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나우스의 영지주의 신관 (神觀) 비판

이레나우스의 영지주의 신관 비판

근광현 교수

Ⅰ. 서 론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 도다!”(호 4:6) 오늘 한국 교회는 사이비 이단(異端)들의 발호와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의 신비주의 범신론(汎神論)으로 인해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살아갈 새 천년은 신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전환기를 맞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바로 보지 못하면 신비주의의 물결로 인해 기독교 복음이 더욱 왜곡되고 신앙 공동체들은 영적 공황(恐慌)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상적 흐름들은 초기 교회의 거대한 이단이었던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 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1) 이 영지주의는 그리스어 지식(gnosis)에서 유래되었고, 시기적으로는 주후 80-150년 사이에 기독교의 순수한 신앙을 변질시켜 초기 교회로부터 분리해 나간 분파들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어휘이다. 영지주의 사상의 기본적인 틀은 극단적인 이원론(二元論)과 신지학적인 방법론이다.2)
이 글은 영지주의가 이원론 세계관을 가지고 어떻게 신론(神論)을 형성했는지 그 과정을 살피고 이들의 잘못된 신관(神觀)을 알리는데 있다. 필자는 여러 영지주의 분파들에 대한 필립 샤프(Philip Schaff, 1819-1893)의 분류를 따랐다.3) 필립 샤프는 이교영지주의(Simonians, Nicolaitans, Ophites, Carpocratians, Prodicians, Antitactes, and Manichaeans), 유대영지주의(Cerintus, Basilides, and Valentine), 기독교영지주의(Saturninus, Marcion, and Tatian)로 분류했다.

신약성경을 기록한 사도(使徒)들은 영지주의자들을 경계했다. 그리고 초대 교회는 오히려 이들과의 논쟁을 통해 올바른 신학적 토대를 구축했다. 따라서 영지주의 연구는 현재 이단들의 신학적 오류에 대한 비판적 기능과 영적 신비주의 운동에 대한 감시 기능의 역할을 할 수 있다.

Ⅱ. 영지주의의 하나님의 존재 이해

1. 하나님의 존재 위치

(1) 영지주의자들의 견해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존재(存在) 위치(位置)에 대해 한결같이 초월적(超越的)인 존재라고 한다. 사도행전 8:9-24에 보면 사마리아에서 사도 베드로와 충돌했던 최초의 영지주의자 시몬 마구스(Simon Magus)는 자신을 최고의 하나님의 현현(顯現)이라고 했다. 이 같은 시몬 마구스가 최초의 영지주의자라는 것을 인정한 사람들은 순교자 져스틴(Justin Martyr), 교부 이레니우스(Ireneaus), 교회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 포슘(Jarl E. Fossum), 휴그스(Philip E. Hughes), 한스 요나스(Hans Jonas) 등이다.4)

시몬 마구스(Simon Magus)는 자신이 헬렌이라는 여성을 통해 천사들과 물질세계를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바로 오늘 날 뉴에이지운동에서처럼 영지주의적 모티브를 통해 자신을 신격화 시킨 것이다.5) 시몬의 이런 주장은 하나님의 존재 위치를 본체론적 초월로 전제한 것이다. 그의 제자였던 메난더(Menander)도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했다.

그는 최초의 능력은 모든 존재들에 의해 알려질 수 없고 메난더 자신으로부터 만 알려질 수 있으며, 오직 자신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비밀리에 파송된 구원자라고 주장했다.6) 이밖에 시몬을 따랐던 사투르닐루스(Saturnilus) 역시 천사들과 대천사 그리고 능력들을 만든 자는 모든 존재들에게 결코 알려질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7) 사투르닐루스는 메난더의 제자였다.8) 이처럼 시몬 마구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인간이 하나님을 결코 인식(認識)할 수 없다는 사실과 이 하나님은 존재론적으로 초월(超越)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케린투스(Cerintus)라는 자는 최초로 기독교 복음을 재해석하려고 시도했던 영지주의자였다.9) 그는 영지주의의 기본적 틀인 이원론(二元論)을 모방하여 하나님을 최고의 신(神)과 제2의 신(神)으로 구분 지었다. 그에 의하면 창조주는 제2의 하나님이며 최고의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분이다.10) 케린투스의 이 같은 하나님 이해는 알렉산드리아 필로(Philo)에게서 배운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여러 학자들은 케린투스를 유대교와 영지주의 사이에 위치한 자로 간주한다. 학자들의 이러한 평가는 그가 수정된 마태복음을 제외한 다른 복음서를 거부하고 모세의 율법과 천년왕국을 가르쳤던 점에서도 잘 증명이 된다.11)

이들보다 더 발전된 영지주의 신관은 바실리데스(Basilides)와 발렌티누스파 그리고 말시온의 신학체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바실리데스는 메난더의 제자로 그는 안디옥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영지주의 사상을 가지고와 오염시킨 자이다.12)

그는 자신의 가르침은 비밀 전통을 통해 사도 베드로와 사도 마태로부터 자기가 전수(傳受)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에 대한 강조였다. 그는 하나님을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의 사유(思惟) 범주를 초월해 있는 존재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그분은 실존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너무 지나친 표현이라고 했다. 바실리데스에 있어서 하나님은 결코 말로 나타낼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13) 그래서 그는 태초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한 무(無)’(the pure, ineffable Nothing)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을 본래적인 무(無)와 동일시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14)

또 다른 자료 제공자 힢폴리투스(Hippolytus)의 보고에 의하면 바실리데스는 하나님을 ‘비(非) 존재 신(神)’(the non-being God)으로 묘사했다. 그의 이러한 신(神) 개념은 바로 플로티누스가 그러했듯이 부정 신학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칭하는 것이다.15)

발렌티누스(Valentinus)는 이레니우스에 의해 가장 강력하게 비판을 받았을 정도로 영지주의의 일반적 신학체계를 세웠던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도 바울의 제자인 테오다스(Theodas)로부터 배웠다고 주장했다. 그의 정교한 신학체계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가 가르쳤던 교훈에 대한 자료 불충분으로 말미암아 그의 사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의 제자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가능하다.16)

발렌티누스학파는 동방학파와 서방 또는 이태리학파로 구성되어 있다. 서방학파는 프톨레미우스와 헤라클레온(Heracleon)이 있고, 동방학파는 테오도투스(Theodotus)와 마르쿠스(Marcus)가 있다. 동방학파는 마리아 위에 성령과 최고의 능력이 주어졌기 때문에 예수의 몸을 영적이고 천상적인 몸이라고 주장한 반면, 서방학파는 예수가 세례 받을 때 성령이 그 위에 임하였기 때문에 예수의 몸은 혼적인 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학파 중 서방학파가 널리 알려져 있다.17)

영지주의 구원 체계의 근본적인 전제는 신적인 실체와 우주와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교리이다. 발렌티누스파 프톨레미우스는 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선재(先在)한 완전한 에온(aion, 영원)들을 긍정적으로 제시했다. 이 에온들은 비(非) 가시적이며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높은 곳에 존재한다.

그들은 이 존재들을 조상(forefather), 깊음(depth), 태고(pre-beginning)라 했다. 이 조상과 깊음은 무한한 에온들을 위하여 고요하고 아주 깊은 고독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한 사유(思惟, Thought)가 영원 전부터 존재했었다. 이 사유는 은혜(grace) 또는 침묵(silence)이라고 불렀고 이 에온들은 신적인 실체로부터 방사(放射)에 의해 나타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발렌티누스파는 하나님을 명백한 존재로서 이해하기보다는 깊음(depth)이라는 신화적이며 막연하여 애매모호한 존재로 인식했다.18)

발렌티누스파들이 하나님을 이렇게 막연한 존재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을 극단(極端)의 초월적 존재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스 요나스는 발렌티니안들의 이 같은 초월적 신(神)관을 가리켜 “그들은 하나님과 실재 세계와의 연결점을 찾지 못함으로써 플레로마의 위기를 가져 오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19)

말시온(Marcion)은 초대 교회의 가장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는 성경 해석의 오류로 말미암아 로마 교회로부터 추방당했다. 그러자 그는 말시온 교회를 개척하여 정통교회에 가장 위험한 경쟁자가 되었다. 말시온의 신학은 영지주의 이원론적 체계를 모방했다. 그에 의하면 물질세계에서는 율법과 정의가 통치하며 이와는 달리 사랑의 하나님의 복음은 어떠한 사악한 죄인이라도 용서해 주는 분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하나님은 ‘타자’(他者, Other) 또는 ‘낯선 하나님’(Foregin God)으로 밖에 달리 묘사할 방법이 없으며 이는 이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과는 전적으로 다른 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결코 알려질 수 없는 하나님과 이 물질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 이렇게 하나님을 두 신(神)으로 이원화(二元化) 했다.20)

그러나 그는 이 ‘낯선 하나님’이야말로 비(非) 가시적인 세계 창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이라고 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바울이 말한 삼층 천(天)의 구조를 활용하여 결코 알려 질수 없는 하나님은 ‘구원자 하나님’이라고 했다.21)

이와 같이 하나님의 존재를 삼층 천(天)에 거하시는 초월적인 존재로 인식시킴으로써 이는 한낱 이원론적 구원관을 전개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할 따름이다. 결국 그가 가르친 구원자 하나님은 계시 능력 및 자연에 대한 지속적인 섭리 사역과는 전혀 관계없는 우리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초월의 신(神)이었다. 이것은 결국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성육신 (成肉身)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부인(否認) 한 것이다.

