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36) 세례와 유아세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36) 세례와 유아세례

제 27 주일(문 72-74) – Ⅱ

요절 :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 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 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1,12)

문 72 : 물로써 몸을 씻는 것이 죄를 씻어 버리는 것입니까?

답 :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 서 깨끗하게 합니다.

문 73 : 그러면 왜 성령께서 세례를 ‘중생의 씻음’ 과 ‘죄를 씻음’이라 하셨습니까?

답 :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 나님께서는 몸의 더러운 것이 물로 씻기듯이 우리의 죄가 그리스 도의 피와 성령으로 없어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길 원하십니 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영적으로 씻기는 것이 우리의 몸이 물로 씻기는 것처럼 매우 실제적임을 세례라는 이러한 신적 약속과 표로써 우리가 확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문 74 : 유아들도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답 :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유아들도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른들 못지않게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속죄와 믿음을 일으키는 성령이 약속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표식인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교회에 반드시 허입되어야 하는 동시에 불 신자들의 자녀와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구약에서는 할례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신약에는 세례로 대체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시행할 것을 명령하신 세례에 대한 일반적인 진리들을 살펴보았다. 27번째 주일에는 이러한 세례를 시행함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세 가지 주제들인 첫째, 세례와 죄 씻음과의 관계(72문), 둘째, 세례를 경시함(73문), 셋째, 유아세례에 대하여(74문) 다루고 있다.

1. 세례와 죄 씻음과 관계

세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례를 받음이 구원의 보장인가? 그렇지는 않다. 질문 72번에서 보듯이 단순히 물로 씻음을 받았다고 해서 죄가 다 사해졌다고 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구원은 비록 세례받기 이전이라 하더라도 성령의 확실한 역사(役事)하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사죄함을 받음을 느끼고 고백하게 될 때 일어나는 영적변화를 체험케 된다.

(1) 중생의 씻음과 죄를 씻음의 의미(문 72-73)

천주교와 기독교 일각에서는 물세례를 죄 씻음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교회가 있다. 이들은 물세례는 죄 씻음을 의미하기에 구원받음에 있어서 필수적인 절차로 이해한다. 즉 물세례를 받지 못하면 사죄 받지 못한 것이고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죽기 전이라도 반드시 물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세례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천주교는 방금 출생한 어린 아기가 죽을 것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세례를 주재할 신부가 올 상황이 못 된다면 산파라도 세례를 집례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이유는 그 아이에게 있어 구원에 결정적인 것이 세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례와 구원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을 두었던 것이다. 이 때 세례 시 사용하는 물은 신부가 ‘거룩하게 한 물’ 즉 성수(聖水)만 사용해야만 효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 즉 ‘세례는 죄를 씻는 것으로 구원의 필수불가결의 요소(절차)’라는 오류에 대하여 질문 72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우리를 우리가 지은 모든 죄로부터 깨끗하게 씻어 주는 것은 세례의 물로 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만이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이는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2:12에서 설명하는 말씀에서도 확인된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2) 세례를 무시하는 주장에 대하여

한편 일부 교회에서는 반대로 물세례는 단지 구원을 얻었음을 상징하는 종교적인 절차에 불과 하므로 별 의미가 없다고 평가 절하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하여 질문 73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영적으로 씻기는 것이 우리의 몸이 물로 씻기는 것처럼 매우 실제적임을 이러한 신적 약속과 표’라고 규정하며 세례가 상징의 차원을 넘어 실제적으로 세례를 통하여 ‘중생의 씻음’과 ‘죄를 씻음’의 효력을 발휘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가르침은 다음 구절에서 확연하게 배울 수 있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명령하시면서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행 22:16)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러한 구절들을 단순하게 ‘세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는다.’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 이유는 이 구절들이 무조건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한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성경에서 이렇게 강력하게 세례를 받을 것을 표현하게 된 동기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믿은 자에게 물세례라고 하는 종교적인 의식과 절차를 통해 확고한 믿음을 마음으로 동의하고 또한 고백하는 차원에서의 확증적인 절차로 삼고자 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사람이 구속의 진리를 마음으로 믿음에 대하여 자신의 죄가 씻어졌음을 믿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세례를 통하여 자신이 믿은 복음의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고백하고 또한 그 사역에 동참함으로 주어지는 은혜 즉 중생의 씻음을 확신케 하시는 것이다. 즉 세례가 ‘중생의 씻음’과 ‘죄의 씻음’이라는 주장은 수세자(受洗者)에게 세례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구속의 진리를 확신하게 하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세례의 의미를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3,4)라고 가르쳤다.

