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이 쓴 기독교강요 요약 제1권(9)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

칼빈이 쓴 기독교강요 요약 제1권(9)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
31491하나님의 섭리(攝理, providence)
영원히 현재(顯在)하는 하나님의 손(기독교강요 1.16.1-1.18.4)

제 1 권
제16장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계를 권능으로 양육하시고 보존하시며 섭 리로써 그 모든 부분을 다스리신다.

제17장 우리에게 베푼 가장 큰 은혜에 대한 섭리의 교리를 어떻게 적 용할 것인가?

제18장 하나님은 불경건한 자의 일을 이용하시며 그들의 마음을 굴복 시켜 자신의 심판을 수행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더 러움에서 분리되어 순결을 유지하신다.

1.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manus invisibilis Dei)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 ‘창조주’(creator)시라는 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께서 만물의 ‘통치자’(moderator)시며 ‘보존자’(conservator)이시다. 지으신 분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양육하신다. 지으신 분의 뜻이 없으면 참새 한 마리도 그저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

천지가 여호와의 ‘말씀’과 ‘입의 기운’으로 이루어졌다.(시 33:6) 우주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의 은밀한 영감으로’(arcana Dei inspiratione) 생기를 얻는다. 인생도 그러하니 하나님은 하늘에서 모든 사람을 굽어보신다.(시 33:13) 우리가 살고 움직이는 것은 오직 그 분을 ‘힘입어’ 그러하다.(행 17:28)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

성령의 역사는 만물의 창조와 운행에 미치니,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시 104:27-31)

주께서 자신의 영의 역사로 새 기운을 불어 넣어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부성적인 호의’(paternus favor)를 거두지 아니하시고 돌보신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specialis Dei cura)이 없다면 하늘의 별이 흩어질 것이며 땅의 수목이 뽑혀질 것이다. 그러하다면 지상의 뭇 인생들이 다 스러질 것이다.(기강 제1권 16장 1절)

하나님의 섭리는 그 분의 눈에 못지않게 그 분의 두 손에도 속한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지켜보시기만 하지 아니하시며 친히 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영광 받기를 원하시되 자신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다.(창 22:8) 그 분께서는 자신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 1:3)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신다.’(시 115:3) 삼위 하나님께서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시 113:6) 그 때나 이제나 영원토록 함께 일하신다.(요 5:17) 하나님께서 ‘현재(顯在)하는 자신의 손으로’(praesenti Dei manu) 천지와 그 중의 생물들과 사람들에게 힘과 양분을 주셔서 보존하시고 자라게 하신다.(기강 1.16.2-5)

하나님의 섭리는 특별히 인생에 미치니 사람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그 분 자신이시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 하리이다.”(렘 10:23)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잠 20:24)

하나님의 섭리는 또 통상 자연의 운행에 미친다. 하나님께서는 태양을 머물게도 하시며(수 10:13), 구름과 바람과 화염으로 자신의 사역자 삼으시며(시 104:3,4),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시 136:25) 그 분께서는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시 147:9), 인생의 머리카락이라도 세신 바 되셨다.(마 10:30) 하나님의 확실한 명령이 없으면 한 방울의 비도 떨어질 수 없다.(기강 1.16.6-7)

하나님은 인간의 계획과 의지까지도 자신의 섭리로 다스린다. 우연히 일어나듯이 보여도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이 없지 아니하다. 운명에 묶여 필연적으로 일어나듯이 보여도 하나님의 지금 일하심을 통하지 않고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의 뜻(voluntas)은 만물의 최고의 원인이며 제일의 원인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연과 운명을 모두 넘어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뻐하심(euvdokia)에 따라서 모든 일을 뜻하시고, 뜻하신 즉 이루시고, 이루신 즉 선하시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밀한 손’(secreta manus Dei)의 작용으로 말미암는다.(기강 1.16.8-9)

2. 변개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한 뜻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계획하시고 행하심에 있어서 ‘최고의 이유’(optima ratio)를 가지고 계신다. 만사에 있어서 ‘가장 의로운 원인’(iustissima causa)은 하나님의 뜻이다. 맹인이 나면서부터 소경이 된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었다.(요 9:3)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을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비함’(modestia)이다. “비록 혹은 그 분의 부성적(父性的) 호의와 자비 혹은 그 분의 엄하심과 심판이 하나님의 섭리의 전체 과정에 종종 밝게 빛나지만 모든 일들의 원인들은 숨겨져 있다.”(기강 1.17.1)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의 지혜와는 비교할 수 없으니 ‘나타난 일’은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속하나 ‘감추어진 일’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다.(신 29:29) 하나님의 놀라운 뜻은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다. 이 섭리는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지만 그곳에서는 오직 선한 것만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의의 유일한 법칙이며 가장 의로운 원인으로 여기고 겸손히 고백하며 그 분을 찬미해야 할 것이다.’(기강 1.17.2)

