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뿌리 청교도의 신앙과 삶(2) 청교도들의 신앙과 가정교육

미국의 뿌리 청교도의 신앙과 삶(2) 청교도들의 신앙과 가정교육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정의 붕괴다. 아이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만나는 세계는 어머니이고 그 다음으로는 가정이다. 그 안에서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의 질서, 사람의 의무 등을 교육받음으로써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준비된다. 그러한 가정은 하나님의 통치를 반영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들을 가르쳐줄 수 있는 가정의 기반이 지금 급속하게 해체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속 정신이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가정을 거짓된 세속의 가치관으로 물들게 하거나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세속 정신에 물든 기독교 가정은 다음 세대에 참된 교회의 영적 번영과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헌신할 자녀들이 자랄 수 없다. 우리는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가정을 중시했던 사상으로 되돌아가 성경적 가정교육을 재건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가정교육

기독교 신앙의 개혁을 부르짖었던 종교개혁자들은 한결같이 자녀에 대한 종교교육의 책임을 부모들에게서 찾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언약백성들을 당신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하시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교육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 각성하도록 만든 사람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였다. 그는 부모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가장 중요한 의무가 자녀들을 신앙으로 교육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일을 교회와 학교가 도울 수는 있으나 결코 가정교육을 대신할 수 없다고 보았다. 자녀들은 부모와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가야 한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가정을 교회와 함께 하나님이 주신 신적인 두 기관으로 이해했다.

칼빈(John Calvin, 1509-1564)도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기독교교육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는 부모의 신앙고백을 통해 유아세례를 받음으로써 자녀들이 언약백성으로 공동체 속에 포함된다고 여겼다. 이러한 언약의 맹세는 자녀들에게는 부모의 기독교적 가르침에 순응할 것을 그리고 부모에게는 자녀에게 기독교신앙을 가르칠 것을 맹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목사의 직무는 교회 안에서 이런 일들이 올바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피고 감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쉬넬(Horace Bushnell, 1802-1876)은 가정이야말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한 신앙교육의 현장이며 이러한 교육을 통해서 언약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이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모는 교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으로서 참된 신앙인이 되지 않는다면 가정교육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더 나아가 자녀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교육할 때 그 방법도 신앙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부모는 하나님께서 자녀들 각자에게 주신 다양성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신앙적인 삶과 성품을 형성해가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정은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통치를 공정하게 반영하는 방식으로 자녀들을 올바로 가르칠 수 있다고 보았다.
2. 청교도와 가정

청교도였던 매더(Increase Mather, 1639-1723) 목사는 국가의 건강에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이었다. 사회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복음화 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진실하고 영적인 그리스도인이 필요하고 그러한 세상의 변혁을 위해 섬길 수 있는 좋은 그리스도인은 가정을 통해서 배출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1679년에 타락한 가정들을 보며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가정은 교회와 국가의 양성소입니다. 가정을 잘 관리하십시오. 그리하면 나라는 보다 훌륭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뉴잉글랜드에서 경험하는 많은 상처와 커다란 불행들은 가정이 신앙적으로 무질서하기 때문입니다.”

(1) 남편과 아내

중세 가톨릭에서는 결혼의 제일 목적을 자녀 생산으로 보았지만 청교도들은 결혼의 제일 목적을 거룩한 친교에 두었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의 주요 관심사는 그들의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 방해받을 정도로 사랑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여겼다. 하나님만이 자신들의 가장 고귀한 사랑과 경배를 받으실 분이었고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을 향한 경배를 인간이나 피조물이 차지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출산 중에 죽어가고 있을 때 쉐퍼드(Thomas Shepard, 1605-1649) 목사의 다음과 같은 참회는 청교도들의 정신을 잘 반영한다. “나는 더 큰 약속을 바친 내 하나님보다 아내를 나의 영혼으로 기뻐하며 그래서 은밀하게 오만해지고 마음이 육욕으로 가득 차는 것을 깨달았다.” 청교도들에게 아내를 얻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내를 얻는 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데 더 훌륭한 준비를 갖추기 위한 것이었으며 아내를 더욱 하나님께로 가까이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청교도 남편은 법적으로 가정을 대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또 자녀들과 종들을 포함하여 자기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징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가족의 우두머리이며 주인이었다. 남편은 영적인 지도력과 통제권을 행사할 것을 기대했고 가족을 적절하게 부양할 책임이 있었다. 청교도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위로하라는 요구를 받았으며 아내를 때리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2) 가정과 질서

청교도 가정의 질서는 부부간의 질서와 부모와 자식 간의 질서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과 위로를 받으며 남편에게 복종해야 했다. 그들은 남편과 아내의 친교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해 설명했다. 아내가 남편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이로써 온전한 가정을 이루어가게 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모든 가족구성원들보다 뛰어난 열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요구받았다. 교회는 남편들을 통해 아내와 자녀들의 신앙을 돌보고자 했다. 또 하나는 자녀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책임이었다. 그들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며 말씀을 따라 살도록 가르쳐야 했다. 그리고 자녀들이 하나님을 스스로 찾도록 신앙적으로 격려했다.

