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기도론

Calvin & Geneva City Council 1549
Calvin & Geneva City Council 1549

PARTⅠ
기독교강요를 통해 본
칼빈의 기도론

시작하는 말

종교개혁자 칼빈은 기도에 대한 연구와 이해에 있어 그 깊이와 넓이와 짜임새 그리고 경건성에 있어 다른 신학자들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탁월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에 관한 칼빈의 가르침에서도 기도의 중요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섬김에 있어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끊임없는 갈등과 대립 가운데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기도와 믿음과 그리고 말씀으로 살게 되어 있다고 칼빈은 가르친다. 이로 보건대 칼빈에게 있어 기도와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기도의 동기가 부여되고 기도의 틀이 형성되며 기도는 또한 첫째가는 믿음의 실천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칼빈이 기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는 그의 대표적 저서인 ‘기독교강요’에서 기도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는 1536년 4월에 발행 된 ‘기독교강요’ 초판에서부터 기도를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강요’ 초판은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 성례, 그리스도인의 자유 등 여섯 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제3장에서 칼빈은 기도에 대해 썼다.

칼빈은 그 이후로 계속해서 기도에 관한 주제를 보충하고 발전시켜 1559년 최종판에는 제3권 20장에서 이 ‘기도’를 다루었는데 최종판 전체 80장 가운데 기도에 관한 이 부분이 가장 분량이 많다. 제4권 17장의 성만찬에 관한 가르침이 분량에 있어 두 번째인데 기도는 이 성만찬 부분보다 더 많다. 이처럼 칼빈이 ‘기독교강요’ 중 기도에 관하여 가장 많은 분량을 할당하여 가르친 사실은 그가 기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칼빈의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 ‘기독교강요’ 최종판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예정론 사이에 다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기도의 중요성을 웅변해 주고 있다. 인간은 피조물이기에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이기에 자유가 있는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 간에 얽혀있는 비밀을 기도를 통해서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 보건대 기도는 칼빈의 신학체계의 중심교리들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는 특별히 기도에 있어서 삼위 일체 하나님의 역할과 하나님의 말씀의 역할, 기도의 필요성과 동기 그리고 만인제사장직 등과 관련하여 기도에 대한 칼빈의 가르침을 연구하고자 한다.

1. 기도의 정의

(1) 기도의 본질

칼빈에 의하면 기도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택을 매일 받는 믿음의 으뜸가는 실천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는 으뜸가는 특권이 기도이며 기도를 ‘믿음의 영속적 훈련’(perpetual exercise of faith)라고 부른다.(기독교강요 III.xx.2) 즉 우리의 심령 속에 참되고 살아있는 믿음이 있으면 기도가 저절로 즉시 터져 나온다.(칼빈의 마 21:22 주해) 기도를 통해서 믿음은 복음이 우리에게 약속해 준 보화들을 캐낸다.(기독교강요 III.xx.1)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살아있는 믿음의 표현이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필요를 말로 알리는 믿음이다.(칼빈의 시 54:6 주해)

칼빈이 말하는 믿음은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부성적 은총과 돌보심)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다. 이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신 약속의 진리에 기초하여 성령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계시되고 확증된다.(기독교강요 Ⅲ.ⅱ.2,7) 그러기에 그가 말하는 믿음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첫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요,
둘째, 그리스도의 약속을 우리 마음에 계시하는 방편이며,
셋째, 그 약속의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인(印) 쳐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부성애(父性愛)와 선하심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의해서 고취된다.(칼빈의 시 18:7 주해) 그러므로 참되고 순수한 기도는 단지 목소리만 높이면 되는 것이 아니고 신앙의 내적 원리로부터 우리의 간구들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칼빈의 시 140:6 주해) 그러기에 우리의 기도는 신앙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기독교강요 III.xx.11)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죄 은혜에 대한 회개와 믿음의 반응이다.(칼빈의 시 143:10 주해)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하고 그의 용서의 사랑에 온전히 붙들린바 되었기 때문에 용서를 확신하고 용서를 비는 기도를 믿음으로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용서의 긍휼에 근거한다.(기독교강요 III.xx.8)

칼빈의 신학사상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았고 또한 그의 사상에 주로 기초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기도가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는, 종교적 예배의 한 특별한 요소로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하신다. 기도가 열납(悅納, 기쁘게 받음)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성자의 이름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리분별과 경외심과 겸손과 열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하되 만일 소리를 내어 하는 경우에는 일상적인 말로 해야 한다.”(신앙고백서 21장 3절)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아뢰고 더불어서 우리의 죄를 자복하며 그의 긍휼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대요리문답 178문답)

