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와 한국교회

칼빈 탄생 500주년기념 지상강좌(1)
칼빈주의와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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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세상 끄트머리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은 동일한 신앙을 소유해야만 한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성령의 간섭을 받아야 하며 성경에 대한 동일한 고백이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인간들의 신앙적 합의에 따른 결과 때문이 아니라 한 성령, 한 세례, 한 그리스도, 한 성경에 의한 신앙이 확립될 때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지상의 모든 성도들이 동일한 신앙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우리 가운데 칼빈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16세기 종교개혁 현장의 중심에 서있던 인물이다. 당시 로마교회의 비 신앙적인 행태와 다양한 이단 사상들에 대해 칼빈은 성경을 기초로 하여 맹렬한 신학적 비판을 가했다.

성경을 벗어난 주장을 하며 비성경적인 신앙 활동을 하는 자들을 엄하게 책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있어서 칼빈에 대한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로마 가톨릭교와 개신교의 입장은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 철저히 상반되었으며 개신교 내부에서도 그 시각차는 여전히 크다. 어떤 사람들은 칼빈을 매우 훌륭한 교사로 인정하는가 하면 그를 편협한 신학자로 보는 자들도 많이 있다.
물론 칼빈 역시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성정을 가진 인간이었으므로 부족한 점이 많았을 것이란 점을 인정한다. 따라서 그의 개인적인 신학 사상을 완벽한 것으로 이해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이름을 따서 칼빈주의 신학을 확립하고 있지만 이 역시 개념상 통일성 있는 사상을 구축하고 있지는 못한 상태에다. 우리는 칼빈주의에 대한 본질적 의미와 더불어 포괄적 이해를 함으로써 교회의 뼈대가 되는 참된 신학을 구축해가기를 바란다.

1. 칼빈주의란 무엇인가?

칼빈주의(Calvinism) 신학은 칼빈의 개인적인 모든 사상을 추종하는 신학을 말하지 않는다. 칼빈의 신학 사상과 칼빈주의의 신학 사상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칼빈주의를 오해하는 자들은 칼빈 개인의 신학 사상이 곧 칼빈주의라 생각한다. 진정한 칼빈주의자는 그의 신학에 대해 말씀을 통한 건전한 비평(criticism)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을 더욱 가까이 알아가고자 애쓴다.

오늘날 개혁교회 혹은 장로교회 전통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을 ‘칼빈주의자’로 일컫는다. 칼빈은 성경의 원리를 체계화했지만 그가 칼빈주의 신학에서 취급된 모든 사상들을 직접 정리한 것은 아니다. 칼빈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역사적 개혁주의는 칼빈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부터 있어왔다.

그러므로 칼빈 이전에도 위클리프, 후스, 쯔빙글리 등에 의해 성경에 의한 정통신학이 제시되었으며 칼빈이 이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칼빈주의란 칼빈이 세운 신학체계로 인해 후대의 성도들이 붙인 이름이며 칼빈이 창안한 신학이라는 말이 아니다. 칼빈주의 신학사상은 성경의 직접적인 교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사적 교회 가운데 침범하는 세속적인 사상에 대한 변증과 방어 체계로서 많은 학자들이 노력을 기울였다. 칼빈주의 신학 사상을 지향하는 교회들은 많이 있어왔으며 지금도 세계 도처에 흩어져 보편교회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칼빈의 사상에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 없이 전적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자들이다.
칼빈주의자들은 말씀의 가르침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며 더욱 진리에 접근 해가고자 하기 때문에 칼빈의 개인적인 사상과 상충될 때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시기의 성도들은 칼빈주의자들이었지만, 칼빈의 사상에 반하는 성경적 원리를 확인하고 체계화했다. 이런 이유로 장로교에서 신앙고백문서로 받아들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칼빈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주일 성수 문제가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 사이에 연관성이 있느냐 하는 점과 관련된다. 칼빈은 일요일을 굳이 주일로 지킬 필요는 없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청교도들은 주일을 매우 중시했다. 그러한 신학적 해석은 칼빈의 사상과 많은 차이가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철저한 칼빈주의자들이었다.

2. 교회를 위한 신학으로서 칼빈주의

칼빈주의는 단순한 이론적 체계가 아니라 교회를 위한 신학적 배경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한 실제적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그것 자체로서 부여할 의미는 없다. 이제 칼빈주의 신학이 교회를 위해 지향하고 있는 몇 가지 함축 된 내용들을 살펴보자. 이 의미들은 칼빈주의 교회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요한 신학적 열매들이다.

(1) 칼빈주의 신학의 중심

칼빈주의 신학은 종교개혁자들의 중심 주제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 등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오늘날 개신교회 뿌리는 사실상 여기에 있다. 성경만이 하나님의 계시이며 성경을 통해 모든 것을 해석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성경을 통해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시대의 눈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는데 익숙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되면 성경이 세상에 대한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세상을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서 성경을 보게 된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의 절대성을 신앙하는 성숙한 성경관을 가지고 있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개념 역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인간의 무능함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 존재를 분명하게 확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에 달려 있다. 즉 인간 자신의 멋있는 삶이나 의미 있는 인생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때 인간의 의미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2) 칼빈주의 신학의 기본 생활원리

칼빈주의 신학이 소유하고 있는 신앙의 기본 생활원리는 하나님 중심(God-centered), 성경 중심(Scripture-centered), 교회 중심(Church centered)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는 곧 인간의 삶은 인간 자기중심이 아니며,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 중심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국가나 사회 중심이 아니라는 말이다. 칼빈주의 신학에서는 성도의 삶의 의미가 명확하게 정립되고 있다.