(3) 가장의 신앙적 책임

남편의 가정에 대한 지도권은 그가 가족들의 신앙에 대해 깊은 의무감과 책임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그들은 일찍 결혼하지 않았다. 10대의 남자가 결혼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17세 미만의 여자가 아내가 되는 일도 매우 예외적인 일이었다. 평균적으로 신랑의 나이는 신부보다 세 살 정도 많았으며 뉴잉글랜드의 이주민들의 경우 신랑의 평균 연령은 약 24세였다.

그들은 조혼을 거부하고 성숙한 나이의 결혼을 권장했다. 남편이 한 가정을 책임지는 데 가정을 부양할 경제적인 능력을 갖출 뿐 아니라 한 가족을 목회할 수 있는 영적인 지도력을 함양할 것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편으로서 아내를 가르치고 아버지로서 자기의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었다.

청교도 남편들을 가장으로서 가족공동체를 무질서와 혼란에서 보호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가정생활의 경건을 통해 온 땅을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가정의 경건한 개혁을 위한 두 가지 열쇠가 있었는데, 그것은 질서와 교육이었다. 청교도들의 가족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넓은 것이었다. 그들에게 가족은 단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연합하는 것이 한 가정을 이룩하는 성경적인 모범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한국과 같이 여러 세대가 한 지붕 아래서 사는 대가족제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부모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심지어는 사망한 배우자의 시집이나 처가와도 친밀한 가족관계를 유지했다. 그들의 가족의 개념에는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일하는 일꾼들까지 모두 포함되었다.

청교도 남편들은 이러한 가족구성원들 전체에 대한 신앙적인 인도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한 생활의 모범을 보여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아내와 함께 하나님을 위해 자녀를 기르고 자신들의 가정 속에 하나님이 가슴 아파하시는 어떠한 죄가 자라지 못하도록 했다.

(4) 자녀에 대한 신앙교육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된 부모들에게는 대체로 선택받은 자녀들을 주신다고 믿었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라도 태어날 때부터 부패한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절하게 교육하지 않으면 죄와 부패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님께는 자녀만 있을 뿐 손자는 없으시다.”라는 사상은 신앙이 혈통과 가문으로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회심과 신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앙은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각 세대마다 각기 하나님 앞에서 회심이 요구되는 것이며 부모들의 경건한 신앙을 통해 자녀가 저절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다.

리처드 매더(Richard Mather, 1596-1669)는 부모들이야말로 자녀들의 영적인 운명을 인도하는 효과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어린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과 씨름하는 데 최선을 다하라.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어머니의 기도와 눈물이 자녀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신다.”

인크리스 매더(Increase Mather, 1639-1723)의 다음과 같은 지적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우리의 조상들이 황무지와 같은 신대륙으로 건너온 것은 후손을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한 세대를 훈련시킬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조상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경건한 부모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특별한 유익과 격려 아래 있습니다.”

또한 카튼 매더(Cotton Mather, 1663-1728)의 충고는 그 당시 부모들에게 절실한 것이었다. “충분한 권위를 유지해 여러분의 말이 자녀에게 법이 되도록 하십시오. 그렇지만 여러분의 권위를 무자비와 난폭함 같은 것으로 잘못 생각해 자녀를 실망하도록 만들지 마십시오. 우리의 자녀를 가혹한 행동으로 노예처럼 취급해 우리 앞에 나올 때 항상 떨고 피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권위는 친절과 온유와 애정으로 조화를 이루어 우리의 자녀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를 두려워하고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은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자녀들이 하나님께도 고통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당시 부모들이 자녀들의 응석을 너무 많이 받아주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녀가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이 극도로 큰 죄악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자녀들을 향해서는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때가 이르기 전에 대개 죽임을 당합니다.”라고 권고했다. 인크리스 매더는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자녀가 주님을 저버릴 때 경건한 아버지의 눈물은 영원한 불길이 그 자녀의 영혼에 영원토록 더 맹렬하게 타오르도록 만들 것입니다. 부모를 가볍게 여기는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가 내릴 것입니다.”

