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정통’, 사역은 ‘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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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집사가 글 중 인용한 삽화 / 제네바에 입성하는 칼뱅(가운데) 일행. 1541년

PARTⅠ

주장 / ‘칼뱅’의 제네바 학살과 종교개혁사의 그늘
신학은 ‘정통’, 사역은 ‘밥통’

‘장 칼뱅(1509-1564)’은 장로교의 창시자이다. 그가 저술한 <기독교강요>는 사실상 개신교 신학의 큰 흐름을 주도한 최초의 조직신학 책이다. 특히 중세 가톨릭의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항해서 그만한 신학을 체계화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나중에 침례교, 감리교, 성결교, 그리고 성공회 등 대부분의 개신교 신학은 칼뱅의 작업을 기반으로 도전과 영향을 받으며 발전했기 때문이다.
물론 칼뱅 역시 홀로 독창적인 신학을 창 안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앞에 섰던 선 각자들인 위클리프, 후스, 루터, 에라스머스, 그리고 아나뱁티스트 등의 신학과 사상이 그 의 신학을 체계화하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신성남 집사
신성남 집사

여하튼 칼뱅의 신학적 업적과 종교개혁사에 남긴 선도적 역활은 가히 지대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모든 개혁 교회들은 그의 열정적 헌신에 결코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필자가 여기서 굳이 칼뱅 사역의 어두운 부분을 재론하게 된 이유는 일부 목회자나 성도들 중에는 칼뱅의 신학이나 또는 그가 수립한 교회 제도에 대해서 다소 절대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칼뱅의 장점이 자주 부각되다보니 그에게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혹 간과하고 있다.

아울러 근자에 보면 국사 교과서를 가지고 장난치려는 자들이 적지 않은데, 앞으로 교회도 그런 발칙한 꼴을 보지 않으려면 종교개혁사를 조금이라도 왜곡하거나 미화하지 말고 진상을 사실대로 알리고 바르게 가르쳐야 옳다고 본다.

종교개혁사의 어두운 진실, 제네바 학살

16세기 칼뱅의 종교 개혁은 스위스 제네바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제네바는 인구가 겨우 1만 3천명의 아주 작은 도시였다. 칼뱅은 여러 유여곡절을 겪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시(市) 의회와 종교국을 기반으로 많은 개혁을 추진하였다.

아래에 서술한 내용들은 한때 칼뱅의 동료 신학자였던 ‘카스텔로(Sebastian Castellio, 1515-1563)’의 글과 나중에 이를 인용한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내용이다. 물론 이 내용에 대해 강한 반론이 있고 칼뱅의 무고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독자들의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여기 에 그대로 옮긴다. 필자는 ‘카스텔로’의 증언을 소설로 보거나 일방적으로 묵살할 근거가 부족 하고 또한 ‘세르베투스’ 화형에서 보여준 칼뱅 의 살인적 처신이 결코 우발적인 것은 아니라 고 보기 때문이다.

Sebastian Castellio(1515–1563)
Sebastian Castellio(1515–1563)

칼뱅과 그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과 4년 동안 적어도 58명을 처형하고, 76명을 시외로 강제 추방했다고 한다. 그 중에 10명은 참수형이었고, 35명은 마녀사냥처럼 처참한 화형이었다. 그들은 “이 부패한 도시에 실질적인 도덕과 기율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칠, 팔백 명을 처형할 교수대가 필요하다”고까지 말했다.

심지어 칼뱅은 “이단을 처형한다는 일은 결코 그리스교도적 사랑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반 신자가 이단의 거짓 가르침에 물드는 것을 막아주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랑의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목적을 위해서는 한 도시의 주민 전부를 없앨 수도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기독교인이라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엄청난 주장이다.

한 출판업자는 칼뱅을 비난했다고 해서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혀를 잘렸다. 어떤 사람은 ‘예정설’을 반대하는 말을 했다고 해서 가혹한 고문을 받고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다. 게다가 ‘자크 그뤼에’란 사람은 단지 칼뱅의 정책을 반대하고 그를 ‘위선자’라고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극한 고문을 받은 후 처형되었다.

