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형성 배경

38-02
Anno 325, Concilium Niceaenum Primum 사도신경 형성에 신기원이 된 주후 325년 니케아공의회

사도신경 형성 배경
1. 시작하는 말

우리가 지금 고백하고 있는 사도신경(使徒信經)은 어떤 사람이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어떤 공의회에서 의도적 인위적으로 제정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분명하고 핵심적으로 요약해서 젊은이들과 새로 믿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비기독교 사상으로부터 기독교를 변증하며, 나아가서 이단으로부터 성경적 기독교를 보호하기 위한 초대교회의 시도(試圖)가 요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결정(結晶)된 것이다.
그러나 사도신경의 형성(形成) 과정을 단순히 역사적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 신앙고백이 신구(新舊) 기독교의 공통적인 신앙고백으로 남아 있게 된 것은 분명히 성령의 역사라고 믿어야 할 것이다. 특히 사도신경이 형성될 즈음 미사가 많이 행해졌는데 미사에 대한 연급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설명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는 성령의 간섭이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사도신경의 배경을 이루는 신앙의 요약, 신앙규칙, 신앙고백 등은 이미 주후 2세기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중 중요한 것들과 그 외에 공의회에서 공인된 몇 가지 신앙고백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내용은 레이스(Leith)가 편집한 ‘교회의 신조들’(John E. Leith ed. Creeds of the Churches Atlanta, 1977)의 및 부분을 아세아연합신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던 김유찬 군이 번역하고 본인이 감수한 것이다. 오역이 있다면 그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2. 주후 2세기 신경(信經)의 발견

(1) 안디옥의 이그나시우스(Ignatius, 주후 107년경)

기독교 신앙이 정교하면서도 일정한 형태의 요약된 표현들로 정착되었던 사실은 교부 이그나시우스의 글에서 잘 증명되고 있다. 신앙의 압축된 표현들은 당시 교회의 교육과 예배 그리고 설교 등에서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된 신앙고백은 아니었다. 이그나시우스의 서신 가운데 트랄리아의 신앙요강(要綱, Trallians, 9:1,2)은 대표적인 것으로서 인간 예수의 역사적 삶은 실제가 아니었다는 가현설(Docetism) 교리에 대해서 교회가 공식적으로 반박한 내용이다.

이그나시우스 서신의 연대는 어떤 학자들은 하드리안 황제 시대(주후 117-138년)라고도 하지만, 주후 107년 정도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그는 쓰기를 “그러므로 당신은 누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는 다윗의 줄기에서 나시며, 마리아에게서 실제로 태어나셨으며, 먹고 마셨으며, 실제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으며, 실제로 십자가에 달리시고, 하늘과 땅과 지하의 모든 것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죽으시고, 실제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던 분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귀를 막으십시오.”라고 했다.

(2) 사도의 편지(Epistula Apostolorum, 주후 150년경)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요약으로 초기의 신경과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사도들의 편지’(Epistula Apostolorum)라는 문서에 들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나누신 대화’라고도 불린다.

이 자료의 연대는 주후 2세기 중반으로 터틀리아누스와 이례니우스의 것보다 이전이다. 작성된 곳은 소아시아 또는 이집트이다. 그 내용은 “우주의 지배자인 아버지를 믿사오며, 또한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며, 보혜사 성령님을 믿사오며, 거룩한 교회를 믿사오며, 또한 죄를 사하여 주심을 믿나이다.”라고 되어 있다.

(3)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증언(Justin Martyr, 주후 165년경)

이것은 유스티누스가 그의 순교사(史)에서 쓴 개인적인 신앙고백에 가까운 것으로 신경(信經)과 같은 형식을 취한 것이다. 연대는 주후 165년경일 것이다. “태초부터 계시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 곧 기독교도들의 하나님을 우리는 경배하오며, 인간 종족과 함께 거하실 것으로 선지자들이 예언하시고 구원의 선포 자와 선한 교훈의 선생이신 하나님의 종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나이다.”