이 같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도 칼빈처럼 기도를 하나님의 선하심과 용서의 사랑 곧 긍휼에 근거한 것으로 보며 그것을 감사하는 믿음의 표현이 기도이다. 그런데 이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사역에 의하여 심어지고 인(印) 쳐지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의 표현이요, 으뜸가는 믿음의 실천인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받아 누리게 하는 방편이다. 그래서 기도는 말씀과 성례와 더불어 하나님이 제정하신 은혜의 방편인 것이다.

(2) 기도의 목적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이 기도를 명하신 것은 그분을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를 위해서이다.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거나 태만해지지 않도록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겠다는 열의가 우리 마음속에서 불일 듯 하며,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소원을 온전하게 아뢰고,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은혜를 주실 때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받고, 그의 인자하심을 더욱 열심히 묵상하며, 더욱 큰 기쁨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들이고, 그의 섭리를 확신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한다.(기독교강요 III.xx.3)

요약하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그의 선하신 뜻을 따라서 하게 되어 있는 까닭에 기도의 유일한 목적과 합당한 용법은 하나님의 약속의 열매들을 거두는 것과(칼빈의 시 119:38 주해), 하나님을 찬미하여 그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기독교강요 III.xx.29)

또한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기 때문에(기독교강요 III.xx.2),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믿음이 성장하고 이 땅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데 있다.

2. 기도와 삼위일체 하나님

기도에 있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시는 분(hearer and answerer)이시고, 성자 하나님은 우리 기도의 중보자(mediator)이시며,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활성화시키는 분(activator)이시다.

(1) 성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신다.

사람이 자기의 무력함을 인식하고 또한 복음의 약속을 듣고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때(기독교강요 III.xx.1) 사람의 심령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필요를 아시고 응답하신다. 즉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인간적인 필요에서 나오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드려진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실 수가 없다.

사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실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기독교강요 III.xx.3) 그래서 칼빈은 시편 65편을 주해하면서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이 경우에 따라서만 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의 항존적(恒存的) 요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듣지 않으시면 곧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되고 만다.”(칼빈의 시 65:3 주해)고 말한다.

끈질긴 과부의 비유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기도에 의하여 지치게 되시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끝까지 고집하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응락(應諾) 하신다.(칼빈의 눅 18:1-8 주해) 하나님은 그의 속성이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와 간구에 따라 자신을 크게 제한하여 그 기도와 간구로 말미암아 방해를 받아 진노를 삼가시고 때로는 모든 것을 멸하고자 하실 경우에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우리 자신을 낮추면 그가 마음을 바꾸시는 것처럼 보인다.”(칼빈의 신 9:13,14 주해)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79문에서도 이와 같이 진술되어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마음을 살피실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모두의 요구들을 충족시켜주신다. (중략) 기도는 예배의 특별한 요소로서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하고 여타의 다른 아무에게도 드려져서는 안 된다.” 즉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실 수 있다는 말이다.

(2)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기도의 중보자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아무도 자신의 이름으로는 하나님의 면전(面前)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공포와 수치를 덜어주기 위해 우리에게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대언자(代言者)와 중보자(仲保者)로 보내시어 우리가 그의 인도하심을 받아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경우 우리가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결코 거절하시지 않을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지극한 위엄(威嚴)을 생각할 때 경악으로 몸을 떨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중보자로 나서서 두려움의 영광의 보좌를 은혜의 보좌로 바꾸어주시지 않는 한 우리 자신의 비천함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히 4:16) 나아갈 수 있게 된다.(기독교강요 III.xx.17)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허락된 유일한 길과 통로는 오직 그리스도이시므로(요 14:6) 하나님께 나아가는 다른 길이나 통로가 없다. 더욱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요 지도자로 인(印)을 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며 그의 중보를 통해서 아버지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기독교강요 III.xx.19)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딤전 2:5)라고 불리운다.(기독교강요 III.xx.20)

그래서 칼빈은 성자들의 중보기도를 가르쳐 온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반(反) 성경적인 것으로 논박하고(기독교강요 III.xx.21-26), 결론짓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만이 바른 기도의 어머니이며 죽은 성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은 명백한 신성모독이라고 하였다.(기독교강요 III.xx.27)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도 칼빈의 이 같은 가르침이 잘 반영되어 있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간격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중략) 오직 하나님 편에서 자원하여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서만 하나님을 창조주로 순종할 수 있으며(신앙고백서 Ⅶ장 1항),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우리의 죄악 됨과 그 죄악성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너무 멀어서 중보자 없이는 하나님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중보자 되시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대요리문답 181문답)

(3) 성령님은 우리 기도를 활성화시키신다.

