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이 쓴 기독교강요 요약 제2권(12) 구속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칼빈이 쓴 기독교강요 요약 제2권(12)
구속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Lucas Cranach the elder and workshop allegory of the law and the gospel
Lucas Cranach the elder and workshop allegory of the law and the gospel

기독교강요 제2권

율법 아래서 조상들에게 나타나셨고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구속 주 하나님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제9장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서 유대인들에게도 알려지셨으나 오직 복음 안에서 분명하게 알려지셨다.

제10장 구약과 신약의 유사점
제11장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

3. 복음, 신구약

언약 가운데 약속하시고 이루심(기독교강요 2.9.1-2.11,14)

(1) 신약과 구약의 유사점(similitudo)
신약과 구약은 ‘그 자체’(reipsa) 혹은 ‘실체’(substantia)에 있어서는 동일하나 ‘경륜’(administratio, oecomonia, dispensatio)에 있어서는 다양하다. 실체에 있어서 동일함은 신구약 공히 ‘중보자의 은총’(mediatoris gratia)에 의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됨을 뜻한다. 다만 구약의 조상들은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믿되 육체로 오신 그 분을 직접 마주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도 중보자가 없는 언약의 은총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구약의 유사점은 다음과 같다.

– 어느 시대에 속하였건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생의 소망 가운데 그분의 자녀로서의 삶을 추구했다.

– 그들을 하나님께 묶어 놓은 언약은 자신들의 공로가 아니라 그 분의 자비(은혜)에 자리 잡고 있었다.

–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중보자’(mediator)로 알고 있었고 ‘그 분을 통 해서’(per quem) 하나님 약속에 참여를 믿었다.(제2권 10.1-2)

옛 언약(testamentum vetum, 구약)도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총에 기초를 두었으며 그리스도의 ‘중재’(intercessio)에 의해 확립되었다. 복음은 아들 안에서 다 이루신 아버지의 사랑을 증언한다.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이 구약의 믿음의 조상들에게도 미리 역사하였다. 아브라함은 이미 그리스도의 때를 볼 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eivden) 기뻐하였다.(요 8:56) 마리아와 사가랴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두고 그 분께서 아브라함과 족장들에게 하신 약속에 따라서 오셨다고 찬미하였다.(눅 1:54,55, 72,73)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 구약의 ‘목적’(finis)도 ‘항상 그리스도와 영생에’ 있었다.(제2권 10.4)

– 신약과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이 누린 언약(foedus, pactum, testamentum)의 은혜는 실체에 있어 이 같이 동일했다.

이는 그들이 ‘성례들의 의미’(sacramentorum significatio)를 공유했다는 측면에서도 파악된다. 구약 백성들에게도 신약의 세례와 성찬에 해당하는 ‘상징들’(symbola)이 부여되었다. 유대인들은 바다를 건넘으로써, 뜨거운 태양을 가리는 구름 속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들도 또한 ‘다 같은 신령한 음식’과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먹고 마셨다.(고전 10:1-4) 이로써 유대인들은 광야 생활 가운데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았다.(제2권 10.5) 주님이 만나를 주심은 단지 그들의 배를 불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신령한 은혜를 끼치기 위함이었다. 주님의 살을 먹지 아니하면 어떤 육적인 만나로도 영생에 이를 수 없다.(요 6:54) 광야의 백성들이 만나를 먹었으나 죽은 것은(요 6:49) 그들이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먹었기 때문이다.(제2권 10.6)

– 구약의 믿음의 조상들도 모두 ‘말씀의 조명’(illuminatio verbi)으로 하나님 과 굳게 결합되어서 영생의 복을 누렸다.