(2) 영지주의 문서 내용

하나님의 초월성(超越性)에 대한 묘사는 1945년 이집트 나그 하마디(Nag Hammadi) 지방에서 발견된 영지주의 문서들 가운데서도 발견되고 있다. 여러 문서들 가운데 ‘요한 외경’(The Apocryphon of John)은 최초의 원리인 하나님을 극단적인 초월자로 묘사했다.22)

‘요한 외경’은 하나님을 ‘단자’(Monad)로 호칭했다. 이 모나드는 최고
의 통치자로써 그는 현존하는 모든 것들의 아버지이다. 이 모든 것들 위에 초월해 있는 하나님은 철저히 비(非) 가시적 이다. 왜냐하면 그는 눈으로 바라 볼 수 없는 순수한 빛 가운데에 존재해 있고 또 그는 하나의 신(a god)이나 그와 유사한 어떤 것으로도 그에 대해서 묘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 외경’은 하나님을 일컬어 “그는 총체적 완전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이며 또 사람들이 그를 탐구할 수도 없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절대적 초월의 하나님이다.”라고 했다.23)

또 다른 영지주의 문서인 ‘발렌티니안 해설’(A Valentinian Exposition)도 모든 만물의 근원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버지는 모나드 가운데 홀로 침묵 속에서 거하는 하나님이라고 묘사했다.24) 이밖에도 영지주의 문서 Allogenes는 최고의 하나님을 모든 존재 위에 초월해 있는 분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이 문서는 하나님을 ‘숨겨져 있는 실존’, ‘비실제적 물질’, ‘비실체 및 비존재적 실존’으로 정의했다.25) 결국 이렇게 정의된 하나님은 역사 내에 실존해 있는 분이 아니라 우주와는 전혀 낯선 곳에 절대적으로 초월해 있는 죽은 하나님을 묘사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을 한껏 높이는 척 하면서 부인한 것이다.

(3) 교부 이레나우스의 비판

이레니우스(Irenaeus, 130-202)는 영지주의의 초월 신관(神觀)을 하나님의 절대성과 전지성 그리고 전능성을 훼손한 신관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발렌티니안들이 전개한 초월(超越) 신(神)에 의한 방사(放射) 과정은 나름대로 에온(aion, 영원)들에 대한 인격적인 변환을 주기 위한 시도였으나 결국 그들은 그 점에 대한 그 어떤 토대나 정확한 설명도 해 주지 못했다.26)

기독교가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은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자연계시와 예수 그리스도 및 계시된 성경 말씀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신의 존재와 속성(屬性)을 알려 주시는 역사의 하나님이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존재를 영지주의자들과 같이 인간은 도저히 그를 알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로만 간주한다면 한스 요나스가 지적했듯이 모든 인간들로 하여금 허무주의와 도덕 폐기론의 삶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이를 조장하게 될 것이다.27)
2. 하나님의 존재 양태(樣態)

영지주의는 하나님의 존재 양태(樣態)를 묘사함 에 있어 성별(性別)을 나타내는 상징(象徵)을 사용했 다. 즉 영지주의는 하나님의 존재(存在) 양태(樣態)를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남성이면서 여성인 양 성(兩性) 신(神)인 안드로지니(androgyny)로 표현했다. 영지주의의 이러한 경향은 이교도 전승의 영향일 수도 있으나 대다수는 유대교의 유산과 관계가 있는 독특한 기독교의 언어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하나님을 남성적 일원론(monastic)이 아니라 남성이면서 여성인 한 쌍(二元一位, God as a dyad)의 하나님으로 표현했다.28)

(1) 영지주의자들의 견해

저스틴에 의하면 시몬 마구스는 그의 지지자들에 의해 ‘최초의 하나님’으로 숭배 받았다. 그는 자신의 여성의 짝인 헬렌(Helen)을 ‘최고의 사유(思惟)’라 칭했다. 그리고 그는 헬렌으로부터 천사들과 낮은 세계의 능력들이 나왔으며 이 천사들이 세계를 형성했다고 가르쳤다. 그리하여 많은 사마리아인들은 시몬 마구스와 헬렌을 신성(神性)의 남성(男性)-여성(女性)의 원리로서 예배하였다.29) 펠리칸은 “시몬 마구스가 이와 같이 하나님에 대하여 성적(性的) 묘사를 한 것은 하나님의 인격적 지혜에 관한 유대교의 사색으로부터 차용한 것이다.”라고 했다.30)

바실리데스는 구약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여 신화(神話)를 체계화시켰다. 그는 자신이 세운 신화를 세 가지 옛 계통(αρχαι αγεννητοι)으로 나누었다. 그 가운데 첫 계통에는 선함(αγαθοs)이라 불리는 최고의 하나님이 빛 가운데서 살고 있으며 그곳에는 한 쌍 즉 엘로힘(ελωειμ) 또는 아버지로 불리는 남성적 원리와 에덴(εδεμ)이라 불리는 여성적 원리가 있다고 했다.31)

발렌티니안들은 ‘깊음’(Bythos)이라는 이름의 남성의 하나님은 그의 여성의 짝인 ‘침묵’(sige)과 함께 초월적 존재로 남아 있다는 점을 신화(神話)의 주요한 전제로 삼았다. 그런데 이 ‘비토스’(깊음, Bythos)라는 헬라어는 문법상 남성을 의미했고 ‘시게’(침묵, sige)라는 단어는 여성을 의미했다. 발렌티니안의 체계에서 이 ‘깊음’(男)과 ‘침묵’(女)은 영원한 본래적 에온(aion, 영원)이었다. 그래서 이 에온(aion, 영원)들은 언제나 총합(syzygy), 즉 남-여성의 총합적 한 쌍(a masculine-feminine pair of syzygis)으로 존재했다.32)

일부 영지주의자 가운데는 창세기 1:26,27을 양성(兩性)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발렌티니안 동방 학파에 속했던 마르쿠스(Marcus)는 “하나님은 양성적(兩性的) 존재이기 때문에 그 모습대로 만들어진 인간 역시 남-여성적인 존재로 만들어 졌다.”고 주장했다. 같은 학파에 속했던 테오도투스(Theodotus) 역시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되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는 말은 바로 지혜인 어머니가 가장 잘 만든 구성 요소인 남성과 여성의 두 요소를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33) 이 같은 창세기 1:26,27의 해석은 하나님의 형상(形象)이라는 어휘를 문자적으로 해석한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2) 영지주의 문서 내용

‘요한 외경’은 자웅(암수, 雌雄) 동체적(同體的) 양성(兩性) 신관(神觀)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태초의 처음 영적 아버지(Spirit-Father)는 그의 빛 가운데 있는 물에 의해서 둘러 싸여 있었다. 이 신성(神性)이 최초로 무의식 속에 배가(倍加, 갑절로 늘림)를 위한 생각을 하였다. 그러자 그의 사유(思惟) 즉 최초의 엔노이아(Ennoia)가 실체화(實體化) 되어버렸다. 이것은 최초의 남자로서 본래적인 영(靈)이며 그는 바로 남성-여성의 양성적 자웅동체인 바르벨로(Βαρβηλώ, Barbēlō, 양성일체)였다. 이 사실로부터 플레로마(πληρωμα, Pleroma, 충만, 완전)의 탄생으로 나아가게 되었다.34)

유그노스토스(Ugnostos the Blessed)는 만물을 존재케 한 조상을 가리켜 ‘자기 배태자’(胚胎者, Self-Begetter)라고 했다. 이 자기 구성적인 아버지는 찬란한 빛 가운데 있었다. 즉시 그 빛의 원리가 영원한 자웅(雌雄, 암수) 동체적(同體的) 남자로서 출현하게 되었다. 그의 남성적 이름은 ‘출생’(Begotten)이었고, 그 여성적 이름은 모든 지혜를 낳게 한 ‘소피아’(Sophia)였다고 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소피아’(The Sophia of Jesus Christ) 역시 유그노토스와 동일한 양성적(兩性的) 자웅(雌雄) 동체(同體)의 신관(神觀)을 묘사하고 있다.35) 이밖에 ‘세계의 기원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the World)는 자웅(雌雄) 동체(同體)의 신관(神觀)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피스티스 소피아(Sophia)가 사물을 만들 생각을 갖게 된다. 그녀는 먼저 물질계를 통치할 능력을 만들었다. 이 능력은 사자 모양으로 생긴 거대한 힘을 가진 자웅동체적(雌雄同體的) 존재였다. 그것은 바로 얄다 바오트(Yalda baoth)였다. 이 얄다 바오트는 신들과 천사들 그리고 인류를 만들었다. 이 통치자는 이러한 존재들을 만들 때에 그의 본성과 일치하도록 이 모든 존재들을 다 자웅동체적(雌雄同體的)으로 만들었다.”36)