(4) 서머나 장로들의 신앙고백(주후 180년경)

주후 약 180년경 서머나에서 노에투스(Noetus)를 정죄했던 장로들이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했는데 히폴리투스(Hippolytus)에 의해 그 형식이 보존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또한 우리는 참으로 한 분뿐이신 하나님을 알며, 그 아들 그리스도를 아노니, 그는 바로 그가 당하셨던바 고난을 받으셨고, 그가 죽으셨던바 죽음을 당하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분이심을 우리는 아나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고백할 때 우리에게 전해진 바를 그대로 말하나이다.”

(5) 발리제 파피루스(주후 200년경 또는 그 후)
1907년에 발견된 한 파피루스에는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매우 흥미로운 신경(信經)이 쓰여 있는데 그것은 꽤 제대로 된 신경(信經)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파피루스의 연대는 주후 2세기 후반인 것 같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4세기 중반 이전 이라는 증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그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사오며, 그리고 성령을 믿사오며, 육채의 부활을 믿사오며, 거룩한 보편적 교회를 믿나이다.”

3. 신앙의 규칙들

주후 2세기 후반에 기독교 신앙의 압축된 표현들이 신학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신앙의 규칙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치밀하면서도 법에 투철한 정신을 가진 터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신앙고백에 모종의 고정된 형식을 갖추고 싶어 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세 가지 다른 형식의 신앙규칙을 제시했는데 이 신앙규칙들은 점차 신앙의 기준으로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규칙들은 신학적 창의성과 지역적 필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가졌다. 이 신앙의 규칙들은 요리문답 교육의 기초와 성경 해석의 지침서로 교회에서 사용되었으며 또한 이단에 대하여 정통교리를 지키기 위한 신학적 자료로서의 역할도 했다.

(1) 이레나이우스(Irenaeus, 주후 190년경)

“교회는 비록 전 세계로 지구 끝까지 퍼져 있긴 하지만, 이 신앙은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로부터 전해 받았다. 교회는 한 분뿐이시며, 전능하신 아버지시며,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리고 그 가운데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한 분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시고 드러내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동정녀에게서 태어나게 하시며, 고난 받게 하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케 하시며, 사랑하는 그를 육체로 승천케 하시며, 만물을 주 안으로 모으기 위하여 주 예수그리스도를 영광 가운데서 하늘로부터 재림케 하시며, 또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하늘과 땅과 지하의 모든 존재자들의 무릎을 꿇게 하시며, 모든 혀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케 하시며,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심판을 행하시기 위하여 모든 인류의 육체를 다시금 새로이 일으키시는 성령님을 믿으며, 또한 그는 거역하여 배신자가 된 천사들 즉 악한 영들을 믿음이 없고 불의하고 사악하고 속된 자들과 함께 꺼지지 않는 불 속으로 보내실 것이나 그의 명령을 지키고 그의 사랑 안에 거하여 왔던 자들 즉 올바르며 거룩한 자들(그 가운데 어떤 자는 처음부터 기독교의 길을 걷는 자들과 회개한 날부터 기독교의 길을 걷는 자들)에게 영원한 상을 주시며, 그들을 영원한 영광가운데서 보호하실 것임을 우리는 믿나이다.”(이단에 대항하여 I. XI)

(2) 터틀리안(Tertullian, 주후 200년경)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는 보혜사 성령에 의하여 지금은 진리로 더욱더 잘 무장되어 있는 우리는 언제나처럼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다음과 같은 경륜을 따른다. 유일하신 하나님은 한 아들을 두셨으며, 그 아들은 그로부터 나오신 말씀이며, 그 말씀에 의하여 모든 것은 만들어졌으며, 그 말씀이 없이는 어떠한 것도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그리고 이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 동정녀에게 보내어져서 그녀로부터 사람과 하나님으로 즉 사람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셨으며,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성경을 따라서 고난을 받으셨고, 죽으셨고, 묻히셨으며, 아버지에 의하여 부활하셔서 승천하셨고,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장차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 그리고 그는 그의 약속대로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믿는 자들의 믿음을 거룩케 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신다. 이 규칙들이 지난날의 사상은 물론 그 이전의 모든 이단자들의 주장들이 제시되기 전에 복음의 시초에서부터 내려왔다는 사실은 지난날의 프락세아스 사상뿐만 아니라 모든 이단자들의 주장들이 비교적 최근의 것들이라는 사실에 의하여도 잘 증거 될 수 있다.”(Praxeas에 대항하여 2)

4. 로마 신경과 사도신경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 10일 후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사도들이 한 구절씩 신앙고백을 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 같은 이야기는 틀림없이 사도신경에 그 권위를 더하여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로렌조(Lorenzo Valla)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단순한 전설에 불과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럴지라도 사도신경의 모든 구절들이 주후 100년경의 신학서(神學書)들에서 자주 발견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생각해 볼 때, 이 신경이 사도신경이라고 명명(命名)되는 것에는 충분히 합당한 권리가 있다 하겠다.