(3) 유아세례에 대하여(문 74)

세례의 문제를 다루면서 질문 74에서는 세례의 대상자로 유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조금 생소한 질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고백서가 작성될 당시의 교계가 이 유아세례 문제를 가지고 심한 논쟁을 하고 있던 때였음을 감안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 이들은 ‘재(再) 세례파’ 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유아 세례를 받은 사람도 성인이 되면 반드시 다시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유아 세례는 효력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들 의 주장의 배경에는 성 례인 세례를 제정하고 시행하시는 삼위 하나 님에게 초점을 두지 않 고 수세자 즉 사람에게 관점을 두는 오류를 갖 고 있다고 하겠다. 물 론 수세자의 신앙을 점 검하고 고백을 분명히 한 후에 세례를 베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 겠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가 정과 그 자녀와도 언약 을 맺었음을 우리가 기 억을 한다면 유아 세례의 배경이 되는 구약의 할례가 함의(含意)하고 있는 진리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창 17:12)고 명령하셨고 실제로 아브라함은 이 명령에 따라 어린 아기인 아들 이삭에게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실시했다.(창 21:4) 이러한 전통에 따라 신약의 초대 교회는 이 명령을 준행하며 시작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8,39)

그러나 재(再) 세례파 교회에서는 자신들의 논리적인 주장에 따라 어린아이가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고 또한 완전하게 이해하여 그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확인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에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앞에서 설명 한 것처럼 성경적이지 않다. 위에서 보듯이 구약의 말씀이나 신약의 말씀이 세례의 기초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에 따라 시행된 것이 할례이며 구속사적으로 이를 이어받아 교회가 시행하게 된 것이 세례인 것임을 재(再) 세례파 교회는 무시하기 때문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세례는 믿음의 표이며 구원의 절대적인 요소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며 세례의 기초는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세례에 있어서 핵심 진리이다. 이러한 점에서 수세자의 자격을 논하는 것은 성경적인 바른 이해에서 벗어난 주장이라 하겠다.

2. 영원한 언약에 기초한 유아세례

질문 74에서 ‘유아(幼兒)들도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따라 언약 백성의 가정에 속한 유아들도 어른과 같이 교회의 일원으로써 인정받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1) 아브라함 언약

이 주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정에 주신 언약에 기초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라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고 이를 확증하기 위하여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창 11:10,11)라고 할례를 명하셨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맺으신 ‘영원한 언약’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인 아브라함과만 아니라 장차 태어날 그의 후손 모두와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이 진리를 모세는 다시 강조하여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까지”(신 29:14,15)라고 명하여 하나님의 언약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우리 예수님도 출생한 지 8일 만에 어린 아기로서 할례를 받으셨다. “할례 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눅 2:21) 이렇게 이 할례 제도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 됨의 증표인 것이다.

(2) 할례의 두 가지 의미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대대로 지켜야 할 할례의 의미는 무엇인가?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겠다. 첫째는 육신적으로 그릇된 것을 잘라낸다는 의미 둘째는 후손을 낳게 되는 것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먼저 할례는 남자 생식기의 표피의 끝부분을 잘라내는 의식이다. 이는 육신적으로 더러운 부분을 제거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하여 영적 자녀를 생산하는 능력이 자신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할 뿐 아니라, 육신의 더러움을 제거함으로 신령한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자녀를 생산하게 됨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담아 율법과 선지서에서는 ‘마음의 할례’를 행할 것을 명하셨고(신 10:16; 렘 4:4; 겔 11:19,20), 사도 바울 역시 이 할례를 ‘성령으로 마음에 하는 것’으로 규정했다.(롬 2:28,29; 고후 3:3)

다음은 알다시피 아브람(아브라함 이전 이름)은 99세에 하나님의 아들 약속을 받기 전까지 무자했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명하셨고 그 이후 육신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다.(참고, 창 17:1-22) 이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아들 이삭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자식을 얻음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는 할례였음을 의미한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이삭의 모친에 대하여,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히 11:11)라고 설명하고 있다.

