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29) 소요리문답 강해

웨스트민스터(29)
소요리문답 강해
30711제 35 문 성도의 성화가(聖化, Sanctification) 무엇입니까?

답 : 성도의 성화는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의 역사로(1) 이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인격이 새로워지게 되고(2) 점점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게 되는 것입니다.(3)

(1)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 2:13)
(2)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 은 새사람을 입으라.(엡 4:23,24)
(3)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 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 려 함이니(롬 6:4,6)
1. 성도의 성화가(聖化) 무엇인가?
성도의 성화(聖化)는 하나님의 칭의(稱義)와 양자(養子) 삼으심 뒤에 오는 하나님의 은혜다. 성화는 사람의 어떤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성화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이 응답하고 행동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간다. 성경은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성경은 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 속의 뜻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그러면 성화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일이 되는가?

2. 성화는 우리의 내적 변화(중생, 거듭남)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이 내적변화 즉 거듭남(重生)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너희가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률 창조하실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 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10) 그러나 인간의 옛 사람(本性)이 거듭남에 의해 새롭게 되긴 하지만 거듭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성화는 갓 난 아기는 하나의 완전한 인간이지만 아직 완전한 어른은 아니기 때문에 어른이 되기까지는 성장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과 같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성화는 중병에 걸린 어떤 사람이 한 번만 먹으면 순식간에 병이 낫는 신기한 약이 있어 그 약을 먹고 순식간에 병은 낫겠지만 그러나 완전하게 정상적인 사람으로 건강이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과 같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 거듭났을 때 그 사람은 사망(死亡)에서 생명(生命)으로 옮겨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그러므로 그는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않다. 그러나 죄의 능력이 완전히 그 사람에게서 떠난 것은 아니다. 병의(원죄) 결과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거듭남이 성령의 사역인 것과 같이 성화 또한 성령 하나님의 사역으로 이 성령의 사역을 통해 아직도 우리 속에서 떠나지 않은 죄의 잔존 세력을 계속 정복해 가는 것이다.

 

이 주사가 네 병을 낫게 할거다
이 주사가 네 병을 낫게 할거야
병이 다 나았으니 이제는 활동해야 한다.
병이 다 나았으니 이제는 활동해야 한다.

2. 성도의 성화는 점진적이다.

성화는 칭의나 양자처럼 순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행동이라기보다는 성도가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되는 영적 작업이다. 현세에서는 누구도 성화가 완성 될 수 없다. 그러나 성화는 성도의 마음속에서 계속되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도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죄와 끈임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은 죄와 평화롭게 지낼 수 없다. 요한일서 3:9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말해 준다.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어떤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에 부합됐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죄의 지배는 불가능하게 된다.

물론 성도도 죄를 짓는다. 그러나 성도는 결코 그것이 옳다거나 죄를 범하기 원하지 않는다. 자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죄를 미워하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과 싸우게 된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1-25)

바울은 자기가 죄를 짓는다고 말하고 있는가? 그렇다. 그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며 도리어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며 그것도 자주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러한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는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곤고(困苦, 괴롭고 쓴 맛)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죄와 부단히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한 놀라운 것은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결국은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확히 말해 그것은 현재로서는 답답할 정도로 느린 진전(進展)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미래의 확실한 승리를 향한 전진(前進)이다.

3. 성화는 성도가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성도의 성화는 성도가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 간다. 그렇다고 인간의 사역이 하나님의 사역과 동등하다는 것은 아니다. 동등할 수가 없다. 성도의 성화에 있어 하나님의 사역은 모든 찬양을 하나님 자신이 받으신다. 인간의 사역은 인간을 결코 ‘무익한 종’ 이상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중요한 점은 하나님과 사람이 동시에 일하지 않으면 성도의 성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우리 안에서 소원을 가지게 하시며 행하도록 역사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간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깨끗케 해야만 한다. 동시에 또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만이 우리의 성화가 가능하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 자신과 하나님의 협력에 의해 성화가 이뤄질 때 우리는 한 가지 확실한 성화의 증거를 보게 되는 데 그것은 죄에 대하여는 더 많이 죽어가고, 의에 대하여는 더 많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만이 참으로 성화되어 가고 있는 중에 있는 것이다.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29)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다.(요일 1:8,17) 그러나 참 성도는 그것을 행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하나님의 법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이 그에게는 무겁지 않다. 그리고 그는 불완전하지만 점점 더 충실하게 하나님의 법을 지켜간다. 성경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약 2:20)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신자도 선한 일처럼 보이는 것을 행할 수 있다. 그들도 다른 사람 보기에 성도들이 하는 것과 꼭 같은 일 즉 교회에 헌금을 드리는 일 등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어떻게 다른가?

1) 참 성도는 하나님이 요구와 명령들을 기뻐하지만 불신자는 하나님 의 요구와 명령에 관심이 없다.
2) 참 성도는 자기가 하는 것을 감사함으로 행한다. 즉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으므로 이제 나는 그를 기쁘시게 해드리기 원하여 행한다. 그러나 불신자는 언제나 어떤 대가를 얻기 위해 또는 자신의 선함 을 입증함으로 사람들의 칭찬을 듣기 위해서 인정을 받기위해서 애 써 선을 행한다.
3) 참 성도는 자기가 최선을 다해 행한 선한 일에도 주님이 원하시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함을 깨닫고 항상 겸손할 뿐이다. 그러나 불신 자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현재 상태와 행한 일에 만족하 며 자랑한다.

4. 성화되어 가는 성도의 가장 큰 덕목은 겸손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의 생애를 보면 우리는 그들이 그들 자신 속의 죄에 대항하여 어떻게 싸웠는가를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이 때때로 어떻게 타락했는가도 본다. 그러나 그들이 그때마다 이전보다 더욱 죄에 대항해서 적극적으로 싸우는 모습도 본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그들의 생애에서 더욱 거룩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가치함을 더욱 더 깨달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거룩해지면 거룩해질수록 더욱 자신이 죄인 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매우 이상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어두운 밤에 진흙에 빠진 사람을 생각해 보자. 이제 그는 멀리에 한 큰 빛을 본다. 그는 또한 자기가 얼마나 더러운가를 보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그 빛을 향해 걸으면서 진흙을 씻어 내기 시작한다. 그는 빛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진흙을 없애 버리려 애쓴다. 그러나 그가 빛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가를 더 똑똑히 볼 수 있다.

성령에 의해 성화되어가는 사람도 이와 같다.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법이 얼마나 고귀하고 거룩한가를 끈임 없이 보여 주신다. 그리고 성령님은 그들의 죄를 씻도록 인도해 주신다. 그들은 점점 그들의 생활에서 죄가 덜해 간다. 그러나 자신을 더욱 더 똑똑히 보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 죄인인가도 더욱 더 깨닫게 된다. 믿음의 거룩한 사람들이 또한 겸손한 사람들이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죄에 대하여는 더욱 더 죽어가고 의에 대하여는 주린 자처럼 더욱 더 갈망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은 은혜로 구원 얻은 죄인임을 더 잘 깨달아 간다는 것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요약하면 성화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을 믿으며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점점 더 높이 올라가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자신이 더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주님 앞에 무가치함을 깨닫고 점점 더 낮아지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참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은 참된 겸손으로 낮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쓴 이(편저) / 정은표 목사 < 다음에 계속 >

(주) 편집 오류로 지난 29호 소요리문답 강해 연재순서가 바뀌었음을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