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이 쓴 기독교강요 요약 제2권(17) 성도의 그리스도와 연합의 띠

칼빈이 쓴 기독교강요 요약 제2권(17)
성도의 그리스도와 연합의 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

기독교강요 제3권(3.1.1-3.1.4)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방식과 그것으로부터 우리에게 나타나는 열매들과 그것에 따르는 효과들”

제15강 성도의 그리스도와 연합의 띠

1. 성령의 우주적, 일반은총, 특별은총 역사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성령론에 할애된 장은 오직 제3권 1장 한 장 뿐이다. 성령의 신격(神格, deitas)은 이미 앞서 삼위일체론에서 다루어졌기 때문에(기독교강요 제1권 13.14-15),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개인 구원의 과정에서 작용하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밀한 사역’(arcana operatio)에 대해서만 논의된다.
칼빈이 제목을 붙였듯이 기독교 강요 제3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방식과 그것으로부터 우리에게 나타나는 열매들과 그것에 따르는 효과들’을 다룬다. 이는 조직신학의 구원론에 해당한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2권 마지막 장을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의 구원론적 의의(意義)와 가치를 다루는 속죄론에 할애하였다. 그리고 제3권에서는 그 공로가 어떻게 성도들에게 적용되는지를 논의한다. 성령의 부으심은 이러한 구원론의 서장(序章)에 자리 잡고 있다.

일찍이 100년 전 칼빈 출생 400주년을 기념하는 글을 통해서 워필드(B. B. Warfield, 1851-1921)가 강조했듯이 칼빈은 성령의 신학자로서 성령의 우주적, 일반은총적, 특별은총적 역사를 기독교 강요 전권을 통하여서 요소요소 강조하였다.

첫째, 성령의 우주적 역사는 창조와 섭리에 미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과 성령의 능력으로’ 천지를 무로부터 창조하셨다.(기독교강요 제1권 14.20) 그리고 성령님은 창조하신 것을 섭리로 보존하신다.

둘째, 성령의 일반은총적 역사는 ‘인류의’ 창조와 보존에 관계된다. 사람 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음을 받은 것은 성령의 은혜와 능력 으로 말미암는다.(기독교강요 제1권 15.50) 창조가 그렇듯이 사람의 영혼도 무(無)로부터 실체가 시작되는 것이지 이미 존재하는 어떤 본질을 주입받아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칼빈의 창 2:7 주석) 하나님께서는 타 락한 인류에게조차도 ‘영의 선물들’(dona Spiritus)을 수여하셔서 만물 의 영장으로서 고급스러운 문화적, 사회적 삶을 살게 하셨다.(기독교 강요 제2권 2.15,16) 이러한 성령의 일반은총적 역사로 말미암아 사람들 은 심판의 때에 자신들의 무지를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다.

셋째, 성령의 특별은총적 역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 리를 의롭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시는 구원의 은총과 관련된다. 이 러한 성령의 역사는 오직 택함 받은 백성에게만 미침으로 이를 교 회적 은총이라고 부를 수 있다. 기독교 강요 제3권에 제시된 성령 의 사역이 이에 해당한다.

워필드의 이러한 분류는 칼빈의 성령론에 대한 수작(秀作)을 남긴 크루쉐(Werner Krusche, 1917-2007)가 ‘성령과 우주’, ‘성령과 사람’, ‘성령과 교회’라는 제하에 성령의 사역을 다룬 것과 일맥상통한다. 칼빈은 삼위일체론에서 성령의 신격(神格)을 다루면서 그 분을 창조주 영(Spiritus Creator)과 중생 주(主) 영(Spiritus Regenerator)으로 부르면서 전자는 우주의 아름다움을 보존하실 뿐 아니라 창조 전의 혼돈의 덩어리도 돌보신 분으로서의 특성을 말하고 후자는 고유한 생명력으로 생명을 주심으로써 생명을 살리시는 분으로서 특성을 제시한다고 강조하였다.(기독교강요 제1권 13.14,15)

워필드와 크루쉐가 간파한 처음 두 가지 성령의 역사와 나머지 세 번째 성령의 역사는 각각 창조주 영(靈)과 중생 주(主) 영의 능력(virtus)과 작용(efficacia)에 돌려진다.

2. 그리스도의 영으로서의 보혜사 성령

칼빈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 분의 공로를 우리의 공로로 삼는 역사를 성령의 ‘은밀한 작용’(arcana efficacia)이라고 부른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밖에’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안에’ 계심으로써 우리와 ‘하나가’ 되셔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시며(엡 4:15)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시므로(롬 8:29) 우리가 그 분께 ‘접붙임’을 받고(롬 11:27) 그 분으로 ‘옷’ 입어야 한다.(갈 3:27)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한 분으로서 증언하시듯이 성도의 구원을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요일 5:7,8) 물은 ‘씻음’을 피는 ‘희생제물’을 성령은 ‘인’(印, sigillum)을 뜻한다. 성도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고 거룩함에 이른다.(벧전 1:2)

이 같은 성령의 은밀한 사역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전체 구원 과정 가운데서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사도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 6:11) 이렇듯 성령은 진리(眞理)의 영(靈)으로서 그리스도의 의(義)를 증언할 뿐만 아니라 능력의 영(靈)으로서 그리스도의 의(義)를 우리에게 전가시키신다.

