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33) 소요리문답 강해

웨스트민스터(33)
소요리문답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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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8 문 성도가 부활할 때 그리스도에게서 무슨 유익을 받습니까?

답 : 성도가 부활할 때에 영광중에 다시 살아남을 입어(1) 심판 날에 밝히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됨과 죄 없다하심을 받고(2) 완전한 복을 받아 영원토록(3) 하나님을 흡족하게 즐거워하는 것입니다.(4)

(1)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2)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 할 지어다 하고(마 25:23)
(3)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4)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 3: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아테네의 현자(賢者)들은 바울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이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말을 하자 그들 중에 큰 소요가 일었어났다. 어떤 이들은 미친 소리라고 조롱하고 어떤 이들은 좀 더 자세히 듣겠다고 했기 때문이다.(행 17:32) 사도 바울은 말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3,14) 이처럼 기독교 신앙에 있어 부활의 교리는 가장 중심적인 교리 중 하나이다.

1. 부활이 무엇인가?

부활(復活)은 이미 죽어 무덤 속에 썩어버린 인간의 육체가 새로운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부활한 성도의 몸은 죽기 이전의 육체와 동일하다. 그러나 부활한 몸은 신령한 것으로 변화되어(고전 15:44), 아픈 것이 다시없고(계 21:4), 썩지 아니할(고전 15:53), 죽지 않는 영광스러운 육체이다. 이러한 육체의 부활을 성도의 부활의 근거가 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렇게 증거 하셨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9)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의 이 부활의 교리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가령 전쟁터에서 인간의 몸이 폭탄에 의해 완전히 분해되어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되거나, 인간 육체가 죽어 땅에 묻혀 썩게 되면 화학적으로 완전 분해되어 다른 생명체를 위한 일종의 화학비료가 되기 때문에 육체의 부활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식물로 변한 그것을 동물이 먹고 사람은 또 그 동물을 먹고 그렇게 계속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육체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자연현상조차도 이해 못하는 무지한 자들인가? 또 성경 기록자들은 이런 자연 현상을 알지 못하는 무식한 자들이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때로는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도 알고 있었으며, 로마 원형극장에서 짐승의 밥이 된 순교자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육체의 부활을 믿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이 육체의 부활을 믿을 만한 충분한 역사적 사건의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2. 기독교 부활신앙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부활신앙의 근거는 부활하신 예수님이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역사적 사실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도록 완전히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 활하신 주님의 손과 발의 못 자국을 직접 확인 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고 그가 약속하신 대로 마지막 날에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믿는 자들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설명 할 수도 없고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활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눈앞에 부활하여 서 계신 예수님을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부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일은 인간의 이성(理性)이나 지식(智識)으로 다 이해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眞理)이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어떻게 죽은 자를 부활하게 하셨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부활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건이요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믿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다만 예수님의 부활처럼 하나님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그것만을 주장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라도 능히 하실 수 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 19:26)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우리의 부활은 의심할 수 없는 확고한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3. 성도는 어떤 몸으로 부활하는가?

사도 바울은 무덤에 묻힌 썩은 몸을 한 알의 말 알이 반드시 썩어야만 새로운 많은 밀알로 다시 살게 됨을 비유로 설명했다.(고전 15:37) 밀알은 죽는다. 그리고 땅 속에서 썩는다. 그러나 죽지 않는다. 그 죽고 썩어진 밀알로부터 새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새로 태어난 밀은 죽은 밀알의 화신(化身)이다. 이처럼 죄로 물든 우리의 몸은 영원히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몸으로 부활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35-53 )

폐차 된 자동차를 용광로에 넣으면 완전히 녹아 그 형체가 없어진다. 그리고 불순물이 다 제거 된 새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철판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걸로 또 다시 최신형 새 자동차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고철로 버려진 자동차가 전혀 다른 최신형 새 자동차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차는 다르지만 본질은 동일한 차라고 말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태아가 출생하기 전 어머니의 태안에 있을 때와 그가 태어나 자라 성인이 된 때와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에 아무리 큰 차이가 있다고 해도 동일한 한 사람이라는 데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1) 부활의 몸은 그 전 몸과 본질과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Identity)이 동일한 몸이다.
2) 그러나 부활의 몸은 그 전 몸과 특성이나 능력은 전혀 다르다.

즉 하나님은 우리 부활의 몸을 무(無)에서 새로 만드시거나 비슷한 몸으로 만드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옛 것에서 새로운 몸으로 만드실 것이며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변화 된 몸으로 부활시키실 것이다.

4. 죽은 자들이 언제 부활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는 세상 끝 날에는 모든 사람이 부활하게 된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또한 성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같은 빛나는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 3:2)

5. 부활 후에는 어떤 일이 있는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나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이나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심판대 앞에 서게 되며 각자 행한 대로 심판 받을 것이다.(히 9:27) 그리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것이다.

(1) 부활 후에 성도의 심판이 있다.

성도의 심판은 상급을 위한 심판이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2) 부활 후에 불신자의 심판이 있다.

불신자의 심판은 행위에 대한 형벌의 심판이다. 불신자들의 몸도 성도들처럼 그 몸이 부활하지만 이들은 지옥 불에 들어가는 부활이다. 죄 사함을 받지 못한 부활체이기 때문에 멸망의 심판을 받는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3) 성경은 부활의 그 날에 이런 놀라운 일이 있으리라고 말씀한다.

자신이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했던 자들 중에 주님의 거절을 당하는 자들도 있고, 반대로 자신은 주님 앞에 전혀 무익한 자라고 생각했던 자들 중에 주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될 자들이 있는 것이다.(마 7:21-46) 또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고, 양자로 받아졌고, 성화 된 모든 성도는 무죄선고를 받을 것이다. 주님 자신이 그들을 자기에게 속한 자라 선포하시고 그들은 영접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하나님이 죄 없는 자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인들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4) 부활 후 성도는 자기 행한 대로 칭찬과 상급을 받는다.(계 20:13)

그러나 이 말이 행위로 구원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어느 누구도 자기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사람이 구원 얻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이다. 동시에 구원 얻는 참 믿음은 반드시 선한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성경은 ‘행함이 얹는 믿음은 죽은 것’(약 2:26)라고 했다. 즉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 얻는 믿음은 반드시 행함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즉 선한 행위는 심판 날에 참 믿음의 증거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선한 열매가 없는 자는 참 신앙이 없는 자였음이 밝혀질 것이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0,21)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선한 열매를 맺은 자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충만한 기쁨 안에서 완전한 축복을 받을 것이다. 적은 보상을 받을 뿐이라고 생각한 자는 그가 생각했던 이상의 것을 받게 될 것이며, 큰 상을 받을 자들과 함께 꼭 같이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하게 될 것이다.(마 25:23)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고 그 구원의 믿음을 증거 하는 선한 일을 행한 자들에 대한 주님의 최종의 보상은 이것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창 15:1) 그날이 도래할 때 신자들은 하늘의 하늘이 영원히 하나님의 충만한 기쁨을 나타냄을 보게 될 것이다. 즉 선한 일을 행한 자들에 대한 주님의 최종의 보상은 주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인간의 참된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함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글쓴 이(편저) / 정은표 목사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