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39) 신령한 교제의 식탁(3)

제 30 주일(문 80-82)

요절 :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 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 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고전 10:20,21)

문 80 : 주의 만찬과 천주교의 미사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답 : 주의 만찬은 친히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완수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가 완전하게 사해졌음을 우리에게 확증합니다. 또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에게로 접붙임을 받았다는 것과 그의 참된 몸은 지금 지상이 아닌 천상에 계시며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 경배를 받고 계심을 확증합니다.
그러나 미사는 살아 있는 자나 이미 죽은 자들을 위하여 사제 들이 계속하여 매일 그들을 위해서 드리는 미사 없이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도 죄가 용서받을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그리 스도는 떡과 포도주의 형태로 육체로 계시기 때문에 그러한 근거 위에서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미사는 근본 적으로 단번에 드린 제사와 고난을 부인하는 것 일 뿐이기에 저주 받아야 할 우상숭배입니다.

문 81 : 어떤 사람들 위하여 주의 만찬이 제정되었습니까?

답 : 참으로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슬퍼하는 사람, 여전히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신들이 용서받았음을 신뢰하는 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연약성도 가 려졌음을 믿는 사람, 또한 자기들의 믿음이 더욱 강해지고 자신들 의 삶을 바꿀 것을 더욱 원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지 않는 자들 즉 외식 자들 은 그들 자신들에게 임할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문 82 : 고백과 생활로 스스로 자신들은 불신자임을 나타내며 자신들 은 믿지 않으며 경건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도 이 성찬이 허용됩니까?

답 :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언약이 더럽혀져서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회중에게 미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 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교회는 그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고칠 때 까지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여 성찬에서 제외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지난 공부에서 성찬에서 사용되는 떡과 포도즙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았다. 화체설과 기념설 모두 합당하지 않고 성찬을 통하여 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였다. 이제 이렇게 중요한 성찬의 성격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한다.

핵심은 성찬상이 ‘식탁’인가 아니면 ‘제단’인가 하는 것이다. 주 예수께서 이 식탁을 마련하시고 제자들을 참여시킬 때 그것은 분명 ‘식탁’이었지 제단이 아니었다. 이는 곧 우리가 주께로부터 받는 신령한 양식이 되어 주님과 함께 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식탁이었다. 그러나 천주교가 주장하는 화체설은 ‘희생당하신 주님의 거룩한 살과 피에 대하여 제사를 드리는 제단’이다. 여기에는 절대 교제가 있을 여지가 없다. 이 같은 성찬의 의미에 대한 차이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알게 된다.

이제 30번째 주일에서는 개신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성찬과 매번 모일 때 마다 시행하는 천주교의 미사와 어떤 차이가 있으며 그 관계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 성찬에 참여자와 참여해서는 안 될 자의 자격 조건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성찬과 미사의 차이점

80문에서는 성찬의 성격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고 화체설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을 가한다. 이는 성찬과 미사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1) 주의 성찬(Lord’s Supper)

예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 주간에 제자들과 함께 반드시 유월절 만찬을 갖기 원하셨다. 이 일정을 정하심에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제자들과 함께 가진 만찬석상의 주님이 하신 말씀에서 짐작할 수 있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 22:15) 주님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써 새 언약을 제정하시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만찬 석상에서 친히 “떡을 가지 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 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도가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성찬에 참여할 때에는 다음 세 가지 사항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성찬은 참여자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 죄가 용서 됨을 보여준다.

참여자 각자가 저지른 심각한 죄의 문제 즉 하나님을 대적하고 온 인류에게 전가되어 내려오는 원죄와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처벌받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심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성찬을 통하여 죄의 용서가 시행됨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신 자라.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 7:26,27)고 주님의 대속의 의미를 분명하게 밝혔다. 성도가 성찬에 참여할 때 적용되고 확증되는 사죄의 은총이 그 속에 담겨 있다.

둘째, 성찬에 참여자들은 성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 나가 되는 영적 축복을 누리게 된다.

