 산과 골짜기를 정복하고 마을로 들어가 가장 끔찍한 약탈을 시작했다. 그들은 목매달아 죽이고, 불태워 죽이고, 고문대 위에서 죽이고 남자나 여자나 어린아이들이나 할 것 없이 조각조각 잘라 죽였다. 그들이 점령한 첫 날126명이 그런 식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후작의 명령대로 그들은 또한 재산을 약탈하고 사람들의 집을 불살랐다.

그러나 몇 명의 신교도들은 용감한 지아나블의 지휘 아래 도망을 쳤다. 지아나블의 아내와 어린마이들은 불행하게도 포로가 되어 삼엄한 경비 속에서 튜린으로 끌려갔다. 적어도 지아나블의 마음을 정복했다고 생각한 후작은 그에게 편지를 써서 한 신교도포로를 풀어서 그에게 갖다 주도록 했다.

그 내용인즉 만약 대위가 로마 가톨릭 교리를 신봉하고 전쟁으로 인한 모든 손실을 보상해 준다면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즉시 석방시킬 것이며 그는 명예스러운 사보이 공작의 군대로 진급시켜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만약 거절한다면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사형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를 잡아오는 자에게는 거대한 상금을 내 걸어서 그가 신임하는 친구들까지도 그 거액의 돈 때문에 그를 배반할 유혹을 받게 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 지아나블은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후작님께
내가 신앙을 버리는 것만큼 큰 고통이나 잔악한 죽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약속도 소용없으며 협박은 다만 내 믿음을 더 강하게 해 줄뿐입니다. 나의 아내와 아이들이 붙잡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가승은 찢어질 것처럼 아픔니다. 그들이 끔찍한 고통 가운데 죽임 당하리라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나는 남편과 아버지로서 무력함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목숨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들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내 구원의 값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후작님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들은 당신의 권한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의 위안이 되는 것은 당신의 권한은 오직 그들의 일시적인 몸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그들의 죽을 몸을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원불멸의 영혼은 당신의 권한이 미치지 못하며 그 후로 당신의 잔악함에 대한 증거를 지니고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과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당신 마음속에 개혁이 일어나기를 기도드립니다. – 여호수아 지아나블

그리하여 지아나블은 그의 부하들과 함께 알프스 산맥으로 후퇴하여 다른 서너 명의 신교도 장교들과 합세해서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신교도들과 함께 스스로 방어했으며 로마 가톨릭 도시와 군대를 서너 번 성공적으로 공격했다. 그들의 용감한 개척과 대담한 시도로 인해 도시에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올리버 크롬웰(Olier Cromwell)이 사보이 공작에게 항의할 때 대부분의 유럽 왕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바로 이 사건이었다. 그리고 영국은 실제로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38,248파운드 10.6센트를 모금하여 실제로 그들을 동정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지금까지 설명한 잔악상은 많은 것을 직접 눈으로 본 레제(Leger)의 역사서와 크롬웰의 특별 사절 공사인 사무엘 모랜드(Samuel Morland) 경의 진술로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았다면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출처 / 기독교순교사화(존 폭스 원저, 머리 킹 편저, 생명의말씀사)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