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혼(同性婚)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고찰

동성혼(同性婚)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고찰
최용준 교수

본 논문은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이라는 성경적 관점에서 동성혼(同性婚)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먼저 창조질서에 나타난 결혼의 기원에 관해 살펴 본 후에 결혼이 어떻게 타락되었으며 동성애(同性愛) 및 동성혼(同性婚)은 언제부터 어떻게 대두되기 시작했는지를 고찰, 분석한 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건강한 결혼 및 가정을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상태에서는 어떤 모습을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 후 이 주제에 대한 한국교회의 과제는 무엇인가에 대해 결론적으로 무엇보다 먼저 건강한 가정을 삶으로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서 동성혼(同性婚)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을 강조했다.

I. 서 론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는 동성애(同性愛)가 하나의 주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주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결여된 상황에서 2015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同性) 간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판결을 내리자 최근 국내에도 동성혼(同性婚)을 인정하라는 요구가 법원에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미국 사회는 이제 더 이상 기독교적 가치관이 주류가 아님을 주장하는 신문 사설도 등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 또한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제는 단지 동성애를 정당화하기보다는 동성혼의 합법성으로 논쟁의 초점이 옮겨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만일 동성 간의 결혼이 민주적 토론을 통한 시민적 합의 과정도거치지 않은 채 소수의 법관들에 의해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면, 이는 한국 사회의 미래에 심각한 갈등 및 위협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는 기독교 세계관에서 볼 때 남녀 간의 결혼 제도를 제정하시고 가정을 통해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고 관리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도록 경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정면도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의 기독 지성인들과 교회는 이러한 동성애 및 동성혼 논란의 본질적 심각성을 다시금 깊이 인식하면서 그동안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던 반동성애 및 반동성혼 운동이 보여준 여러 문제점들을 교훈삼아 동성혼에 대한 보다 깊은 학술적 연구 및 실천적 전략을 세워 효과적인 대응방법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동성애에 관해서는 여러 연구도 적지 않았고(길원평, 민성길, 2014 등) 가정 및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 다룬 논문 및 저술도 있었으며(Briscoe, 2005: 김영한, 2015) 이에 관한 학슬적인 모임들도 있었다. 하지만 동성혼에 관해 심도 있는 기독교 세계관적 연구는 거의 없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이라는 성경적 관점에서 동성혼에 관한 내용들을 다루어 보겠다.

우선 창조 질서에 나타난 결혼의 기원에 관해 살펴 본 후에 이것이 어떻게 타락되었으며 동성애 및 동성혼이 언제부터 어떻게 대두되기 시작했는지를 고찰, 분석한 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건강한 결혼 및 가정을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상태에서는 어떤 모습을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그 후에 이 부분에 대한 한국 교회의 과제는 무엇인지 논의함으로 결론을 맺도록 하겠다.

II. 동성혼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고찰

1. 창조적 관점에서 본 결혼과 가정

(1) 결혼과 가정의 존재 이유

결혼과 가정은 원래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이디어이다. 이 결혼이 존재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며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창세기 2:18은 말한다. 다시 말해 남자의 반려자(伴催者, companionship)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남자라 하더라도 돕는 배필(help mate)이 없으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고 남자 자신도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아내를 만들기로 작정하신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남성의 반려자로 다른 남성을 만들기로 하신 것이 아니라 여성을 만들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즉 동성혼이 아닌 이성혼(異性婚)이 결혼과 가정의 기원이라는 점이다.

(2) 가정의 기원: 이성혼(異性婚)

하나님의 여자 창조 과정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신 후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뽑고, 그 자리는 살로 메우시고 그 뽑은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창 2:21,22) 하나님이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것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가장 고전적인 매튜 헨리(Matthew Henry)의 해석이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즉 여자는 남자를 지배하기 위해 머리에서 만들어지지 않았고 남자에게 지배당하거나 차별받지 않기 위해 발에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남자와 동등한 위치에 있고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심장에 가까운 갈비뼈로 만들어진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결혼의 기원에 대한 충분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결혼은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평등한 지위에서 사랑하고 섬기며 함께 살아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설계요 작품인 것이다.

특히 여성은 창조의 최종 작품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이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여자를 보면서 탄성을 발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창 2:23) 따라서 성경은 결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즉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니라.(창 2:23)

(3) 가정의 중심: 이성(異性) 부부간 언약의 관계

나아가 남편과 아내는 뼈와 살이 하나인 전인격적 연합 관계이며, 이것이 결혼의 핵심을 이루는 부부관계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결혼의 성립 조건을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창 2:24) 남자와 여자가 독립적인 인격체로 한 몸을 이루는 이성혼(異性婚) 이것이 결혼의 본질이며 가정의 시작이다. 이것은 부U狀父子)관계를 가정의 근간으로 생각하는 동양의 유교적 가정관과는 근본적인 대조를 이룬다.

