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34) 소요리문답 강해

웨스트민스터(34) 소요리문답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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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9 문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그 나타내 보이시는 뜻을 복종하는 것입니다.(1)

(1)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 냐?(미 6:8)

제 40 문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종할 규칙을 처음 나타내어 보이신 것이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종할 규칙으로 처음 나타내어 보이신 것은 도덕의 법칙입니다.(1)

(1)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4,15)

제 41 문 이 도덕의 법칙이 어디에 요약되어 있습니까?

답 : 이 도덕의 법칙은 십계명에 간단히 요약되어 있습니다.(1)

(1)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 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 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출 31:18)

제 42 문 십계명의 대강령(大綱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입니까?

답 : 십계명의 대강령은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 하고, 힘을 다 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것입니다.(1)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40)

제 39문부터는 소요리문답 제 2부이다. 이제까지 소요리문답 제 1부에서는 ‘사람이 믿어야 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 2부에서는‘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 무엇인가?’를 살펴 볼 것이다. 신앙(信仰)과 생활(生活)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순종이 없이는 참된 신앙이 있을 수 없고 신앙이 없이는 참된 순종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히 11:6) 순종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22)

1.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의무

복종(服從)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의무(義務)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창조자시고 사람은 다만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가 원하시는 것을 요구하실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피조물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하는 규율이 된다.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이 도덕률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으며 이 십계명을 또 다시 요약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가지이다.(마 22:37-40)

2. 동일한 구약의 도덕법과 신약의 도덕법

34732십계명에 나타난 도덕률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이다. 그 리고 그 십계명은 그 내용을 크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둘로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이 십계명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두 계명으로 요약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도덕률과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과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 계명들은 꼭 같은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이 시작 될 때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순종의 규범(도덕률)은 근본적으로 모세를 통해 주신 십계명과 같은 것이며 주님의 두 가지 사랑의 계명과 그 의미와 정신이 동일하다는 말이다.

이것을 위의 그림으로 비유할 수 있다. 우리가 햇빛을 두 가지 방법으로 볼 수 있는 데 한 가지는 우리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프리즘을 통해 보는 것이다. 빛은 하나인데 보이는 것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왜 그렇게 달리 보이는가? 다른 방법으로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도덕법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의 뜻은 거룩하고 불변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규칙은 본질적으로 십계명과 주님이 명하신 두 사랑의 계명과 동일함을 확신할 수 있다. 성경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롬 2:14,15)

(1) 이방인은 성경처럼 기록 된 형태의 율법이나 십계명이 없다.

(2) 그럼에도 그들은 불완전하나 율법에 포함된 것들을 지키려 한다.

예를 들면 정직하게 살려 한다든지 남을 동정하거나 부지런히 살려고 한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지만 그러나 성경에 기록 된 율법과 비슷한 행동이다.

(3) 그러므로 그들의 율법은 그들 자신 양심에 의한 행동이다.

이것은 그들이 도덕적으로 살지 않으면 자기를 공박하는 양심의 소리 때문인데 이것은 곧 그들 속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명하신 도덕법이 남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4,15)

(4)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들은 ‘그들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그 들이 가졌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바울은 그들이 ‘그들 마음에 새겨진 율법의 말씀’을 가졌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뜻인 십계명이 아담이 본래 가진 그 자신의 도덕적 의식 혹은 양심과 동일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십계명과 같은 도덕법을 아담에게서 물려받았다는 말이다.

3.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신 이유

이처럼 태초로부터 하나님이 명하신 도덕법이 인간의 마음에 이미 기록되었다면 왜 하나님은 또다시 그것을 기록 된 십계명으로 계시하셨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죄 때문이다. 죄를 가진 인간은 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들 자신 속에 있는 하나님의 도덕법의 의식을 제거하려고 부단히 시도해 왔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롬 1:28),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롬 1:25), “그들의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나니”(롬 1:21),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요.”(요 3;19)

그러나 그들 자신 속에 있는 하나님의 도덕법의 의식을 제거하려 인간들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인간들은 불편해 하면서도 여전히 그들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도덕법의 사역을 불완전하나 따르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악한 행실을 증거 하는 양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핑계하지 못 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 할지니라.”(롬 1:20)

이처럼 하나님은 그의 도덕법을 십계명에 다시 계시하는 것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죄인은 단지 이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신 바를 비로써 분명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도덕법이 자신의 마음과 양심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파묻어 두거나, 구부러지게 하거나, 잊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뜻을 계시하기 위하여 재차 언급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였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롬 3:20)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가정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함이라.”(갈 3:24)

4. 하나님이 율법을 누구에게 왜 주셨는가?

사람들이 십계명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또는 어떤 사람들은 이 십계명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것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도록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생각들이 잘못되었음을 우리에게 명백히 가르친다. 율법은 ‘범죄 함을 인하여’주어진 것이다.(갈 3:19) 즉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모두 다 그들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 주어졌다.

그러므로 율법의 도덕법은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들을 위해서도 주어졌다. 바울은 율법으로 죄를 깨달았다(was)고 말하지 않고 깨닫는다(is)고 말했다.(롬 3:20) 그리고 요리문답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먼저 말한 후에 율법을 말하는 이유는

(1) 율법보다 그리스도는 더 중요한 분이기 때문이다.

만약 요리문답이 그리스도보다도 율법을 먼저 논했다면 우리에게 율법으로 구원 받는 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줄 수도 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지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 또 율법으로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아니지만 또 다시 말하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뒤에 우리가 율법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면 십계명을 지킬 의무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교회의 모든 대소요리문답들은 이러한 잘못을 피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을 논한 후에 율법을 논한다. 성도는 “하나님께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이다.”(고전 9:21) 율법은 우리에게 구원은 주지 못하나 우리를 구원 받도록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이다.”(요 14:21)

(3) 성경에는 하나님이 주신 법이 도덕법뿐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 엘에 주신 시민법과 성막과 성전에서 희생의 제사 드리는 법을 명하신 의식법도 주셨다.

의식법(儀式法)은 의식법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다 이루심으로 그 후로는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도덕법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후에도 도덕법을 지켜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이 십계명과 주님의 새 계명에(요 13:34)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왔다고 말씀하셨다.(마 5:17)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후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여전히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도덕법을 지킬 의무가 있으며 또한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2,3)(*)(*) 글쓴 이(편저) / 정은표 목사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