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이 쓴 기독교강요 요약 제2권(13) 그리스도의 중보의 필요성

칼빈이 쓴 기독교강요 요약 제2권(13)
그리스도의 중보의 필요성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기독교강요 제2권

율법 아래서 조상들에게 나타나셨고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구속 주 하나님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제12장 그리스도께서 중보자의 직분을 행하기 위해 사람이 되셔야만 했음(성육신, 기독교강요 2.6.1-4;2.12.1-2.13.4)
1. 중보자 그리스도의 중보의 의의와 필연성

기독교강요에서 기독론에 전적으로 할애된 부분은 중보자 그리스도의 중보의 필연성(제2권 6장), 그 분의 인격(제2권 12장-14장), 그분의 사역(제2권 15,16장) 그리고 그 분의 공로의 의의와 가치를(제2권 17장) 다룬 장들이다. 칼빈은 이 장들 사이에 율법의 본질과 용법, 율법과 복음의 관계 그리고 구약과 신약의 일치와 차이를 다룬 장들을 두었다.(제2권 7장-11장) 이로써 그는 그리스도께서 율법과 복음 그리고 구약과 신약의 실체(substantia)가 되심을 전제하고 자신의 신학체계를 세워가고 있다.

기독교강요는 전체 기독교 교리가 기독론과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각인시킨다. 기독론은 신론에 기초하고 있으며 신론은 기독론에서 확증된다. 신론의 핵심 주제인 삼위일체론을 다루면서 칼빈은 중보자 그리스도의 신격(deitas)에 문의(問議)하여 내재적 삼위일체론과 경륜적 삼위일체론의 역동적인 관계를 고찰한다. 그리하여 위격적 연합에 따른 양성적 중보의 기초를 이미 신론에서 구축한다.

한편 기독론의 의의는 인간론에 의해서 예기되며 기독론의 가치는 구원론에 의해서 실현된다. 전적 타락의 교리는 전적 은혜로 인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의 필연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다 이루신 의(義)를 성도에게 전가하심이 구원론의 요체(要諦)로서 제시된다. 이러한 구원론적 특성에 기초하여 교회론이 개진되는바 그리스도의 의(義)를 전가 받아서 그 분과 교제하고 교통하며 자라가는 성도들의 연합체(societas)로서의 교회의 본질과 속성과 직분이 강조된다.

이렇듯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의 총화(總和, summa)로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제시하고 있다. 칼빈은 중보자 그리스도께서 구속자로 오셔야 할 필연성을 ‘중보자가 없이는’(absque mediatore)라는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수사학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1) 타락으로 말미암아 ‘중보자가 없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써 구원에 이를 길이 없게 되었다.

이제는 아들을 믿는 믿음 외에는 아버지의 ‘부성적인 호의’(paternus favor)를 맛볼 길이 없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더 이상 ‘자신의 작품으로’(pro suo opere) 여길 수 없게 되셨으므로 ‘자신의 독생 하신 아들의 인격 가운데’(in filii sui unigeniti persona) ‘구속자로’(redemptor) 나타나시고자 하셨다. 이 세상이 자신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고전 1:21) 아들을 보내셔서 그 분 안에 영생의 지식을 두셨다.(요 17:3) 오직 보내심을 받은 아들이 아버지의 능력이 되신다.(고전 1:24; 롬 1:16) 오직 그만이 구원의 문(門)이 되신다.(요 10:9) 그만이 생명 자체시다.(요 11:25; 14:6) 그러므로 아들을 알지 못하는 자로서 아버지께 이를 자 아무도 없다.(제2권 6장 1)

(2) ‘중보자가 없이는’ 택(擇)함도 없으며 사(赦)함도 없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중보가 신구약 전체 구속사에 미침이 부각된다.