유교는 삼강오륜에서 볼 수 있듯이 부위자강(父爲子綱,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 부위부강(夫爲婦漏,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보다 앞서며 부자유친(父子有親, .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리는 친애에 있음)이 부부유별(夫婦有別, 남편과 아내 사이의 도리는 서로 침범하지 않음에 있음) 보다 앞선다. 이는 무엇보다도 생물학적이며 혈연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가정 및 결혼관이다.(손봉호, 1993: 29)

그러나 성경은 가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부부간의 언약 관계적 결혼이라고 말한다. 부부는 사실 결혼 전까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 오직 부부로 서약하고 그 약속을 지키기로 헌신할 때 결혼 및 가정은 성립되는 것이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즉 독립하여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를 때 결혼과 가정은 성립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는 혈연(血緣) 지향적이거나 남성 우위적인 결혼 및 가정관이 아니라 언약 중심적이요 남녀평등적인 결혼과 가정관을 보여준다. 심지어 프레드 로워리(Fred Lowery)는 결혼은 단지 남편과 아내와의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맺은 평생의 언약임을 강조한다.(Lowery, 임종원 역, 2003)

하지만 여기서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분은 유교적 결혼관도 이성혼(異性婚)을 전제로 하고 있지 동성혼(同性婚)을 말한 적은 없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유교적 세계관은 기독교적 세계관과 일치한다. 나아가 부모 자녀의 관계가 가정의 근본이 아니라 이성(異性)의 부부관계가 우선하며 수직적인 관계보다 수평적 관계를 우선시한다. 수직 관계를 지향하는 사회는 여성이 차별받기 쉽다.

실제로 유교사회는 여성이 철저히 불이익을 당하던 사회였다. 남아 선호 사상, 남자 중심적 세계관에 의해 여성들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고,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나아가 부자지간의 혈연 중심적 세계관이 지배했던 가부장 중심적 유교 사회에서는 계급의 차별로 인한 선천적 불평등을 극복하는 것이 거의불가능하다.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자녀는 양반으로 출세가 가능하지만 천민 집안에서 태어난 자녀는 능력이 있어도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성적 부부가 서로 동등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 되어 협력하는 것이 결혼이요 가정의 시작이라고 보는 성경적 가정관에는 어떤 차별도 있을 수 없다. 실제로 조선(朝鮮) 말기 시대 복음이 들어오면서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었고 교육의 기회도 주어진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정희영, 2012) 그러므로 언약 중심적이고 남녀 평등적 결혼관은 국제결혼 즉 다른 민족과의 결혼도 신앙 안에서라면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가 국가와 민족의 경계가 없어지면서 국제화가 가속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타민족과의 결혼도 점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예부터 혈연을 강조한 한국 전통사회에서 국제결혼을 터부시하며 차별적, 부정적으로 보던 것과는 정반대의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언약을 강조하는 결혼을 이루는 조건은 오직 하나, 한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서로 사랑할 것을 서약함으로 가정이 이루어지고 그 약속을 평생 지킬 것을 다짐해야 한다.

이러한 질서는 인간이 만든 질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제정하신 신적 질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이혼(離婚)은 젊어서 만나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살겠다고 맹세하고 결혼한 동반자인 아내를 배신하는 것이며 경건한 자손을 원하시는 하나님, 영육 간에 주인이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므로 이혼뿐만 아니라 아내를 학대하는 것도 미워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말 2:14-16)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혼에 대해 교훈하시면서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이유는 인간의 완악한 마음 때문일 뿐 하나님의 의도는 아니며 부부는 이제 한 몸이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됨을 분명히 말씀하셨다.(막 10:2-9) 나아가 부부 관계 이외의 모든 간음은 죄라고 선포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드는 남자는 아내에게 간음을 범하는 것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그 여자는 간음하는 것이다.(막10:11,12)

사도 바울 또한 에베소서 5:31에서 결혼에 관해 권면하면서 ‘사람이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라며 같은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결혼은 어디까지나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배타적 정절의 성적 결합(sexual union with exclusive fidelity)을 통한 언약적인 헌신의 평생 연합(a covenantal commitment in lifelong union)인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 Hetero-sexual monogamy)를 통해 성립되므로 모든 형태의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나 축첩제도(蓄妾制度) 그리고 동성혼(同性婚, same sex marriage)는 창조 질서에 어긋난 것이다.(박혜원, 2005: 180)

(4) 결혼과 가정의 사명

반면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사랑하며 한 몸이 될 때 여기에는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다. 수치를 가려야 할 옷도 필요 없고 더욱 아름답게 장식할 필요도 없었다. 죄가 없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친밀한 사랑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말한다.(창 2:25)

이러한 가정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에게 축복하시면서 세상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명령하시며 모든 채소를 식물로 주셨다.(창 1:26-29) 또 서로 사랑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창조된 세계를 개발하고 보존함으로(창 2:15)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하는 문화적 사명(文化的 使命, Cultural Mandate), 이것이 바로 가정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었다.