칼빈은 로마서 12:19을 주해하면서 성령 하나님의 순결한 열심으로 기도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 특히 복수하려는 악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즉 기도는 우리의 심령의 절박한 필요와 감사가 동기가 되어 순수하게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고, 우리 심령의 본성적 충동에 의해 드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본성적 충동에 따라 기도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사악한 정욕의 대행자(代行者, agent)로 이용하려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바르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는 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입을 여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기독교강요 III.xx.34)

칼빈은 또한 로마서 8:26 이하를 주해하면서 우리가 성령의 증거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며, 바로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구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침 받는다고 말한다. 요약하면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방식을 규정해 놓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감화하여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대로 기도할 수 있게 우리의 입을 열어주시는 것이다.(칼빈의 롬 8:26 주해)

또한 칼빈이 주장하는 기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죄 용서에 대한 간구이다. 올바른 기도의 준비와 시작은 겸손히 성실하게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간구하는 데 있다.(기독교강요 III.xx.9)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깨어있어 정직과 겸허와 그리고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며 이 같은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기도의 바른 법칙을 지킬 수도 없다.

기도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에 대한 칼빈의 가르침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내세웠던 교회의 권위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죽음의 사건을 통하여 확증 된 바 말씀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권위를 염두에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만유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 지식은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사건을 통해서 가능케 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칼빈은 객관적 표준으로서의 말씀의 권위를 고려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믿음이 충만한 기도(the faith-full prayer)에 의하여 심어지고 보전되며 강화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칼빈의 경우 성령으로 기도한다(고전 14:15)고 하는 것은 기도하는 일을 성령에게 전적으로 맡겨 버리고 우리는 아무렇게나 행하여도 된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 성령의 도움을 간절하게 바라며 깨어있으라는 뜻이다.(기독교강요 III.xx.5) 기도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에 대한 칼빈의 가르침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2문에 역시 잘 요약되어 있다.

질문 : 성령께서는 어떻게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까?
대답 :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므로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셔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기도할 것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을 수 있게 함으로 그리고 기도의 의무를 올바르게 행하는데 필수적인 이해력과 열정과 은혜들을 우리 심령 속에서 활성화시킴으로써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3.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6문에서 기도를 위한 지침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체 말씀을 주셨다고 진술되어 있는 대로 기도가 신앙의 순수한 표현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되어야 한다고 칼빈은 말한다. 즉 기도를 불러일으키는 신앙은 말씀에 의해서 생겨나고 말씀의 약속들을 경청함으로써 더욱 활성화된다.(칼빈의 눅 1:18-25 설교) 이로 보건대 칼빈이 주장하려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시작되고 틀을 갖추게 되며 제한된다는 것이다.

(1)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문이 열린다.

우리의 믿음은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겨나고 그 말씀의 약속들을 경청함으로써 더욱 생명력이 있게 된다. 이 믿음을 통해서 기도의 문이 열리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그의 백성임을 알게 하여 그를 붙잡을 수 있도록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신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이렇게 하여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담대하게 은총을 구하고 하나님을 찾으며 그의 존전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칼빈의 시 27:8 주해) 이처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은혜롭게 접근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말씀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신다.(칼빈의 시 71:72 주해) 즉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심으시고 또한 우리의 기도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기초하게 될 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담대하게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때 두려워 하면 기도가 더렵혀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손상을 입는다.(칼빈의 눅 1:73-78 설교) 하나님은 자기의 약속들 때문에 마치 자기가 우리에게 채무자(債務者)처럼 우리 앞에 계심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칼빈의 시 119:58 주해)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는 겸손과 경외를 불러일으키고 육체의 정욕들을 제어하여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케 하는 바로 그 말씀이 다른 한편으로는 듣고 순종하는 자들로 하여금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기도의 문을 열어 주는 것이다.

(2)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틀이 잡힌다.