(3) 교부 이레나우스의 비판

이레니우스(Irenaeus, 130-202)는 영지주의자 특히 말시온이 섹슈얼(sexual)한 양성(兩性) 신관(神觀)을 교회 제도에 적용하여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성직(聖職)에 참여시켰던 것에 대하여 비판하기를 “그 당시 교회에서는 금했던 여성들의 예언문제와 성만찬 집례 그리고 여성들에 대한 성직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한 행위는 악마적인 유혹이었다.”고 했다.37)

터툴리안(Tertullian, 160-220) 역시 그가 주도적으로 비판했던 말시온이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하게 사제(司祭)나 성직(聖職)에 임명했던 것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했다. 그는 당시의 교회 혼란상을 가리켜 “영지주의 자들에 유혹된 여성들은 교회 내에서 정숙하지도 않고 논쟁에 끼어들며 악귀 추방의식을 행하고 저주행태를 벌이고 있다고 꾸짖는 여성들의 이런 무례한 행동은 교회 안에서 허용된 행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38)

Ⅲ. 영지주의의 하나님의 본성 이해

1. 비인격적인 무감각한 신

(1) 영지주의자들의 견해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을 비(非) 인격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행동하시는 하나님, 생명이 넘치는 하나님, 창조자 하나님으로 표현하는 데 실패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사람들을 만나주며 인간 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섭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었다. 영지주의자들의 이 같은 비(非) 인격적인 신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주장하는 우주 창조의 동기 분석을 해야 한다.

바실리데스의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절대적 초월자였다. 그는 이런 하나님을 ‘순수 무(無)’ 또는 ‘비(非) 존재 신(神)’이라고 정의(定意) 했다. 이러한 정의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어떠한 변화도 시도하는 일이 없는 순수한 비(非) 존재로서의 하나님이었다. 하지만 다른 자료의 제공자 힢폴리투스(Hippolytus of Rome, 170–235)에 의하면 바실리데스는 방사(放射) 이론을 거부했고 그는 전 우주란 하나님의 의지와 본래의 계획에 따라 무(無)로부터 창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39)

하지만 바실리데스가 하나님을 ‘순수 무(無)’라 하고 우주 창조는 이 무(無)로부터 창조였다고 주장한 것을 보면 그가 명확하게 유출설(流出說)을 벗어난 신관을 소유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발렌티니안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하나의 독특한 존재로 표현하기 보다는 오히려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기를 선호하였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말하는 창조 교리가 없다. 그들은 우주 창조란 하나님의 의지적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맨 마지막 에온(aeon, 영원)인 소피아(Sophia)의 결함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방사(放射)에 의해 형성된 플레로마의 개개의 에온(aeon, 영원)들은 독립적으로 실존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하나님을 철저히 우주에서 소외시킴으로써 무감각한 상태로 존재하는 하나님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40)

(2) 영지주의 문서 내용

이레니우스에 의해서 발렌티누스(Valentinus, 100-160) 작품으로 입증 된 ‘진리 복음’(The Gospel of Truth)은 하나님의 비(非) 인격적인 속성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 열정의 시작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나온 ‘유일하게 출생된 이성’(Only Begotten Mind)에게서 비롯되었다. 다른 모든 에온(aeon)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이성(Mind)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다른 에온(aeon)들에게 전달해 주고자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여성적 동반자인 ‘침묵’은 하나님은 모든 에온(aeon)들이 그들의 조상인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또 그를 찾고자 하는 욕망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구실을 내세워 이성(Mind)의 이와 같은 바램을 저지했다. 그래서 에온(aeon)들은 오직 그들의 종자(種子)를 낳게 하는 자를 은밀하게 주시하고 시작이 없는 근원에 대해서 탐색하고자 갈망했다. 참으로 모든 에온(aeon)들은 그분에 대해서 깊이 탐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가운데 맨 마지막에 속하는 에온(aeon)인 소피아(Sophia)가 그녀의 반려자의 승인도 없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열정에 빠져 그만 도약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성취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그녀는 ‘제한’(Limit, horos)으로 말미암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함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에 의해 소피아(Sophia)는 자신의 열망을 멈추고 자신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아버지는 결코 알 수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41)

다른 영지주의 문서 가운데 ‘요한 외경’은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한 바 있다.42) 그러나 대다수의 경우에는 하나님을 ‘영원한 빛’, ‘불가해한 존재’, ‘무한한 존재’ 등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는 어떤 욕망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존재로 인식했다. 예컨대 영지주의 문서 중 하나인 Allogenes는 “하나님은 결코 그 어떤 것에 대한 관심이나 그 어떤 욕망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그는 자기 자신으로 부터나 다른 존재들로부터 결코 축소되지 아니한다.”고 묘사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 어떤 에온(aeon)이나 시간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월리스는 말하기를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한 속성과 비(非) 속성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변증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43)

발렌티니안의 작품으로서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삼부로 된 소책자’(The Tripartite Tractate)에는 에온(aeon)의 연속적인 계열과 그것의 복사(複寫) 또는 모상(模像)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 있다. 이 소논문에 의하면 에온(aeon)들은 아버지의 모상(模像)으로서 아버지의 계시(啓示)에 따라 잠재적 존재로부터 현실적 존재로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문서에서 표현된 형상에 의한 존재의 연속적인 여러 레벨들은 이레니우스가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처럼 존재의 무의미한 영원 회귀성(回歸性)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인격적인 하나님을 철저히 무감각한 비(非) 인격의 하나님으로 전락시키고 만다.44)

(3) 교부 이레나우스의 비판

이레나우스는 ‘이단 논박’에서 발렌티누스파들은 하나님의 일반적 이미지 즉 창조자, 심판자, 주(主) 등의 이미지가 나타내려고 하는 것과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근원으로 이해되는 하나님 사이를 구별했다고 비판했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그들은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단순한 이미지에 불과한 것들을 가지고 마치 그것을 실재(實在)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성경에서 하나님이 때때로 보복하는 심판자로, 하늘에서 다스리는 왕으로, 심지어는 질투하는 주인으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들은 “하나님은 영이시다.”라는 말씀과는 서로 양립(兩立)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45) 그리하여 이레니우스는 발렌티니안들의 이러한 잘못된 주장을 비판하면서 성경의 하나님은 창조자로서 모든 것들을 유지시키는 인격적인 분이라고 말했다.46)

뿐만 아니라 이레니우스는 발렌티니안들이 플레로마(Pleroma, 충만, 완전) 형상론에 따라 에온(aeon)들이 스스로 독립하여 생존할 수 있는 존재라고 묘사했던 점에 대하여 비판하기를 “이렇게 되면 플레로마에 있는 에온(aeon)들에게 권리 이양(移讓)이 배제됨으로써 하나님과 에온(aeon) 모두가 무감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아가 그는 발렌티니안들이 하나님을 플레로마(Pleroma)에만 국한시켜 놓았으나, 진실하신 하나님은 모든 사물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플레로마(Pleroma)에만 머물러 서 있을 수가 없는 분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이레니우스는 하나님에 대하여 무감각한 하나님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47)

2. 영지주의의 다신교적인 신

영지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복수(複數)의 신관(神觀)을 가지고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신(神)을 최고의 신(神)과 이에 비해 열등한 여러 신(神)들로 구분하였다.48) 맥기퍼트(Athur C. McGiffert)같은 이는 영지주의자들이 영속적인 에온(aeon)들의 방사과정(放射過程)을 신화적인 용어를 빌어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그들이 희랍의 다신교와 같은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소치라 했다.49)

예컨대 영지주의자들이 묘사한 여러 신들은 ‘위대한 하나님’, ‘이스라엘의 보호자이고 천사장이며 창조자인 대천사’, ‘대천사의 복수적 본성’, ‘대천사의 여성적 측면’ 등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천사론을 통해 복수(複數)의 신관(神觀)을 묘사하였다. 일반적으로 영지주의는 이러한 신을 제2신(the second God)이라 칭했다. 이 제2신은 창조자 유대교의 하나님으로서 그는 여성의 짝인 ‘지혜’를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제2신성의 개념을 유대인 철학자 필로(Philon, BC 20?-AD 45?)에게서 배웠다.50)

(1) 영지주의자들의 견해

위 클레멘트 저술(the pseudo-Clementine writings)에 의하면 시몬 마구스는 베드로 사도와의 신앙 토론에서 유대교의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창조자라는 입장을 갖고 있는 베드로와는 달리 그는 구약의 야웨(Yahweh) 하나님은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을 다른 신들의 통치자임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은 야웨(Yahweh)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엘룐(Elyon) 하나님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사투르닐루스도 유대교의 하나님은 제2신으로서 그는 알 수 없는 아버지에 의해 창조된 천사들 가운데 하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바실리데스도 이 세상을 나눈 마지막 하늘의 천사들은 유대교의 하나님을 그들의 장(場)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가르쳤다. 다시 말해 이 물질적인 땅은 유대교의 하나님이 창조한 천사들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51) 이밖에도 케린투스(Cerinthus, 100-?)는 이 세계란 최초의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분리해 나온 하나의 능력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가르쳤다.52)

발렌티누스파의 경우는 형식적으로 잘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교묘한 방법으로 다신관(多神觀)을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어 ‘발렌티누스파의 해설’(Valentinian Exposition)은 하나님은 홀로이시며 그분 이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썼다. 그리고 또 다른 그들의 주장 ‘지식의 해석’(Interpretation of Knowledge)에서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한 분이시다.”라고 묘사했다.