즉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창조 세계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면서도 그 질서를 보존하여 하나님의 규범을 따라 피조계(被造界)에 잠재되어 있는 모든 가능성을 드러내야(unfolding or opening up)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즉 가정은 완성품이 아니라 계속해서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방향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응답으로 결정되는 것이다.(최용준, 2014: 135-156)

(5) 결혼: 자녀의 축복

그러므로 가정은 일단 한 남자와 한 아내의 언약적인 사랑에 근거한 결혼에 의해 성립되지만 동시에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의해 온전해지고 풍성해지며 내적으로 그 의미는 더 깊어진다. 왜냐하면 부모는 자녀를 남아 양육하면서 하나님 말씀하신 문화 명령을 수행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부간의 사랑은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에 의해 더욱 성숙해진다.

나아가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 경건한 자손들이출생하기를 원하셨다.(말 2:15) 따라서 가정의 두 중요한 요소는 부부 관계와 부모 자녀와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부부 관계는 언약적인 관계가 중심적이지만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혈연적인 관계가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결혼과 가정, 부부와 자녀는 이렇게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많은 가정들이 아기를 낳지 않는다. 부부만의 삶을 즐기고 자녀를 가짐으로 져야 하는 여러 가지 경제적 정신적 부담이 싫기 때문이라고 하는 개인주의적 이기주의 때문이다. 이것이 결국 낙태와 인공유산이라고 하는 살인죄를 낳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고 서구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체 인구의 감소 현상을 낳고 있고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것은 분명 원래적 가정의 모습은 아니다. 성경은 ‘자식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상급’이라고 분명히 말씀한다.(시 127:3) 자녀는 부담(負擔, burden)이 아니라 축복(祝福, blessing)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동성혼에서는 자식을 낳을 수 없다. 일단 생물학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하다. 물론 입양이 가능할 수도 있으나 입양된 자녀가 과연 건강한 성적 정체성을 가지고 자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동성혼이 합법화되고 증가할 경우 다음 세대는 더욱 감소할 것이며 이러한 사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 부분 또한 동성혼이 갖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6) 결혼 및 가정의 구조원리

이러한 의미에서 네덜란드의 기독교 철학자였던 헤르만 도여베르트는 결혼 및 가정의 전형적 구조 원리를 분석하면서 가정이란 무엇보다도 자연적인 공동체(natural community)라고 규정한다.(Dooyeweerd, 1984: 265) 물론 이 가정의 내적 구조는 남편과 아내의 결혼 언약에 기초해 있으며 그 부부와 자녀를 포함한다. 그리고 가정의 기초적인 양상을 ‘생물적’ 양상이며 인도적 양상은 ‘도덕적’ 양상으로 본다.

생물적 양상이 기초 기능인 이유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어 그 결과 혈육인 자녀들을 낳게 되며 그 부부와 자녀들에 의해 가정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정을 바르게 인도하는 양상은 사랑의 언약이 중심된 도덕적이며 윤리적 양상인 것이다. 이 윤리적 양상의 핵심 계명은 십계명 증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이 부모 공경이야말로 가족들 간의 친밀한 사랑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본질적 요소이며 가정을 가정되게 하는 규범이다.

룻은 비록 이방 여인이었으나 시어머니 나오미를 잘 공경하여 큰 복을 받았다. 하지만 이 계명은 단지 자녀들의 의무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들 또한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훈련과 훈계로 양육해야 할 책임도 등시에 강조하는 것이다.(엡 6:4) 특히 가장은 그 가정의 적 제사장으로서 신앙적 지도를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사랑하고 기뻐하는 자녀들이기에 불쌍히 기면서도(시 103:13, 눅 15) 필요한 경우에는 근실한 징계가 필요할 때도 있다.(잠 3:12) 따라서 가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들이 신앙으로 양육되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여베르트는 결론적으로 성경적 가정관을 이렇게 요약한다.

“가정은 부모와 그 직계 자녀들 사이에 혈연관계에 기초한 사랑의 전형적인 공동체이다. 이것은 하늘의 아버지와 그의 자녀들 간에 나타난 사랑의 관계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간에 있는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도 반영하는 것이다.”(Dooyeweerd, 1984: 269)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창 1:31) 결혼 및 가정의 모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죄로 말미암아 깨어져 파탄에 이르게 된다. 그 구체적인 모습을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다.

2. 결혼과 가정의 타락

(1) 타락의 과정

가정이 타락하게 된 과정을 창세기 3:1-5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먼저 사탄이 뱀으로 위장하여 여자에게 유혹하면서 묻는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뱀이 여자에게 접근한 방식은 매우 교묘하다. 즉 그가 직접 듣지 못한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과를 제외하고는 모든 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도록 자비를 베푸셨다. 그러나 사탄은 그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질문한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여자는 정확하게 답변하지 못한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 여자는 ‘만지지도 말라’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고 ‘반드시 죽는다’는 경고를 약화시켜 ‘죽을까 하노라’라고 대답한다. 바로 그러한 등을 노린 사탄은 더욱 그 약점을 물고 늘어지면서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정면으로 그 주장을 뒤엎어 버린다.