칼빈은 주기도의 용도와 관련하여 우리 주님이 우리의 입에 말씀들을 넣어주어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전혀 망설이지 않게 하신다고 가르친다.(기독교강요 III.xx.34) 즉 주기도는 우리에게 보다 더 확실한 기도의 방법뿐 아니라 기도의 형식 자체를 가르쳐 주며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도 좋을 것과 우리에게 유익한 것과 우리가 구할 필요가 있는 것 등을 하나의 도표로 하듯이 제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데 필요한 말들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성경의 약속들을 묵상할 것을 칼빈은 강권하며(칼빈의 시 85:6 주해), 성령 하나님은 기도의 형식들을 우리에게 구술해 주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있다.(시 102:9) 하나님은 우리가 뜨겁게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말씀을 집어넣어 주신다는 사실에 칼빈은 주목하고 있다.(칼빈의 요 12:13 주해) 그래서 그는 간주하기를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고 기도의 형식들을 성도들의 입에 넣어 주신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러한 형식들을 사용하는 것은 무익하지 않다고 하였다.(칼빈의 시 17:8 주해)

(3)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된다.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기초하여 시작되고 그 말씀에 의하여 성령께서 기도의 틀을 만들어 주시는 까닭에 말씀에 의해서 우리의 기도가 제한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선행하고 동기를 제공해야 할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는 기도의 방향과 세부적인 사항에서 바로 그 말씀에 의하여 지배되고 억제되어야 한다고 칼빈은 강조한다.(칼빈의 시 35:23 주해)

그러므로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의 마음의 생각 특별히 순간적인 감정적 충동을 아무렇게나 따르거나 우리 자신의 공상을 따라서 우리의 소원을 지어내서도 안 된다.(칼빈의 시 91:15 주해) 산 신앙의 표현인 기도를 위한 지배적인 기도의 원리는 자기부인(自己否認)과 자기억제 및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기 때문이다.(칼빈의 마 21:21 주해)

그런 점에서 우리가 우리의 욕구들을 절제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우리의 기도를 제한시키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는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될 수 없다.(칼빈의 시 7:7 주해) 그러므로 유일하고 안전한 기도의 법칙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가 명시한 것을 따라 우리의 기도를 구성하고 우리 기도가 우리의 심령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들의 메아리가 되게 하며 그가 약속하신 것 이상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칼빈의 시 7:7 주해)

4. 기도의 필요성과 동기

하나님께서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며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고(마 6:8) 또한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게 행하실 수 있다고 하면(엡 3:20) 무엇 때문에 기도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가 기도를 하든지 안하든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을 것을 주실 텐데 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가 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가 있다. 그러나 기도는 살아있는 믿음의 실천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하셨으므로 분명이 필요한 것이다.그러나 칼빈이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기도의 필요성은 절대적이 아니고 상대적이며 기도의 동기는 개인의 인간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다.

(1) 기도의 필요성

만일 기도의 필요를 절대적인 것으로 볼 것 같으면 하나님은 결국 피조물인 사람의 기도가 없이는 아무것도 행하실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되면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부인되고 범사가 유한하고 죄악 된 인간의 자유의지에 좌우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중대한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할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나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그들 가운데 믿음을 심어주고 죄 용서와 화목의 약속을 주신 데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즉 다시 말해서 기도의 문을 여시고 기도할 힘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도는 그것에 의하여 범사가 결정된다는 그런 의미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러기에 기도의 필요성은 상대적이다. 기도는 그것을 방편으로 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신다는 점에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칼빈도 기도는 사람이 자기의 무력함을 인식함으로 해서 가능케 되었다고 하고(기독교강요 III.xx.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명하신 것은 그분 자신 때문이 아니라 우리 때문이라고 하며 여섯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이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를 명하셨다고 칼빈은 말한다.(기독교강요 III.xx.3) 칼빈의 기도의 필요성 여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활성화하고,
둘째, 우리의 욕망들을 억제하여 순결하게 하며,
셋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깊이 느끼게 하고,
넷째, 하나님의 자비를 더욱 고마워하게 하며,
다섯째, 받은바 하나님의 복들을 더욱 크게 기뻐하고,
여섯째, 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해 더욱 큰 확신을 갖게 한다.