그들에게도 ‘영적인 언약’(spirituale foedus)이 역사하였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 사 40:8)

베드로는 성도들이 거듭난 것은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며 그것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고 전하였다.(벧전 1:23) 은혜의 언약의 말씀은 항상 동일하여 마르지도 시들지도 않는다.(제2권10.7)

하나님은 ‘지상의 생명’(vita terrena)이 아니라 ‘더 좋은 생명’(melior vita)인 ‘영적인 생명’(vita spiritualis)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과 맺으신 언약들 가운데서 반복하여 약속하셨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 26:12)

하나님의 백성이 됨이 곧 영생을 의미하였다.(출 6:7)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마다 그 분께서 구원하시리니(합 1:12; 사 33:22; 신 33:29),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 33:12) 여호와께서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부르심으로써(출 3:6)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심을(마 22:32) 친히 선포하셨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눅 20:38)

– 구약의 백성들도 지상의 삶을 마지막으로 여기지 않고 그들의 ‘본향’인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다.(히 11:9,10,13-16)
하나님은 ‘경건한 자들의 죽음’을 ‘귀중한 것’으로 보시니(시 116:15), 그들이 ‘다 믿음을 따라’ 죽었다.(히 11:13) 그들은 성도들의 죽음을 생명에 이르는 문으로 여겼다.(제2권 10.13,14) 그들은 마음을 성소로 들어 올려 ‘현세의 그림자’(in praesentis vitae umbra)에 숨겨져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았다.(제2권 10.17) 구약 백성들도 그리스도를 ‘언약의 보증’(pignus foederis)으로 여겼으며 미래의 복이 전적으로 그 분께 있음을 믿었다. 그들은 역사 가운데 부여하신 언약이 단지 지상의 복에 머물지 않고 ‘영원한 영적 생명’에 대한 약속임을 확신했다. 다만 그들은 아직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친히 목도하고 만지지는 못했다.(제2권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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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약과 구약의 차이점(differentia)

– 신약과 구약의 차이점은 일치점에 근거해서 논의되어야 한다.

신약과 구약의 약속의 실체는 동일하다. 다만 구약은 언약의 약속을 땅의 은총들로써 더욱 빈번히 드러낸다. 하나님은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복을 주시면서 구약의 ‘낮은 훈련 방식’(inferior exercitationis modus)을 버리셨다.(제2권 11.1) 하나님은 고대 백성들에게 반복적으로 지상의 약속을 베푸시면서 그들을 ‘후견인’(tutor)과 ‘교사’(paedagogus) 아래에서 단련시키셨다. 그들은 아직 ‘초등학문’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갈 4:1-3)

– 구약의 언약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성되었으며 그 분께서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히 7:22)

‘옛 언약이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게 구별되어 수립된 이후에야 비로소 영원한 언약이 되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신 자신의 잔을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명명하셨다.(눅 22:20) 구약은 ‘현재하는 실재’(veritas praesens)가 아니라 그것의 ‘모양’(figura), ‘형상’(imago), ‘모형’(typus), ‘그림자’(umbra)를 계시하였다. 그러나 신약은 이러한 예표(adumbratio)에 대해서 ‘몸 자체’(corpus ipsum)를 계시하였다.(제2권 11.4)

– 구약 때는 율법이 그 자체로 ‘초등교사’의 역할을 감당하였다.(갈 3:24)
그런데 이제는 율법의 약속이 그리스도의 복음 가운데 완성 되었으므로 세례 요한 이후로는 오직 복음이 선포되었다.(눅 16:16; 마 11:13)