이 사도신경의 계보는 주후 2세기 말경 로마에서 발전했던 신경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이 신경의 초기 형식은 아마도 히폴리투스의 ‘사도적 전통의 문답식 신경’(주후 215년경)과 마르셀루스가 ‘율리우스 1세에게 바친 성경’(주후 340년)과 루피누스의 ‘사도신경 주석’(주후 404년경)속에 보존되어 있었던 것 같다. 루피누스의 주석은 아퀼레이아 교회의 침례신경에 기초해 있는데 그는 그것과 로마신경의 다른 점들을 상세히 지적하여 놓았다.

(1) 히폴리투스(Hippoytus)의 문답식 성경(주후 215년경)

“당신은 전능의 주재자 하나님 아버지를 믿나이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성령에 의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 본디오 빌라도에게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죽으셨고, 그리고 장사 지낸 바 되시었으며, 그리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맞아 계시다가 장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그분을 믿나이까? 당신은 성령과 거룩한 교회와 그리고 (육체의) 부활을 믿나이까?”

(2) 마르셀루의(Marcelluce)의 신경(주후 340년경)

“나는 전능의 주재자 하나님을 믿나이다. 그리고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이다. 그는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본디오 빌라도에게서 못 박히셨고, 장사 지낸 바 되셨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성령과 거룩한 교회와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나이다.”

(3) 루피누스(Ruffines)의 신경(아퀼레이아, 주후 404년경)

“저는 전능하시고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볼 수 없으며 가까이 갈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나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이는 성령에 의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장사 지낸 바 되었습니다. 그는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사 거기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그리고 (나는) 성령과 거룩한 교회와 죄를 사하여 주심과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나이다.”

옛 로마 신경의 출현에 뒤이어 3세기가 지난 후 수많은 신경(信經)들이 로마의 영향권 내 지역에서 나타났다. 이 신경들은 여전히 지역적 영향의 흔적들을 가지고 있지만 반면에 너무나 로마 신경과 유사사해서 ‘딸 신경’들이라고 불린다. 현재와 같은 형식을 갖춘 사도신경이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그 연대와 장소를 정확히 확정할 수 없지만 그것은 아마 7세기 이후 프랑스 남서부일 것이라는 여러 증거가 있다.

최초의 사도신경이라고 공인할 만한 것이 나타난 곳은 프리미니우스(Priminius)의 ‘소논문’(De Singulis Libris Canonicis Scrapsus)이란 책이었으며, 그 연대는 아마 주후 710-724년경일 것이다. 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 신경은 마침내 서방교회의 공동신경이 되었다. 하지만 프로렌스 회의(Florence Council)에서 동방교회의 대표자들은 사도신경에 대하여 아는바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4) 사도신경의 공인된 형식(주후 700년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사오며,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으며, 지옥으로 내려가셨다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함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5) 아프리카의 변형 신경(주후 400년경)

아프리카 히포(Hippo)에서 사용되었던 것이 분명한 이 신경(信經)은 사도신경을 해석하는 어거스틴의 설교에서 재구성될 수 있다. 이 신경은 꽤 흥미 있는 아프리카의 변형들을 대표할 만한 것으로 그 특징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전능하시고 모든 것들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시대의 주재자이시며 영원하시며 보이지 않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나이다. 우리는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이다. 그는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서 십자가에 못 박히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으며,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거룩한 보편 교회를 통하여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5. 동방교회의 신경들