(2) 기도의 동기

기도가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도의 동기는 우리의 인간적 필요에서 나온다.(기독교강요 III.xx.6) 우리 자신의 무력함과 죄악 됨을 느끼며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진심으로 자각(自覺)할 때 그것이 기도의 동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필요를 느낄 때 구하는 것이 바로 기도하는 것이다.”(칼빈의 렘 29:31 주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필요를 우리의 기도의 구실과 동기로 삼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다윗의 경우를 보면 그가 하나님께로 나아감에 있어서 자기의 필요를 전차(戰車, chariot)로 삼아 나아가 기도했다.(칼빈의 시 143:6 주해) 우리의 상황이 편안하고 순탄할 때일지라도 기도해야 할 것이지만 극심한 환란은 우리에게 더욱 더 간절하게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요구요 도전임을 깨달아야 한다.(칼빈의 시 118:5 주해) 그래서 칼빈은 권하기를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마다 거룩한 피난처로 나가듯이 기도하는 데로 곧장 나아가자.”(칼빈의 빌 4:6 주해)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참된 필요는 죄 용서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모든 다른 복의 근원이 사실상 하나님의 긍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은 마땅히 자기의 죄의 치유를 먼저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기독교강요 III.xx.9) 우리가 기도함에 있어서 실제적 동기는 인간의 필요 곧 하나님의 죄용서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 모든 기도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첫 번째 동기가 되어야 한다.(칼빈의 시 115:1 주해)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인간적인 자만과 허영을 던져 버리고 오직 겸손히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는 것이다.(기독교강요 III.xx.9)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되(제184문) 죄에 대한 깊은 인식과 통회하는 마음을 가지고(제185문)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5. 기도의 법칙

칼빈은 성령과 말씀을 따라 기도함에 있어서 특별히 네 가지 기도의 법칙을 말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진심과 열정, 겸손, 믿음이다. 칼빈은 이것을 따라 기도할 것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

구약성경에 보면 예컨대 레위기에 나오는 의식법(레 10:1-3) 등은 하나님의 거룩성과 초월성을 유념하게 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경외심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기도할 때 결코 불경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경고 한다.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 지어다. (중략)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 5:1,2)

예수님도 그가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을 부를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 6:9)로 호칭(呼稱)하게 한 것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려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위엄이 무한하며 그의 본질을 불가해하고 그의 권능이 한량없으며 그의 존재 또한 영원함을 알게 하려는 데 있다고 칼빈은 해석한다.(기독교강요 III.xx.40)

그리고 주기도문의 첫째 기원 ‘이름이 거룩하게 되오며’에 대해서도 칼빈은 이 기원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배은망덕에 의해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악한 의지에 의해서 흐려졌기 때문에(기독교강요 III.xx.41)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큰 수치(羞恥)를 인하여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칼빈은 아주 강조한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대화하며 기도하려는 자들은 합당한 생각과 마음을 가져야 한다. 즉 기도 자는 먼저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염려나 생각들을 떨쳐내 버려야 하는 것이다.(기독교강요 III.xx.4)

(2) 진심과 열정으로 기도하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질책에는 기도할 때에 그들이 보여주는 위선에 대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기도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고(마 6:5),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였다.(막 12:40) 이러한 위선에는 자만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의 기도에는 그들 자신의 필요에 대한 절실함이 전혀 없었고 그래서 그들의 기도는 진실하지 않았다.

성경은 위선적인 기도를 정죄할 뿐만 아니라 기도를 진실하고 열정적으로 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경고하셨고(마 6:7,8), 기도의 응답이 더딜 때 끈기 있게 기도할 것을 권면하셨다.(눅 11:5-8, 18:1-7) 그리고 기도에는 열정적인 열망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여 기도한 세리는 자기의 감정이 고조되어 있음을 표현하여 자기의 가슴을 쳤으며(눅 11:13), 그리스도가 드린 기도들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되어졌는데(히 5:7)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더욱 간절하게 기도하셨다.(눅 22:44) 엘리야도 간절하게 기도했던 것으로 성경은 말한다.(약 5:17)

그래서 칼빈은 진실하고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도의 둘째 법칙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의 무력함을 항상 느끼며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필요한가를 간절하게 생각하고서 그것을 응답받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을 이 기도에 가미시켜야 한다.(기독교강요 III.xx.6) 따라서 열심과 마음에 감동이 없는 기도는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3)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기도하라.

