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16)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16)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Trinity
Trinity

제 2 장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제2장 3항

신성이 단일한 가운데 본질과 능력과 영원함이 동일하신 세 위격들이 계시니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 하나님은 다른 어떤 분에게서 나시거나 나오시는 분이 아니시며,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에게서 영원 안에서 나셨으며,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에게서 영원 안에서 나오셨다.

해 설

본 항목은 하나님이 거룩하신 삼위일체이심을 고백합니다. 거룩한 삼위일체의 고백은 두 가지 내용을 담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신성(神性)이 단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게는 또한 세 위격(三位)들이 계시다는 고백입니다. 이 두 가지 고백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서술하면 이렇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단 하나 뿐이며 단순한 본질 안에서 서로 구별이 되는 고유한 상호 관계들의 특성을 가지고 서로 안에 들어가시고 또한 거하시는 세 위격들이십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고백은 성경에서 각각 진리로 고백하고 받기 때문”

1. 삼위(三位) 하나님

(1) 삼위일체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이성의 능력으로 파악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고백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어떻게 이해가 불가능한 것을 고백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관련한 내용들을 성경에서 각각 진리로 고백하고 받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각각 성부와 구별이 되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삼신론(三神論)을 고백하지 않는 까닭은 신앙고백서가 밝히고 있는 바대로 ‘신성(神性)이 단일(單一)한 가운데 본질(本質)과 능력(能力)과 영원(永遠)함이 동일(同一)’하심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성경의 증거는 이러합니다.

우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 일컬어집니다.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으셨음’을 노래한 시편 45:7은 그리스도에게 적용이 되어 히브리서 1:8,9에서 그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곧 성부 하나님과 구별이 되는 아들 하나님임이 증거 됩니다.

이러한 놀라운 사실은 이사야 9장에 이르러 우리에게 주신 바 된 한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6절)이라는 말씀으로 인하여 더욱 뚜렷이 드러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시고’ 그로 하여금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실 것인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예레미야서 23:5,6에 밝히고 있습니다.

신약에 이르면 더욱 뚜렷합니다. 예수님과 관련하여 이르기를 ‘말씀이 하나님이시다.’(요 1: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시고’(요일 5:20),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며(롬 9:5), ‘우리의 크신 하나님’이시고(딛 2:13),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이시며(딤전 3:16), ‘근본 하나님의 본체’십니다.(빌 2:6)

이 외에도 많은 구절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그에게서 하나님의 속성들과 행하신 사역에서 신성을 증거 합니다.(사 40:12, 44:24; 눅 6:8; 요 1:3, 5:17, 8:58, 16:30, 21:17; 골 1:16; 히 1:2, 10, 11,12; 계 1:8, 11:17 등)

(3) 성경은 예수님만이 아니라 성령님께서도 성부 하나님과 구별이 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심을 증거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사도행전에서 아나니아가 일부를 감추고 나머지만을 사도들에게 줄 때 베드로는 그 거짓됨을 꾸짖어 말하기를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 5:3)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성령님이 인격적 하나님이시므로 가능한 말입니다.

꼭 기억할 것은 성령님은 하나님의 은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고전 12:3,4) 성령님은 이름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속성들과 행하는 사역들을 통해서 그가 성부 성자와 구별이 되시는 인격적 하나님이심이 증거 됩니다.(삼하 23:2,3; 사 6:9; 눅 1:35; 행 28:25,26; 롬 8:11; 고전 3:16, 6:11,19, 12:4, 15:45; 엡 1:17,18; 살후 2:13; 벧후 1:2,21 등)

2. 일체(一體) 하나님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이신 성자와 성령님이 각각 ‘신성이 단일한 가운데 본질과 능력과 영원함이 동일’한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서로 구별이 되는 세 위격(位格)으로 계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세 위격들이 갖는 각각의 특징들 때문입니다.

