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교리강좌(27) 신인(神人) 교리의 중요성

로이드 존스 교리강좌(27)
신인(神人) 교리의 중요성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지난 호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여러 본문을 살펴보았다. 어떤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주장하고 어떤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주장했다. 이 같은 하나님이시며 또한 사람이시라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인(神人)의 교리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한 가지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聖父)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복종하셨다는 것이다.

1. 성부 하나님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종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가 자신보다 크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아 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요 14:28)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께서 낳으신 아들’로 묘사된다. “하나님이 세상 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 행 13:33, 히 1:5,5:5)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아버지 때문에 혹은 ‘아버지로 말미암아’산 다고 말씀하셨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 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 라.”(요 6:57)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아버지에 의해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 지 아니하고”(요 6:3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요 8:29)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행해야 할 일을 아버지께로부터 명령받았다고 하셨다.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 14:31, 요 10:18)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모든 권세가 모두 아버지가 주신 것이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요 5:26,27)
예수 그리스도는 사실상 자신의 메시지를 아버지로부터 받았다고 말 씀하셨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요 8:26)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 8:28)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행하신 일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하셨다.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 “아버 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요 17:4)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의 나라는 아버지가 맡기신 것이라고 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 겨”(눅 22:29)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24에서 종말에 예수님이 나라를 아버지 께 바치실 것이며,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도록(28절) 하기위해 아버지께 복종하실 것이라고 기록했다.
고린도전서 11:3은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라고 말씀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전 11: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자 임 무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 게 하시는 일”(히 2:10)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 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히 2:24)

이처럼 우리 주님의 사역은 자신이 영광에 들어가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도 하나님께로 데려 가신다.

지금까지 열거한 내용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시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성육신 하신 주님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중 어느 것도 주님 탄생 전 즉 주님이 성육신하시기 전의 주님의 상태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선재(先在)하신 하나님 되신 우리 주님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신인(神人) 교리(敎理)

(1) 그리스도의 신인(神人) 교리에 대한 오류들

교회사를 보면 4세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교리에 논쟁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온갖 종류의 이단이 침투해왔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여러 차례 공회(公會)를 열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 같은 교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성경대로 믿는 참 된 기독교가 어떤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알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 하는 이단

이것은 예수님의 신적 본성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사람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이 같은 일신론(一神論) 자들 가운데 유니테리언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은 오직 한분이라는 교리를 수호하는데 몰두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이 두 분이 되는 것이고 성령이 하나님이라 하면 하나님이 세분이 되시는 것인데 그들은 이것을 피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극단에 빠졌다. 요한복음은 이런 오류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요 20:31)

2)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부인하는 이단

이것은 유니테리언과는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의 가르침 중 한 가지 예는 예수는 단지 사람일 뿐인데 세례 받으실 때 영원하신 그리스도가 그에게 임했다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는 그 이후부터 십자가에 달릴 때까지 계속 예수라는 사람 안에서 거하다가 예수를 떠나갔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결국 인간 예수였을 뿐이었다고 가르친다.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환영(幻影)이라고 설명한다던지 영원하신 그리스도와 인간 예수를 구분한다던지 하는 방법으로 예수를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요일 4:2,3)

3)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이단

예수 그리스도의 참 사람이며 참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는 이단이다. 교회사 초기에 큰 분쟁을 일으켰던 아리우스주의가 이런 이단이다. 이들은 신성의 실체를 부정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모든 피조물 중 첫째이며 최고의 존재라고 말했다. 즉 그리스도는 피조물이며 하나님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중간에 위치하는 존재였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인성의 완전성을 부인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몸과 동물적인 혼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정신과 영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고 가르친다. 즉 그리스도는 일부만 사람이었다고 가르쳤다. 둘 다 이단이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의 단일성을 부인하는 이단

네스토리우스는 “예수는 하나님이자 사람이다. 즉 인격적인 하나님이자 인격적인 사람이다.”라고 예수 그리스도가 두 본성을 지닌 한 인격이 아니라 두 개의 인격이었다고 가르쳤다. 즉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격을 동시에 가진 한 인격이라고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의 인격과 사람의 인격 즉 두 개를 가진 분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의 이단이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섞여 하나의 본성을 이루었다는 주장이다. 즉 하나님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이 구분되지 않고 한데 혼합되고 섞여 일부는 신적이고 일부는 인간적인 신성도 인성도 아닌 새로운 본성이 존재하였다고 가르쳤다.