기도는 열정적으로만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열정은 하나님의 뜻에 합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겸손한 기도의 전형적인 실례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이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우리도 이와 같은 태도로 진실하면서도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여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주장하기를 기도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은 누구나 겸손하게 모든 영광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리고 자신의 영광을 전혀 생각지 않으며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려는 모든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한다. 즉 모든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기독교강요 III.xx.8) 그에 의하면 올바른 기도의 준비와 시작은 겸손하고 성실하게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간구하는 데 있다.(기독교강요 III.xx.9)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은 그 뜻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사실상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 결정되며 우리 스스로 기도의 내용을 조작하지 않게 된다. 이로써 겸손하고 순복(順服)하는 기도가 가능하다.

(4) 믿음과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라.

성경이 분명하게 지시하는 바에 의하면 믿음은 응답받는 기도의 필수 조건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점을 직시하여 말씀하기를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중략)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1,22)고 하셨으며, 야고보도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치 말라.”(약 1:6)고 권면하였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도는 어떤 일들에 대하여 확신과 소망을 갖는 기도이다.(약 5:15)

이와 관련하여 칼빈이 제시하는 넷째 법칙은 기도하되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확실한 소망을 품고 용기를 내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지는 것은 모두 믿음을 통해서 얻는다고 하는가 하면(기독교강요 Ⅲ.ⅹⅹ.1), 사람들은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것이요, 두려움이 없이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고 칼빈은 말한다.(기독교강요 Ⅲ.ⅹⅹ.14) 칼빈이 제시한바 네 가지 법칙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5문에 다음과 같이 진술되어 있다.

질문 :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대답 :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며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과 필요한 것들과 죄악들을 깊이 깨닫 고 마음으로 회개하며 감사하고 열심을 품되 이해, 믿음, 신 실, 열정, 사랑 그리고 인내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뜻에 겸손히 순복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6. 기도의 내용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여 우리가 구하면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므로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 것인가 하는 기도의 내용은 사실상 기도의 법칙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며 칼빈은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의 내용을 하나님께서 제시해 놓으신 것으로 말한다.(기독교강요 III.xx.34)

(1) 기도의 내용을 제한하는 요소들

기도가 응답될 것으로 믿는 믿음은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불가분의 관계다. 이 믿음에는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하심을 믿는 믿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약속에 대한 확신이 포함되어 있다. 즉 하나님의 계시된 의지에 나타난 약속을 믿고 확신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약속한 것들이 확실히 응답될 것임을 믿는 믿음에 의하여 우리의 기도의 내용은 제한된다.(기독교강요 III.xx.11,14)

이렇게 드리는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드리는 기도이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의 뜻에 일치하여 행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따라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확신할 수 있게 되며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된 뜻(the revealed will of God)에 의하여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 제한되는 것이다.

또한 요한복음 14:13의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에서 ‘내 이름으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는 구절에 의해 제한되어 있듯이 기도 응답의 약속은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와 일치하는 기도에 대해서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기도의 내용은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또한 제한되는 것이다.

(2) 주기도에 나타난 기도의 내용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이끌려 기도할 수 없다. 우리가 간구하여도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야고보서 4:3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계시된 뜻 등에 의하여 제한된다. 그래서 주님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 하고 또 구해도 좋을 것들을 제시해 주셨다.

첫째,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 곧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것을 간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도다.”(시 48:10)하며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과 찬송을 그에게 돌려드려야 하는 것이다.(기독교강요 III.xx.41)

둘째, 우리의 기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임하기 를 간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세속의 생활을 경멸하며 천국생활을 사모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의 권능으로 육체의 모든 정욕들을 바로잡고 우리의 모든 생각을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도록 인도하시기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도록 만드시기를 하나님께 기원하라는 명령을 받는다.(기독교강요 III.xx.42)

셋째,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해야 한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되어 있는 그의 뜻에 순복할 때 하나님이 세상에서 왕 노릇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기원을 통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새로운 마음을 창조하시는 것이다.(기독교강요 III.xx.43)

넷째, 우리의 기도는 일용한 양식을 구해야 한다.

이 기원을 통해서 우리 몸을 위한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반적인 모든 것을 구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그의 섭리를 신뢰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시고 키우시며 보존하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기독교강요 III.xx.44)

다섯째,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죄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代贖物)로 주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또는 배상)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긍휼로 베풀어 주신 결과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용서함 받은 것을 알고 우리가 하나님의 그 크신 긍휼에 근거하여 죄 용서를 간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말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할 권세가 있다는 뜻에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죄 용서의 권세는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의 허물을 사해준다는 말은 우리 마음속에서 분노, 증오, 복수심 등을 다 제거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또 여기서 유의할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우리의 죄 사함 받는 것을 위한 조건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부분적으로 주님께서 위로하기 위함이라는 점이다.(기독교강요 III.xx.45)

여섯째, 우리의 기도는 시험에 들지 않기를 간구해야 한다.

