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26)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26)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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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주일(문 53)

요절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문 52 : ‘성령’에 관하여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 첫째, 그는 성부와 성자와 함께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그 분은 나에게도 주어져서 나로 하여금 참된 믿음으로 그리 스도와 그의 모든 은사에 참여하도록 해 주시며 나를 위로하며 영 원토록 나와 함께 하십니다.

기독교 역사는 그 시대마다 중요하게 다루어 온 교리가 있었다. 초대 시대에서는 ‘기독론’이 논쟁의 중심이었고 종교개혁 시대에는 ‘구원론’이 논쟁의 중심이었다면 현대 기독교회에서는 ‘성령론’이 심각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회에서 오순절 계통의 교회가 주로 성령의 은사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부흥(?) 가져왔다는 차원에서 ‘성령론’을 그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했다고 해서 실제적인 어떤 영적 체험을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것임을 확신하고 경험적 성령론을 신봉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요리문답 53번의 질문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공부하도록 한다. 이는 성경이 성령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지를 정확하게 알도록 가르치려는 의도인줄 믿는다. 요리문답은 ‘성부 하나님과 창조’, ‘성자 하나님과 구속’ ‘성령 하나님과 성화’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이는 삼위(三位)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구속의 역사를 다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거룩한 교회, 성도 간의 교제, 사죄, 육신의 부활, 영생 등은 모두 성령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사역이다. 이는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포괄적인 사역임을 의미한다. 이런 차원에서 성령 하나님은 단순하게 어떤 은사를 일으키시는 세력 혹은 능력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신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다.

1. 삼위 하나님으로서의 성령 하나님

흔히 성령 하나님을 신격체로 보기보다는 현상 내지는 능력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은사운동을 주로 하는 오순절 파에서 흔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님이 곧 삼위의 하나님이심을 가르친다. 성령 하나님을 신격을 가지신 하나님으로 아는 것은 성령 하나님을 아는 첫 걸음이다. 성경은 바로 성령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가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심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자신이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오히려 유익이 된다고 하시며(요 16:7), 그들을 떠나 가셔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4:16, 26; 15:26; 16:7)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오시면 그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증거 하시며’(요 15:26),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요 16:13a),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고 장래 일을 알리실 것이다.”(요 16:13b) 또한 성령께서는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고 예수께서 성령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성령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예수님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6:15)

이렇게 볼 때 성령님은 삼위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는 분이시며, 사역 역시 성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을 성자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구속의 진리를 통하여 성도와 교회에 전달하시고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일을 수행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령 하나님은 직접 교회에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사도행전에서 성령님은 안디옥 교회에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 13:2)고 명하셨고, 교회는 이를 순종하여 두 사람을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했다.(행 13:2)

그리고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어난 아나니야 사건에서 보듯이 성도가 거짓말 한 행위는 곧 성령 하나님을 속인 행위라고 베드로 사도는 아나니아를 책망하여 저주하였다.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로다.’” (행 5:3,4) 이렇게 성도가 자기 마음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대하여 거역하여 거짓말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거짓말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성령님은 이처럼 하나님으로서 성부와 성자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가르침은 바로 성령님이 어떠하신 분이심을 분명하고 또한 확실하게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성령님은 ‘사물’이 아니라 ‘인격체’요 ‘그것이’ 아니라 ‘그 분’이시다. 성령 하나님은 신격을 가지고 명령하시고, 인도하시고, 말씀하시며, 그리고 증거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바 성령 하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 해 볼 수 있다.

(1) 성령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시다.

사도 바울은 성령 하나님의 전지성에 대하여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0,11)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성령님을 의지하고 사모하는 자에게는 이 신령한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2-14)

(2) 성령 하나님은 편재(遍在)하신 분이시다.

다윗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신은 어느 곳에서나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 139:7-10)

그러기에 인간은 어느 곳에도 숨을 수 없고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과 교제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어느 특정 장소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고 교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3) 성령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성령 하나님은 창조 시부터 성자 하나님과 함께 성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개입하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1,2) 뿐만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은 빚어 만드신 후 ‘생기를 불어 생령이 되게 하실 때’도(창 2:7) 이렇게 성령 하나님은 창조사역에 동참하셨다.

