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2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2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제3장 하나님의 선택 이유와 목적

제3장 5항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의 영원하며 불변한 목적과 그리고 그의 뜻의 비밀한 의도와 선한 기쁨을 따라서 생명으로 예정이 된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그들에게서 어떤 믿음이나 선행들 또는 그것들이 끝까지 유지될 것을 미리보시는 일과 상관이 없이 즉 피조물 안에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행하도록 하게 하는 조건들이나 원인들과 같은 다른 어떤 것들을 미리 보지 않은 채 그저 순전히 값없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선택을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해설

5항은 앞서 3항에서 설명한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의 예정 가운데 선택과 관련하여 포괄적인 설명을 제시합니다. 그 내용은 선택의 예정이 이루어진 때와 이유 그리고 목적 등에 관한 것입니다.

1. 선택의 예정이 이루어진 때

먼저 선택의 예정이 이루어진 때와 관련하여 신앙고백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곧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이루어진 일임을 진술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실제로 창조하시므로 시간의 역사를 열어 가시기 이전에 곧 영원 안에서 이미 선택의 예정을 하셨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선택의 예정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실현하시고, 타락한 상황을 보시고 그 후에야 비로소 타락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선택의 구원을 하시기로 시간 역사 안에서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선택의 예정은 창조와 타락 등과 같은 사건들의 시간 역사가 시작된 후에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 타락, 구속 등의 시간 역사가 아직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조 이후의 시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선택의 예정이 실현이 되어가는 과정이지 선택의 예정을 이루는 계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설명이 곧 ‘타락 전 선택설’(supralapsarianism)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유의하여야 합니다. 소위 ‘타락 전 선택설’과 ‘타락 후 선택설’(infralapsarianism)의 논쟁은 선택의 예정이 시간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냐 시간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냐의 논쟁이 아닙니다. 종종 시간 이전에 이루어진 것은 ‘타락 전 선택설, 시간 이후에 이루어진 것은 ’타락후 선택설‘로 오해를 합니다.

하지만 ‘타락 전 선택설’이나 ‘타락 후 선택설’이나 모두 시간 이전인 하나님의 영원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작정에 관련한 논의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영원 안에서 작정하시는 대로 시간 안에서 펼쳐 가십니다. 그럴 때 선택의 작정과 관련하여서는 하나님께서 영원 안에서 어떠한 논리적 순서를 따라 행하셨을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하면서 두 견해가 나타날 따름입니다.

여기서 ‘타락 전 선택설’은 타락의 작정 이전에 선택의 작정이 먼저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주장하는 것이며, ‘타락 후 선택설’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라는 견해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의 순서는 모두 영원과 관련한 것이므로 실제로 시간 역사 안에서 나타나는 아담의 타락 사건 이전이나 혹은 이후의 시간 순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타락 후 선택설’은 선택과 관련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의 논리적 순서가 시간 역사 안에서 전개되는 실행의 순서와 동일한 것으로 믿는 반면에 ‘타락 전 선택설’은 그 순서가 반대일 것으로 믿는다는 점에서 두 견해는 서로 차이점을 갖습니다. ‘타락 후 선택설’에 따르면 선택의 대상은 하나님의 영원의 관점에서 – 곧 시간 안에서 실제로 타락이 이루어지는 것과 상관이 없이 – 타락한(lapsus) 존재입니다. 반면에 ‘타락 전 선택설’에 따르면 선택의 대상은 하나님의 영원의 관점에서 타락할 가능성(labilis)이 있는 존재입니다.

대체로 개혁신학의 역사적 신앙고백문서들은 ‘타락 후 선택설’을 따르는 것에 비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뚜렷한 견해를 선택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르트 신경은 1장 7항에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의 자유롭고 선한 기쁨의 뜻을 따라서 그저 순전히 은혜로 스스로의 잘못으로 타락하여 원래의 순전한 상태에서 죄와 파멸의 상태에 빠지게 되고 말았던 인류 전체 가운데 특정한 수의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기로 선택을 하셨습니다.”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르트 신경의 고백은 선택의 대상을 타락한 인류 가운데 특정한 수의 사람들로 밝힘으로써 ‘타락 후 선택설’을 명시적으로 지지하고 있음을 보입니다.

이와 비교하건데 지금 살피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제3장 5항은 단지 ‘생명으로 예정이 된 사람들을’이라는 표현으로 선택의 예정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 특정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음으로써 ‘타락 전 선택설’과 ‘타락 후 선택설’에 대해 다소 중립적 견해를 유지합니다. 이것은 웨스트민스터신앙문서를 작성하는 데에 참여한 총대들의 주류는 ‘타락 후 선택설’을 지지하였지만 총회를 주재하였던 윌리암 트위스(William Twisse)를 포함한 소수의 총대들은 열렬한 ‘타락 전 선택설’ 지지자들이었다는 역사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3장 7항에서는 “그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간과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로 인하여 치욕과 진노를 받도록 작정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라고 고백을 하고 있음을 볼 때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또한 ‘타락 후 선택설’에 호의적인 고백을 담고 있는 다른 개혁신앙 문서들과 다르지 않은 고백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선택의 예정 목적

본 항과 관련하여 두 번째로 살필 것은 선택의 예정 이유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께서 선택의 예정 이유가 자신에게서가 아닌 다른 어떤 이유에 있지 않음을 분명하게 진술합니다.