이 표현만 보면 기독교의 신앙고백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레니우스는 말시온파를 신경(信經)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던 경우와 달리 발렌티누스파에게는 신경(信經)이 별 효과가 없어 큰 어려움이 있다고 실토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개적으로는 한 분 하나님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그들만의 집회에서는 근원이 되는 하나님과 일반적인 하나님 즉 창조자 하나님 사이를 구분했기 때문이었다.53)

그리고 발렌티니안들은 플라톤이 그러했던 것처럼 ‘조물주(demiurgos)라는 어휘를 사용했다. 이들은 물질 창조자 조물주는 그 보다 상위의 어떤 신적 존재의 능력의 도구로 일하는 낮은 신적 존재로서 그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세상 통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조물주가 왕이나 군주로서 통치하는 것이지 모든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이 통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발렌티니안들은 은연중에 하나님을 제1신과 제2신으로 구분하고 있음을 본다.54) 실제로 발렌티니안 동방 학파인 데오도투스(Theodotus)는 하나님을 아버지와 데미우르게로 구별하여 “오른편의 통치자는 아버지이며 왼편의 통치자는 데미우르게이다.”라고 주장했다.55)

말시온(Marcion, 85-160)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문제를 취급하면서 이신(二神) 교리를 주장했다. 그의 신학적 주제는 “어떻게 무한히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고통과 질병 등이 포함 된 이 세상을 창조하셨겠는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구약의 창조주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가 선포한 사랑의 하나님은 다른 하나님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누가복음 6:43의 ‘못된 나무와 좋은 나무의 비유’를 들어 정당화 시키려 했다. 즉 좋은 나무가 못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악으로 가득 찬 물질세계는 선한 신(神)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다른 신(神)이 창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56)
말시온의 이 같은 이신(二神) 교리는 그가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의 서로 대립되는 구절들을 발췌하여 만든 ‘대립 명제’(Antithesis)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묘사한 한 신(神)은 알려질 수 없고 지각(知覺)할 수 없으며 서술할 수 없는 ‘고독한 자’(the alien), ‘타자’(the other)로써 이는 ‘숨겨진 하나님’(the hidden God)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또 다른 한 신(神)은 우리가 알 수 있고 서술할 수 있는 창조의 하나님, 에온(aeon)들의 통치자 그리고 조물주(造物主)라는 것이다.

말시온에 따르면 복음의 선한 하나님은 창조에 절대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은 그에 대해 전혀 가르쳐 줄 수도 알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 선한 하나님을 마냥 고독 속에 홀로 거하는 존재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 고독한 선(善)의 하나님을 인간 구원에 연결시켰다. 즉 선한 하나님은 유일하게 이 세계와 존재로서가 아니라 구원의 문제로만 관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57)

결국 말시온의 이신(二神) 교리는 한 분 하나님을 ‘구원의 신(神)’과 세계 ‘창조의 신(神)’으로 나눈 이원론(二元論)인 것이다. 그러나 말시온의 선한 신(神)과 유대교 창조의 신(神)으로 구별한 것은 극단적으로 선한 신, 악한 신이라고 구분했던 페르시아 종교와는 다른 것이었다. 말시온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원론은 단순히 한 선한 하나님과 한 악한 신의 구분이 아니라 율법을 요구하는 정의의 신(神), 조물주와 사랑의 행동과 계시로서 용서하시는 선한 신(神) 이라는 해석학적 구분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영지주의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요구했다. 말시온의 이러한 점은 몇몇 학자들로 하여금 그는 영지주의자가 아니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만들기도 했다.58)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시온이 선호했던 사랑의 하나님에 의한 구원만 강조하고 창조의 신(神)신에 대한 본래의 의미 왜곡과 배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2) 영지주의 문서 내용

영지주의 문서 ‘유그노스토스’와 ‘예수 그리스도의 소피아’는 다음과 같이 신들의 탄생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태초에 충만한 빛 가운데 거했던 자기 구성적인 아버지가 자신의 모양을 닮은 위대한 능력을 만들기로 결심하자 그 즉시로 빛의 원리는 ‘영원한 양성적 사람’(Immortal Androgynous Man)으로 출현했다. 그리고 이 영원한 양성적 사람의 남성 이름은 ‘완전한 이성(理性)’이라 불렸고 그의 여성적 이름은 모든 지혜의 ‘탄생 된 소피아’로 불렸다. 이 불멸의 사람을 통해서 최초의 칭호 즉 아버지의 신성(神性)과 나라가 나타나게 되었다. ‘자기 스스로 아버지인 사람’(Self-Father Man)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는 자신의 위엄을 위해 위대한 한 에온(aeon)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는 그에게 위대한 권위(權威)를 주었다. 모든 피조물들을 통치하게 했고 또한 많은 신(神)들 즉 인간들과 대천사들 그리고 무수한 천사들을 창조하게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피아’는 이 위대한 한 에온(aeon)을 ‘오그도드’(Ogdoad)라 불렀다.”59)

그리고 ‘요한 외경’은 이브(Eve)가 그의 두 아들 즉 선한 ‘야웨’와 악한 ‘엘로힘’을 탄생케 했다고 묘사했다.60) 이처럼 영지주의 문서에 묘사된 제2신은 그들이 믿는 복수(複數) 신관(神觀)의 우회적(迂廻的) 표현 수단일 뿐이며 그 제2의 신(神)은 유대인의 하나님으로써 물질세계 창조 역할을 담당했던 신(神)으로 제1신보다 열등(劣等)한 신(神)을 의미한다.

(3) 교부 이레나우스의 비판

이레나우스는 영지주의자들이 말시온파처럼 창조주 하나님 이외에 다른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비판했다. 그의 비판에 따르면 말시온파는 창조주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나 발렌티누스파는 그들이 말로는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유일신 신앙을 거부하고 있는 늑대들이라고 했다.61)

이레나우스는 주장하기를 하나님은 오직 한 분으로 영지주의자들이 부정하는 ‘세계를 창조 통치하는 하나님’(제2의 신)과 ‘최고의 하나님’(제1의 신)은 동일하신 분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이레니우스는 또 구약의 예언자들에 의해 선포되고 신약의 복음에 의해 계시된 하나님은 동일한 한 하나님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뿐만 아니라 신약의 구원의 신(神)과 구약의 창조의 신(神) 역시 동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시라고 주장했다.62)

이러한 이레나우스와 같이 터툴리안도 말시온이 전개한 이신(二神) 신관(神觀)은 논리적으로도 모순된다고 말했다. 즉 말시온이 이신(二神) 가운데 한 신(神)은 선하고 무한한 반면 다른 한 신(神) 포악하고 세상 안에 제한되어 있는 존재로 묘사했는데 사실상 신성(神性)의 본질은 최고의 위대한 속성의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열등한 존재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당하다는 것이다.

터툴리안의 이 같은 지적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한 때 말시온을 추종했던 그의 제자 아펠레(Apelles)가 그의 스승의 두 원천(源泉)에 근거한 이원론(二元論)을 거부하고 유일신을 믿게 된 것을 볼 때 더욱 그렇다. 아펠레는 “나는 동일하게 영원한 두 개의 원천(源泉)이 존재한다고 하는 말시온으로부터 배울 생각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의 원천(源泉) 뿐인 하나님만을 믿고 그렇게 설교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63)

Ⅳ. 영지주의의 하나님의 사역 이해

1. 방사에 의한 천상 세계의 창조

영지주의의 우주 창조론은 모방적 이원론과 수비학적(numerological) 사색(思索)이 엮여 비롯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초월세계와 물질세계 사이에 있는 에온(aeon)들의 복잡한 연속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64)

그리고 영지주의의 하나님(제1의 신)은 이 사악(邪惡)한 물질세계를 창조하지 않았으며 이 물질세계와 전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신학적 전제에서 출발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방사(放射) 이론과 천사들의 역할을 통해 영적 세계와 물질세계 사이의 연결을 시도했다.65)