(1)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심 – 성부

신앙고백서는 이와 관련해서 “성부(聖父) 하나님은 다른 어떤 분에게서 나시거나 나오시는 분이 아니시며, 성자(聖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에게서 영원 안에서 나셨으며, 성령(聖靈)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에게서 영원 안에서 나오셨다.”고 고백합니다.

(2) 성부 하나님에게서 나심 – 성자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에게서 나시는 것을 가리켜 특별히 영원으로부터 된 일로 이를 ‘영원의 나심’이라고 일컫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동정녀에게서 출생하셨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 사이에 있는 영원한 관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원의 나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간 안에서 성부 하나님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아리우스파의 주장을 반대하는 중요한 고백적 표현입니다. ‘영원의 나심’은 성부와 성자 사이에 시간적 의미에서의 기원적 차이를 두는 어떠한 주장도 인정될 수 없는 것임을 확정합니다.(시편 2:7, 잠 8장, 미가서 5:2, 요 1:14,18, 골 1:5, 히 1:3,5 등)

(3)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심 – 성령

성령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과 달리 ‘나시는 분’이 아니라 ‘나오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의 나오심도 시간 안에서 전후가 있는 것처럼 또는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는 공간의 이동인 것처럼 이해를 하면 안 됩니다.

성자 하나님이 영원 안에서 나시는 것처럼 성령 하나님은 영원 안에서 나오십니다. 그리하여 ‘영원의 나오심’이라는 말로 표현을 하여 오해가 없도록 하기도 합니다. ‘나심’과 ‘나오심’이 서로 어떻게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길이 없으며 또한 알지도 못합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성경의 계시에 의하여 서로 다르다는 것만을 알 따름입니다.

중세 신학자들 가운데 ‘나심’은 진리의 양식(modus intellectus)에 따른 것이므로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것이고 ‘나오심’은 의지의 양식(modus voluntatis)에 따른 것이므로 성령 하나님은 사랑이신 것이라고 설명을 시도하였으나 이에 대한 성경의 근거는 없습니다.

3. 삼위일체 논쟁

성령 하나님께서 오직 성부 하나님에게서만 나오시는지 아니면 성부와 성자 하나님에게서(filioque) 나오시는지에 대해 서방교회(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교회(동방 정교회)는 여전히 이견(異見)을 보이고 있습니다.

15세기 플로렌스 1439년 회의에서 성령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을 통해 성부 하나님에게서 나오시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으나 그 후로 여전히 서방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는 것으로 동방은 오직 성부에게서만 나오시는 것으로 주장을 합니다.

서방교회 전통 안에 있는 개혁파 신학과 신앙고백서는 성령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는 것으로 고백을 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와 함께 성자에게서 보냄을 받으시며(요 16:7), ‘아들의 영’이라 일컬음도 받으시며(갈 4:6), 성부와 함께 또한 성자에게 들은 것을 말하시며(요 16:13), 예수님께서 내쉬는 숨에 의하여 제자들에게 주어지셨기 때문입니다.(요 20:22)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이와 같이 세 위격들 상호간의 내적인 관계에 따라 구별이 됨과 동시에 또한 세 위격들이 피조계를 향하여 행하시는 사역의 질서와 관련하여 구별이 됩니다.

이를 다시 설명하면 성부께서는 성자와 성령의 사역의 기원이시며 자신으로부터 자신의 뜻을 행하시는 반면에 성자는 성부의 뜻을 행하시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는 뜻을 행하십니다.
성부는 성자와 성령을 보내시지만 자신은 성자와 성령에 의하여 보내심을 받지 않습니다. 성자는 성령을 통하여 일하시며 성부로부터 성도들의 심령에 성령을 보내십니다. 하지만 성자 자신은 성령에 의하여 보내심을 받지 않으십니다. 반면에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십니다.(요 1:3, 5:19, 8:42, 14:26, 15:26) 이처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서로 구별이 되시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신성이 단일하며, 능력과 영원함이 동일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다는 말을 마치 세 사람이 있는 경우에 그들이 서로 인간이라는 동일한 본질을 함께 가지고 있지만 서로 다르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마치 여러 부분들이 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것처럼 세 위격들이 모여서 하나의 신적 본질을 이루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신적 본질에 있어서 완전히 하나이십니다. 다만 각 위격이 행하시는 사역에 따른 서로의 관계들 안에서만 구별이 될 따름입니다.