나아가 그 열매를 먹으면 오히려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된다.”고 강력한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그러자 여자는 그 유혹에 넘어간다. 남편과 의논하지도 않은 채 그 열매를 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결국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남편도 그것을 먹고 함께 타락하고 만다.(창 3:6)

지금도 가정의 타락은 대부분 이러한 요소들에 의해 일어난다. 이혼이 급증하고 동성혼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맺은 언약을 경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게 되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결국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우게 되면서 ‘이혼’ 또는 ‘동성혼’ 등의 선악과를 따먹게 되는 것이다.

(2) 타락의 일차적 결과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결국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깨닫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몸을 가렸으며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 주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는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창 3:7,8) 즉 한 몸인 부부는 먼저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가 깨어지면서 교제가 단절되었으며 사탄의 말 그대로 그들의 눈이 밝아지긴 했으나 그들이 깨닫게 된 것은 단지 부끄러움과 수치심이지 결코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타락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기껏해야 곧 말라 없어질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부끄러움을 가려 보려는 시도였다. 이것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지만 결국 헛수고에 불과함을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 깨닫게 된다. 인간의 의는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대로 단지 ‘누더기’와 같은 것이다.(사 64:6)

이제 남자와 여자를 위해 만드신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 에덴동산은 이제 더 이상 기쁨의 동산이 아니라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드디어 그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어버린다. 그러나 그것 또한 허사였다. 인간이 하나님의 낮을 피하여 갈 수 있는 곳은 아무 곳도 없기 때문이다.(시 139:7-10)

동성애 원인에 대한 상반 된 주장
동성애 원인에 대한 상반 된 주장

(3) 하나님의 심판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타락한 부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범죄 타락한 가정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찾아오신다. 그리고 그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신다. 그러기위해 그들로 하여금 그 현재 위치를 명확히 깨닫게 하신다. 먼저 가장인 남자에게 물으신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창 3:9) 이 질문은 단지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아는 것으로 끝나게 하려는 질문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대답은 매우 피상적이었다.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벗은 몸인 것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창 3:10)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영적 어두움에 사로 잡혀 있음을 잘 보여 준다. 그러자 하나님이 다시 물으신다. “네가 벗은 몸이라고 누가 일러주었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창 3:11)

그러자 남자는 핑계를 대었다. “하나님이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다.”(창 3:12) 결국 남자는 그 책임을 일차적으로 아내에게 궁극적으로는 그 아내를 주신 하나님께 돌리는 더 큰 죄를 범한다. 문제의 핵심을 바로 깨닫지 못했기에 그 죄를 합리화하려 하는 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시 여자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쩌다가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창 3:13) 그러자 여자도 핑계 대며 뱀(사탄)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뱀이 저를 꾀어 먹었습니다.”(창 3:13)

이처럼 모든 가정의 불화와 갈등은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즉 책임의 회피와 전가인 것이다. 그리고 더욱 궁극적인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제가 단절된 것에 있는 것이다. 이제 가정은 더 이상 이 타락한 상태에서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절대 절망의 상태에 처했다. 이렇게 범죄 하여 타락한 가정을 하나님은 심판하셨다.

먼저 여자를 유혹하여 죄를 짓도록 만든 뱀을 향하여 심판을 선포하신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네가 저주를 받아 사는 동안 평생토록 배로 기어 다니고, 흙을 먹어야 할 것이다.”(창 3:14a) 그리고 타락한 여자와 남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심판을 내리셨다.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남을 것이다.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남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다. 너는 들에서 자라는 푸성귀를 먹을 것이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때까지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 3:16-19)

남녀가 서로 사랑하며 한 몸을 이룬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타락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서로 책임을 전가한다. 타락 이전에 있던 부부 사이의 사랑과 연합의 친밀한 교제 대신에 남편이 아내를 지배하는 관계로 변질되었다. 아담이 아내를 하와라고 이름을 짓는 행위 자체가 남편의 권위를 행사하는 모습이며 이후부터 남성 우위적이며 여성 종속적인 관계가 성립되어 가부장적 가족 제도가 이루어지고 아내들은 남편을 ‘나의 주’라고 부르면서 온갖 차별과 학대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박혜원. 2005: 181)

나아가 인간 자신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터전인 땅도 저주를 받게 되었고 그들은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사망의 노예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웠던 가정, 그 가정을 통해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셨던 이 가정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것이 결국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나아가 이들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다. 그리고 이들이 생명나무를 따 먹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도록 하나님은 그 사자들로 하여금 그 동쪽 입구를 지키게 하셨다.(창 3:22-24)

