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37) 성찬(1) : 기념, 소망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37) 성찬(1) : 기념, 소망

제 28 주일(문 75-77)

요절 :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 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문 75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단 한 번의 희생을 통하여 완성 하신 희생제사와 그의 모든 혜택을 함께 나누는 것을 당신이 참 여하는 성찬을 통하여 어떻게 깨닫고 확증할 수 있습니까?

답 :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그리고 자신을 기억하며 이 뗀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라고 명하시고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 첫째, 직접 나의 눈으로 주의 떡이 나를 위해 찢어지고 그의 잔이 내게 분배 되는 것을 내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확실하게 그의 몸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바쳐졌고 찢어졌으며 그의 피도 나를 위하여 흘리셨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확실한 표적으로서 주 님의 떡과 잔을 목사의 손에서 받아 실제로 입으로 맛보는 것처럼 확신컨대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몸과 흘리신 피로서 나의 영혼을 영생에 이르도록 확실히 먹이시고 양육하십니다.

문 76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몸을 먹고 흘리신 피를 마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그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고통과 죽음을 믿는 마음을 가짐으로 사죄와 영생을 얻게 될 뿐 아니라, 주께서 당하신 모든 괴로움과 죽 음을 받아드리며 따라서 사죄와 영생을 얻을 그뿐 아니라, 한 걸 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우리 가운데서 동일하게 거주하시는 성령에 의하여 우리가 그의 거룩한 몸으로 주님의 거 룩하신 몸에 점점 더 연합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하여 비록 그 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살 중의 살 그의 뼈의 뼈가 되어 마치 몸이 영에 의해서 지배되어 살고 다스림을 받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과 같은 몸의 지체로서 한 성령에 의하여 살고 지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 77 : 그리스도께서 분명하게 약속 하신 바 성도들이 이 떡을 떼고 이 잔을 마실 때 그의 몸과 피로서 성도들을 먹이고 양육하시 겠다고 하신 곳이 어디입니까?

답 : 성찬을 제정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 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또한 이 약속은 사도바울에 의해서 이렇게 가르쳐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축복 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6,17)

성례(聖禮)는 우리 주께서 친히 명하신 거룩한 예식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사건을 ‘기억하고 확신’(remind and assure)하도록 명하신 것으로 이를 행함으로 이 예식에 참여하는 성도가 예수께 속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어떤 선물을 받게 되는 지를 확실하게 알게 하시는 복이 담겨있다.

성례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를 말한다. 요리문답에서는 세례에 대하여서는 두 시간을 성찬에 대해서는 세 시간을 할애하여 공부한다. 그 이유는 성찬의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이를 질문 69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단번의 제사’를 ‘깨닫고 확신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얻게 되는 영적 유익을, 질문 75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단번의 제사와 그의 모든 혜택에 참여’하는 성찬에서 얻게 되는 영적 유익을 배우게 한다. 이러한 질문을 70문과 76문에서도 비슷하게 묻고 있다.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씻겨진다.”는 의미(70문)가 무엇인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그의 흘리신 피를 마신다.”는 의미(75문)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일반적으로 장로교회에서는 적어도 일 년에 두 차례 이상 성찬을 실시할 것을 교회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교회는 성찬을 연 4회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교회에서 성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 주님의 명령

실제로 성찬은 우리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시며 명하셨다.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b) 이 성찬예식을 거행할 때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아니 나를 위하여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해주신 보이는 말씀(Visible Word)을 경험하게 된다.

(1) 주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시행을 명하심

성찬을 ‘주의 만찬’ 즉 성만찬(聖晩餐)이라 부른다. 이는 사람이 제정한 상(床)이 아니라 주 예수께서 친히 제정하신 상(床)이며 거룩한 식사임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는 친히 “받아먹으라, 받아 마시라!”고 명하시며 주셨다. 이는 주께서 친히 우리들에게 주시는 것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눈으로 보고 마시므로 주의 죽으심을 경험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참여할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 11:28)라고 권했다. 이는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철저하게 자신을 살펴 거룩한 주님의 몸과 피에 참여할 것을 명하신 것이다. 그 어떤 체면과 공명심으로 참여해서는 않 될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성찬은 참여자의 믿음의 표시가 아니라 주님의 언약의 표(表)와 인(印)이기에 참여자는 반드시 주님의 언약을 믿고 주께서 베풀어 주신 상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바른 신앙을 가지고 참여하지 못할 경우 실제로 초대교회에서는 심각한 상황 가운데 처했었음을 사도 바울을 지적하여 기록하고 있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고전 11:29,30)

(2) 성찬의 유익에 참여함

주께서 친히 명하시고 시행하게 하신 성찬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에 참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유익은 무엇일까? 성찬은 참여자의 눈으로 목격하게 되는 거룩한 표(表)와 인(印)침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한다. 75문에서 떡을 떼서 잔을 마시는 것은 참여자가 직접 목격하는 바와 같이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몸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바쳐졌고 찢어졌으며 그의 피도 나를 위하여 흘리셨음’을 경험하게 하고 또한 목사로부터 받아든 떡과 잔이 ‘실제로 입으로 맛보는 것처럼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몸과 흘리신 피로서 참여자의 영혼을 영생에 이르도록 확실히 먹이시고 양육하심’을 믿게 한다.