“중보자가 없이는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향한 자비를 보이실 수 없으시다. 율법 아래(sub lege)에서 산 믿음의 조상들에게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두어야 할 목표(obiectum)였다.”(제2권 6장2)

구약 백성은 ‘그리스도의 인격에’(in Christi persona) ‘복되고 즐거운 교회’의 ‘토대’를 두고 율법의 규례대로 제사를 드렸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지금 계신 분으로 장차 육체로 오실 분이라고 믿었다. 그 분은 모든 민족이 축복을 받게 될 ‘씨앗’(semen)’이셨다.(갈 3:14) 처음에 선민을 택하신 것도 중보자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았다. 하나님은 오직 그 아들로 위를 잇게 하사(왕상 15:4) 우리 또한 그 분과 함께 상속자 되게 하셨다.(롬 8:17) 그러므로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시 2:12)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 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시 80:17)

구약 백성의 간구도 이러했으니 오직 구원의 의(義)가 이 땅에 중보자로 오실 그리스도께 있음을 그들은 믿었다.(제2권 6장 2)

(3) ‘중보자가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하나님께 이르는 오직 한 길은 믿음이다. 그리스도께서 ‘파할 수 없는 견고함으로’(in solida firmitate) 성도의 믿음을 지키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신(골 1:15) 그리스도를 ‘보고 자신을 믿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의(義)를 다 성취하여 그것의 ‘마침’이 되셨으므로(롬 10:4) 오직 그 분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 성도들은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대로 행하는 자리에 서고자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최고의 맞추심(God’s accommodation par-excellence)이 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 자신은 무한하시지만, 우리의 마음이 그 광대무변한 영광에 압도되지 않도록 아들 안에서 유한하게 되시고 우리의 작은 척도에 자신을 맞추셨다.”(제2권 6장4)
2.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서 중보자 되심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최고’(magnopere)며 ‘최선’(optimum)의 일이었다. 대속의 작정에 따라서 성육신이 필요한 것은 인류의 전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았다.

(1) 사람에게는 하나님께로 올라갈 힘이 없으므로 그 분께서 우리에 게로 내려오셔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신성과 사람의 인성이 서로 연합되었다. 오직 그 분만이 하나님과 ‘충분히 가까운 친밀함’(satis propinqua vicinitas)과 ‘충분히 견고한 일체성’(affinitas satis firma)을 지니신 사람이 되셨다.(딤전 2:5) 그 분만이 사람이시되 죄가 없으셨으므로(히 4:15) ‘평화를 회복할 중재자’(pacis restituentis interpres)가 되셨다.(제2권 12장1)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중보자가 되심으로써 우리가 그 분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또한 하나님 나라의 후사(後嗣)가 된다.(롬 8:17)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우리 구원의 ‘보증’(arrha)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동일하신 분’(idem)이 되심은 ‘자신께서 고유하게 가지셨던 것’(quod proprium)을 우리에게 속하게 하려 하심이셨다. 그러므로 구속자가 하나님으로서 사람이심이 우리에게 ‘가장 유익하다.’(apprime utile)(제2권 12장2)

(2)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어서 구원의 주가 되셔야 함은 신인(神人) 양성의 중보 사역을 이루기 위함이셨다.

우리 주님은 아담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복종하시기 위해서 참 사람으로 나타나셨고, 아담의 인격을 입으셨고, 그의 이름을 취하셨다. 이는 우리의 육체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위해서 무름의 값(satisfactionis pretium)으로 제시하시면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죄 값을 동일한 육체 가운데서 지불하고자 하심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공통된 본성을’(communem naturam)을 지니심이 우리를 자신과 하나로서 그리고 그 분의 승리를 ‘우리의 것’(nostra)으로서 삼으시는 ‘연합체의 보증’(pignus societatis)이 된다.(제2권 12장3)
제2위 하나님께서는 타락 전에도 천사와 사람들의 ‘머리’(caput)가 되셨으므로 사도 바울은 그 분을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골 1:15)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분께서 사람이 되심은 제사장으로서 제물이 되셔서 죄의 값을 치르고자 하심이었다. ‘피가 없이는’(sine sanguine) 사함이 없다.(레 17:11; 히 9:22) 건강한 자에게 의원이 쓸데없듯이(마 9:12) 타락이 없었다면 성육신이 없었을 것이다. 이를 교훈하기 위하여 사도 요한은 성육신(요 1:14) 전에 타락을 먼저 전한다.(요 1:9-11) 오직 육체의 피 흘림이 ‘속죄의 표징’(piaculi signum)이 된다.(제2권 12장4)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오심은 불완전하게 지음 받은 인류를 완성하기 위함이 아니라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최초의 인류는 그리스도의 창조 중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골 1:15,16) 이제 타락한 인류는 그리스도의 구속 중보로 말미암아 그분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골 1:18) 그러므로 타락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성육신도 없었을 것이다.(제2권 12장6,7)