(1) 영지주의자들의 견해

시몬 마구스(Simon Magus, 행 8:9-24)는 한 초월적인 힘에 의해 나온 ‘사유(思惟, Ennoia)’ 즉 헬렌(신의 이름)이 낮은 지역으로 내려와 천사들과 능력들을 방사(放射) 했고 이 천사들이 지상 세계를 만들었다고 가르쳤다. 그에 의하면 헬렌은 자신의 최초의 사유(思惟)이자 만물의 어머니였다. 헬렌은 일찍이 천사들과 대(大) 천사들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상 세계에 내려와 천사들과 능력들을 방사(放射)함으로써 이 계획을 실현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시몬 마구스의 이러한 주장은 자신의 독특한 신학체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당대에 실존했던 영지주의의 이원론을 모방하여 자신을 신격화(神格化)하는 도구로 활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66)

창조론 연구를 위한 바실리데스의 자료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레니우스에 의해 알려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힢폴리투스에 의해 재구성된 것이다. 이레니우스의 자료는 바실리데스 자신의 교훈들에 대한 단편적인 자료이며, 영지주의의 일반적인 개념들을 폭 넓게 취급하고 있다. 반면 힢폴리투스의 자료는 바실리데스 사후 그의 아들 이시도어(Isidor)를 포함한 그의 제자들의 가르침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우주 창조론에 있어서 양자 간에는 서로 다른 차이점들이 있었다. 이레니우스 자료에서는 순수한 방사(放射) 체계를 다루고 있는 반면에 힢폴리투스 자료는 ‘무(無)로 부터의 창조 교리’를 취급하고 있다.67) 이레니우스는 바실리데스의 유출(流出)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먼저 비탄생자 아버지로부터 ‘이성’(理性, mind, nous) 혹은 ‘그리스도’(Christ, Christos)가 나왔다. 그로부터 ‘말씀’(word, logos)이 나왔고 이 로고스(말씀)로부터 ‘분별’(分別, prudence, phronesis)이 나왔다. 이 ‘분별’로부터 ‘지혜’(知慧, wisdom, sophia)와 ‘능력’(能力, power, dynamis)이 나왔다. 그리고 ‘능력’과 ‘소피아’로부터 원리(原理)가 지배하는 권품(權品) 천사들(principalities)과 일반 천사들을 유출(流出) 해 냈다. 이것을 ‘시초’(始初, first)라 불렀고 이들에 의해 첫째 하늘이 만들어졌다.

그때 다른 능력(能力)들이 이것들로부터 방사(放射)에 의해 첫째 하늘과 유사한 다른 하늘을 창조했다. 그 후에는 다시 또 다른 능력들이 방사(放射)에 의해 그들 위에 존재하는 것들에 상응하는 존재들을 형성하였다. 이것은 또 다른 셋째 하늘을 주조(鑄造)하였다.

그러자 이에 그치지 않고 아래로 향하는 질서 가운데 있는 이 셋째 하늘로부터 연속적인 자손증식(子孫增殖) 과정이 지속되었다. 이와 같은 연속적인 유출(流出) 과정을 거쳐 한층 더 많은 권품(權品) 천사들과 천사들이 형성되어 일 년의 숫자에 해당하는 365개 하늘들을 이루었다.”68)

그러나 힢폴리투스는 이레니우스와 달리 바실리데스의 ‘무로부터의 창조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태초에 ‘순수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the pure, ineffable Nothing)가 있었다. ‘비(非) 존재 하나님’(the non-being God)은 그 자체 안에 전 세계(the whole world)와 우주의 씨 혼합(the seed-mixture of the cosmos)을 잠재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우주의 씨’를 창조했다. 그 세계 씨는 비록 순수함의 정도가 차이는 있으나 ‘비(非) 존재 신’과 동질(同質) 인 삼자권(三子權, three sonship)을 포함하고 있었다.

첫째, 제1 자권(子權)은 주요 성분이 순수한 층(層, λεπτομερηS)으로서 세계의 씨가 창조되는 순간 비(非) 존재 신에게까지 솟아올랐다.

둘째, 제2 자권(子權)은 조잡한 층(層, παχυμερηS)으로 홀로 솟아오르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존재였다. 그래서 그것은 성령(聖靈)에 의해 위로 날 아 운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성령(聖靈)은 하나님과 본질(本質)에 있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역에 까지 들어갈 수는 없고 그 배후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자 그 영(靈)은 지상까지 스며내려 오도록 제 2의 자권(子權)의 내품기를 계속 실행했다. 그리하여 초(初) 우주 영역으로부터 우주를 분리하는 하나의 ‘창공’(蒼空, σερεωμα)이 탄생되었다. 그러나 우주의 형성은 아직 최고의 영역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하지만 창공까지 올라갈 수 있는 태고(太古)의 씨로부터 생겨난 대(大) 통치자가 자신에 의해 창조된 위대하고 현명한 아들과 함께 창조사역에 착수함으로써 이루어졌다.”69)

이와 같이 바실리데스는 ‘무(無)로부터의 창조’라는 성경의 창조 개념을 도용(盜用)하고는 있으나 이 ‘무(無)’를 하나님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는 완전하게 유출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바실리데스의 창조론은 플라톤의 우주관과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에 의한 혼합적 서술에 불과한 것이다.

발렌티누스의 에온(aeon)의 천상계 기원과 구성에 관한 자료는 이레니우스의 자료와 힢폴리투스의 자료가 있다. 메이(Gerhard May)는 전자를 System A라 칭하고 후자를 System B라고 칭했다. 이 두 자료 간에는 약간의 차이점들이 있다. System A는 방사 과정의 시작에 대한 명확한 배경 설명이 없이 간략하게 신(神)의 침묵이 모든 것들을 존재하도록 허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을 스쳐 지나가듯이 언급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시도는 하나님이 어떻게 불완전한 에온(aeon)들을 유출하도록 허용했는지 그 근원을 설명하기 위해 시도한 것이었다.

반면 System B는 아버지가 그 안에 소유하고 있었던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것을 존재케 하고자 결심하는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자료는 하나님의 신적 선함과 결단의 표현으로서 ‘플레로마’(충만, pleroma)가 창조되었다고 묘사했다.70) 필자는 둘 중 이레니우스의 자료가 더 반(反) 영지적 성향이라고 본다. 이레니우스의 자료에 의하면 발렌티누스는 남여 양성적(兩性的) 방사(放射)에 따라 생긴 30개의 에온(aeon) 형성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먼저 비가시적 세계에 비(非) 발생된 완전하고 선재한 에온(aeon) 인 ‘원천’(源泉, προαρχη), ‘조상’(祖上, προπατωρ), ‘성부’(聖父, Bythus)가 있었다. 성부는 자신의 생각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사유’(思惟, Ennoea)라고도 불리는 ‘은혜’(恩惠, Charis) 또는 ‘침묵’(沈黙, Sige)과 함께 셀 수 없는 영원한 세대 동안 고요함 속에 있었다.

마침내 성부는 스스로 모든 만물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그의 여성 동반자인 ‘침묵’(沈黙, Sige)으로 이를 생산해 내도록 하였다. 그러자 이 ‘침묵’(沈黙, Sige)은 씨앗이 자궁 안에서 낳아지듯이 그 씨를 받아 임신하여 ‘이성’(理性, Nous)과 그의 여성적 짝인 ‘진리’(眞理, Aletheia)를 낳았다. ‘이성’(理性, Nous)은 ‘단성생식’(單性生殖, Monogenes), ‘아버지’(父, Father) 그리고 ‘모든 만물의 시작’이라 불렸다.

그런데 ‘이성’(理性, Nous)만이 그의 아버지의 위대함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이성’(理性, Nous)은 그 목적을 스스로 지각(知覺)하고 ‘말씀’(言, Logos)과 ‘생명’(生命, Zoe)을 방사(放射)했다. 그리고 이 ‘말씀’(言, Logos)과 ‘생명’(生命, Zoe)의 결합(結合)에 의해 ‘사람’(人, Anthrophos)과 ‘교회’(敎會, Church)가 생겨났다.

이와 같이 첫 탄생 된 제2세대 에온(aeon) 세상을 포함한 8개 한 조의 에온(aeon)인 옥더와드(Ogdoad, ογδοάς, the eightfold)는 모든 존재의 뿌리이며 실체였다. 그 다음 제3세대의 22개 에온(aeon)들이 유출되어 나왔다. 그리고 ‘말씀’(言, Logos)과 ‘생명’(生命, Zoe)에서는 10개의 에온(aeon)들이 나왔고 ‘사람’(人, Anthrophos)과 ‘교회’(敎會, Church)에서는 12개의 에온(aeon)들이 나왔다. 이렇게 영적 ‘플레로마’(충만, pleroma)는 총 30개의 에온(aeon)으로 구성되었다. 그 가운데 맨 마지막 에온(aeon)은 ‘지혜’(知慧, Sophia)였고 마침내 이 ‘지혜’(知慧, Sophia)의 타락으로부터 물질세계가 만들어 졌다.”71)

(2) 영지주의 문서 내용

‘삼부로 된 소책자(The Tripartite Tractate)’는 약간의 신화적인 형태와 필로와 흡사한 스토아적 플라톤주의의 입장에서 천상계 형성에 관한 방사이론을 다음과 같이 전개하고 있다:

“에온(aeon)의 1단계에서 모든 에온(aeon)은 영원히 깊은 심연 가운데 있는 아버지의 사유(思惟) 안의 씨 즉 종자(種子)로 존재해 있었다. 이유는 에온(aeon)들은 그들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온 (aeon) 발생 2단계에서는 ‘아버지’(父, Father)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지성(知性)을 부여해 주려고 생각에 잠겼던 사유(思惟)의 과정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父, Father)는 에온(aeon)들이 스스로 존재하고 그들이 무엇인가 인식하며 자신들을 위하여 존재 가운데 나아갈 수 있도록 지식의 씨와 같은 사유(思惟)를 뿌려 주었다.