(4) 타락한 가정의 모습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가정은 그 결과 여러 가지 모습들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내, 형제자매와의 관계가 깨어지기 시작했고, 자녀들이 부모를 거역하면서, 가정의 아름다움은 간음, 동성애, 매춘, 살인, 이혼 등에 의해 왜곡되고 변형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죄의 모습이 마치 바이러스나 기생충과 같음을 보게 된다.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들어가면 하드웨어는 별로 문제가 없는 것 같아도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어 결국 컴퓨터 전체가 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또한 우리의 신체에 기생충이 들어오면 우리 몸의 구조는 그대로 있는 것 같으나 결국 영양분을 잃어버리면서 점점 쇠약해 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정이라는 창조 구조자체는 창조주께서 질서 있고 지혜롭게 만드신 아름답고 귀한 조직이지만 죄로 말미암아 그 나아가는 방향이 잘못되어짐으로 결국 문화의 개현이나 발전 또한 뒤틀린 방향으로 전재되어 가게 된 것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가인과 아벨의 갈등이며 가인에 의한 아벨의 무고한 죽음이다.(창 4:1-15)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금이 가자 자녀들 간에도 죄가 역사하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볼 수 있다. 형과 동생 간에 사랑과 우애보다는 미움과 시기가 지배하게 된다. 더 나아가 가인의 후예들은 점점 에덴의 동쪽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타락한 문명을 건설해 나간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성(城)을 건축하고 무기를 제작하며 라맥은 일부일처제라는 하나님의 규범과 어긋나게 자기 욕심을 따라 두 아내를 취하면서 그것을 자랑까지 하는 것을 볼 수 있다.(창 4:23,24)

그 이후 인류의 역사는 계속해서 죄악으로 가득 찬 역사였다. 가정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인격적인 만남과 사람의 언약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육신과 안목의 정욕에 의해 좌우되었다. 나아가 남녀관계도 변질되어 동성연애가 점증하고 일부다처제로 변하면서 가정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보신 하나님이 이렇게 탄식하셨다. 하나님이 보시니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창 6:11,12)

인간이 타락하자 모든 피조물들이 그 죄의 영향으로 허무한데 굴복하였다.(롬 8:20) 이 세상이 이렇게 타락한 것을 보다 못해 하나님은 의롭고 경건한 노아의 가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홍수로 그들을 심판하신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던 노아와 그의 가정 그리고 그가 방주로 데려간 짐승들이 함께 구원을 받았다.

아브라함과 사라 또한 노아의 가정처럼 믿음으로 순종한 가정이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지체하지 않고 본토와 친척집을 떠나 약속하신 땅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죄의 유혹은 언제나 있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했으며 그들에게 아들이 없자 하갈이라는 이집트의 여종을 통해 아이를 낳으려는 인간적인 방법을 시도했다. 결국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기는 했으나 그 아들은 계속해서 아브라함 가정에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반면에 가정이 타락한 모습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은 역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그리고 그와 관련된 롯과 그 딸들 간의 관계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하였던 아브라함의 가정과는 반대로 롯은 눈에 보이는 좋은 땅을 선택하여 가다가 결국 동성애 등으로 극도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 거기서 살던 롯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다 아내를 잃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 딸과 동침하는 죄를 법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가나안 백성들의 가증한 풍습을 본받지 말라고 경고하시며 그 중 특히 근친상간, 간음, 자녀를 우상의 제물로 바치는 일 그리고 수간(獸姦)과 더불어 동성애 및 동성혼을 분명히 금하셨다. “너는 여자와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안 된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레 18:22) 가나안에 살던 민족들은 이런 짓들을 하다가스스로 자신을 더럽혔고 따라서 그들이 사는 땅까지 더럽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그 악한 땅을 벌하셨고 그 땅은 그 거주자들을 토해 내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레 18:24,25)

나아가 동성애와 동성혼을 하는 사람은 매우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경고하셨다. “남자가 같은 남자와 동침하여 여자에게 하듯 그 남자에게 하면 그 두 사람은 망측한 짓을 한 것이므로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 죄 값으로 죽는 것이다.”(레 20:13)
이러한 계명이 있다는 것은 당시 가나안 사회에 이러한 일들이 행해지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르흐보암 왕 시절에도 백성들은 여러 군데 산당과 우상 및 목상을 만들었으며 그 신전에 남창들이 있어 혐오스러운 관습을 그대로 본받아 행함으로 주님의 진노를 격발하기도 하였다.(왕상 14:22-24)

신약 시대도 이것은 예외가 아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이방인들의 부패한 삶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여자들은 남자와의 바른 관계를 바르지 못한 관계로 바꾸고, 또한 남자들도 이와 같이 여자와의 바른 관계를 버리고 서로 욕정에 불탔으며,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잘못에 마땅한 대가를 스스로 받았습니다.”(롬 1:26,27) 나아가 이들은 이러한 잘못을 정당화한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공정한 법도를 알면서도 자기들만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을 두둔하기까지 합니다.”(롬 1:32)

(5) 종말의 징조들
많은 선지자들은 가정의 파괴가 종말의 징조라고 예언하고 있다. 가령 미가 선지자는 장차 “이 시대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딸이 어머니에게 대들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다툰다.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 집안사람일 것이다.”(미 7:6)라고 하였으며, 예수님도 2000년 전에 이미 “형제가 형제를 죽음에 넘겨주고, 아버지가 자식을 또한 그렇게 하고, 자식이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서 부모를 즉일 것이”며(막 13:12) 또한 “불법이 성하여,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마 24:12)이라고 경고했다.