(2) 예수 그리스도는 두 본성을 지니셨으나 한 인격이시다.

“우리 주님은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으로서 온당한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계시며, 신성에 있어서는 성부와 동질이시고 인성에 있어서는 우리와 동질이시다.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으시되 죄는 없으시다.

신성을 따라서는 만세 전에 하나님 아버지에게 나셨으며, 인성을 따라서는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어머니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그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시오, 아들이시오, 주님이시오, 독생자이시다.

그는 혼합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나누어지지도 않는 두 본성을 가지신 분이다. 연합으로 인해 두 본성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한 인격, 한 존재 안에서 각각의 본성이 보존된 채로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두 본성은 분할되거나 두 인격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분 이며 동일하신 아들, 독생자, 하나님,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실뿐이다.” – 주후 451년 칼케돈 공의회 성명서

얼마나 놀랍고 장엄한 진술인가!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이단과 오류를 다루고 있으며 위대한 명제들을 빠짐없이 제시하고 있다. 5세기의 교회는 현대 교육을 받지 못한 당시의 성도들에게 이미 이 같이 깊고 놀라운 진리를 모든 교인들에게 가르쳤다.

(3) 신성과 인성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1) 죄의 형벌을 체험하시기 위해 반드시 인성이 필요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이 죄를 범한 후에 그 형벌이 사람의 본성에 지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자신도 사람이 되시지 않고는 그 죄를 짊어질 수 없다. 그것이 사람을 구속하는 유일한 길이다. 또한 그 벌의 대가에는 몸과 영혼의 고통이 포함되는데 하나님은 이런 고통을 경험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완전한 사람이 되셔야 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주님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셨다.(막 14:34) 몸과 영혼의 고난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 주님은 사람이 되셔야 했다.

2) 주님은 인성으로 인해 우리를 체휼(體恤)하실 수 있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이해하시는 대제사장이라고 증거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그분이 반드시 사람의 본성을 가지시고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신’분이 되셔야 한다.(히 4:15) 그는 우리를 완전하게 이해하신다. 그래서 우리의 감정과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동정하신다.

3)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보기가 되지기 위해 인성이 필요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믿는 자의 본보기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신”(벧전 2:22,23)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거듭난 자라면 반드시 이 같이 주님을 닮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야 한다.

4) 희생의 가치가 무한하며 그리고 완전한 순종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신성을 가진 참 하나님이셔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무한한 가치를 지니려면 그는 사람일 뿐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이셔야 했다. 또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의 사역이 실패하지 않고 실패의 가능성조차 없이 완전한 순종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선 그는 반드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셔야 했다.

3. 신인 교리의 신비

(1) 신인(神人) 교리는 인간 이성(理性)의 범주를 벗어난다.

이제까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그리고 한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이 함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누가 질문 한다면 우리는 완전하고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없다. 이는 ‘경건의 비밀’(딤전 3:16)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理性)과 지성(知性)과 이해(理解)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여러 교리에서 그러하였듯이 이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성경에 복종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해 주시는 것 이상으로 알려고 해선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하고 유한하며 죄악 된 이성으로 무한한 것을 측량하려는 노력을 멈추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갈 때에 이 모든 것은 완전히 최종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2) 신인 교리를 설명하는 유추들

그래서 신인의 교리를 설명하는데 유추의 방법들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런 설명들이 단지 유추일 뿐임을 기억한다면 그리스도의 신인 교리를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1) 사람은 몸과 영혼으로 되어있다.