또한 칼뱅과 그의 종교국은 80세 노인과 그녀의 딸을 무참하게 처형했다. 헌데 그 유일한 사유는 자녀들에게 유아세례 주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딸은 여섯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러니 어떤 소녀가 부모를 구타했을 때 그녀의 목을 자른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제네바 시민들은 가정생활까지 사찰을 당해야 했고, 주일예배를 몇 번 불참했다거나, 춤을 추었다거나, 술을 마셨다거나 하는 사유로도 가차 없이 투옥됐다.

사진 설명 /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 신성남 집사는 전기 작가인 츠바이크의 글을 참조하여 칼빈을 살인자로 단정하고 있다. 츠바이크는 소설가였지 역사학자가 아니었다. 신 집사는 소설가의 글을 참조하여 칼빈에 대해 ‘칼빈은 살인자’라는 소설을 쓰고 있다.
사진 설명 /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 신성남 집사는 전기 작가인 츠바이크의 글을 참조하여 칼빈을 살인자로 단정하고 있다. 츠바이크는 소설가였지 역사학자가 아니었다. 신 집사는 소설가의 글을 참조하여 칼빈에 대해 ‘칼빈은 살인자’라는 소설을 쓰고 있다.< 편집자 >

보다 엄청난 사실은 단순히 ‘혐의’만 받고 잡혀온 사람들에게도 잔 인한 고문이 행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너무나 심한 고문을 가했기 때문에 그들은 고문실로 다 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차라리 미리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자주 빈발하자 나중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마침내 시의회는 “죄수들은 밤낮으로 손 뼉을 치라”는 규정까지 만들어야만 했다.

그들이 받은 고문을 대략 열거하자면, 엄지손가락을 조이고 발바닥을 불로 지지는 고문, 천장에 도르레를 달아 놓고 공중에 매다는 고문, 사람들의 배를 가르고 꼬챙이로 쑤시는 고문, 신체의 일부분을 절단하는 고문, 발가벗긴 채 밧줄로 묶고 물 속에 넣어 죽이는 고문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사람의 가죽을 벗겨낸 후 소금으로 문질렀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이단심문소’에서 행했던 악마적 만행을 칼뱅은 거의 그대로 재연했다. 6

특히 삼위일체론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한 ‘세르베투스’는 칼뱅이 “그 자가 제네바에 나타나기만 하면 결코 살려 두지 않겠다”고 작심했던 중요한 목표였다. 지하 감옥에서 세르베투스는 “벼룩이 나를 산 채로 물어뜯어 죽이고 있다. 신발은 다 망가졌고 옷도 내복도 없다. 나의 배설물조차 치울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너무나 잔혹한 짓이다!”고 절규했다. 그는 무려 2개월 13일 동안이나 인간 이하의 동물적 학대와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자기 신념을 지키다가 화형대에서 죽었다.

‘신학’과 ‘사역’의 간극

여하튼 칼뱅과 그의 지지자들은 교회법과 국법을 명분으로 비인간
적인 범죄를 무수히 저질렀다. 초대 교회 사도들의 치리는 어디까지나 교회 내부로 한정시켰지만, 칼뱅은 이를 일반 시민 전체에 적용하였다. 이는 가톨릭 교황의 중세적 신정국가 통치 발상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 무지막지한 행위였다.

결국 칼뱅의 일부 사역은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앙이나 신념을 잘못 적용하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결과가 가능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여기서 비록 칼뱅의 과오를 아프게 지적했지만, 그의 학문적 능력이나 신앙적 열정까지 폄하하는 것은 이 글의 의도가 아니다. 칼뱅은 분명히 뛰어난 신학자이다. 그리고 그는 평생 매우 검소하게 살았다. 적어도 돈으로 부패한 한국의 저질 교권주의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다. 7