현대 사회에 만연하는 여러 종류의 가정 파괴 현상은 결국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예수님이 미리 경고하셨듯이 종말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여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눅 17:27) 몇 년 전 한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트랜스젠더 또한 이와 같은 세기말적 타락 현상 중의 하나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아가 마지막 때에는 이러한 타락의 모습이 더욱 극단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바울 사도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딤 후 3:1b-5)

실제로 한국 사회의 경우 가정은 더 이상 가족들이 정서적 안정을 누리는 곳이 아니라 조성돈이 지적한 대로 ‘성공을 위한 훈련소’로 전락하고 있다.(조성돈, 2005: 59) 즉 경쟁사회라고 하는 격전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사를 양성하는 곳이 되고만 것이다. 그리하여 심지어는 조기 유학으로 말미암는 기러기 아빠가 양산되어 이산가족으로 말미암은 각종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부모 중 한 쪽이 없는 결손 가정에서 자라난 청소년들이 비행 청소년으로 쉽게 전락하여 사회문제화 되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동시에 동성애자들의 퀴어 축제 및 차별금지법 제정 주장 등을 통해 평등을 이용하여 가정의 타락을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타락한 가정은 더 이상 회복 가능성이 없는가? 있다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가?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다.

3. 건강한 이성간 결혼의 회복과 가정의 구속

(1) 영적 전쟁선포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타락한 가정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깨어진 가정을 회복하시기 위해 가장 근본적인 처방을 내리셨다. 먼저 선악과를 따먹었던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통해 타락한 가정을 구속하시는 놀라운 계획을 선포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가정을 타락하게 만든 사탄의 나라에 대해 창세기 3:15에서 영적 전쟁을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자손을 여자의 자손과 원수가 되게 하겠다.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여자의 자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뱀(사탄)과 여자는 원수가 되고 뱀의 후손과 여자의 자손과도 영적 대립관계가 형성된다. 여기서 물론 여자의 자손은 마리아를 통해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가정이 되었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순종함으로 메시아를 탄생하게 되는 경건한 가정이 되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권세 즉 뱀의 머리를 상(傷)하게 하셨다. 그리고 뱀은 그 발꿈치를 상(傷하게 했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감수해야만 했던 것이다.

(2) 최초의 구속언약

이러한 구속(救贖)의 약속이 선포되자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비로소 하와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 즉 구속의 언약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와’라는 이름의 의미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이다.(창 3:20) 즉 여자의 후손을 통해 회복될 소망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가죽옷을 만들어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 주신다.(창 3:21)
가죽 웃을 만들기 위해 짐승이 희생되어야 한다. 그 희생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허물과 수치는 덮인다. 그러므로 이 가죽옷은 하나님의 구속(救贖) 언약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의 권세가 깨어지고 그 분의 의가 우리의 모든 불의를 덮는 것이다. 우리가 그 분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모든 죄는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3) 회복된 가정의 모습

이 회복의 모습을 우리는 이미 여러 가정에서 볼 수 있다. 즉 구속의 은총은 한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임한다. 홍수 때에도 노아의 가정이 구원을 받았으며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을 때에도 롯의 가족이 함께 구원을 받았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극심할 때에도 야곱의 모든 가족은 요셉에 의해 구원받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을 때에도 가족들이 함께 나온 것을 말 수 있다. 유월절 양을 잡을 때에도 가족들과 함께 먹을 양이라고 말씀하신다.(출 12:21)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수할 때에도 가족을 기준으로 계수한 것을 볼 수 있고 여리고 성이 멸망할 때에도 라합의 가족은 라합의 믿음과 순종으로 함께 구원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기업을 나눌 때에도 지파와 가족별로 제비를 뽑아 나누었다. 나아가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증에 동성애를 엄격히 금하여 건강한 가정을 회복시키려 노력한 왕들이 있었다. 유다의 아사왕은 성전 남창들을 나라 밖으로 쫓아내었으며(왕상 15:12), 그의 아들 여호사밧 왕도 아직까지 남아 있던 성전 남창들을 그 땅에서 내쫓았다.(왕상 22:46)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 기적을 행하신 곳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였다. 건장한 가정이 타락으로부터 구속되고 회복되어 진정한 사랑과 기쁨이 회복되는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다. 그 가나에서 두 번째 행하신 기적은 그곳에 있던 왕의 신하 아들의 병을 고쳐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다가 종들로부터 아들이 살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와 그의 온 집안이 함께 예수님을 믿었다.(요 4:53)

