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23)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23)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1-33)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1-33)

제3장 ‘유기 예정’의 목적과 방식

제3장 7항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기뻐하시는 대로 긍휼을 베풀기도 하시고 거두기도 하시는 자신의 의지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경륜에 따라서,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자신의 주권의 영광을 위하여 인류 가운데 나머지 사람들을 간과하고, 그들의 죄로 인하여 그들로 하여금 수치와 진노를 받도록 기쁘게 작정하시므로 그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찬미하도록 하셨습니다.

해 설

“선이란 원하시는 바를 행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주권자가 행하시는 모든 것”

제 7항에서 교훈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 일부를 선택하여 그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도록 하신 것처럼 나머지 인류를 선택에서 간과(看過)하시고 또한 죄로 인해 영원토록 심판을 받도록 하심으로써 그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찬미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유기 예정’의 목적과 방식을 교훈한다.

1. 하나님의 ‘유기 예정’의 목적

인류 가운데 일부만을 선택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대상이 남기 마련이다. 그 대상을 향한 하나님의 작정을 가리켜 선택과 반대가 되는 유기(遺棄)라고 한다. 그러므로 ‘유기의 예정’은 하나님이 영원하며 불변하는 가장 자유로운 목적에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공의와 자유와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하여 죄 가운데 남겨진 자들을 영원토록 저주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뜻한다.

신앙고백서는 이러한 유기의 목적에 대해 자신의 주권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말하며 또한 그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찬미하도록 하는 데에 있음을 고백한다. 이러한 ‘유기 예정’의 목적은 ‘유기 예정’의 방식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교훈한다. 하나는 유기의 소극적 측면으로 간과하시는(看過, preteritio)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유기의 적극적 측면으로 미리 정죄하시는 선(先) 정죄(定罪, predamnatio) 방식이다.

(1) ‘유기 예정’의 의미

신앙고백서는 이 두 가지 방식들에 대해서 ‘인류 가운데 나머지 사람들을 간과하고 그들의 죄로 인하여 그들로 하여금 수치와 진노를 받도록 기쁘게 작정하시므로’라고 표현하고 있다. 소극적 방식으로 간과하신다는 고백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 내용을 갖는다.

첫째는 ‘선택의 예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며 또한 구원의 은혜를 베풀지 않으심을 뜻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들에게 일반적인 섭리에 의하여 하나님의 호의를 베푸는 것조차 거두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에게도 해와 비를 차별 없이 내려 주시며 도덕적, 시민적 선을 행하도록 호의를 베풀어주신다.

둘째는 ‘유기 예정’ 된 자들을 부패한 죄인의 비참한 상태에 그대로 내버려두심을 뜻한다. 그리하여 이들은 ‘선택의 예정’을 받은 자들과는 달리 구원의 방편을 따라 행하지 않고 자신의 부패한 성품에 따라 죄를 범하기를 기뻐하며 죄로 인한 비참한 상태의 삶을 살게 된다. 즉 이들은 회개의 부르심에 응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믿고 의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법도에 따라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처럼 유기된 자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죄를 범하며 살다가 마침내 죽어서 영원한 정죄의 심판을 받게 된다. 이것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갖는 인간의 사악함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므로 여기서 우리가 유의할 것은 유기된 자들이 죄를 범하는 까닭을 그들이 유기된 자로 예정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이 죄를 범하는 까닭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으시고 그들을 부패한 죄인의 비참한 상태에 내버려 두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죄를 범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부패한 성품을 좇아 자유의지에 따라 스스로 자원하여 행한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유기 예정’ 된 자들이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릴 수가 없다. 또한 영원한 정죄의 심판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려서도 안 된다. 이것은 마치 병자의 질병을 고치지 않은 의사에게 질병의 자체의 원인을 돌릴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님은 죄를 범하도록 이들에게 어떤 사악함을 주입하거나 부추기시지 않으셨다. 다만 ‘선택 예정’ 된 자와 달리 하나님이 그들에게 부패한 성품을 거슬려 죄악을 범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구원의 생명력을 주시지 않으셨을 뿐이다. 그러므로 유기된 자들로 죄를 범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

(2) ‘유기 예정’에 대한 반론과 응답

그런데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를 주시지 않으신 것과 관련하여 결국 유기된 자들의 죄의 원인은 하나님께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감히 비난의 말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주셔야만 하는 의무를 지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어떤 이들에게 베풀지 않으신 것은 결코 불의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비난은 결코 성립이 될 수 없다.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전혀 없는 자이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은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교훈을 주셨다. 그 비유 가운데 주인은 나중에 온 자들에게도 하루 품삯을 주었다. 이에 대해 일찍 와서 일한 자들이 불평을 하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 20:13-15)

하나님은 무슨 일에나 자신이 원하시는 바를 행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주권자이시다. 그리고 그가 행하시는 바는 바로 선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 7항에서 선(先) 정죄의 사실을 고백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공의를 찬미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유기된 자에게 정죄의 심판을 하심으로써 죄인들에 대한 자신의 공의 나타내신다. 그래서 ‘유기 예정’의 적극적 측면과 관련하여 신앙고백서는 미리 정죄하시는 선(先) 정죄(定罪, predamnatio)를 고백한다. 하나님은 유기 예정된 자들을 간과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수치와 진노를 받도록 작정하셨음을 말한다.