후에 신(新) 칼빈주의자들이 그 의미를 확대하여 해석하고 적용함으로써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적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고, 성경 중심에서 인간의 이성과 경험 중심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었으며, 교회 중심에서 국가와 사회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에서는 여전히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을 외치고 있지만 실상은 그 방향을 이미 세상 쪽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뛰어 들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3) 칼빈주의 5대 교리

우리가 흔히 TULIP이라는 말로 일컫고 있는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인간의 전적부패(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그리고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을 말한다. 이는 구원론과 관계된다고 볼 수 있다.
칼빈주의 5대 교리라 일컬어지는 교리는 칼빈이 직접 제시하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후 반세기 가량 지난 후 화란에서 작성된 ‘도르트 신경’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완전하심과 그의 능력이 완벽한데 반해 범죄 한 인간은 완전히 부패했으며 그 능력은 전적으로 무능함을 말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과 관계되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처참한 형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선택하신 자기 백성에게만 은혜를 베푸시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신실한 분으로써 인간과 아무런 상의 없이 절대적인 은혜를 베푸시며, 선택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천국에 이르기까지 자기 백성을 보호하고 지킴으로써 구원을 완성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시대에 인간의 노력을 통해 구원받은 자의 수를 늘이려 하고, 인간의 노력을 통해 구원에 이르려고 하는 자들과는 전혀 다른 교리이다. 칼빈주의 신학에서는 인간의 의지로 믿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하게 하거나 덜하게 할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창세 전에 세워진 하나님의 뜻에 기인한 것이다.

(4) 칼빈주의 참된 교회의 표지(標識)

칼빈주의 교회는 말씀 선포, 참된 성례의 시행, 온당한 권징의 이행을 교회의 중요한 표지로 이해하고 있다. 벨직 신앙고백서에서는 이 세 가지 표지가 없으면 참된 교회가 아니라 거짓교회라 단정 짓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교회라 하는가? 십자가가 세워진 건물이 곧 교회인 것은 아니다. 나아가 목사, 장로, 집사가 있다고 해서 교회가 아니다. 또한 매주일 사람들이 모여 설교를 듣고 찬송가를 부르며 연보를 하면 그것 자체로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고 열심히 전도하면 그것으로서 교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종교적 행위들은 거짓 교회에 속한 불신자들도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참된 교회는 우선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고 올바른 성례가 시행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한 정당한 권징 사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이런 내용들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교회는 이름만 교회일 뿐 실상은 거짓 교회일 따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교회는 거의 거짓 교회화 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3. 한국교회와 칼빈주의

(1) 신(新) 칼빈주의의 영향

한국의 보수주의 교회들은 일반적으로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세상의 변혁을 꿈꾸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가담하려고 한다. 나아가 예술과 학문의 영역에서도 신 칼빈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한 문제에 대해서는 그 자체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특색을 띠고 있다. 그들은 교회를 사회 변혁을 위한 방편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新) 칼빈주의 사상은 외견상 활발해 보이고 세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회 참여적 활동은 성경이 교회에게 가르치고 있는 바가 아니다. 한국의 신(新) 칼빈주의를 지향하는 교인들이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명선거 운동을 한다든지 일반대학에서 일부 대학생 선교단체들이 ‘컨닝추방운동’ 등을 전개함으로써 사회개혁에 동참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 내의 만연한 부정 선거나 신학교에서 있는 ‘컨닝’이나, 성도라 하면서 부정행위를 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대개 침묵하고 있다. 설령 간간이 음성을 낸다 할지라도 세상에 대한 관심과 비교해 볼 때 지극히 미미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천국 메시지를 증거 했는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형식적 칼빈주의

한국교회는 칼빈주의란 이름만 받아들였을 뿐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참된 칼빈주의와 거리가 멀다. 즉 칼빈주의라는 형식만 가지기 원했을 따름이며 진정한 칼빈주의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대다수 한국교회는 칼빈을 거의 모르고 있으며 칼빈주의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칼빈의 이름에 익숙하여 그의 신학 사상에 대한 막연한 맹신만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칼빈과 칼빈주의를 항상 앞세우고 있지만 칼빈의 사상과 칼빈주의 신학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지식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교회는 칼빈주의에서 이단시하는 알미니안주의를 말로 이단시하면서 실제로는 알미니안주의 신학을 훨씬 지나쳐 있는 이상한 모순에 빠져 있다. 특히 전도와 선교의 문제에 있어서는 알미니안주의자들보다도 더욱 심각한 인본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대다수 교회 지도자들은 스스로 칼빈주의자라고 하는 자기 인식과 특이한 종교현상에 빠져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장로교에서 주장하는 한국식 칼빈주의는 전통적 칼빈주의의 신앙고백이나 신앙적 삶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결 론

우리는 칼빈주의를 논하면서 적어도 세 가지 점을 유의해야 한다.

첫째, 칼빈주의가 칼빈을 맹종하는 것인 양 생각한다는 점이다.
둘째, 칼빈주의 신학 사상을 완벽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진정한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끊임없는 반성적 사고 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국 장로교회의 절대다수 교회들은 스스로 칼빈주의를 따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칼빈주의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만 한다. 칼빈주의 의미와 내용을 알지 못한 채 칼빈주의자임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엉뚱한 신앙의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칼빈의 개인적인 신학 사상 가운데 성경을 통해 확인해야 할 내용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신학 사상을 맹종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순수한 칼빈주의자의 자리에 설 수 있다. 칼빈주의 신학 역시 완전하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 완벽함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더욱 가까이 나아가려는 자세를 항상 견지해야 한다.(*) 글쓴 이 / 이광호 목사(실로암 교회) 출처 / 기독교개혁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