2. 성찬의 시행과 의미

성찬을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으로 시행되는 것인가?

(1) 떡을 나눔(Breaking Bread)

우리 주님은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가지시며 성찬예식을 제정하셨다. 주님은 직접 빵을 가지시고 나누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마 26:26,27)

예수께서는 떡을 나누시며 ‘내 몸’이라고 하셨다. 이는 자신의 살을 찢으심을 실제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시는 시현(示現)인 것이다. 즉 이 행위는 예수께서 직접 자신의 몸을 십자가 위에서 찢으셔서 우리를 위하여 주신 것임을 보여 주신 것이다. 즉 주께서 자신의 몸을 모두 우리를 위하여 주신 것이다. 주님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겨진 나의 몸이니라.”(This is my body which is broken for you)고 말씀하셨다. 즉 이 성찬 예식에 참여하는 성도 한사람 한 사람은 예수께서 직접 자기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살을 찢으시어 우리 대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대신 받으신 희생의 제물임을 알게 한다.

성도는 즉 목사의 손으로부터 받는 떡 한 조각, 포도주 한 잔을 통하여 자기를 대신하여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며 죽어 가신 현장을 직접 느끼고 그렇게 죽으실 수밖에 없으신 이유와 과정 그리고 그 의미를 확실하게 음미하여 고백하도록 하시는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는 것이다.

(2) 잔을 나눔(Share Blood)

식후에 예수께서는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7)고 하셨다. 이 행위는 옛날 서로 간의 약속을 맹세할 때 피를 내어 언약을 체결했던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실제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보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을 볼 수 있다.(참고 창 15:9-17)
이제 그 언약을 예수께서 직접 흘리실 피를 통하여 제자들과 확실하게 체결하려 하시는 것이다. 즉 성찬예식을 통하여 자신의 생명을 상징하는 피로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 예식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초대하여 주시는 것이다. 이 때 주께서는 “이것은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This is my blood which is covenant blood)고 확인시키시고 참여하게 하신다. 즉 이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 한사람 한 사람은 예수께서 직접 자기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셨음을 실제적으로 알고 그 십자가에 자신이 달려야 함을 알아 죽음을 경험하게 하는 효과를 주심으로 대속의 진리를 직접 고백하게 하신다.

(3) 기념 예식

성찬예식은 그 자체가 기억하여 기념하는 예식이다.(memorial ceremony) 이는 구약의 성도들이 시행했던 유월절 음식으로서 기념(기억) 예식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의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해방시켜 자유인이 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초자연적 구원의 역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건을 겪으며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현장 가운데 참여하였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쓴 나물과 누룩 없는 떡을 먹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였던 것이다. 이 절기가 바로 유대인들의 유월절이다.(참고 출 12장)

예수께서도 이 유월절을 지키셨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시면서 자신이 직접 그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셔서 구원의 음식이 되셨다. 이것이 주께서 제정하신 첫 성찬예식이다. 주님과 제자들은 이 날 저녁에 과거 자기 조상들이 경험했던 그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이 날에 거행된 이 예식에서 주님과 그의 제자들에게는 성찬예식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 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즉 하나님의 구원이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구원 사건만이 아니라, 지금도 이 예식을 통하여 생생하게 이루어지는 역사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역사적 사실을 믿고 참여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역사는 이 성찬예식에 참여하는 모든 자에게도 온전히 전달되게 된다.

3. 한 몸 되게 하시는 양육

그러면 성도가 이처럼 성찬예식에 참여함으로 얻게 되는 놀라운 은혜와 신령한 축복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이 예식에 참여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요 한 지체로서 그와 연합됨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우리가 축복 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6,17)

