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읽는 한국교회사(23) 한국에서의 성경번역(신약)

한국 최초로 완역 된 신약젼서(왼쪽)와 그 낱권인 요한복음젼과 사도행젼
한국 최초로 완역 된 신약젼서(왼쪽)와 그 낱권인 요한복음젼과 사도행젼

1.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한글 성경번역 시작

우리나라에 최초로 성경이 전래된 것은 1816년(순조 16년) 9월 5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정부로부터 조선 서해안 해도(海圖) 작성 명령을 받은 해안 탐사선 알레스트호와 리라호가 충남 서천군 서면의 마량진(갈곶)에 상륙했는데 함장 머레이 맥스웰과 바질 홀 대령이 마량진 첨사 조대복과 현감 이승렬에게 화려한 장정의 책 한 권을 선물했다. 이것이 한반도에 전해진 최초의 성경인데 흠정역(KJV) 성경이었을 것이다.

그 후 1832년 7월 귀츨라프와 1865∼66년 토마스에 의해 중국어 성경이 조선에 소개됐다. 성경의 도래와 함께 1880년대 만주와 일본에서는 은밀하게 한글로 성경이 번역되기 시작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성경이 번역되었고 오늘 우리 손에 들려지게 되었을까?

상임 성서실행위 산하의 성경 번역자화 회원들(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문경호, 김명준, 정동명, 존스, 언더우드, 레이놀즈
상임 성서실행위 산하의 성경 번역자화 회원들(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문경호, 김명준, 정동명, 존스, 언더우드, 레이놀즈

조선의 선교사들에게 있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성경 번역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있던 5명의 선교사들 곧 언더우드, 아펜젤러, 알렌, 스트랜톤, 헤론은 1887년 2월 7일 성서번역위원회를 구성하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를 한글 성경번역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들이 펴낸 첫 성경이 1887년 간행된 ‘마가의 젼한복음셔 언해’였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이수정의 ‘신약 마가젼 복음셔 언해’(1885)의 개역 본이었다. 한글 성경이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잠정적으로 이용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위원회 차원에서 역간 작업은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으나 아펜젤러의 ‘보라달로마인셔(保羅達羅馬人書)’(1890), ‘마태복음젼’(1892), 게일의 ‘사도행젼’(1892), 펜윅(M C Fenwick)의 ‘요한복음젼’ 등 사역본(私譯本)이 발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성서공회는 한국성서위원회에 로스역 성경의 수정을 요청했다. 번역보다는 수정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이 요청에 부응해 아펜젤러가 로스역 누가복음을 수정했는데 이것이 1890년에 나온 ‘누가복음전’이다. 그러나 수정 본으로 만족할 수 없게 되자 성서번역위원회는 국내에서 완전한 새로운 성경을 번역하기로 결정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게 이 일이 위임되었다. 그러나 작업은 지연되었고 후에는 언더우드 대신 게일이, 아펜젤러 대신 스크랜톤이 이 일을 추진해 1892년 1월 20일 ‘마태복음전’이 나왔다. 이 책은 기존 성경의 수정본이 아니라 국내에서 번역된 첫 한국어 성경이었다. 이 성경은 30만부 간행됐다.

2. 성경 번역자회의 조직과 열매
한국어 성경번역사에 있어 중요한 변화는 1893년 5월 ‘상임성서실행위원회’가 조직되고 그 휘하에 ‘성경번역자회’를 설립한 일이다. 언더우드, 게일, 아펜젤러, 스크랜톤이 번역위원이었고 1895년에는 레이놀즈가 추가됐다. 1895년 성서공회가 설립된 일 또한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번역위원들은 각기 배당된 신약 책들을 그리스어 성경과 영어 개역성경(RV)을 대본으로 번역하되 한국인 조사(助事)들은 한문 및 일본어 성경 대본을 참고해 선교사들을 돕고, 번역을 완성하면 다른 번역자들에게 보내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다시 원(原) 번역자들에게 보내 검토하게 한 뒤 전체 번역자들이 참가하는 번역자회에서 토론과 표결을 거쳐 번역자회에서 통과된 대본을 시안(試案) 본(本)으로 채택하기로 했다.

이런 번역 과정이 충실하게 지켜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노력의 결과로 1895년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이 간행됐다. 마태복음은 아펜젤러가 1892년 번역한 ‘마태복음젼’을 번역자회가 시안 본으로 승인한 것이지만 마가복음(아펜젤러), 요한복음(게일), 사도행전(게일)은 개인 역본이었다. 곧 누가복음(1896), 갈라디아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이상 1897),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요한1, 2,3서와 유다서(이상 1898), 에베소서(1899) 그리고 요한계시록(1900)이 번역됐다.

신약의 모든 책이 번역되자 낱권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됐다. 이것이 국내에서 번역된 최초의 신약전서인 ‘신약젼셔’(1900)다. 마태복음부터 로마서까지는 번역자회의 공식적인 의결을 거친 시안 본이었으나 그 이후의 책들은 개인 역본들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최초로 신약을 완역한 일은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이를 기념해 1900년 9월 9일 서울 정동감리교회에서 신약성경 봉헌감사예배가 드려졌다.

3. 성경 번역 헌신했던 아펜젤러 순직

한국 최초의 개신교 한글성경 1882년, 로스와 한국인 조력자들이 중국서 번역
한국 최초의 개신교 한글성경 1882년, 로스와 한국인 조력자들이 중국서 번역

비록 신약전서가 출판되었으나 고린도전서 이후의 책들은 번역위원회의 수정이나 독회를 거치지 않은 개인 역에 불과했으므로 출판과 함께 수정 작업이 시작됐다. 이 일은 아펜젤러, 레이놀즈 그리고 게일에게 위임됐다. 이 작업을 위해 아펜젤러는 인천을 출발해 번역자회가 모이는 목포로 가던 중 서해 어청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침몰 조난 사고로 한국인 조사였던 조성 규(趙成奎, 趙漢奎라고도 불림)와 함께 순직했다. 1902 년 6월 11일 불과 44세의 나이였다. 이런 상황 에서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는 게일과 언더우드 를 남장로교는 레이놀즈를 성경번역 사업에 전 념 하도록 배려했다. 결국 이 세 사람의 노고로 수정 작업이 추진돼 1906년에는 성경번역자회가 공인한 공인역본 ‘신약젼서’가 출판됐다. 이 성경이 1938년 ‘개역신약성서’가 출판되기까지 한국교회 강단과 성도들이 사용했던 공인본 신약성경이다.

Appenzeller(1858-1902)
Appenzeller(1858-1902)

이 같은 성경번역 사업은 선교사들만이 아니라 한국인 조력자의 수고 또한 적지 않았다. 아펜젤러의 어학선생이자 조사였던 조성규, 게일의 일생 동안의 동료였던 이창직(李昌稙) 정동명(鄭東鳴), 언더우드의 조사였던 송덕조(宋德祚), 레이놀드의 조사였던 김정삼(金鼎三) 이승두(李承斗) 등이 바로 그들이다.(*) 글쓴 이 / 이상규(고신대 역사신학 교수) 출처 / 국민일보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