동방교회의 신경(信經)들은 그 어느 것도 당시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서방 로마교회 신경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동방교회가 서방 로마교회와 영향을 서로 주고받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동방교회 신경의 정착 역사는 모호하다. 어떤 학자들은 동방교회 신경의 기원이 로마교회 신경일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한다. 또 어떤 이들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신경들의 기원을 추적한다면 그 기본이 되는 모종의 원천적 형식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비록 공동의 믿음의 조상이 있을지 아닌지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신경들이 다 같이 교회를 중심으로 그 형식과 신학에 있어서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한스 릿츠만(Hans Lietzmann)은 동방교회의 신경이 형성된 원천이라고 추측될 수 있는 가상의 신경을 구성했다. 비록 이 신경이 한 학자의 연구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지만 만약 동방교회 신경의 기원이 존재한다면 이 릿츠만 신경은 그것에 가장 가까울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방교회의 신경은 서방교회의 신경보다 훨씬 정교하고 신학적이다. 그리고 동방교회 신경은 우주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사역에 보다 큰 역점을 두고 있다.

(1) 동방 신경(릿츠만)

“나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창조자이시며 모든 것의 주재자이신 한 분 하나님 아버지를 믿나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이다. 그는 만세 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셨으며 그를 통하여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고, 고난을 받으셨으며 그리고 사홀 만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사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믿나이다.”

(2) 가이사랴(Caesarea) 신경(Eusebius, 주후 325년)

“우리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창조자이신 한 분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그리고 한 분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시며, 빛에서 나오신 빛이시며, 생명에서 나오신 생명이시며, 아버지의 독생자이십니다. 모든 창조물 가운데 처음 나셨으며, 만세 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셨으며, 그에 의하여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는 우리를 위하여 성육신하시어 사람 가운데서 사셨으며, 고난을 당하셨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어 아버지께로 올라가셨으며,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영광중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3) 니케아 신경(주후 325년)

신경의 발전은 니케아 공의회(Concilium Nicaenum Primum, 325)에서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통합회의는 정통 신앙의 기준으로서 모든 교회에서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신경을 채택했다.

이런 결정의 전조는 안디옥 공회에서부터 나타났다. 안디옥 회의는 공의회 자체의 선언을 미리 준비했으며 여러 지역의 여러 신경(信經)들도 보편적 신앙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었다. 그러나 니케아 공의회는 신경 형성사(形成史)에 신기원(新紀元)을 이룩한 공의회로서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이때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 의미와 상징적 의미에 관한 아리우스 신학이었다. 모든 기독 신자들은 예수가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라고 믿어왔는데 아리우스 신학은 교회로 하여금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인가에 대하여 분명히 밝히게 하였다. 아리우스는 아들 또는 말씀은 하나님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므로 시작이 있으며 가변적 피조물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아리우스 자신이 지적하였듯이 아들은 아버지의 충만하고도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인간이 실제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니케아 신경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 역사가운데 충분하고도 깊숙이 개입하셨음을 주장한다. 신경의 다음과 같은 주요 대목들에서 이 점을 찾아볼 수 있다.

– 그는 아버지의 본체이시다.(of the essence of the Father),
– 그는 참 하나님으로부터 온 참 하나님이시다.(true God &om true God),
– 그는 태어나셨으나 창조되지는 않으셨다.(begotten, not created),
– 아버지와 하나의 본질이시다.(of one essence or reality with the Father)

이 마지막 구절은 결정적인 것이기는 하나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었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직접 인용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진리에 대해서 회의를 품은 다른 신학적 문맥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사용되었던 주장이었다. 그러나 니케아 공의회 이후 50년 동안 교회는 “아버지와 하나의 본질이시다.”(of one essence or reality with the Father)라는 구절을 두고 논쟁을 계속했다. 거기서 여러 가지 대안들이 시도되었는데 그 예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그는 하나님과 꼭 같은 형상(Second Creed of Antioch, 341),
– 그는 성경에 따라서 그를 낳으신 아버지와 닮은(Dated Creed, Fourth of Sirmium),
– 그는 한물 가운데서 아버지를 닮은(Dated Creed, Fourth of Sirmium),
– 그는 아버지와 닮은 본질의(Ancyra, 358),
– 그는 아버지와 닮지 않은(the reaching of Aetius and Eunomius and, by implication of the Second Creed Sirmium, 357)

결국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하나의 본질(本質)이시다.”라는 니케아 공의회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선언을 확정함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바로 하나님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를 마련했다.