3. 가정예배를 통한 자녀교육

자신의 자녀들을 향한 가장으로서의 영적인 지도력은 그들의 가정예배를 통해 잘 나타났다. 가정의 신앙교육과 실천은 가정이 마땅히 담당해야 할 필수적인 의무로서 중요하게 여겼다. 가장은 교회의 신앙교육을 보좌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교회는 자주 회중들에게 가정을 신앙으로 돌보는 의무들을 행하도록 일깨웠다.

매일 아침과 저녁, 성경봉독과 기도, 시편 찬송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예배가 있었으며, 이 예배를 인도하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때때로 자녀들을 포함하는 가족들은 예배활동의 일부분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인도하기도 했다.

청교도 가장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고유한 질서를 유지했고 가족들이 건강한 신앙의 상태를 간직하도록 의무를 다했다. 간혹 교회들은 가장들에게 가장으로서 가정신앙의 의무들을 이행하겠다고 공적으로 서약하도록 지도했는데, 1680년 인크리스 매더 목사가 목회하던 보스턴교회의 다음과 같은 언약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서 온전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서 분명하게 요구하시는 대로 우리의 가정에서 기도와 성경읽기를 중시하며, 그리스도의 도우심을 힘입어 끊임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또한 우리들은 우리 자녀들을 그리스도를 위해 양육함으로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진정한 헌신으로 주님의 이름을 받는 자들이 되도록 우리의 책임을 행할 것이며, 그들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치며, 그들에게 주님을 경외하고 섬기도록 권하고 명하며, 그들 앞에 거룩한 모범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들의 회심과 구원을 위해 많이 기도할 것을 약속합니다.”

THE MOTHER’S CATECHISM; OR A PREPARATORY HELP FOR THE YOUNG AND THE IGNORANT, BY THE LATE REV. JOHN WILLISON, 1730?
THE MOTHER’S CATECHISM; OR A PREPARATORY HELP FOR THE YOUNG AND THE IGNORANT, BY THE LATE REV. JOHN WILLISON, 1730?

< 리처드 백스터: ‘어머니의 교리문답’의 예 >

청교도들에게 가정예배의 중요한 내용은 세 가지다. 기도, 성경봉독, 찬송이다. 이 세 가지를 기본으로 한 단순한 형태로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청교도들은 가정예배와는 별도로 자녀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일을 중시했다. 이러한 교리교육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매우 컸다. 실제로 키더민스터의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의 경우 ‘어머니의 교리문답’(Mother’s Catechism)이라는 항목의 문집을 만들어서 활용했는데 약 100페이지 분량의 내용들이었다.

리처드 백스터는 자신의 설교를 십 수 년이나 들어왔던 사람들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각 위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 자신 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무식한 처지를 개탄하며 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를 힘썼다. 어른들은 교회를 통해 교리를 배워야 했고 자녀들은 부모와 교회를 통해 학습해야 했다. ‘어머니의 교리문답’(Mother’s Catechism)이라는 제목 아래 이러한 해설적인 성격을 띤 부제가 붙어 있다. ‘하나님과 그들 자신과 성경에 관한 지식에서 자녀들을 교리로 가르치는 친근한 방법’(A Familiar Way of Catechising of Children in the Knowledge of God, Themselves, and the Holy Scripture)

이 교리학습서는 엄마와 어린아이가 문답식으로 주고받는 이야기체로 되어 있는데 창조와 성경역사,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 등을 망라하는 방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공통적으로 가정예배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교리를 자녀들에게 가르치기를 힘썼다. 이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리처드 백스터 목사가 주중에 자기 교구의 가정들을 심방했다. 그리고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교리를 올바로 배우고 있는지 문답으로 확인했다. 만약 자녀가 적절히 대답하지 못하면 그 부모들이 주일예배 때 서서 예배를 드리게 했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의지를 가지고 신앙을 고백하는 가장과 아내들이 자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정기적인 가정예배는 이러한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통로다.

맺는 말

자녀들에 대한 신앙교육이 반드시 가정예배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식사의 자리에서 부모와 함께 대화하며 기독교 교리를 한 가지씩이라도 가르친 후에야 식사한다. 모든 가정이 그리하지는 않겠지만 오늘날처럼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시대에는 되새겨볼 가치가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신앙적인 문화와 가정을 파괴하려는 여러 가지 사회적 위협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경쟁적인 삶은 가족 간의 결속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 남편들이 가장으로서의 영적인 책임을 통감하고 가정예배를 통해 가족들 간의 영적인 유대를 공고히 하고 무엇보다도 자녀들을 바른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들이 경건한 삶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자녀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할 것이며 기쁨으로 가정예배에 참여하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의 기독교 신앙의 보존을 위해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참된 회심과 중생이 강조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글쓴 이 / 김남준 목사(한국 열린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