또한 사마리아 수가성에서 만난 여인은 그야말로 가정생활이 파산에 이른 상황이었다.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었으나 참된 만족이 없는 삶을 살았지만 생수 되신 주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화되고 회복되는 모습을 요한복음 4장에서 볼 수 있다. 고넬료의 가정 또한 비록 이방인의 가정이었으나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믿어 온 가족이 구원을 받는 축복을 경험한다. 이것은 베드로 사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이 단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가정도 위함임을 깨닫게 해 준 결정적인 사건이었다.(행 10:1-48)

이런 뜻에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행 16:31) 실제로 이 로마 간수는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온 가족이 믿어 세례를 받았다. 이와 반면에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법죄 함으로 가족 전체가 심판을 받는 경우도볼 수 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점령했을 때 아간이 범죄 하자 그와 함께 가족들도 심판을 받았으며(출 7:25), 엘리 제사장이 아들을 바로 키우지 못해 결국 함께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였고(삼상 4:11-18), 사울 왕도 교만하다가 결국 온 가족이 함께 전멸하는 것을 볼 수 있다.(대상 10:6)

그러므로 구속 받은 가정은 천국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들은 자녀를 키우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조금씩 더 알고 깨닫게 된다. 자녀들을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면서 경건의 본을 보일 때 그 부모를 통해 자녀들이 축복을 받는다. 디모데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깨끗한 신앙을 물려받아 초대 교회의 귀한 일군이 되었다.(딤후 1:5) 하지만 동성혼의 경우 이러한 가정의 모습을 기대할 수 없다.

(4) 구속 받은 가정의 윤리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며(고후 5:17) 따라서 구속 받은 가정 또한 이 세상의 가정과는 다른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타락의 결과로 생겨난 모든 불의와 불평등, 갈등과 압제, 착취와 굴종 등 모든 차별이 사라지고 새 창조의 질서인 의와 평강, 평등과 섬김, 사랑과 피차 순종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므로 부부 관계에 대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아내 된 이 여러분,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순종하듯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몸의 구주이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 된 이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 같이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며, 티나 주름이나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회를 자기 앞에 내세우시려는 것이며,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도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엡 5:26-28)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는 분명히 질서가 있고 이 질서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정하신 신적 질서이다. 아내는 남편에 순종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그 가정은 날마다 구원을 경험하는 가정이 되고 그러한 가정이 모인 교회는 이 땅에서 회복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로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그 희생적 섬김의 사랑을 의미한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로 가정을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결코 아내를 지배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연약한 그릇’으로 알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으로 존중해야 한다.(벧전 3:7) 부부간의 언약관계는 전적으로 동등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또 아내는 남편의 리더십을 인정하면서도 가정의 모든 살림을 책임지며 가사를 잘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해서 아내가 남편의 권위마저 무시하게 되면 그 부부 또는 그 가정은 깨어질 위험이 많다. 피차 복종하되 서로의 본분을 다할 때 건강한 부부 생활 및 가정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세상의 모든 권위 체계 및 질서를 권력 행사를 통한 억압의 수단으로 이해하면서 거부한다. 이것은 성경을 통해 계시된 가정에 대한 신적 기원 및 권위 전체를 부인하고 동성혼을 주장함으로 건강한 가정의 해체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며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는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간의 사랑과 교제의 예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천국을 설명하실 때마다 예수께서는 자주 하나님의 나라는 혼인 잔치와 같다고 하셨다.(마 22:2-14)
남편과 아내의 사랑은 결국 두 사람 모두가 영원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할 때 그 하나 됨과 사랑이 온전해진다. 자녀들 또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자녀들은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할 때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하지만 이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서로 자기주장만을 내세우기 때문에 현대 사회의 이혼은 계속해서 급증하고 있다. 이혼 한 번 하지 않고 살아가는 건강한 가정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또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여 결국 비행 청소년이 되고 사회의 짐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나아가 동성애를 당연한 것처럼 주장하면서 이를 틀렸다고 말하는 것을 오히려 차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사도 바울도 음행 간음 및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나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하면서(고전 6:9b,10), 율법이 제정된 것은 무엇이 옳고 그릇된 것인지를 바로 분별하기 위함이며 동성애 및 동성혼 또한 건전한 교훈에 배치된다고 분명히 말했다.(딤전 1:10)

(5) 경건한 가정의 모델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속 사역으로 가정의 구속이 이루어졌으나 이런 구속은 계속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지켜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가족들이 주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가정이어야 한다. 이러한 가정은 축복을 받아 남편은 수고한 만큼 대가를 누리게 되며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고 기업으로 받은 자녀들은 어린 감람나무와 같아 시온의 복을 누리게 된다.(시 128편)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는 사명을 다 감당한 후에 모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모아 놓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아니면 가나안의 우상들을 섬길 것인지 택하라고 도전하면서 “나와 나의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이다.”라고 했다.(수 24:15b)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 또한 앞서 본 바와 같이 매우 경건한 가정이었다. 그는 모든 가족들이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가정이었기에 마침내 베드로 사도를 통해 복음을 받고 성령 세례를 받는 최초의 로마인 가정이 되었다.(행 10장)
초대 교회도 장로와 집사의 직분 자들을 세울 때 가정을 잘 다스리는 것을 중요한 자격으로 삼았다.(딤전 3:4,5,12) 그러므로 현대 가정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부부가 먼저 회개하고 각각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 가족전체가 주님을 바로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한 사람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거듭나면 그는 의롭다고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즉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 인(印) 치심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성령을 ‘양자의 영’이라고 부른다.(롬 8:14,15)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인종, 문화, 언어, 피부색 등 모든 차이를 넘어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며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 예수님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라고 하셨고(막 3:35) 사도 바울도 같은 의미로 이같이 선포한다. “이방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엡 2:18,19)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할 점은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후서에서 ‘형제 사랑’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원어로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결코 동성애나 동성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성도들 간에 서로 우애하며 친절을 베풀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구속된 가정의 완성된 모습은 어떠한지 마지막으로 살펴보겠다.