아들이 단지 아버지를 닮기만 했다는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성에 대한 기독교 공동체의 확신을 신학적으로 침식(侵蝕)하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닮았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까지 닮았는지를 결정해야 하는 일종의 기준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언젠가 하나님을 더 많이 닮은 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 두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많은 가능한 종교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로서 육신이 되어 오셨다면 그것은 바로 궁극적 말씀일 것이며 거기에 어떤 말을 더 첨가할 수 없을 것이다.

니케아신학의 문화사적 의의는 그 시대의 정치적 전제주의자들의 의도가 ‘아리아니즘’이란 형태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밝혀 주는 것이었다. 전제주의는 예수 그리스도가 충만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보다 훌륭하기는 하지만 세상 최고의 통치자 그보다는 좀 못하다고 하는 편이 그들의 정치적 전략에 훨씬 부합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1) 니케아(Nicaea) 신경(318명의 교부들의 신경, 주후 325년)

“우리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창조자이신 한 분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그리고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아버지로부터 나셨으며 즉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독생하셨으며, 참 하나님으로부터 온 참 하나님이시며, 빛으로부터 온 빛이시며, 태어나셨으나 창조되지는 않았으며, 아버지와 똑같은 본질이시며, 그를 통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육신이 되시고 인간이 되셨으며, 고난을 받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셨으며, 산자완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들이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거나, 그가 태어나기 전에는 그가 없었다거나, 또는 그가 무로부터 존재하게 되었다거나, 또는 그가 하나님과는 다른 실제 혹은 본질을 가지고 계신다거나, 또는 그가 피조물이라거나, 가변적이라거나 변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을 보편적인 사도교회가 정죄합니다.”

(2)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신경(150명의 교부들의 신경, 주후 381년)

일반적으로는 니케아 신경이라고 알려져 있는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주후 451년 칼케돈 회의 이후에야 비로소 콘스탄티노플 회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콘스탄티노플 회의에 대한 정확한 기록에는 이 신경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또한 칼케돈 회의 이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많은 학자들은 이 신경이 콘스탄티노플 회의와 상관없다고 결론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론에 따르면 칼케돈 회의가 어떠한 근거로 이 신경을 콘스탄티노플 회의의 유산(遺産)이라고 받아들였는지 설명하기 가 곤란하게 된다. 슈바르츠(Schwartz)와 켈리(Kelly) 등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이 신경(信經)은 비록 회의에서 기록이 모호한 채로 남았지만 콘스탄티노플의 150교부들의 신경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고 한다.

이 신경은 니케아의 신학을 확정했다는 점에서 니케아적이지만 니케아 회의의 동(同) 본질(本質, homoousia)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성경적 언어를 사용하여 성령의 충만한 신성(神性)을 확정했다는 점에서 니케아를 넘어서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성령의 확실한 신성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예배를 받으시고 함께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라는 구절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이 회의는 아폴리나리아주의(Apollinariaism)를 정죄했는데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로부터’라는 구절은 아폴리나리아주의를 논박할 수 있는 소지(素地)가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아폴리나리아주의에 대한 논박으로서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이 구절이 특별히 그러한 목적을 위해 쓰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 신경은 예배의식에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그래서 주로 교회의 예배의식을 통하여 발전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여하튼 이 신경은 일찍이 세례 신경으로 사용되었고 6세기 이후에는 성찬식에서 사용되었다. 칼케돈 회의 이후 이것은 모든 신경들 가운데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서방교회에서는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성령을 ‘아버지에게 나신’이’라고 고백했던 원본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신’으로 바뀌어 읽혀졌다. 이 같은 변화는 서방교회의 신학 특히 어거스틴의 신학에 근거한다. 성령의 ‘아들로부터 나오심’은 589년 톨레도(Tolredo)에서 확정된 후 점차로 신경에 첨가되어 왔다. 그러나 여러 세기가 지날 때까지 로마에서도 이 구절은 신경의 한 부분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니케아 신경으로 알려진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모들 것을 주관하시며 천지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의 창조주이시며 한 분뿐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만세 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셨으며, 빛으로부터 나오신 빛이시며,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참 하나님이시며, 태어나셨으나 창조되지는 않으셨으며, 아버지와 같은 본질이시며, 그를 통하여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우리 인간을 위해 우리의 구원 때문에 하늘로부터 내려오사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에 의해 성육신하시어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고난당하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으며,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시어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다시 영광중에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主)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 성령을 믿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셔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이며 거룩하며 보편적 사도적 교회를 믿습니다. 우리는 죄를 사하여 주시는 한 세례를 고백합니다.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과 장차 올 세상의 삶을 기다립니다.”