우리가 기원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계속되는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도록 주님의 권능으로 굳게 설 수 있게 해 주옵소서 하는 것이다.(기독교강요 III.xx.46)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기도는 교회의 공적인 건덕과 성도들 간의 교제의 증진을 도모해야 하고 우리의 확신과 기도를 위한 영원한 기초는 하나님 나라와 권세와 영광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멘’은 우리의 소원을 확고하게 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구한 것을 얻고 싶어 하는 우리의 간절한 바람을 나타낸다.(기독교강요 III.xx.47)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평화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선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나 무엇이든지 불법적인 것을 위해 기도해서는 안 된다고 진술되어 있다.(대요리문답 185문)

7. 기도의 실제

(1) 공적(公的) 기도의 필요성과 교회당의 중요성

개인 기도처럼 교회의 공적(公的)인 기도 역시 끊임없이 드려져야 하되 공동의 합의에 의하여 행해져야 하며 정해진 시간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지 않고 내용도 없는 말로만 반복하는 기도는 위험하다.(마 6:7) 공적 기도의 참된 목표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거나 그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교회의 공적 기도가 멸시되지 않도록 주께서는 일찍이 성전을 ‘기도하는 집’(사 61:7)이라고 칭하셨다. 이로 보건대 기도의 의무가 예배의 주요한 부분이며 성도들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기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의 성전을 일종의 깃발로 그들 앞에 세워 놓으셨음을 알 수 있다. 교회의 건물인 예배당은 성도들 가운데 신앙의 통일성을 촉진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기독교강요 III.xx.29)
그러나 하나님이 예배당에 특별하게 임재(臨齋) 해 계신다고 믿는다거나 예배당에서 드려진 기도는 보다 더 효과적이고 특별한 거룩이 거기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불건전한 신앙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참된 성전(聖殿)이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그의 거룩한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는 마음속으로 진실하게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요 4:23, 기독교강요 III.xx.30)

(2) 기도 시 찬송과 일상 언어 사용문제

우리의 마음이 깨어있도록 하고 모두 함께 한 영과 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성도들 상호간에 서로 덕을 세우기 위하여 찬송과 일상 언어가 사용되는 것이 좋다.(기독교강요 III.xx.31) 사도 바울은 “내가 성령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15),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은혜로(또는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골 3:16)고 함으로써 그는 목소리와 심령으로 찬송할 것을 명하고 있다. 이 찬송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기도할 때 참된 열정을 품게 해 준다. 그러나 단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하는 찬송은 교회의 위엄에 어울리지 않고 하나님께 가장 혐오스런 것이 되어 버린다.(기독교강요 III.xx.32)

(3) 기도 시간과 인내심

각 사람은 언제 기도할지 기도시간을 정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식사 때 또는 잠자리에 들기 전 등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 또는 다른 사람들이 역경을 당할 때나 형통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해야 한다.(기독교강요 III.xx.50) 이처럼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할 뿐 아니라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도한 하나님의 섭리에 우리 자신이 기꺼이 다스림을 받을 것 같으면 우리는 기도할 때 쉽게 인내할 수 있게 되고 낙망하지 않으며 주님을 기다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어떤 간구도 다 듣고 계신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긍휼을 베풀어 어떤 것을 거절하나 악한 자들에게는 진노하시어 어떤 것을 오히려 때때로 허락하시는 수가 있을 뿐이다.(기독교강요 III.xx. 51)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결코 자기의 사랑하는 성도들을 버리지 않으시며 자기 백성의 기대와 인내를 실망시키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심에 있어서 우리가 요구하는바 그대로 반드시 응답하는 것이 아니며 놀라운 방식으로 그는 우리의 기도가 헛되지 아니했음을 보여주신다.(요일 5:15) 우리가 항상 인내하여 계속적으로 기도하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의 기도는 헛되고 말 것이나 진지하게 하는 경우 응답이 없는 기도는 사실상 없다.(기독교강요 III.xx.52)