이 놀라운 창조 사역에 대하여 시편 기자는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시 104:30)라고 고백했고, 욥은 “사람의 속에는 심령이 있고 전능자의 기운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신다.” (욥 32:8)고 자신을 지으시고 능력으로 살리신 분은 하나님의 신 즉 성령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욥 33:4 창 2:7) 뿐만 아니라 창조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마리아에게 예수께서 잉태되도록 하셨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거듭나도록 역사하셔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게 하실 뿐 아니라 영원한 구원의 완성에 이르도록 부활의 소망을 갖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이상의 성경 내용을 볼 때 성령 하나님은 삼위 하나님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위치와 능력과 수준에서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역을 수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신비하고 영광스러운 진리 가운데서 우리의 구원의 역사를 함께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 부터 계시고, 전지하시며, 편재하시며, 능력의 하나님으로서 지금도 성도를 거듭나게 하시고 성도의 마음속에서 지속적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2. 성도의 심령 속에서 교제하시는 성령 하나님

성도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자를 의미한다. 이는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되게 하시는 일에 관여하셨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성도는 삼위 하나님께 기도하며 교제한다. 이는 인격체이신 하나님과 성도인 우리와의 관계성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과의 관계성 즉 자신과의 관계성뿐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성까지 가르쳐 주시며 성령 하나님께서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신 지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이렇게 성령 하나님께서는 보혜사가 되셔서 진리의 영으로써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성도의 심령 속에 거하시며 구원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펼치시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이러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성도가 된 자들은 마땅히 심령 속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처소로서의 자신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점을 강조하며 방탕에 빠져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라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이 놀라운 진리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심령 속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식하여야 한다. 이 점은 항상 생각하여 그에 따라 말하며 행동하는 것이 바른 성도인 것이다. 진실한 성도는 이 성령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기를 원할 것은 당연하다. 즉 이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우리와 교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속에서 거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성령님이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로 이 성령 하나님과의 교제를 기원하였다. 즉 성령 하나님은 바로 우리 속에서 교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오늘날 예배 후 축도할 때 인용하는 구절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는 성도가 언제나 성령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가 있기를 원해야 하며 또한 그 성령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힘써야 하는 것이다.

3. 구원을 이루시는 성령 하나님

앞에서 언급했듯이 성령 하나님을 단순하게 은사와 능력을 베푸시는 분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매우 성령을 편협적으로 이해 한 것이며 단지 개인의 종교적 경험에 의지하여 성령 하나님을 평가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크리스웰(W. A. Criswell) 목사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성령님의 임재가 없이는 죄를 깨달음도, 중생도, 성화도, 정결케 됨도, 용납도 없다. 생명은 생명을 주시는 영 안에서만 있다.”고 성령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설명했다. 성령 하나님의 일차적인 사역은 바로 죄인들을 불러 거듭나게 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다. 즉 구원의 전 과정을 성령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사역을 하시는 것이다.

(1) 성령님은 중생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 한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와 말씀하신 사건을 보면 그때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거듭나는 것’은 성령께서 두 번째의 창조 사역을 하신 것을 인간이 경험하는 것이라 하겠다. 즉 성령께서 중생(重生)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신적인 존재로 변화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죄인이 새롭게 영적 생명을 얻어 다시 살아나는 변화를 의미한다. 이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요, 출발이다. 즉 우리 주님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조차 없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영적으로 죽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의 눈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요 3:3), 나아가 그 나라를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요 3:5)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바로 거듭난 영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영적으로 죽은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 이유는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세상에 태어나지만 영적으로는 모두 죽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설명해 주어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인간의 모습에 대하여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1-5)고 설명한다.

모든 인간은 바로 죄 가운데서 살아가는 무지한 자들이다. 이들은 바로 영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불순종하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되어 버린 불순종의 아들들이다. 이들을 불순종의 영이 지배한다. 이 영은 강력하게 죄인들을 지배하여 그들이 주인 되신 하나님을 무시하게 하고, 그 분의 말씀을 거부하게 하고 나아가 그 분을 대적하게 한다.