성령은 아버지 그리고 아들로부터(Filioque) 출래(出來)하신다. ‘중보자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은혜를 아버지로부터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은혜를 ‘자신으로부터’ 부여하신다.(칼빈의 요 14:16 주석)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지만 아들에게 성령의 ‘전적인 충만을’ 주셔서 자신의 은혜를 나누어 주는 ‘수종자와 청지기’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성령을 ‘아버지의 영’ 혹은 ‘아들의 영’이라고 부른다. 한 성령의 교통으로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은혜가 함께 역사한다.(고후 13:13)

성경은 아들의 영을 특히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르는데(롬 8:9, 11), 이는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부와 같은 영에 참여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분의 중보자로서의 성격 때문에 그러하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특정됨은 그 역사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엡 4:7) 전가되기 때문이다.

또한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살리는 영(靈)으로서(고전 15:45) 우리를 그 분과 함께 한 자녀요 상속자 되게 하시기 때문이다.(롬 8:17) 그리스도의 영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를 자신과 함께 그 분의 기업으로 삼으시는 ‘성결의 영’이시다.(살후 2:13; 벧전 1:2; 롬 1:4) 그 영은 낮아지심으로써 우리를 위해서 대속 사역을 다 이루신 그리스도께서 높아지심으로써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영이시다.(기독교강요 제3권 1.2)

3. 성령의 이름들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그리스도의 공로가 우리에게 무익할 것이다.(기독교강요 제3권 1.2, 제3권 3.19, 제3권 11.1) 오직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는 몸의 머리가 되시며 신부의 신랑이 되신다.(엡 5:30) 이 같은 보혜사 (保惠師, The Comforter) 성령은 그 구원 역사를 표상하는 각각의 이름에 따라서 다양한 속성이 계시된다.

첫째, 성령은 ‘양자의 영’(養子, spiritus adoptionis)이라고 불려진다.(롬 8:15; 갈 4:6)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증거 하시고 우리가 그 분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다.

둘째, 성령은 ‘우리의 기업에 대한 보증이며 인(印)’이라고 불려진다.(고후 1:22; 엡 1:14) 성령의 감화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셋째, 성령은 ‘의로 말미암은 생명’이라고 불린다.(롬 8:10)

넷째, 성령은 ‘물(水)’이라고 칭해진다. 성령은 은밀한 중에 물을 주어 의 의 싹을 돋게 하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갈한 자에게 물을 주고 마 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한다.(사 44:3) 목마른 자들은 물을 마셔야 하리니(사 55:1), 주님께서 자신께 와서 마시라고 하신다.(요 7:37) 주 님께서 생수의 강, 성령의 강의 근원이 되신다.(요 7:38) 물은 또한 씻음의 상징이 된다.(겔 36:25)

다섯째, 성령은 은혜를 시냇물과 같이 부어 생기를 돋게 하므로 ‘기름’ 혹은 ‘기름 부음’이라는 이름을 가진다.(요일 2:20,27)

여섯째, 성령은 사악한 육욕을 태워버리고 헌신과 사랑의 불길을 일으키 므로 ‘불’이라고 불림이 합당하다.(눅 3:16)

일곱째, 성령은 모든 은사가 위로부터 내려오는 ‘샘’이라고 불려진다.

여덟째, 성령은 ‘주의 손’으로 칭해진다.(행 11:21) 성령의 작용으로 하나님 의 구원 섭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안에 선한 어떤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성령 자신의 은혜의 열매들이다.’ 성령을 칭하는 이름들은 이렇듯 무수한 그 열매들의 수만큼이나(갈 5:22,23) 많다.(기독교강요 제3권 1.3)

4. 성령과 믿음 그리고 그리스도

성령의 특별은총적 역사가 작용함은 오직 성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믿음은 성령의 선물이다. 믿음은 성령이 행하는 ‘주요한 일’이다. 성령께서는 믿음을 주실 뿐만 아니라 믿음 가운데 구원사역을 행하신다. 성령께서는 오직 믿음으로써 우리를 ‘복음의 빛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성령의 힘과 사역을 표현하는 말씀들은 대체로 믿음과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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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ristian Life by the Holy Spirits

믿음은 성령의 감화(感化)로 말미암음으로 ‘약속의 성령으로 인(印) 치심’을 받아(엡 1:13) 믿어 거듭난 사람마다 혈육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났다.(요 1:12,13) 오직 이를 알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마 16:17) 믿음은 오직 ‘성령으로부터 생긴다.’ 또한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이 오직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다.(살후 2:13) 성령이 ‘내적 교사’로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그 분 안에 거하는 줄 알게 하신다.(요일 3:24; 4:13) 성령의 감화가 없으면 아무도 자신의 가난함과 벗음과 눈 먼 것을 알지 못한다.(계 3:17) 곧 성령은 ‘하늘나라의 보고(寶庫)을 여는 열쇠’와 같다.

성도는 성령의 감화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에 이른다.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믿음과 함께 성령을 부어주신다.(행 2:33)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아들을 증언하고 아들이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요 14:17,26; 15:26; 16:13) 그리스도 자신께서 ‘자신의 영으로’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람들을 이끄시지 아니하면 아무도 진리를 알 자 없다.(요 6:44; 12:32; 17:6) 그러므로 성령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자신께서 ‘내적 교사’라고 불림이 합당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고(눅 3:16) ‘자신의 복음에 대한 믿음에’ 이르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다.(고후 5:17)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거룩하게 구별되게 하신다.(고전 3:16,17; 6:19; 고후 6:16; 엡 2:21)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을 부어주심으로써 그 영을 받은 사람들 속에 거(居)하시며 여전히 중보 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사심이 곧 성령의 임재이다.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또 영 가운데 일하심이 곧 보혜사 성령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구원 사역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기독교강요 제3권 1.4)(*) 글쓴 이 / 문병호 교수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