8. 기도와 성도의 만인 제사장직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을 산돌같이 신령한 성전으로 세우셨을 뿐만 아니라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벧전 2:5)과 왕 같은 제사장들로 삼으셨다.(벧전 2:9) 하나님이 우리를 성별하여 자기의 성전으로 삼으신 것은 그가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예배를 받으시기 위함이요, 우리를 제사장들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을 더욱 더 열심히 섬기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부인함으로 제물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고 나서 기도와 감사와 구제 등을 드려야 한다.(칼빈의 벧전 2:5 주해)

그리고 하나님이 사단과 죄와 사망의 종들에게 왕의 자유를 누리게 하시고 세속적이고 부패한 자들에게 제사장의 영예를 주시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은(칼빈의 벧전 2:9 주해) 우리가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중보와 제사장직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사랑으로 고취되어 교회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도록 하기 위함이다.(기독교강요 III.xx.19)

교회를 위한 우리의 중보기도는 그리스도께서 항상 하시는 중보기도의 되울림(echo)이다. 그것은 또한 교회의 몸 안에서 우리가 서로 간에 하나 되어 있다는 것과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하나라는 것을 나타내 준다.

시편 20편에 다윗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백성들에 대해 묘사되어 있는데 이를 통하여 칼빈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중보와 교회의 기도 간의 관계에 대한 유추를 발견하고 말하기를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영원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중보하기를 결코 쉬지 않으시기 때문에 교회의 온 몸이 그와 더불어 기도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칼빈의 시 20:2 주해)고 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우리 모든 성도들의 기도는 자기 중심적이어서는 안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성도들과 사랑으로 깊이 결속되어 있어 그들의 필요를 우리 자신의 것처럼 절실하게 느끼며 드려져야 하는 것이다.(칼빈의 딤전 2:1,2 주해)

또 우리의 기도는 항상 온 인류를 위하여 하되 특별히 이 세대뿐만 아니라 오는 세대들까지 포함하여 온 교회를 위하는 중보기도여야 한다.(칼빈의 시 90:16 주해) 사람들을 위하여, 온 교회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실제적인 방법이다.(칼빈의 욥 2:11-13 설교)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83문에도 “우리는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전체 교회를 위하여 위정자들과 교회의 직분 자들을 위하여 우리 자신과 우리의 형제들뿐만 아니라 원수들을 위해서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이나 장차 태어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지만 죽은 자들이나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것으로 알려진 자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 것입니다.”라고 진술되어 있다.

결 론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의 살아 있는 믿음의 표현으로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통(交通, intimate intercourse)이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성자께서는 그의 이름으로 중보하시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기도를 활성화시켜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삼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깊어지게 된다.

이로써 칼빈이 말한 대로 하나님을 아는 이 지식은 우리에게 참된 지혜와 경건 그리고 건강한 믿음을 준다.(기독교강요Ⅰ.ⅰ.1,2)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의 표현이요 실천이되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과 하지(C. Hodge) 및 박형룡이 이해한대로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이므로 이 기도는 교회 안에서 말씀 선포와 성령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누리게 한다.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적 죽음과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할 때 그의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가 성령으로 우리를 성결케 하며 사랑과 능력, 성령 충만, 성령의 열매와 은사, 내세 소망을 가능케 해준다. 그래서 바운즈(E. M. Bounds)도 말하기를 “성도를 만드는 것은 기도의 힘이다.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참된 성도가 되어간다. 기도를 위하여 많은 시간 특별히 아침 시간을 바치면 성스러운 생활에서 그 효과가 현저하게 나타나게 된다.”(Power Through Prayer, p.57)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문이 열리고 틀이 형성되며 그 내용이 규제되기 때문에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철저하게 말씀의 묵상이 요구되며 말씀 묵상 후에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알기 때문에 확신과 소망을 갖게 한다.

또한 마음속에 깊은 감동과 큰 감격을 심어주어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찬미하게 한다. 그래서 기도는 말씀 묵상과 찬미와 더불어 행하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찬미는 말씀에 기초해야 하고 인간을 즐겁게 하려고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충동적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의 특권이요 의무이다. 하나님 앞에서 죄 용서의 은혜를 감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代贖)적 사랑에 감격하며 그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기도를 본받아 온 인류와 우주적 교회를 위하여 드리는 우리의 중보기도는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의 지름길이요, 사랑과 믿음과 소망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뿐 아니라 형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까닭에 기도는 우리의 영성을 위한 최상의 방편인 것이다.(*) 편집 / 정은표 목사(개혁신앙 발행인) 출처 / 유제훈의 신학석사 논문 ‘칼빈의 기도론 연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