그리스도께서 ‘중보자의 역할’(partes mediatoris)을 다하시기 위하여 참 인성을 취하셨다. 예수님의 육체는 단지 ‘환상’(spectrum)이 아니었다. 그 분께서는 ‘천상적인 육체 가운데’(coelesti carne) 오시지도 않으셨다. 그분은 ‘사람의 씨로부터’(ex hominis semine) 난 사람이었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관련해서 다음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로서 나셨다.
– 그 분께 영원한 ‘왕좌’(thronus aeternus)가 약속되었다.
– 그리스도는 중보자로 ‘우리의 본성’(natura nostra)을 지니심으로 우리에게 ‘자비하고 충성스러운 중재자’(misercors ac fidelis intercessor)가 되셨다.
– ‘아버지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모든 것이 우리에게 속하였다.’(제2권 13장1)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참 본성 가운데 자신을 비우셨음’(exinanitum)은 육체 가운데 죽임 당하심으로 우리를 대속하기 위함이셨다.(빌 2:7,8 벧전 3:18) ‘그 분께서 몸과 영혼 가운데’(carne et anima) 사람으로 나시지 않았다면 우리 위해 고난당하심과 부활하심이 무의미하다.(고후 3:14 고전 5:12-20)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되심은 그 분께서 ‘우리의 본성과 연합체’(ad naturae societatem)가 되심을 의미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이런 관점에서 창세기 3:15의 여인의 후손은 그리스도뿐 아니라 인류라는 말로도 파악된다.(제2권 13장2) 이 말씀이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씨’(semen)로서 오셔서(갈 4:4) 인류를 구원할 유일하신 분을(갈 3:16) 가르침은 분명하나 더불어서 그리스도와 인류의 하나 됨이 강조되는 것이다.(제2권 13장3)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심으로 ‘악이나 부패’(vitio et corruptela)가 없으셨다. 그 분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그리스도께서 그녀를 통하여서 다윗의 씨로부터 나셨다.’(quod per eam ex semine Davidis genitus fuerit Christus)(제2권 13장3) 그 나심은 아담의 타락 전의 출생과 같이 순결하고 오염이 없었다. 이러한 ‘순수한 출생’(generatio pura)은 성령에 의해서 거룩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았다.(요 17:19) 성령으로 잉태되심은 성령으로 조성되셨음(formatio)과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셨음’(sanctificatus est a spiritu)을 포함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원죄에 속한 마리아로부터 인성을 취하셨으나 성령의 역사로 순결하게 받으셨다. 이러한 잉태는 삼위일체론적이며 기독론적인 신비를 담고 있다.

“무한한 본질의 말씀이 인간의 본성과 연합하여 한 인격을 이룬다고 해서 우리는 그 분께서 그 속에 갇혀 계신다고 공상하지 않는다. 놀랍도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서 내려 오셨지만 하늘을 떠나지 않으셨도다! 놀랍도다! 그 분께서 처녀의 태중에 계셨으며, 지상에 다니셨으며, 십자가에 달리고자 하셨으며, 처음과 같이 항상 우주에 편만하셨도다!”(제2권 13장4) (*) 글쓴 이 / 문병호 교수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