이제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율법이 증거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완성으로서 그리스도가 증거 된다. 그 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골 2:3) 새로운 시대에 역사하는 복음의 의(義)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서 그 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데 있다.(엡 4:13) 비록 구약시대의 아브라함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그들은 ‘어린이들’로 인정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아직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다.(눅 10:24; 마 13:16) 새 언약은 그 자체로 영적인 교훈을 가르치고 영생을 전파하나(고후 3:6-11) 옛 언약은 아직 지상의 것과 문자적인 것에 더욱 붙들려 있었다.(제2권11.5-8)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영을 내려 주심으로써(롬 8:15; 갈 4:6) 복음의 굴레를 벗고 자유의 복음으로 살게 하셨다.(갈 4:22-31) 새로운 시대의 성도들은 자유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기꺼이(libenter) 순종하는 자리에 선다. 그들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갈 5:6)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운다.(마 11:29) 그들은 이제 죄의 멍에를 벗고 의에 매여 사는 의의 종들이 되었다.(롬 8:12-23) 그들은 새로운 시대에 합당한 ‘약속의 자녀’가(롬 9:8) 되었다.(제2권 11.9,10)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담이 허물어졌다.(엡 2:14) 평안의 복음이 택함 받은 모든 백성들에게 임하였다.(엡 2:16,17) 열방이 그 분의 소유가 되었으며(시 2:8) 그 분께서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땅에서부터 땅까지를 간단(間斷)없이 다스리신다.(시 72:8; 슥 9:10)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 3:11 하반)
만세 전의 비밀이 여기에 있으니(골 1:26; 엡 3:9), 그리스도께서 때가 찬 경륜을(엡 1:9) 다 이루시고 자신의 의를 다 전가(轉嫁) 해 주심으로써 ‘여호와의 분깃’인 그 분의 백성들이(신 32:9) 오직 그 분의 은혜로 살게 하셨다.(제2권 9.11,12)

– 하나님은 자신의 경륜대로 각 시대에 역사하신다.

청년에 대한 치료법과 노년에 대한 치료법이 다르듯이 하나님의 구원 경륜도 구약과 신약에 따라서 다양하다. 하나님의 맞추심(accommodatio)의 은혜가 시대에 따라서 다양하게 역사한다. 그러나 그 실체는 언제나 동일하다.(제2권 11.13,14)

(3) 복음과 율법(신약과 구약)

칼빈은 요한복음 주석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복음(euvaggelion)을 정의하고 있다.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은혜의 엄숙한 선포이다.(solenne de patefacta in Christo gratia praeconium) 이런 이유로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Dei potentia in salutem omni credenti)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그 가운데 하나님이 자신의 의를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사절(使節)의 직분(legatio)으로 불린다. 왜냐하면 그 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죄인을 자신과 화목케 하시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부성적인 사랑의 보증이 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복음의 주제가 됨이 마땅하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나타나셨고, 죽으셨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심을 받으셨고, 마침내 하늘로 취해지셨다고 전하는 기사들이 복음이라는 이름을 특별히 받게 되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며 ‘그리스도에게 계시된 은총을 선포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시작’이다.(막 1:1) 그 분이 오셔서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그 분 안에서 ‘예’가 된다.(고후 1:20) 그러므로 복음은 예수의, 예수에 관한, 예수로부터의 복된 소식이다.(제2권 9.2)
옛적에 선지자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폈으며(벧전 1:10) 그 분을 보고 기뻐하였다.(요 8:56)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그 분을 아는 빛으로 말미암는다.(고후 4:6) 따라서 아들이 나타내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아버지를 알 자가 없다.(요 1:18)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으로서 대속의 주가 되시니 복음을 들음으로써 영생의 지식에 이르게 된다.(제2권 9.1)

이와 같이 율법과 복음을 구별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양자를 분리시키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지만(롬 1:16),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다.(롬 3:21) 복음은 율법을 폐지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약속을 확인하고 실현했으며 ‘그림자’(umbra)에 ‘몸’(corpus)을 부여했다.(제2권 9.4)

이 복음은 이전에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서 믿음의 백성들이 들었던 것이다.(골 1:4,5) 율법에는 복음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었다.(제2권 10.3) 율법에 계시된 언약의 약속이 복음에 의해서 계시되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요 복음의 더 좋은 소망으로 인도하는 길이었다.(히 7:19; 시 110:4; 히 7:11, 19; 9:9; 10:1) 복음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복된 소식으로서 율법을 통한 언약의 약속을 실현하며, 확인하며, 인준한다.(제2권11.4)(*) 글쓴 이 / 문병호 교수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