(3) 칼케돈(Chalcedon) 정의(주후 451년)

니케아종교회의는 아들 즉 말씀이 참 하나님이신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이심 즉 인성(人性)에 관한 문제는 그대로 두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어떤 의미에서 참 인간이셨을까? 그리고 그는 어떻게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이실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대답이 시도되었다.

아폴리나리아주의(Apollinariaism)는 인성을 절단해 버림으로써, 네스토리안주의(Nestorianism)는 인간의 통일성을 위태롭게 함으로써, 유티키안주의(Eutychianism)는 인성이 선성으로 흡수되어진다는 교묘한 이론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인간이시다.”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이론들을 배척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신앙을 더욱 공고히 해 나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에 관한 교리는 독립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신학의 모든 부분 – 구원과 성례 그리고 역사에 관한 모든 교리 – 과 연관되어 있다. 게다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 논쟁은 신학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사회적 문제들과 그 시대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쟁점이었다. 말하자면 예수의 역사적 생(生)을 심각하게 취급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교리는 역사 자체도 그리 심각하게 다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칼케돈에서 기독론이 정착된 것은 당시 고대 교회들 사이에 어느 정도 보편적인 신학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신학의 주요 세 학파인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서방교회들은 기독론 논쟁 속에서 상호 융화되어 칼케돈 회의에서 그 총의가 표명되었다. 최종 결과는 어느 한 학파의 이론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가 나누어 가지고 있었던 신학적 지혜가 모아져 형성되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칼케돈 정의는 참으로 보편적이라고 하겠다.

이 같은 칼케돈 정의는 5세기의 교회와 그 이후의 교회들에게 충분히 만족을 주지는 못했지만 교회가 판단해 볼 때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칼케돈의 정의보다 더 나은 정의를 내놓지는 못했다. 기독 논쟁에 관계된 모든 비신학적 요건들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본받기 어려울 정도로 순수한 관심과 논쟁의 균형을 유지시켜 줄 수 있었고 보편적인 태도를 지키면서 이 문제에 그들의 신학적 재능과 정열을 쏟았다.

칼케돈은 기독교 사상사(思想史)에 있어서 신약성경이 편집된 곳이기도 한데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으로 오실 수 있음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빠지기 쉬운 오해의 네 가지 방식이 있음을 주지시키고 이에 대해 적절한 균형을 맞춰 경계(境界)를 설정한 것이다.

칼케돈(Chalcedon) 정의(正意)

“그러므로 거룩한 교부들을 따라서 우리는 모두가 유일하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고백하도록 가르치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바로 이분은 신성(神性)에 있어서나 인성(人性)에 있어서 완전하시다. 이분은 참 하나님이시며 이성적 혼과 몸을 가지신 참 인간이시다.

그는 그의 신성에 관한 한 하나님과 동질이시며 그의 인성에 관한 한 우리들과 동질이시다. 따라서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으시나 다만 죄는 없으시다. 신성이란 점에서 그는 창세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셨으며, 인성이란 점에서 이제 이 마지막 날에 우리를 위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우리는 유일하신 그리스도 즉 아들이시며 주이시며 독생자이신 그분을 두 가지 본성에서 이해하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두 가지 본성을 혼동하지도 않고, 한 본성을 다른 본성으로 변형시키지도 않고, 그 두 본성을 두 개의 별다른 범주로서 나누지도 않고, 또 그것들을 영역이나 기능에 따라서 대조시키지도 않는다. 각 본성의 특성은 연합에 의하여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각 본성의 특징은 보존되고 양 본성은 한 인격과한 실체 속에서 공존한다. 그것들은 나누어지거나 두 면으로 갈라질 수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함께 유일하시고 독생하신 하나님의 말씀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옛 선지자들이 이렇게 증거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으며, 마찬가지로 교부들의 신경도 우리에게 이렇게 전승한다.”(*) 글쓴 이 / 손봉호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