이 말씀은 참된 성도가 되는 과정이 어떤 것임을 알게 한다. 정규적인 성찬에 참여하며 이 깊은 말씀의 의미를 사모하여 자신을 이 진리에 연합시키며 참여하는 성도는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심으로 주님의 생명과 구원이 주어지는 언약의 뜻을 자기의 것을 삼아 날마다 영적으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피에 정규적으로 참여하는 그 성도는 날마다 예수의 몸이요, 예수의 생명을 소유한 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는 바로 그 사람이 단순히 정신만이 아니라 실제로 예수의 생명을 소유한 자로서 스스로 예수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의 삶 자체가 예수의 삶이 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점으로 그러나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는 여전히 연약한 죄인이요 세상 역시 죄악이 관영한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신실한 성도는 반드시 정규적으로 성찬에 참여하여 죄 사함을 받고 주님의 거룩한 언약 백성 됨을 확신하고 살아가면서 새로운 도전과 각오와 헌신을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진리를 질문 76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몸을 먹고 흘리신 피를 마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고통과 죽음을 믿는 마음을 가짐으로 사죄와 영생을 얻게 될 뿐 아니라, 주께서 당하신 모든 괴로움과 죽음을 받아드리며 따라서 사죄와 영생을 얻을 그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우리 가운데서 동일하게 거주하시는 성령에 의하여 우리가 그의 거룩한 몸으로 주님의 거룩하신 몸에 점점 더 연합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하여 비록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살 중의 살 그의 뼈의 뼈가 되어 마치 몸이 영에 의해서 지배되어 살고 다스림을 받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과 같은 몸의 지체로서 한 성령에 의하여 살고 지배되는 것을 의미한다.

4. 기념과 소망의 예식

또한 77문에서 다루고 있는 성찬에 대한 기념과 소망의 메시지는 성찬에 참여하는 자에게 주어짐을 알게 한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고린도전서 11:23-26과 고린도전서 10:16,17에서 다루고 있다. 이 두 구절은 성찬에 참여함의 의미와(고전 10장) 지속적인 성찬에 참여함이 갖는 기대와 소망을(고전 11장)을 담고 있다.

즉 성찬에서 시행되는 잔과 떡에 참여함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며,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며(고전 10:16,17), 이 거룩한 언약의 예식은 예수께서 명하신 것으로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는 말씀과 같이 주께서 다시 오실 때를 소망하며 기대 가운데 시행하게 되는 거룩한 예식인 것이다.

결 론

성례는 주 예수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주신 복음의 약속을 성도들이 자신의 눈으로 직접보고 또 스스로 직접 참여하는 예식이다. 이 예식이 갖는 거룩한 의미는 비록 간단해 보이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심오하고 참여하는 자에 주어지는 신령한 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과거에 있었던 구원 사건의 역사적 지식을 통하여 실제로 참여하는 자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놀라운 구원의 체험과 고백을 통하여 장차 완성될 영광스러운 구원을 기대하고 소망하게 한다.

또한 성찬은 예수께서 이루신 복음을 참여자의 눈으로 친히 목격하고 친히 참여하는 구원의 복음을 경험하게 한다. 이 예식은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이 신령한 구원의 현장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소망 가운데 완성될 그 영광스러운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바라보게 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지금 현재 그 구원의 완성을 체험하게 하는 신비스럽고 은혜로운 언약식이다.

이 얼마나 신비스럽고 놀라운 예식인가! 그러기에 성도들은 성찬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성령께서 이루시는 ‘주님과의 연합’을 확신하여 장차 완성될 그 나라를 ‘소망’하면서 성찬 예식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 상(床)에 나아갈 때 마다 이 놀라운 구원을 기억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신령하신 은혜를 사모해야 할 것이다.

바라기는 개 교회에서 1년에 몇 차례씩 시행하는 성찬식에 항상 진실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잘 준비하고 참여하여 그 영광스러운 언약의 완성을 확신하면서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며 그때 마다 주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온전히 임하기를 소원한다.(*) 글쓴 이 / 박병은 목사(덴버 둘로스장로교회 담임) < 다음에 계속 >

< 참고 : 개혁자들의 성찬에 대한 이해 >
(1) 루터의 공재설(共在說, consubstantiation) / 로마 가톨릭교회의 화체설은 성찬 의 떡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실제적으로 변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루터의 공재설은 그것들의 본질이 변하지는 않고 대신 그리스도가 그 요소들의 “안에, 함께, 아래에, 몸으로” 임재하신다고 주장한다.

(2) 쯔빙글리의 기념설(記念說, memorialism) / 성만찬을 단순한 기념으로 해석하는 견해로 개혁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린도전서 11장을 근로 성만찬에 대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그 이상의 뜻이 없다고 말한다. 즉 성만찬은 죄의 대속물로 죽으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이다.

(3) 칼빈의 영적 임재설(靈的 臨在說, spiritual presence) / 성만찬의 현장에 말씀과 성령의 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임재 하신다고 해석했다. 그에 의하면 성례전은 눈에 보이는 징표로서 우리에게 영적인 모든 일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외부적 증명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여러 약속 을 우리 마음에 한층 더 강하게 각인하여 우리가 그 약속을 보다 더 확실 하게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