그런 후 에온(aeon)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아버지’(父, Father)의 사유(思惟) 안에서 자존(自存)하는 지성(知性)으로서 그들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이 때 ‘아버지’(父, Father)는 마치 작은 어린이, 떨어지는 물방울, 덩굴에서 개화된 꽃 그리고 새싹과도 같은 에온(aeon)들을 유출(流出)하였다. 마침내 ‘총합’(總合, syzygy) 이념(理念)이 이런 과정을 거쳐 출산과 탄생의 유사한 과정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방사(放射)의 유출(流出)은 자연적으로 탄생의 한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72)

창세기 1:1-3을 해석한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영지주의 문서 ‘세계의 기원에 대하여’는 태초로부터 존재하는 ‘무(無)’로부터 ‘그림자’, ‘혼돈’, ‘신앙’의 방사(放射) 과정이 있었고 이 과정을 통해 물질세계가 생겨나게 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태초부터 실존했던 한 생산 행위로부터 ‘어둠’이라 불리는 ‘그림자’가 나왔다. 이 ‘그림자’는 ‘혼돈’을 낳았고 이 ‘혼돈’이 설계했던 것으로부터 나온 첫 생산에 의해 ‘물질’이 나오게 되었다. 불멸적(不滅的) 존재의 자연적 구성이 있은 후에 그 때 ‘신앙’으로부터 방사된 닮은 모양의 무한한 존재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결단력으로 원시의 빛과 같은 창조 행위를 하는 ‘지혜’였다.”73)

(3) 교부 이레나우스의 비판

이레나우스는 영지주의의 방사(放射) 이론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창조 세계와는 별개의 무관심한 하나님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의 비판에 의하면 만일 에온(aeon)들이 자신들을 유출한 아버지의 존재를 소유하고 있다면 모든 에온(aeon)들은 최고의 하나님과 같이 열정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피아(Sophia)가 하나님에 대하여 알려고 했던 열정 때문에 타락이 생겨났고 이것 때문에 물질이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낮 그들의 무의미한 방사 이론에서 초래한 오류일 뿐 그것은 논리적으로 올바른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이레니우스에게 있어서의 하나님은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적인 결단으로 모든 만물을 무(無)로부터 창조하고 모든 존재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같은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영지주의자들의 방사 교리에 나타난 신화적인 요소와 만화(漫畵) 같은 에온(aeon 묘사를 비판했다. 메이는 이레니우스의 이러한 영지주의 비판을 대단히 합리적인 것이라고 옹호했다.74)

2. 신적 존재에 의한 지상의 물질세계 창조

영지주의는 물질세계란 최고의 하나님(제1의 신)에 의한 선한 창조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물질계 창조 수행자에 대하여 학파마다 약간의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에온(aeon) 중 하나인 소피아(Sophia)의 타락에 의해 물질세계가 창조되었다고 말했는가 하면, 다른 이는 최고의 하나님으로부터 방사(放射)되어 나온 다수의 다른 능력들이 물질세계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75)
그런데 이와 같이 천사적(天使的) 능력에 의하여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가르침은 주로 영지주의 초기단계의 것이었다. 그 대신 후기에 들어와서는 물질세계 창조자로서의 천사의 데미우르게(demiurge, 영지주의의 창조주)의 기능은 약해지고 구약의 하나님과 최고의 하나님(제1의 신) 사이를 구별함으로써 하나님-창조-물질세계의 구조를 체계화시켜보려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의 천사(天使) 교리는 본래 유대인들의 천사(天使) 개념에서 나온 것이긴 했으나 이 개념은 하나님에 대한 반동(反動)의 표현일 뿐이다.76)

(1) 영지주의자들의 견해

앞서 언급했듯이 시몬 마구스는 천사들과 능력들이 물질세계를 만들었다고 가르쳤다.77) 그리고 그는 이 천사들이 야웨와 동일한 데미우르게(demiurge, 영지주의의 창조주)라는 사실을 인정했다.78) 그의 제자 메난더도 이 세계는 천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가르쳤다. 사투르닐루스 역시 이 세계와 모든 존재는 일곱 천사의 일단의 무리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했다. 이밖에 카르포크라테스도 이 세계는 비(非) 탄생자인 아버지보다 열등한 천사들이 창조했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한결같이 이들은 이 세계 창조자들을 오만하고 무지한 존재로 묘사했다.79)

바실리데스는 천상(天上)의 존재를 창조한 아버지와 물질세계를 창조한 구약의 야웨 하나님 즉 제2의 통치자 사이를 구분했다. 그에 의하면 모든 하늘의 실재 근원은 365개의 하늘들을 방사(放射)하여 모든 질서를 확립한 아버지다. 그러나 이 세계창조는 이 하늘들 가운데 둘째 자권(子權) 맨 마지막 하늘에 거주했던 제2의 통치자인 천사들이 창조했다.

어느 날 구약의 하나님은 한 사람을 선택하여 전 세계를 통치할 수 있도록 계획을 했었다. 하지만 다른 천사들이 야웨 하나님의 계획을 반대하자 이 제2의 통치자는 한 아들을 낳아 그와 함께 셋째 자권(子權) 인 이 지구를 창조했다. 그러나 이 지구창조는 364개의 하늘들에 의해 분리되어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창조는 극도로 불완전한 창조가 되었다. 비록 이 세계가 불완전한 세계 창조일지라도 아직 그 안에는 인간의 몸 안에 갇혀 있는 신적인 영(靈)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그의 독생자(獨生子)를 이 세계에 보내게 되었고 그 아들은 천상계에 대한 회상에 있어서 무지한 잠에 빠져 있는 영들을 일깨워 주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왔다는 것이다.80)

바실리데스는 이 상황을 구원론적으로 활용하기를 원했다. 말하자면 이 세계의 존재 목적은 셋째 자권(子權)에게 죄로부터 순수함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기 위한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 세계의 고통은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간주했고 이 고통은 세 자권(子權)으로 하여금 상층부로 도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감당케 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바실리데스는 천상계와 지상계를 창조하신 분은 한 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인간의 운명론을 내세우고 있음을 볼 때 그는 불교적 우주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영혼의 윤회설을 믿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81)

케린투스는 하나님이 이 세계를 직접적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매개자로서 봉사의 임무를 맡고 있는 천사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창조했다고 말했다. 이 천사들 가운데 하나가 율법을 제공해 준 유대교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82) 물론 성경은 하나님이 천사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전해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천사들이 만물을 창조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 어디에도 천사가 만물을 창조했다고 말해 주는 곳은 없다.

발렌티누스는 물질세계 창조의 원인을 무지(無智) 즉 소피아의 타락과 데미우르게의 무지에 두었다. 소피아의 타락이란 오직 이성(理性) 외에는 어느 에온(aeon)도 하나님을 알 수 없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피아가 경솔하게 아버지를 알려고 시도한 것(System A)과 소피아 자신의 남성 파트너 허락 없이 에온(aeon)을 탄생케 하려고 시도한 것을 의미한다.(System B) 타락한 소피아는 ‘사람과 교회’에 의해 낳게 된 마지막 에온(aeon)의 여성의 짝이었다. 이 타락한 소피아는 스스로 영적인 씨를 탄생케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열정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플레로마 밖의 세계에 형체가 없는 물질을 유산(流産)으로 낳았다. 그리고 소피아는 방사(放射)를 통해 모든 만물의 아버지이자 왕(王)인 혼적(魂的)인 데미우르게를 방사했다. 이 데미우르게는 일명 창조자 혹은 구약의 하나님으로 불리웠다.83) 즉 하나님을 피조물로 보고 있다.
발렌티누스가 주장한 데미우르게(Demiurgos)에 의한 창조 과정은 발렌티니안 서방파 프톨레미우 스가 창세기 1:1-4을 소피아와 데미우르게의 창 조 사역으로 해석한 곳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에 의하면 소피아는 데미우르게를 통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 최초로 데미우르게는 혼적(魂的)인 물질(物質), 혼적(魂的)인 그리스도와 천사들 그리 Demiurgos 고 대(大) 천사들을 창조했다.(창 1:1) 그러나 아직 혼적(魂的)인 것은 물질적인 것과 함께 혼재되어 있었다. 혼적(魂的)인 것은 빛이기에 위에 있었고 물질적인 것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무거운 물질은 비(非) 물질적인 차원에 있었다.(창 1:2)

