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35) 소요리문답 강해

웨스트민스터(35)
소요리문답 강해
제 43 문 십계명의 서문이 무엇입니까?

답 :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 니라.(1)

(1)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

제 44 문 십계명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은 주도 되시고(2) 우리의 하나님도 되시고 또 우리의 구속자도 되시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땅히 그의 계명들을 지켜야한다는 것입니다.(3)
(2)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라.(수 24:18)
(3)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신 11:1)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라.(고전 6:20)

우리는 십계명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율법의 강령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며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롬 13:10)이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구원 받은 성도는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계명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고전 6:20) 그러나 이 두 가지 원리들이 오늘날 종종 부인되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1. 상황윤리의 율법과 사랑

상황윤리는 율법과 사랑이 공존할 수 없다고 한다. 상황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율법은 “거짓말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이렇게 단순하게 말하지만 사랑은 “이웃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해야 될 때도 있고 또 이웃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과 사랑은 같이 갈 수 없고 서로 충돌한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신도덕(新道德) 또는 상황윤리(狀況倫理)라고 하는데 이것은 무오(無誤) 한 성경 말씀과 반대 되는 주장이다. 그래서 상황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율법을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면 율법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1) 예수님과 율법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7-19)

예수님은 자신이 율법을 폐하러 오시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율법을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계명 중 어느 하나를 폐하거나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예수님은 또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에 인간의 생각들을 첨가해서 만든 소위 유대 랍비들의 전통을 거절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율법이 얼마나 절대적이며 완전함을 요구하는 가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마 5:48)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만일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라고 말씀하셨고(요 14:15) 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요 14:21) 사도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였다.(요일 5:3)

이처럼 예수님은 율법과 사랑 사이에 어떤 충돌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율법을 지키게 한다고 가르치셨다.

(2) 성경의 율법과 사랑은 하나

예수님처럼 완전한 사랑을 보인 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또 이웃을 사랑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이 율법의 계명 중 어느 하나라도 폐하시지 않았다. 성경은 도리어 “그는 모든 일에서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시다.”라고 말한다.(히 4:15)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가 없으시다는 의미는 율법 중 단 한 가지도 거슬리지 않으셨다는 의미인데 죄는 율법을 거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요일 3:4)

그러므로 사랑 때문에 때로는 하나님의 율법 지키기를 거부하거나 무시해도 된다는 상황윤리는 오히려 주님이 보여주신 모범과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 사랑한다면 사랑을 핑계로 하나님이 명하신 계명들을 범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한다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신 주님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르는 것이 옳다. 이처럼 주님이 말씀하신 참 사랑은 오히려 율법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힘써 율법을 지키게 한다.(마 22:37-4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2. 상황윤리와 시대적 상황

상황윤리의 잘못은 하나님의 율법(십계명)을 적용함에 있어 구약의 상황과 신약의 상황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즉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구원의 조건으로 율법을 지키도록 요구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십계명 서문에서 이미 틀렸다는 것이 들어난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실 때 먼저 이런 말씀으로 시작하셨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을 애급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것은 십계명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었다. 먼저 그들을 인도 해 내신(구원) 후에 십계명을 주셨다. 이처럼 구원을 받기 위해서 이스라엘백성이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성도 된 오늘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거나 지켜야 구원 받는 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구원 받았기 때문에 구원 받은 자로써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된다고 가르친다.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신 11:1) 이런 점에서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이 전혀 없는 것이다.

3. 상황윤리와 예수 그리스도

또 상황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다 지키셨기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것은 더 잘못 된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신약의 신자는 구원 받은 후에 구약의 십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인데 그러나 성경은 “너희는 값으로 산 바 되어 하나님의 것이 되었으므로 몸과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고 말한다. 그리고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고 적게 받은 자에게는 적게 요구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다.(눅 12:48)
하나님의 택함 받고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보다 십계명을 지킬 의무가 더 컸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처럼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속의 은혜를 구약의 성도들 보다 더 풍성히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주님을 사랑하고 감사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기를 힘써야 한다.

4. 십계명의 특징

다음 몇 과에서 십계명의 교훈들을 차례대로 살펴 볼 것이다. 이 과에서는 먼저 십계명의 전체적인 특징 몇 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1) 십계명에는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명시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에 우리가 새로 더 추가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처럼 십계명에 무엇을 더 추가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십계명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사실은 십계명을 공부해 나가면 보다 분명해 질 것이다.

(2) 십계명의 배열순서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예수님은 “너의 주 하나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말씀하셨다.(마 4:10) 십계명에서 주목재야 할 것은 이 순서이다.(아래 도표 그림 참조)

먼저 나오는 네 계명은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준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 계명은 네 계명과 함께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를 가르쳐 준다. 율법의 이 같은 기본적인 두 부분은 하나님께서 영감하신 순서를 나타내 준다. 이러한 사실은 율법을 차례대로 각각 살펴봄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십계명의 배열순서
십계명의 배열순서

(3) 십계명의 중심은 하나님이다.

십계명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관련된 계명일수록 십계명의 앞에 놓여 있고 간접적인 것은 뒤에 놓여 있다. 그리고 십계명

전체가 먼저 ‘하나님께’ 다음은 ‘사람에게’ 해야 할 의무를 나타낸다. 첫 네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요 다음 여섯 계명은 사람에 대한 의무다. 그러나 이것이 만족할 만한 표현이 아니다. 십계명 전체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기본적으로 가르쳐 준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4) 십계명은 절대적 통일성이 있다.

십계명 중 한 계명이라도 불순종 하면 사실상 모든 계명을 불순종하는 결과가 된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만일 누가 십계명 중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출 20:17)는 이 계명을 범하게 되면 그는 또한 우상숭배의 죄를 범한 것이다.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 3:5) 우상숭배의 죄는 제1계명을 범하는 죄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열 가지 계명이 아니라 하나의 계명을 열 가지로 설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글쓴 이(편저) / 정은표 목사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