그러나 그의 신학은 정통일지 몰라도, 그의 사역까지 모두 정당하고 정통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감연히 중세 교회의 불의에 맞서 개신교 신학의 토대를 세우고 성경적 목회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노력한 점은 높히 평가해야 하지만, 그의 사역에는 지나친 독선과 편견과 오류도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옳다.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사상에 그토록 투철했던 신앙의 사람 칼뱅이 유독 ‘인간의 기본권’과 ‘신앙의 자유’는 왜 그리 쉽게 경시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마치 오늘날 광신적 극단주의자들이 하는 미친 행위와 별 차이가 없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그가 ‘사단의 종’이나 하는 만행을 무수히 저질렀다. 도대체 칼뱅 신학의 어떤 그늘이 그를 그처럼 눈멀게 했을까. 이는 앞으로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연구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유사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학은 비교적 정통인데 사역이 밥통이다. 교회의 본질을 망각해서 전기 나간 밥통처럼 바보가 된 교회도 있고, 그저 사역자의 밥그릇에 만족하는 철 밥통 교회도 있다.

그러니 자기 신학에 너무 자만하지 말자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신학을 지닌 교회라 하더라도 그 사역이 사이비라면 그 교회는 결국 사이비 교회가 된다. 또한 아무리 훌륭한 교회당 속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 제 아무리 거창한 예배를 드리더라도 그들의 사역이 변질되면 그건 그냥 ‘종교적 사기’일 뿐이다. 이런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회복 불능이다.

신학을 몰라서 헌금 횡령하나

교회 역사가 알려주는 냉엄한 진실은 ‘바른 신학’이 저절로 ‘바른 사역’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단과 사이비들이야 본래 애초부터 전문 사기꾼들이니 당연히 막장이다. 그런데 멀쩡한 정통 교단의 목회자들이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은 단순히 신학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근본적으로 인간 양심의 문제이고, 상식의 문제이고, 그리고 자질의 문제이다.

그들은 결코 신학적으로 무식해서 교회 돈을 횡령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교인들보다 훨씬 더 성경을 잘 알고 신학을 잘 안다. 그럼에도 기복 설교하고, 교권 독재하고, 장부 숨기고, 표절하고, 세습하고, 성추행하고, 그리고 패거리 작당하여 신도를 우민화한다.

물론 바른 신학을 추구하며 열심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난 2000년 동안 허구한 날 파먹은 것이 신학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무슨 새롭게 영감을 받은 특별한 신학의 발견이나 성취가 아니라, 도리어 사도들의 교회가 지녔던 처음 사랑과 처음 양심과 그리고 처음 상식의 회복이 아닐까. 8

요즘 어떤 사역은 너무 방자하다. 세계 최대 교회의 창립자란 위인은 거액의 교회 공금 횡령자이고, 교계의 슈퍼스타였던 한 대형 교회 목사는 노련한 성추행자이다. 그리고 초호화 예배당을 건축한 표절 목사는 치졸한 학력 사칭자이다. 그들은 결코 우발적 실수로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매우 상습적이다. 따라서 교계를 조금만 유심히 살피면 목회는 물론이고 인생 자체가 사기인 자들이 제법 많다.

그럼에도 저들은 여전히 교인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강단에서 큰 소리로 설교하고 있다. 이게 바로 한국 개신교의 독보적인 영적 수준이며 적나라한 현주소다. 신학은 정통이고 설교도 형통하지만 그 사역이 영 밥통이다. 그러니 “목사도 밥통, 신도도 밥통”이란 말이 절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건강한 교회와 진실한 목회자들도 아주 많다. 그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밥그릇에 쌀알이 돌알보다 많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반면에 흰 돌은 단지 몇 개만 섞여있어도 어금니가 부러지는 법이다. 그러니 “오직 극소수가 돌이니 괜찮다”는 식의 구차한 변명은 이제 그만 하는 것이 좋다. 게다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절대로 극소수는 아니다. 도리어 옛말에도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오랜 기간 비교적 체계가 잘 잡혀있다는 유명한 대형 교회들마저 저 모양이니 나머지 상당수의 중소형 교회들은 또 오죽할까. 사실 더 이상 언급하기조차 부끄럽다. 9

칼뱅은 학문적으로 매우 뛰어난 신학자이며 논리적인 설교자였으나 그럼에도 성경의 가르침을 크게 오해하여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살육을 저질렀다. 따라서 어느 목사가 제 아무리 신학 공부를 많이 했고 설교를 청산유수로 잘 하더라도 그것을 너무 과신할 필요는 없다. 개인의 신학이 홀로 완벽할 수도 없고, 또한 신학과 사역이 항상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어느 경우이든 교회가 특정 직분 자나 개인 중심으로 운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덩치만 큰 중세적 바보들

칼뱅은 그의 저서에서 당시 로마교의 성직자인 주교들을 향해 가차 없이 ‘무례한 바보들’이라고 아주 원색적인 독설을 날렸다. 그런데 만일 그가 오늘날의 혼란한 한국교회를 본다면 또 뭐라고 말할지 매우 궁금하다.