이제 데미우르게는 무거운 물질로부터 순수한 혼적(魂的)인 요소를 분리해 내었다. 그것은 빛과 어둠이었다.(창 1:4) 그리고 데미우르게는 처음부터 지상적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먼저 동물의 영혼과 같이 이성(理性)이 없는 한 영혼을 비물질적인 실체로부터 준비해 두었다가 인간에게 불어 넣었다는 것이다.(창 1:26) 이처럼 발렌티니안들은 철저하게 성경의 하나님의 주도적인 우주창조 행위를 배격했다.85)

말시온의 창조관은 선재(先在)한 악한 물질로부터의 세계 창조였다. 그가 이렇게 물질에 대한 선재(先在)를 주장했던 것은 최고의 하나님(제1의 신)과 데미우르게 사이의 불연속성 때문 이었다. 그에 의하면 이 물질을 사용하는 하나님은 최고의 하나님이 아니다. 오직 이 물질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제2의 신(神)인 데미우르게이다. 그런데 이 데미우르게는 물질이 없이는 창조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데미우르게에게는 반드시 선재(先在)한 물질이 있어야 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창세기 1:1,2에 근거하여 형체(形體) 없는 물질의 선재(先在)를 주장했다. 그가 이렇게 데미우르게가 선재하는 무형의 악한 물질로 이 세계를 형성했다고 가르친 것은 왜 이 세계에 결점과 악이 존재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86) 그러나 말시온은 케린투스와 같이 천사를 세계창조의 간접적인 수행자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그는 누가복음 12:8과 15:10에 따라 천사를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창조자의 메신저로 간주했다.87)
(2) 영지주의 문서 내용

영지주의 문서들도 물질세계 창조자를 최고의 하나님(제1의 신) 대신 천사적(天使的) 존재인 데미우르게로 묘사했다. ‘요한 외경’은 낮은 세계의 창조자를 얄타바오트(Yaltabaoth)라 명했다. 이 얄타바오트는 타락한 소피아가 낳은 괴물 같은 창조의 신(神)으로 세계 통치를 위하여 천사들을 창조하고 물 가운데 비추인 완전한 아버지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요한 외경’의 이러한 내용은 창세기의 창조이야기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이 얄타바오트는 야웨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로 해석되었다.88) ‘예수 그리스도의 소피아’는 이 얄타바오트를 대(大) 천사라 불렀고 그는 혼돈을 통치하는 거대한 자라했다.89) 만데이즘(Mandeism)은 데미우르게의 실제적 이름을 가브리엘 천사라 했고 마레프(Malef)라는 사마리아인 저술은 인간의 신체를 창조한 주의 천사라 했다.89)

이와는 달리 ‘아르콘의 본질’(The Hypostasis of the Atchons)은 세계 창조자 데미우르게는 소피아에게서가 아니라 ‘혼돈’(Chaos)에서 나와 창조를 위해 지상에 내려왔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궁극적인 내용의 차이라기보다는 후에 플라톤의 티메우스(Timaeus)의 영향에 따른 용어상의 차이였다. 그러나 ‘요한 외경’은 이 세계창조를 전적으로 낮은 존재인 데미우르게에게 일임하지는 않았다. 즉 이 세계는 에온(aeon)의 형상(形象)이고 인간의 신체적 조직은 데미우르게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90)

(3) 교부 이레나우스의 비판

이레나우스는 영지주의 신학체계 가운데 특히 그들이 주장한 제2의 신적(神的) 존재에 의한 창조에 대해 아주 강하게 비판했다. 이레니우스의 영지주의 창조론 비판은 한 분 하나님은 그의 창조적인 행위에 의해서 정의된다는 교리에서 출발했다. 그는 영지주의자들이 내세운 제 2의 신적(神的) 존재의 경우 절대성의 속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그들의 신적인 방사와 구별된 신적 플레로마에 대한 전제는 신적인 존재를 합성된 유한한 존재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물질세계가 창조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소피아의 타락과 데미우르게의 결함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주장하는 발렌티누스의 신학은 실질적인 창조론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91)

나아가 이레니우스는 발렌티니안들이 형상론에 입각하여 30개의 에온(aeon)으로 이 세계 안에 있는 다양한 존재들을 충분히 발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하여 결코 동물을 가리켜 천상의 존재의 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왜냐하면 영적인 존재는 다른 것들과의 관계에서 흠이 있고 열등하며 부조화(不調和)스러울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의미에서의 특성의 구별을 전혀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격하게 성경적인 창조 해석은 수동적이고 자기 관조적인 일자와 활동적인 데미우르게 사이의 이중적 형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의 혼돈이론과 창세기 1:2에 대한 ‘형체 없는 물질’의 선재(先在) 이론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비록 이러한 해석이 순교자 져스틴에 의해 수용된 적이 있었으나 이레니우스의 하나님과 그의 창조 사이에 그 어떤 원리라도 개입시키려는 것 자체를 거부한 것이었다.92)

Ⅴ. 결 론

지금까지 살펴 본 것을 토대로 영지주의의 신관(神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지주의는 하나님의 존재 위치를 극단적인 초월로 간주했다. 그리 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적 섭리(攝理)에 커다란 오류를 범했다.

둘째, 영지주의는 하나님을 자웅(雌雄) 동체적(同體的) 양성(兩性) 신(神)으로 이해함으로써 유출설에 의한 창조론을 전개했다. 유출설은 하나님 의 의지적인 행위를 철저히 배제했고 이로 인해 무(無)로부터의 창 조론에 엄청난 오류를 가져왔다.

셋째, 영지주의는 다신교적(多神敎的) 신관(神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절대성(絶對性)과 유일성(唯一性)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 결과 한 분 하나님에 의한 선한 창조개념을 크게 훼손시켰다.

결국 영지주의의 이러한 하나님 이해는 생동적이고 인격적인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간세계로부터 철저히 격리시켜 절대 고독 속에 가두어 넣음으로써 하나님을 죽은 신(神)으로 주장했다.

영지주의의 이 같은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그의 사역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인간 사회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인격적 존재로 체험할 수 없게 될 때 개인적 허무주의, 물질에 대한 죄악시, 윤리적 도덕폐기론, 신앙적 신비주의와 금욕주의, 학문의 신지학적 경향성, 사상적 혼합주의 그리고 신학적인 오류 즉 가현설적 기독론과 깨달음에 의한 구원론 등에 빠질 수밖에 없다.

초기교회와 교부(敎父)들은 이러한 영지주의 이단(異端)들에 맞서 이를 대처하기 위한 두 원리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 성경은 하나의 전체로서 그 자체의 증언의 빛 가운데서 해석되어 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 올바른 성경해석은 믿음의 공동체에 의해서 받아들여진 전통과 기독교 신앙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먼저 성경의 정경화(正經化) 작업을 시도하여 외경(外經)과 위경(僞經)을 제거한 다음 이 성경에 근거하여 ‘신앙의 규범’과 ‘사도신조’를 작성하고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을 정립하여 영지주의 이단(異端)에 대항하였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라 했고(창 24:3) 창조주는 천사가 아니라 한 분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라고 선언한다.(창 1:1-3; 요 1:1-3; 골 1:15-17)

그러므로 오늘날 영지주의자들과 같이 혼합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현혹하는 뉴에이지운동과 탈세상적 신비주의 신앙을 강요하는 사이비종파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 안에서 성경 읽기와 올바른 교리 공부가 철저히 실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세계관 가운데 만연되어 있는 이원론적(二元論的) 사고방식을 지양(止揚)하고 삶의 자리에서 올바른 신앙을 표현할 수 있는 관계론적인 사유(思惟) 체계를 지향(指向) 해야 한다.