하나님의 섭리가 이러하므로 우리는 모든 책임을 면제 받게 되는가? 우리는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고 그저 눕고, 졸고, 쉴 것인가?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기도로 자신의 일을 이루심에 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이차적인 손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일을 이루심에 있다. 모든 것을 정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와 열심을 요구하신다.’(기강 1.17.3-5)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미 정하시고 미리 아신다. 하나님의 부성적(父性的) 사랑이 우주와 사람과 교회 위에 충만하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끝까지 다 정하시고 나그네와 같은 우리를 이끄신다. 다만 우리 심중의 계획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잠언 기자의 고백은 마땅하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주께서 모든 일을 행하신다.(시 39:9) 주시는 분도 취하시는 분도 여호와시다.(욥 1:21) 자신의 백성에게 인애와 자비를 베푸심으로써 견인(牽引)하시는 은혜는 오직 하나님 ‘그 분의 손’의 역사로 말미암는다.(기강 1.17.6-8)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이루시되 사람들을 자주 사용하신다. 하나님이 ‘주 저자’(主著者, praecipuus autor)이시며 사람들은 ‘그 분의 일꾼들’(eius ministres)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제(第) 일(一) 원인이다. 그 분께서는 사람들을 ‘이차적 원인’(causa inferior)으로 사용하신다. 죄로 인하여 비참한 상태에 빠진 인류가 무엇으로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겠는가? 열심히 순종하되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 행위자는 얼마나 더 비참함을 느끼게 될 것인가? ‘여호와는 내편이시라.’(시 118:6)

주께서 만사의 처음이요 끝이라는 고백과 그 분이 자신을 위하신다는 고백이 없이 행하는 자는 얼마나 곤고할 것인가? 경건한 사람의 위로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이 아니면 어떤 일도 이루시지 아니하시되 그 뜻은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심에 있음을 믿는 고백에 있다. 우리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찬미함은 그 분의 뜻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충실하심을 믿기 때문이다.(기강 1.17.10-11)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불변하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게 하셨으나 실상 그들을 구원하기 원하셨으니 그 분의 뜻은 처음부터 여일(如一)하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후회하심에 대한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창 6:6; 삼상 15:11; 렘 18:8; 욘 3:4, 10; 사 38:1, 5; 왕하 20:1,5) 그러나 사울을 세우심에 대한 후회를 언급한 동일한 곳에서 하나님은 자신께서 사람이 아니시므로 자신의 뜻을 변개치 않으심을 분명히 하셨다.(삼상 15:29) 하나님은 용서하실 자를 용서하시고 징계하실 자들을 벌하심으로써 자신께서 ‘영원히 정하신 바’(aeterna ordinatio)를 성취하신다. 하나님은 다양한 상황들을 조건으로 삼으시되 일의 끝을 이미 정하신 바대로 이루신다. 하나님이 간혹 자신이 행하신 일에 대해서 후회하신다고 하시는 말씀을 사용하신 것은 그렇게 표현하심으로써 우리 인생의 능력에 맞추어 주셔서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다.(기강 1.17.12-14)

만사(萬事)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고 그 뜻은 항상 동일하다. 우리에게는 그 뜻이 다양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신의 뜻을 변개치 않으신다. 하나님의 은밀한 뜻이 아니라면 사람도 천사도 아무 일을 행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패역한 무리와 이방인들의 손을 통하여서 자신의 유일하신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셔서 죽음에 이르게 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자신의 아들을 내주셨다.(행 2:23) 하나님은 또 선지자들에게 ‘미리 알게 하신 것’을 행악 자들의 손을 통하셔서 이루게 하셨다.(행 3:18)

하나님은 사탄이라도 사용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voluntas)과 그 분의 ‘가르침’(praeceptum)을 구별해서 보아야 한다. 간혹 그 분께서는 우리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자신의 뜻을 마치 포기하시기라도 하시는 듯이 말씀하시나 실상 그 분의 뜻은 언제나 동일하시다.(기강 1.18.1-3) 그러므로 우리가 구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기경하셔서 우리가 그 분의 말씀을 배울 수 있도록 감화하심이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우리의 지혜는 우리의 마음이 겸손히 하나님이 가르치실 만한 상태(docilitas, teachableness)가 되어서 성경에서 가르쳐진 것은 무엇이든지 비난하지 않고 수납하는 것을 함의(含意)하기 때문이다.”(기강 1.18.4)(*) 글쓴 이 / 문병호 교수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