선택의 예정을 하심에 있어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서 어떤 믿음이나 선행들과 같은 것들을 선택의 조건이나 원인으로 삼아 그것들을 미리 보시고 선택하신 것(예지 예정)이 아닙니다. 즉 외적인 피조물의 어떤 조건도 하나님으로 하여금 선택을 예정하도록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진술은 신앙고백서 제3장 2항을 설명하면서 말씀드린 것처럼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소위 예지예정론(叡智豫定論)이 잘못된 것임을 밝힘으로써 선택의 예정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확고히 합니다.

예정의 이유와 관련하여 개혁신학과 알미니안신학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갖는 데에는 하나님의 작정에 관련하여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개혁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의 작정은 항상 단일합니다. 하지만 알미니안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작정을 선택의 대상을 정하는 조건과 관련한 작정과 그 조건에 상합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미리 보고 그를 선택하는 작정으로 구분을 합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9장 13절 “기록 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에서 말씀하고 있는 야곱과 에서의 예정에 관련한 해설에 있어서 개혁신학과 알미니안신학은 다르게 이해를 합니다.

개혁신학은 앞의 본문이 야곱이라는 특정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또는 에서라는 특정한 사람을 유기하셨음을 교훈하는 것을 이해를 합니다. 곧 하나님의 선택의 예정은 항상 대상을 향하여 특정적입니다. 그러나 알미니안신학에 따르면 앞의 본문이 하나님은 단지 야곱과 같은 부류의 사람을 선택하고 에서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유기하시기로 작정을 하셨음을 보여줄 따름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이어 말하기를 야곱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미리 보시고 선택의 예정을 한다는 예지예정(叡智豫定)을 주장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선택의 예정이 인간의 조건 즉 인간에게 달려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러한 알미니안주의가 잘못되었음을 확고히 선언하면서 오직 선택의 예정은 오직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에만 달려 있음을 고백합니다. 다시 말해 앞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야곱이라는 특정한 사람을 오직 하나님 자신의 기쁜 뜻을 따라서 선택하셨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롬 9:11)는 말씀이나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롬 9:15)는 말씀 그리고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9)는 말씀 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서 특정한 사람들 선택하신다는 개혁신학의 해석을 분명하게 지지해 줍니다.

하나님은 ‘그의 뜻의 비밀한 의도와 선한 기쁨을 따라서’ ‘그저 순전히 값없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의 예정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선택의 예정에 대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을 다 알려주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하나님께서 왜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선택하시지만 다른 어떤 사람들을 선택을 하지 않으시는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항들은 사람에게는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비밀한 의도와 선한 기쁜 뜻에 속한 것입니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께서 기쁘신 뜻에 따라서 사람의 어떤 믿음이나 선행들을 조건이나 원인으로 삼지 않고 오직 순전히 거저 주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선택의 예정을 행하셨음을 올바르게 고백을 합니다. 예정의 선택은 하나님의 뜻 이외에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으며, 그의 뜻은 항상 선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개혁신학이 밝히고 있는 선택의 예정과 관련한 성경적인 교훈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선택을 ‘그리스도 안에서’하셨음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은 이러한 선택의 예정이 과연 선하신 하나님의 작정임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의 선택의 예정에는 어떠한 냉정한 무자비함이나 자의적인 불의함이 있지 않으며 오히려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충만함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예정은 주권자가 자의로 그의 권력을 폭력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선택의 예정이 이루어지며 또한 실행이 된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개혁신학은 선택의 예정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대해 불의와 변덕을 말하는 잘못된 주장을 일소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의 예정을 하심으로써 자신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시는 하나님께서는 선택의 예정을 통해 선택된 자들을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하며, 이 모든 선택의 예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토록 하십니다. 이것이 여기서 살피고 있는 신앙고백서 5항이 밝히는 선택 예정의 목적입니다. 즉 선택의 예정은 먼저 택함을 받은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하는 목적을 갖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며’(엡1:4), ‘그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고’(엡 1:5) ‘그의 기업’(엡 1:11)을 누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은택은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이 영광은 후에 사라지거나 감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불변하는 영원한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의 예정을 통해 이러한 영광을 선택한 자들에게 부으심으로써 결국 이들로 하여금 이제 이 모든 일을 통해 받은 은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도록 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선택의 예정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며 목적이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 글쓴 이 / 김병훈 교수(합신 조직신학)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