끝으로 필자는 ‘하나님-인간-자연’ 관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보다 확고하게 하나님의 현존(現存) 의식을 갖고 그 분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기존의 신학이 물었던 질문 즉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라는 존재론적인 물음에서 이제는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물음으로 전환하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향하여 지금도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창 3:9)라고 묻고 계시기 때문이다.(*)
글쓴 이 / 근광현 교수(조직신학,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 대책 위원회 전문위원)

< 미 주 >
1) 영지주의와 뉴에이지 운동과의 관계를 살피려면, Peter Jones, The Gnostic Empire Strikes Back: An Old Heresy for the New Age(Phillipsburg: P&R Publishing, 1992)를 보라.
2) Albert H. Newman, A Manual of Church History, vol. 1(Valley Forge: Judson Press, 1933), 183-84.
3)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2(Grand Rapids: Wm. B. Eerdmans, 1992), 460.
4) 근광현, “영지주의 기독론이 초기교회 기독론에 미친 영향”(박사학위논문, 침례신학대학교, 1996), 30.
5) Robert M. Grant, Gnosticism: An Anthology(London:Collins Clear-Type Press, 1961), 24-5.
6) Magaret Barker, The Great Angel: A Study of Israel’s Second God(Louisville: John Knox Press, 1992), 170.
7) Ibid.,
8) Justo L. Gonzalez, A History of Chritian Thought, vol. 1(Nashville: Abingdon Press, 1970), 135.
9) lrenaeus, Against Heresies, Ⅰ. 26, 1. in The Ante-Nicene Fathers, vol. 1. eds, Alexander Robert and James Donaldson 2d rev. ed.(Grand Rapids: Wm. B. Eerdmans, 1985), 이후 부터는 Irenaeus, A. H.로 표기한다.
10) Barker, The Great Angel, 170.
11)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465.
12) Walter Bauer, Ortho- doxy and Heresy in the Early Christianity (Philadelphia:Fortress Press, 1971), 66.
13) Joseph W. Trigg, Origen: The Bible and Philosophy in the Third-century Church(London: SCM Press LTD, 1985), 39.
14) Gerhard May, Creatio Ex Nihilo: The Doctrine of ‘Creation out of Nothing’ in Early Christian Thought, trans. A. S. Worrall(Edinburgh: T&T Clark LTD, 1994), 67.
15) Ibid.
16) Hans Jonas, The Gnostic Religion: The Message of the Alien God and the Beginnings of Christianity(London: Routledge 1992), 178; May, Creatio Ex Nihilo, 85;
17)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479.
18) Jaroslav Pelikan, The Christian Tradition: A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Doctrine, vol. 1(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1), 85.
19) Jonas, The Gnostic Religion, 179.
20) 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140-41.
21) May, Creatio Ex Nihilo, 58-9.
22) Jonas, The Gnostic Religion, 199.
23) The Apocryphon of John, Ⅱ. 30, Ⅳ. 5-20. in The Nag Hammadi Library, eds James M. Robinson(Leiden: E. J. Brill, 1988), 106. 이후부터는 Apo. J.라 표기한다.

24) A Valentinian Exposition, Ⅺ. 25. in The Nag Hammadi Library, eds James M. Robinson
(Leiden: E. J. Brill, 1988), 482. 이후부터 Val.이라 표기한다.
25) Allogenes, Ⅺ. 65-9. in The Nag Hammadi Library, eds. James M. Robinson (Leiden: E. J. Brill, 1988), 499-500. 이후부터 All.로 표기한다.
26) Irenaeus, A. H. Ⅱ. 14, 1-6, Ⅱ. 17, 9.
27) Jonas, The Gnostic Religion, 332.
28) Elaine Pagels, Versuchung durch Erkenntnis: Die gnostischen Evangelien(Frankfurt: Insel Verlag, 1979), 95.
29) Justin Martyr, Apology,Ⅰ. 26, 56. Albert H. Newman, A Manual of Church History, vol.1
(Valley Forge: Judson Press, 1933), 185에서 재인용.
30) Pelikan, The Christian Tradition, 23-4.
31) C.H. Dodd, The Interpretation of the Fourth Gospel(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3), 104.
32) Trigg, Origen, 41.
33) Pagel, Versuchung durch Erkenntnis, 102-3.
34) Apo. J. Ⅱ. 6, 4-20.
35) Eugnostos The Blessed, Ⅲ. 3, 75-77. & The Sophia of Jesus Christ, Ⅲ. 3, 101. in The Nag Hammadi Library, eds. James M. Robinson(Leiden: E. J. Brill, 1988), 228. 이후 부터 는 Ugno. 그리고 Soph.로 표기한다.
36) On the Origin of the World, Ⅱ. 5. 100-1. in The Nag Hammadi Library, eds. James M. Robinson(Leiden: E. J. Brill, 1988), 173. 이후부터 Origin.으로 표기한다.
37) Pagel, Versuchung durch Erkenntnis, 105.
38) Ibid., 106.
39) May, Creatio Ex Nihilo, 70.
40) David R. Ruppe, “God, spirit, and human being: The reconfiguration of Pneuma’s semantic field in the exchange between Irenaeus of Lyons and the Valentinian Gnosis”(Ph.D. diss, Columbia University, 1988), 77-83.
41) The Gospel of Truth, 17. 4-9, 18. 1-3.; Jonas, The Gnostic Religion, 181-82.에서 재인용. 이후부터 G. T.로 표기한다.
42) Apo. J. Ⅱ. 13, 10.
43) R. T. Wallis, Neoplatonism and Gnosticism(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2), 178-79.
44) Ruppe, “God, spirit, and human being,” 78-83.
45) Pagel, Versuchung durch Erkenntnis, 74.
46) Irenaeus, A. H. Ⅱ. 1. 1.
47) Ruppe, “God, spirit, and human being,” 82-6.
48) Jonas, The Gnostic Religion, 326; Robert M. Grant, Gnosticism and Early Church(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59), 26;
49) Athur C. McGiffert,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vol. 1(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32), 50.
50) Barker, The Great Angel, 165-67; R. M. Wilson, Nag Hammadi and Gnosis(Leiden: E. J. Brill, 1978), 26.
51) Irenaeus, A. H.Ⅰ. 24. 2-3.
52) Ibid., Ⅰ. 26. 1.
53) Pagels, Versuchung durch Erkenntnis, 73-4.
54) Ibid., 79.
55) Barker, The Great Angel, 168.
56) Tertullian, Against Marcion,Ⅰ.2,1-19. in The Ante-Nicene Fathers, vol. 3. eds. Alexander Robert and James Donaldson 2d. rev. ed.(Grand Rapids: Wm. B. Eerdmans, 1986), 272.
이후부터는 Tertullian, A. M.으로 표기한다.
57) Jonas, The Gnostic Religion, 141-43; May, Creatio Ex Nihilo, 54.
58) McGiffert,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61; Davies, The Early Christian Church(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0), 75; 말시온과 영지주의와의 차이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는 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142-43을 보라.
59) Eugno., Ⅲ. 3, 77.; Soph., Ⅲ. 4, 102.
60) Apo. J., Ⅱ. 1, 24.
61) Irenaeus, A. H., Ⅲ. 16, 6.
62) Ibid., Ⅲ. 5, 1.; Ⅲ. 9, 2.; Ⅲ. 11, 1.
63) Tertullian, On the Flesh of Christ, 이형우 역주(경북:분도출판사, 1994), 60-3.
64) 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131.
65) McGiffert,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50-1.
66) Irenaeus, A. H. Ⅰ. 23, 2.
67) May, Creatio Ex Nihilo, 66.
68) Irenaeus, A. H. Ⅰ. 24, 3.
69) May, Creatio Ex Nihilo, 68.70) Ibid., 91-2.
70) Ibid., 91-2.
71) Irenaeus, A.H.Ⅰ.1-2.로고스와 생명으로부터 유출된 10개의 에온들은 Bythius와 Mixis, Ageratos 와 Henosis, Autophyes와 Hedone, Acinetos와 Syncrasis, Monogenes와 Macaria이다. 그리고 사람과 교회로부터 나온 12개의 에온들은 Paracletus와 Pistis, Patricos와 Elpis, Metricos와 Agape, Ainos와 Synesis, Ecclesias- ticus와 Macariotes, Theletos와 Sophia이다.
72) The Tripartite TractateⅠ.4, 60-2. in The Nag Hammadi Library, ed. James M. Robinson
(Leiden: E, J. Brill, 1988), 64-5.; Wallis, Neoplatonism and Gnosticism, 102.
73) Origin.,Ⅱ. 98-9.
74) Irenaeus, A. H. Ⅱ. 17, 1.; May, Creatio Ex Nihilo, 166.
75) Sidney Spfncer, Mysticism in World Religion (Harmon- sworth: Penguin Books, 1976), 149.
76) May, Creatio Ex Nihilo, 51.
77) Grant, Gnosticism: An Anthology, 24.
78) Mircea Eliade,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vol. 5(New York: Macmillan, 1987), 569.
79) Irenaeus, A.H.Ⅰ.23-5, 1; Barker, The Great Angel, 179; Jonas, The Gnostic Religion, 132.
80) 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136.
81) Trigg, Origen, 41.
82) Millard J. Erickson, The Word Became Flesh(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1), 43-4.
83) May, Creatio Ex Nihilo, 93-7.
85) Ibid., 105-9.
86) Ibid., 57-8.
87) Robert M. Grant, Heresy and Criticism: The Search for Authenticity in Early Christian Literature(Louisville: John Knox Press, 1993), 37.
88) Apo. J. Ⅱ. 10-11. 24. ; Spfncer, Mysticsm in World Religion, 151.
89) Soph. Ⅲ. 120-1;
89) Wilson, Nag Hammadi and Gnosis, 23, 27.
90) R. M. Wilson, Nag Hammadi and Gnosis(Leiden: E. J. Brill, 1978), 30.
91) Ruppe, “God, spirit, and human being,” 77-81. 곤잘레즈는 창조란 소피아의 타락에 의해 생 겨난 것이 아니고, 이는 사탄의 타락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166.
92) Ibid., 81-5; May, Creatio Ex Nihilo, 168; C. W. Hedrick and Robert Hodgson, Nag Hammadi Gnosticism, & Early Christianity(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1986), 23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