사도 바울은 성찬에 참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신령한 은혜를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6,17)라고 밝혀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누리게 되는 주님과의 복된 신령한 교제를 강조하였다. 그래서 성찬을 ‘교제’(交際, communion)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이는 주님의 식탁에서 임재하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시는 양식을 받아먹고 또한 함께 나누며 ‘거룩한 교제’(holy communion)를 나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귐(교제)은 장차 완성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완성된 교제를 확신하고 소망하며 참여한 식탁에서 주님과 그리고 함께 형제 자매된 성도들과 함께 영원한 교제를 나누게 되는 것이며 이로써 구원을 완성하신 주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은 지금도 살아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며 찬양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말씀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찬에 참여함으로 누리게 되는 복된 은혜가 바로 거룩하신 주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셔서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기억하고 찬양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옛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 3:1-3)

이러한 찬양은 바로 예수와 연합됨을 고백하는 성찬에 참여함으로 극대화되는 것이다. 즉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한 바와 같이 주께서는 오직 한 번의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최후 심판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시다.(참고 히 10:12,13)

이상의 말씀에서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에게는 고질적인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임을 확증 받고 지금도 살아 계시는 그 주님께 경배를 드리는 복된 은총을 누리게 된다.

(2) 미사(Mass)

천주교에서는 매 집회마다 성찬 즉 미사(Mass)를 갖는다. 그리고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로 성찬을 설명한다. 화체설은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제공되는 떡과 잔이 바로 예수님의 살이고 피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그들은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예수의 살을 먹고(식인, 食人) 예수의 피를 마시는 것(흡혈, 吸血)이다. 이 말은 사제가 매일 매일 미사를 드림으로 예수께서는 그때마다 피 흘려 죽으심이 반복됨을 의미하게 된다.

한편 천주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거룩하기에 오직 사제들이 집전하는 미사를 통해서만 제공되고 이 미사에 참여하는 자만이 죄 사함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성도들은 반드시 미사에 참여해야만 되는 것이다. 이는 미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영원히 죄 사함을 받을 기회조차 없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한편 미사 시에 사용되는 떡과 잔은 바로 예수님의 몸이요 피 이기에 그 자체가 경배의 대상이 된다고 가르친다. 즉 성찬상은 제단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예수께서 성찬을 제정하실 때 하셨던 말씀의 의도에 비추어 볼 때 아주 멀리 빗나간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죄이다. 우리 주께서는 성찬을 제정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

주님은 “떡은 내 살이고 포도즙은 내 피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단지 이 예식을 통하여 자신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기억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결코 주님의 떡과 잔을 경배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거룩한 성찬 상(床)을 경배의 대상으로 설정하여 제단화하고 그 물질 즉 떡과 포도주를 살과 피라고 우기며 이를 숭배하라고 가르치므로 성찬예식을 우상숭배 제도로 변질시켰다.

80문의 마지막 문장 “그러므로 미사는 근본적으로 (주님의) 단번에 드린 제사와 고난을 부인하는 것일 뿐이기에 저주받아야 할 우상 숭배입니다.”에서 ‘저주받아야 할 우상숭배’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즉 천주교 트리엔트공의회(Trent council, 1545-1563)에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믿는 개신교 신자들은 저주받을 자들’이라고 공식선언하고 화체설을 재확인했다는 결정에 대해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 1831-1888)가 듣고 삽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역사적인 상황에 매여 있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화체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주님의 성찬을 우상숭배로 전락시키고 또한 타락시킨 것을 알게 된다면 이러한 말을 삽입한 것은 바른 것이라 하겠다.

종교개혁자 쯔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는 성찬에 대해 ‘기념설’(紀念設)을 믿고 가르쳤다. 그는 성찬은 단순히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라 이해했다. 그러나 칼빈(J. Calvin, 1509-1564)은 누가복음 22:18의 말씀대로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성찬상에 임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영적 임재’를 주장하였다.

그는 비록 빵과 포도주가 물질 그대로 있는 성찬상이라 하더라도 성령께서는 대속의 진리를 믿고 참석한 자에게 역사하셔서 그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통하여 그 자리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주님의 임재하심을 즐길 수 있다고 가르쳤다. 즉 참여자의 영적 상태가 어떠하냐에 따라 주님의 임재에 대한 신비스러운 체험이 주어진다고 가르쳤다. 그 신령하고 신비스러운 체험은 앞에서 언급한바 1)사죄의 은총, 2)영적 연합과 교제, 3)영원한 찬양과 경배 등 이 세 가지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2. 성찬 참여자들에 대한 조건

81문에서는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의 조건에 대하여 가르치며 동시에 조건에 합당치 못한 자들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또한 82문에서는 신중하지 못한 성찬 참여자들에 대한 지침도 가르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와 마음가짐과 함께 강력한 경고를 담아 가르쳤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 11:27-29)

사도 바울은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먼저 자기 자신을 세밀하게 살피고 참여할 것을 명했다. 이는 참여자가 자신이 지나온 삶을 점검하고 마땅히 성찬에 참여할 만한 자신의 모습인 지를 살핀 후 신중하고 진지하게 참여 여부를 결정할 것을 권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여치 못하리라.”(고전 10:18-21)