그래서 ‘신성이 단일한 가운데, 본질과 능력과 영원함이 동일하신 세 위격들이 계시니’라는 말로써 신앙고백서는 각 위격의 차이가 어떠한 의미에서도 본질의 차이가 아님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삼신론(三神論)의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단일한 신성 안에 있는 위격의 분명한 구별은 한 위격이 다양한 모양과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성부가 성자로 나타나시고 또 다른 때에는 성령으로 나타나신다고 말하거나 또는 마치 한 남자가 아들, 본인, 아버지의 세 역할을 감당하는 식의 설명(양태론) 또한 매우 잘못된 것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4. 삼위일체 신앙 고백의 중요성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은 구원에 합당한 믿음에 필수적”

삼위일체의 고백은 모든 신자들의 신앙고백 가운데 꼭 있어야 할 항목입니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 계신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모르거나 무시한다면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경에 나오는 표현도 아니며 더욱이 그것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없는 매우 신비롭고 어려운 교리인데 굳이 그것을 구원에 합당한 신앙고백의 필수적인 항목이라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개혁파 신학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다음의 이유를 들어 그렇다고 답을 합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요 또한 영생’이시라고 했습니다.(요일 5:20) 또한 신앙고백과 더불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명하셨습니다.(마 28:19)

이러한 말씀들은 구원 받는 신앙과 관련하여 단지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하나님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시며 의로우시며 거룩하신 분이시다.”라는 것과 같이 단지 그가 어떠한 분이신가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참으로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 자는 마땅히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여야 하며(요 5: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습니다.(요일 2:23) 뿐만 아니라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는다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영적 사실들에 대해 고백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 그래서 그 아들이 사람이 되셨다.
– 그가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죗값을 치르셨다.
– 그는 부활하셨다.
– 그는 또한 승천하셨다.
– 그는 다시 오실 것이다.
– 그가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보내셨다.
– 그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위해 중보기도 하신다.

따라서 구원의 복음을 믿는 것은 이러한 영적 사실들을 믿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아버지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듯이 예수님도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
이상의 설명을 기초로 하여 개혁파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 구원에 합당한 믿음에 필수적임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고백을 한다는 것이 한 하나님이 어떻게 세 위격으로 계실 수 있으며 또 세 위격들의 상호관계는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가 다 알고 이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천사라도 다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성경대로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 구원받는 믿음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아야합니다.

따라서 성경에 직접적으로 삼위일체라는 표현이 없다고 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앙을 부정하거나 소홀히 하는 식의 주장은 다 그릇된 것이며 용납될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마땅히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고 찬송하며 영광과 존귀를 돌려야 할 것입니다.(*) 글쓴 이 / 김병훈 목사(합신 조직신학 조교수) < 다음에 계속 >

< 교회사에 나타난 반 삼위일체 이단들 >

(1) 군주신론자(Monarchianism) – 한 나라에 하나의 군주만이 존재하듯 하나님은 숫자적으로 한 분이심을 강조한다. 이들은 하나님이 삼위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필요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본질을 변형시킨다.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인성 가운데 어느 한 면을 훼손함으로 하나님의 단일성을 보존하고자 한다.

(2) 동태적 군주신론 –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따라서 신약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선한 인간인데 하나님이 신적 능력을 부여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본질상 신성을 지난 존재가 아니라 단지 초인적인 힘을 가진 선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3) 양태적 군주신론(양태론) –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하나님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자는 다름 아닌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성부라는 것이다. 즉 성부가 성자로 오셔서 수난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4) 아리우스주의(Arianism) – 아리우스주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하나님은 시작이 없으신 분이시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시작이 있는 존재다. 하나님은 어느 시점에 아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아들이 존재치 않던 시기도 있었다. 따라서 아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 완전한 하나님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