특히 칼뱅 신학의 후계자로 자처하는 한국 장로교의 소위 ‘개혁주의’ 정통 보수 교단들인 ‘합동’, ‘고신’, 그리고 ‘합신’ 등 대부분이 사실상의 성직매매인 중세적 교회 세습을 노골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이 한심한 꼬락서니를 보았다면 그의 심정은 어떨까. 과연 그런 북한 공산당식 부자 세습이 “성경만을 따르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개혁교회 목사들이 할 짓인가. 정말 표리가 부동하고 양심머리 없는 작자들이다.

그러니 고작 유아세례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평범한 시민들을 비정하게 처형했던 평소 칼뱅의 칼같은 성정으로 볼 때 그는 또 다시 교수대를 세우거나, 아니면 그 철없는 애송이 세습목사들의 목을 당장 자르겠다고 달려들지도 모르겠다. 아마 적어도 “목사도 바보, 신도도 바보”라고 하며 덩치만 큰 아이처럼 자기 밥상만 챙기는 여러 교회들을 매우 신랄하게 책망했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도 정통과 밥통의 혼돈 속에서 개신교 부패와 몰락의 방조적 공범자가 되어 ‘중세적 바보’로 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녕 두려워해야 할 시대이다. 과거 칼뱅의 제네바 학살 못지않게 더욱 더 무서운 것은 현재 교인들의 영혼을 조용히 말살하고 있는 ‘유사 교회’들의 타락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10

아무튼 상당수의 밥통 같은 교회들로 인해 어차피 모든 기독교인들이 바보로 조롱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래도 이왕이면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겸허히 따르면서 이웃 사랑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며 사는 그런 ‘거룩한 바보’들이나 더욱 많아지기를 간절히 소원할 뿐이다.

“교회가 혼돈하고 공허한 가운데 주교들은 대부분 무례한 바보들이며 믿음에 대한 초보적 상식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유모에게서 방금 떨어진 덩치만 큰 아이들이다.”(*) 글쓴 자 / 신성남(감리교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canavillage@yahoo.com 출처 / 당당뉴스, 2015년 10월 25일(일)

 

신성남 집사가 활동하고 있는 당당뉴스에 대해 / 당당뉴스는 2005년 5월 이필완 목사가 창간한 대한민국의 기독교 감리교 기반의 인터넷신문이다. 현재는 2010년 공상 은퇴 한 이필완 목사에 이어 심자득 목사가 발행 및 편집을 맡고 있다. 이필완 목사는 동대문교회 서기종 목사와 같은 교회내의 여전도사와의 간통사건,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아들 김정민 부목사 세습과 목사의 교회재산 사유화에 대해 비판 등 주로 교회와 목사들의 비리를 추적하여 인터넷 상에 폭로하는 글을 올리고 사안에 따라서는 직접 검찰에 고발도 하였다.

2002년에는 이필완 목사 등 176명의 목사들이 연대 서명해 김홍도 목사를 교단에서 치리해달라고 요구했다. 감리교 소속의 이필완 목사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교단 내 서기종 목사, 김홍도 목사 등 일부 목사들을 비판한 것이 발단이 되어 2004년 12월 강화도 난정교회 담임목사를 사퇴했다.

당당뉴스는 2005년 5월, 하나님 앞에 ‘당당'(當當)하게 설 수 있는 한국 교회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교회와 사회의 다리”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 뉴스!”라는 표어를 내걸고 창간되었다. 이필완 목사가 처제로부터 빌린 1천5백만 원으로 시작했으며, 자발적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신성남 집사는 이 같은 당당뉴스의 인터넷 단골 칼럼니스트로 현재 활동하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