이런 차원에서 교회는 세례 받은 자들만 성찬에 참여할 것을 권하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조건이 차별을 두는 것이 아닌가 하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이 신령한 예식의 영적으로 심오한 의미를 생각할 때 아무나 참여시키는 것은 우선 그 참여자들에게 깊은 영적 상처를 주게 될 뿐 아니라, 성찬을 거행하고 이에 참여하는 공동체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정죄 당할 것이 분명하기에 성찬에는 신앙고백을 한 자들(세례 받은 자)에게만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 하겠다.

실제로 초대교회 때에 교회가 잘못된 성찬예식을 시행함으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음을 암시하는 바울의 기록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고전 11:30) 성경의 가르침이 이러함에도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 예배에 참여한 자 모두에게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열어두고 참여시키는 경우들도 종종 본다. 이는 어디까지나 신령한 예식인 성찬의 성경적인 의미에 맞도록 신중하게 시행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라 하겠다.

성경대로 성찬에 바르게 참여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그러므로 성찬은 주님의 만찬이며 교제이며 장차 누릴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소망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참여해야 한다. 이는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혼인예식에 예복을 입고 참여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마 22:12), 이는 주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하게 된 자가 깨끗한 세마포로 만든 흰 옷을 입고 참여하게 되는 영원한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바라보고 참여해야 하는 신령한 예식인 것이다.(참고 요계 3:4,5, 7:9)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그저 형식적인 참여가 아니라, 자신을 살피며 그 예식이 신령한 예식임을 분명하게 인식하여 참여해야 한다. 성도가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자신을 살피는 과정 속에 고려해야할 사항이 있다.

첫째,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 겪고 있는바 자신의 신세에 대한 절박한 통회와 자백이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자신의 죄가 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여전히 죄 가운데 살고 있으나 이러한 연약함이 주님의 대속으로 가려져 담대히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음을 믿는 믿음이다.

셋째, 이러한 믿음 가운데 성찬에 참여하여 새로운 믿음과 확신으로 더 성숙된 삶을 살기로 작정하는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자인 것이다.
이러한 성도들만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새 언약 예식이 자신들을 위한 것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자세로 참여하게 되어 성찬이 주시는 신령한 은혜들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3. 성찬에 대한 교회의 책임

주의 성찬은 신령한 예식일 뿐 아니라 매우 복된 자리이기에 이 거룩한 성찬에 참여하려는 자는 앞에서 살핀 대로 자신을 점검하고 참여하기 위한 신실한 준비가 전제된다. 또한 이를 집례 하는 교회와 성직자 역시 주 예수께서 친히 제정하신 이 새 언약 예식이 가볍게 그리고 의미 없이 시행되지 않도록 각별한 의식(意識)을 가지고 신중하고 신령하게 집행해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점에서 천주교회의 미사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성찬예식에 두었던 것이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고백하며 그 분과 연합하고 장차 완성된 구원을 바라보고 참여하는 신령한 예식이다. 이는 참여하는 개인에게만 주어지고 요구되는 것일 뿐 아니라 교회에게도 요청되는 바이다. 즉 교회는 참여할 자격이 있는 성도들에게 스스로 참여의 여부를 결정하도록 가르치고 격려해야 하며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신령한 역할(사역)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82문에서는 이를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여 그러한 자들이 생활을 돌이킬 때까지 성찬에서 제외시킬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였다. 이는 교회가 갖고 있는 성도들을 지도할 영적 책임이 주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즉 권징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 특히 성찬에 참여할 수 없는 규정(수찬정지)을 두어 성도들이 일상생활에 있어서 경건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게하고 자신의 영적 회복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성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교회의 역할에 대하여 주님께서도 성도들을 영적으로 다루어 갈 때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여 문제를 해결할 것을 예로서 설명하셨음을 본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7) 또한 사도 바울도 교회가 이러한 영적 지도에 있어서 전체가 책임이 있음을 명시하였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살후 3:13-15)

결 론

주님의 교회는 성찬을 통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미 이루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 주어진 거듭난 자녀임을 확신하고, 현재 누리고 있는 믿음으로 예수와 함께 연합을 고백하며, 장차 임하실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고 그 때에 이루어질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믿음과 장차 완성될 구원의 소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새 언약의 풍성한 잔치이다.(*) 글쓴 이 / 박병은 목사(덴버 둘로스장로교회 담임)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