주께서는 이미 이러한 죄인들의 불행한 모습에 대하여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 도다.”(요 8:44,45)라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비록 그들이 구약 성경을 지식적으로 잘 알고 종교적인 예식에 대하여 박식하며 생활화 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마귀에 사로잡혀 진리를 알지 못하였고 또한 참된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바르게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소경된 자들을 일깨우셔서 보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찾게 하시는 작업을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 6:63) 그렇다. 우리의 죽었던 생명을 살리는 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뿐이시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은 그저 성령의 능력과 은사만을 추구하는 신앙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 데 사실 악령도 얼마든지 초능력을 발휘하도록 조장하는 것을 안다면 그저 은사와 능력만을 구하는 것이 진정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바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드려야 할 점이라고 생각된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영적 감각력을 새롭게 갖도록 하신다. 이는 주님께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나아가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신 의미이다. 즉 영적으로 깨어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2) 성령님은 죄인을 살리는 영이시며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한편 중생의 역사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그 어떤 영적 영역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는 단독사역인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동의와 협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직 성령 하나님께서 단독으로 하시는 사역인 것이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께서 죽은 영혼들을 살리시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

1) 진리의 말씀으로: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성도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중생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이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2) 신앙을 고백하게 함으로:

뿐만 하니라, 성령을 통해서만 성도는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고 또한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점을 강조하여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쳤다.

3)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언제나 성도의 심령 속에서 말씀으로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무슨 일을 하셨는지, 그 예수를 믿으면 어떻게 되는 지 등 구원 전반에 걸친 도리를 가르쳐 주신다. “내가 아버지께 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 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요 15:26)

이상의 말씀들은 곧 하나님을 모르고 죄 가운데서 살았던 인간을 구원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구원 사역임을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성령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하시어 우리의 무딘 심령 속에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게 하신다. 이 영적 변화의 과정은 중생으로부터 시작하여 구원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성도의 심령 속에서 끊임없이 사역을 하시는 것이다. 이로써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성도 속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놀라운 구원의 도리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엡 1:13)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점에서 모든 성도들은 그 성경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의 심령 속에서 구원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한편 성도의 심령 속에서 거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이러한 역사는 곧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들에게 미치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일이시다. 사도 바울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 3:14)고 규정하고 성령께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을 선민이나 이방인이나 차별하지 않고 복의 근원되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로 해석하여 복음을 증거 하였다. 이는 인류 모두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증언하는 말씀이다. 즉 구약의 구원이 하나님께서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원리로 이루시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인 것이다.

4. 성도와 함께 구원을 완성해 가시는 성령 하나님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보내실 성령님은 항상 성도의 심령 속에 거하시며 도우시는 ‘보혜사’이시라고 설명해 주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이렇게 보혜사 성령께서는 성도의 마음속에 거주하시며 연약함을 도우시며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6,27)

뿐만 아니라 성령 하나님은 성도가 죄로 잃어버린 하나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닮아 가도록 성도의 심령 속에서 강하게 지속적으로 사역하고 계신다. 이처럼 성령님은 중생의 역사만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사역을 하신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이런 차원에서 성령 하나님은 은사와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사역을 하시는 분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매우 편협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실로 성령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말씀으로 성도의 심령 속에 적용시키셔서 온전한 구원의 이르도록 이끌어 가시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결 론

오늘날은 성령 시대라 하여 온갖 이단사설이 난무하는 영적 혼란기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천상에 올라가신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예수의 말씀을 가지고 성도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하게 살아가도록 역사하시는 때이다. 이런 차원에서 지금은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 Agent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일하시는 천상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단순히 성령의 은사와 능력만을 구하는 것은 심각한 영적문제에 봉착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진정 예수께서 보내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성도가 구원을 얻어 중생의 경험과 항상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깨닫고, 고백할 뿐 아니라, 완성된 구원에 이르도록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이런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에겐 얼마나 참된 위로가 되겠는가!(*) 글쓴 이 / 박병은 목사(덴버 둘로스장로교회 담임)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