(3) 할례와 세례와의 관련성

할례와 세례와의 관계에 대하여 유념해야 할 중요한 설명을 사도 바울이 하고 있음을 본다. 그는 골로새서에서는 이 할례와 세례와의 관계를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골 2:11,12) 고 규정했고, 이렇게 할례인 세례를 받은 성도들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갈 3:27)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런 차원에서 유아든 성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소속된 공동체의 일환으로 인정받아 어린 유아에게 라도 세례를 베풀고 후에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의 믿음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확인(conformation)하는 절차를 밟은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과 약속

우리가 유아에 대한 우리 주님의 축복과 약속을 살피는 것은 유아 세례와 관련하여 꼭 필요한 가르침이라 하겠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사역 중에서도 결코 어린아이들을 무시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주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마 19:14) 라고 그들을 귀하게 보시고 주님께 나옴을 환영하셨다.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갖은 자만이 천국백성이 될 것을 약속하셨다.(참고 마 18:3,4)

이러한 점에서 유아라고 할 찌라도 하나님 나라 백성의 일원으로써 받아드려져야 하며, 비록 어린아이라고 할 찌라도 그들 역시 죄 가운데 출생한 죄인이기에 언약을 믿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믿음으로 고백하며 장성하여 더 많은 죄를 짓기 전에 바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언약 백성이 시행해야할 유아세례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구약에서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듯이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해산하고 교회에 출석하게 되는 첫 주일에 세례를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유아세례의 절차라 하겠다.
3. 위로와 사명

재(再) 세례파의 주장과 같이 어린자녀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세례라고 주장하는 면에서 그리고 확실한 믿음 안에서 거하지 못하여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유아세례에 대하여 주저하거나 무시하여 자녀가 유아세례를 받아야 한 때에 유아세례를 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교회 안에서 종종 본다. 일반적으로 장로교회의 경우 유아세례를 출생 후 만 2세가 넘기 전에 받기를 권한다.

부모의 무관심으로 자녀가 유아세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나 실상은 유아세례야 말로 자녀를 양육하는 믿음의 부모에게 있어서 큰 위로와 확신 그리고 사명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 선생은 언약 백성을 만드는 확실한 방법은 성도들이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라 했다. 이는 언약 백성의 가정이 믿지 않는 가정 보다는 언약 백성을 낳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아브라함 언약에서 보듯이 할례 이후에 낳은 자식인 이삭은 그 후손에 이르기까지 언약백성으로서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고 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신 각별한 간섭과 섭리적(攝理的) 역사를 감안할 때 이는 분명히 하나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며 혜택이 아닐 수 없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9,10)

그러기에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된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 안에서 개인은 물론이요 가족 모두가 이 언약의 복됨과 풍성함 가운에 있음을 감사할 뿐 아니라 그로부터 주어지는 놀라운 혜택들을 믿고 위로 받는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아들도 이 언약 백성 안에 있는 한 성도로써 잘 양육하여 장차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할 수 있는 인재로 키워 나아갈 책임이 부모는 물론이고 언약의 신앙 공동체 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함께 져야할 공동 책임임을 인식하고 유아세례를 시행해야 하는 것이다.

질문 74에서 이 사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언약의 표식인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교회에 반드시 허입되어야 하는 동시에 불신자들의 자녀와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결 론

이렇게 구약에서 시행되었던 할례 예식은 신약시대에 와서 세례로 그 시행이 바뀌었다. 이는 구속 역사의 흐름을 볼 때 세례를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하셨음이 분명해 진다. 이는 세례를 통하여 ‘육적 몸을 벗고 그리스도의 할례’(골 2:11-13)를 받는 것이며 이는 예수와 함께 죽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 모든 죄를 사함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골 2:12,13; 롬 6:1-6)

오늘날 재(再) 세례파인 대부분의 침례교회는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의 전체적인 언약의 흐름을 볼 때 언약 백성인 부모가 자기에게 허락해 주신 믿음의 자식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아이에게 있기를 소원하여 그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성경적으로 올바른 믿음의 행위라 할 것이다.

부모는 그 자녀가 진리의 말씀 안에서 더욱 더 신실한 믿음과 삶을 구별되게 지켜가며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구성원으로써 바른 신앙을 고백하며 자신의 일들을 성실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여 지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설령 유아세례를 받게 했다고 하더라도 부모 된 자들이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자녀의 신앙에 대한 성실한 의무 즉 기도와 말씀으로 양육하는 의무를 망각하고 유아세례를 형식적으로 받게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언약의 은혜와 그에 따른 혜택은 그릇되게 사용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주께서 성도들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의 수단들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큰 책망이 있을 것을 명심해야 할 줄 안다.(*) 글쓴 이 / 박병은 목사(덴버 둘로스장로교회 담임)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