2. 하나님의 ‘유기 예정’의 방법

하나님은 ‘유기 예정’ 된 자들이 자신들이 범한 죄에 대하여 영원한 정죄의 심판을 받도록 이미 작정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권자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공의의 심판자이시라는 사실과 관련한 고백이다. 아울러 선(先) 정죄(定罪, predamnatio)라는 이와 같은 ‘유기 예정’의 적극적 측면은 단순히 죄를 지은 자들은 정죄를 받도록 작정을 하셨다는 심판의 작정을 가리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영원한 멸망에 이르도록 작정이 되어 있는 이들이 있음을 뜻한다. 즉 영광에 이르도록 ‘선택의 예정’을 받은 사람이 있는 바와 같이 멸망에 이르도록 ‘유기의 예정’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러한 구분과 관련하여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마치 불의한 것처럼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선택과 유기의 대상을 결정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며 이에 대하여 피조물이 하나님께 대하여 불의를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교훈을 주셨다. “기록 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롬 9:13,14)

성경은 선택과 유기의 대상을 결정하실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할 뿐만 아니라 선택과 유기의 대상들을 향한 뜻과 목적을 결정하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교훈한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롬 9:21,22)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 16:4)

요컨대 모든 사물은 하나님께서 각각 목적하신 바에 따라 결정이 되도록 정하여졌다는 것은 성경이 명시적으로 가르치는 교훈이다. 이러한 교훈에 기초하고 있는 선(先) 정죄라는 ‘유기 예정’의 적극적인 측면은 하나님이 ‘유기 예정’하시는 목적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즉 마지막 날에 저주를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따라 멸망에 이르게 되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과 이러한 운명의 결과가 미리 예정이 되어 있다는 선(先) 정죄의 사실을 고백함으로써 신앙고백서는 ‘유기 예정’의 목적이 하나님의 공의를 찬미하는 데에 있음을 교훈한다.

하나님이 ‘유기 예정’하시는 까닭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유기 예정’하시는 까닭은 우선 간단하게 말해 사람이 타락하여 부패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라도 부패한 성품을 따라 죄를 범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유기를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기된 자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유기를 받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리고 유기된 자에게 정죄의 심판을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임을 나타내신다. 여기서 신앙고백서가 고백하는 유기 예정의 목적이 확인된다. 즉 하나님은 유기된 자들의 죄를 정죄하심으로써 그의 공의를 나타내며 영광의 찬미를 받으신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충분한 답이 된 것은 아직 아니다. 사람 가운데 부패하지 않은 자가 없으며 또한 죄인이 아닌 자가 없기 때문에 ‘유기 예정’의 이유가 사람의 죄 때문이라면 모든 사람이 다 ‘유기 예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기 예정’의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답을 할 때 단순히 사람의 죄 때문이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유기 자체를 작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기의 대상의 작정의 문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기 예정’의 최종적인 이유는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에 더하여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죄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을 지정하여 그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고 그들을 그들의 죄 값에 따라 심판하시기로 자신의 자유로운 기쁜 뜻에 따라 작정을 하신 것이다.

신앙고백서의 이런 고백은 하나님이 유기된 자들의 불신앙을 미리 보시고 이들을 유기하기로 예지 예정하셨다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과 다른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유기하기로 예정을 하신 것은 그들이 불신앙으로 복음을 거부하며 또한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않을 것임을 미리 보시고 그들을 유기하기로 작정을 하신 것이라고 말한다.(예지 예정) 그러나 신앙고백서는 하나님의 의지의 신비로운 경륜에 따라 그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찬송하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주권에 따라 행하였음을 선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 받은 모든 성도는 이 교훈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 앞에 겸손히 엎드리며,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경륜에 따라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겸비한 심령으로 찬송하며, 자신들도 본래는 유기된 자들과 다름이 없이 영원한 정죄의 심판을 받기에 합당한 자였음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에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할 것이다.(*) 글쓴 이 / 김병훈 교수(합신 조직신학)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