4. 결혼 및 가정의 완성

(1) 어린 양 혼인 잔치

물론 천국에는 더 이상 이 세상의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더 이상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고 모두 천사와 같기 때문이다.(눅 20:34-36) 그 대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각기 신랑과 신부의 자격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배경으로 어린 양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즉 영원한 천국 가정이 완성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1:2은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은 구약에서도 ‘시온의 딸’이라는 표현처럼 항상 여성형으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구약시대부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은 남편이요 이스라엘은 아내와 같다는 것이다. 신약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이요, 교회는 그의 신부로 설명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런 의미에서 자신이 고런도 교회 성도들을 신랑 되신 예수께 중매하는 자라고 소개한다.(고후 11:2)

이러한 신부는 신랑이 올 때까지 깨어 기도하면서 성령의 기름을 늘 예비하여 마침내 어린 양 혼인잔치에 들어가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가 되어 가장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모시옷을 예복으로 입었는데 이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이다. 이 날은 기쁨과 사랑이 완성되는 날이요,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이 충만한 날이 될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어린 양의 혼인날이 이르렀다. 그의 신부는 단장을 끝냈다. 신부에게 빛나고 깨끗한 모시옷을 입게 하셨다. 이 모시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다. 또 그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고 기록하여라.”(계 19:7-9a)

(2) 최후의 심판

가정을 파괴한 자들은 어린양 잔치에 들어올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최후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다. “모두 혼인을 귀하게 여겨야 하고 잠자리를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음행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히13:4) 사도 요한 또한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개들과 마술쟁이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을 사랑하고 행하는 자는 다 바깥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계 22:15)
여기서 ‘개들’이란 극단적 표현은 성적 타락이 극도에 달한 무리를 일컫는 것으로 동성애 및 동성혼 또한 암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도덕적 삶을 사는 가에 따라 그리고 어떤 가정생활을 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받을 것이며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에 대해 책임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전 12:14)

(3) 영원한 축복

어린 양 혼인 잔치와 함께 하나님의 언약은 완성된다. 하나님이 친히 자기 백성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 사도 요한은 이 축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계 21:3,4)

즉 하나님이 친히 모든 자녀들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 분의 자녀들은 하늘나라 백성으로 더 이상 눈물과 죽음, 슬픔과 고통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릴 것이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에 견고히 서서 경건하고도 건강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이 땅에서 천국을 맛보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III. 결 론

이상과 같이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이라는 성경적 관점에서 건강한 가정의 모습을 통해 동성애 및 동성혼에 관한 내용들을 다루어 보았다. 우선 창조 질서에 나타난 결혼의 신적 기원에 관해 살피 본 후에 이것이 어떻게 타락되었으며 동성애 및 동성혼은 언제부터 어떻게 대두되기 시작했는지를 고찰, 분석한 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건강한 결혼 및 가정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상태에서는 어떤 모습을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한 한국 교회의 과제는 무엇인가?

(1) 무엇보다 먼저 건강한 가정의 삶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이 시대에 가장 설득력 있는 기독교 세계관은 구체적인 삶으로 그 진정성을 증거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혼인을 귀히 여기며 혼전 순결을 지키면서 회복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경건한 자녀를 위해 기도하면서 은혜로 주신 자녀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여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인재로 키우면서 세상에 선하고 모범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면 세상 사람들은 분명히 감동과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2) 동성혼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즉 동성애 및 동성혼이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행위임을 명확히 선포하고 동성혼을 합법화하려는 시도는 장차 건강한 가정을 파괴하는 무서운 결과를 남게 될 것임을 엄중하게 경고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전문가들이 분야별로 이러한 주제에 대해 더욱 심도 있는 연구를 하여 보다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3) 이와 함께 동성애적 경향이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자.

주님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품으면서 그들이 건강한 결혼 및 가정생활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최근에 나은 영화 ‘Sing over me’는 동성애자도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제적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하여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에 보다 건강한 가정이 회복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할 것이다.(*) 글쓴 이 / 최용준 교수(한동대 글로발에디슨 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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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혜원(2005) “새 창조에서의 부부관계”, ‘목회와 신학’ 2005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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