사람은 몸과 영혼이라는 서로 다른 두 본질이 한 인격 안에 연합되어 있다. 이 두 본질은 서로 혼합되거나 섞이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가지 본성이 서로 혼합되지 않는 상태로 하나의 인격 안에 거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2) 옛사람과 새사람의 개념을 사용하여 유추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옛 본성과 주님이 주신 새 본성의 존재를 인식한다. 우리는 각자 한 인격이지만 두 가지 본성을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이 두 본성이 우리의 성격이자 부분이다. 이 두 본성은 우리 각 개인 안에 결합되어 있으나 서로 섞이거나 융합되지 않은 별개의 실체로 인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의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본성이 하나의 인격에 혼합되지 않은 채 결합 된 것을 설명할 수 있다.

(3) 빌립보서 2:5-8을 통해 본 그리스도의 신인 교리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 주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셨으나 하나님과의 동등성에 집착하시지 아니하시고 즉 자신의 신성을 나타내 보이시고 그의 신적 권능과 확증에 연연해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분은 종의 형체(본체)로 자신을 낮추시고 참된 종으로 이 땅에 오셔서 참된 종으로 사셨다. 즉 신성을 비워 없이하였다거나 하나님이시길 그만 두셨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하신 것은 하나님과 동등성을 주장하시지 않고 ‘종의 형체(인간)’로 오셨다. 그래서 ‘사람이 되셨고’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기록했다. 만일 예수님이 신성을 비우셨다면 이런 표현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바는 여전히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동시에 사람도 되셨다는 것이다. 뭔가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덧입으셨다는 의미이다.

(4) 그리스도의 신인(神人) 교리의 핵심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체를 가지셨고 ‘사람들과 같이’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바 되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종으로 사셨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의 주인 되신 주님께서 세상의 종이 되셨고 세상을 다스릴 권능과 권리가 있으신 분이 순종을 삶의 특성으로 삼으셨다는 말이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는 전혀 변화가 없이 다만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고 사람의 본성을 입으시고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기를 선택하셨다는 의미다.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하셨는지는 우리는 모른다. 다만 우리는 이 사실을 믿는다.

이 땅에서 사람으로 사시는 동안에 주님은 자신의 신성의 일부 특성은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성령의 선물을 한량없이 받으셔야 했다. 그리고 기도하셔야 했던 이유도 이것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통해 어떻게 우리 주님이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는”(눅 2:52) 일이 가능했는지 알 수 있으며 또 주님이 어떤 때는 특정한 일에 대해 알지 못하시는 것처럼 보이시면서도 왜 아버지와 자신의 신성이 하나이심을 확언하시고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와 같은 말씀을 하실 수 있었는지 우리가 알 수 있다.

(5) 그리스도의 신인 교리는 놀라운 구원의 신비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위대하고 놀라운 영광스러운 신비를 살펴보았다. 이 보다 더 놀라운 묵상과 고찰의 대상은 없다. 이런 놀라운 신비와 진리를 살펴보도록 허락받은 것이 커다란 특권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하나님이 이 특권을 주신 이유는 이런 놀라운 신비와 진리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깊이 파고들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에게 이 모든 일을 부탁하셨고 아들은 자신이 영원한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순종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이 창조되도록 하신 영원한 성자 하나님이시면서도 마리아의 태에 들어가 아기로 태어나시고 마구간 구유에 누이셨다. 심지어 죄인들의 말 못할 모욕을 참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셨으며, 배신당하고 버림받은바 되었으며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다.

주님이 이 모든 일을 행하신 이유는 우리가 구원 받을 유일한 길이 주님께서 우리의 죄와 그 형벌을 대신 지시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하셨기에 우리에게 새로운 성품을 주실 수 있었고 우리를 천국의 영광을 위해 준비시킬 수 있으셨다. 이는 놀라운 신비중의 신비이며 하늘의 천사들조차 깜짝 놀라는 일이다.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자! 그분을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며 살펴보기를 계속하자. 감정과 경험이 아닌 우리 주님에 대한 지식과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의 영적 삶을 측량하고 평가하자.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일의 중심이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