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개혁주의 교회 신앙고백(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1 장 성경에 대하여

1. (인간의) 본성의 빛(light of nature)과 창조의 섭리의 사역 가운데

1) 하나님의 선하심과
2) (하나님의) 지혜와
3) (하나님의) 능력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어서
4) 아무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가 없다.(롬 2:14-15,1:19-20, 시 19:1-3, 롬 1:32,2:1)
5) 그러나 인간의 본성의 빛과 자연만물들은 통해 인간이 하나님과 그 의 뜻을 아는 지식을 얻는 데는 불충분하다.(고전 1:21, 2:13-14)
6)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 시대에, 그리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히 1:1)
7) 자기의 교회에 자신의 뜻을 선포하시기를 기뻐하셨으며
8) 그 후에는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그리고 육신의 부패와 사탄과 세상의 악에 대비하여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하며, 위로하시기 위해서
9) 바로 그 진리를 온전히 기록해 두시는 것(성경)을 기뻐하셨다.(잠 22:19-21, 눅 1:3-4, 롬 15:4, 마 4:4,7,10; 사 8:19,20)
10) 이 같은 이유로 기록 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딤후 3:15, 벧후 1:19)
11)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직접 계시해 주시 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단되었다.(히 1:1-2)

< 해설 > 성경에 관하여본 항목은 10개로 세분화되었다. 여기에서 본 신앙고백은 어거스틴과 칼빈의 전통을 따라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직접 계시해 주신 ‘자연의 빛’ 혹은 자연계시를 인정하지만, 죄로 인하여 흐려져 있고 억눌림을 받음으로 성경(the Holy Scripture)이 아니고는 아무도 ‘구원을 위하여 꼭 필요한 하나님 지식과 하나님의뜻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여러 모양으로 계시하셨고, 그의 뜻을 교회에 선포하셨다가 그것을 그 후에 기록케 하셨다. 즉 본 성경론은 기록이 아닌 계시형태(선포, 구전 등)를 먼저 말하고 그 다음 기록된 계시를 언급하였다.

2. 성경(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는 지금 신구약에 있는 다음과 같은 모든 책들이 포함된다.

1) 구약 39권(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혜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2) 신약 27권(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3) 이 모든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으로, 신앙과 생활의 법칙이 된다.(눅 16:29,31, 엡 2:20, 계 22:18,19, 딤후 3:16)

< 해설 > 따라서 여기에서는 기록된 말씀의 정경성(正經性)을 주장하되 루터, 칼빈,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들이 말하는 신구약 66권을 말한다. 이 66권은 성령으로 영감 된 문서로서 ‘신앙과 삶(信仰生活)’ 규범(規範)이라고 한다.

3. 일반적으로 ‘외경(外經)’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1) 신적 영감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의 정경의 일부가 아니며
2)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아무 권위가 없고
3) 또한 다른 인간적인 저작물보다 더 나을 것이 없으며
4) 사용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눅 24:27,44, 롬 3:2, 벧후 1:21)

< 해설 > 66권 이외의 외경은 영감(靈感) 된 문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트렌트 공의회이후 로마 가톨릭교회는 외경(14개 정도)을 경전에 포함시켜 왔다.

4. 성경에는 (신적)권위가 있다.

1) 그 (신적)권위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2) 성경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 니고, 그것의 저자요,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달려 있다.
3)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벧후 1:19-21, 딤후 3:16, 요일 5:9, 살전 2:13)

< 해설 > 성경의 권위는 교회나 어느 학자(學者)의 권위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저작자이신 하나님’에게 달렸다고 본다. 궁극적으로는 어떤 논리적 이유나 학문적 근거도 성경의 권위를 증명할 수 없다.

5. 우리는 교회의 증거에 의하여 감동(感動)과 권유(勸諭)를 받아

1) 성경을 아주 고상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데까지 이를 수가 있다.(딤전 3:15)
2) 그리고 성경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용의 신령함, 교훈의 효험, 문체 의 웅장함, 모든 부분의 내용상의 일치성, 내용 전체의 목표(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 인간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을 밝혀 주는 충분한 내용 전개, 이 외에도 많은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점들 그리고 성경의 전체적인 완전성 등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충분하게 입증해 주는 논증들이다.
3)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무오한 진리요,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충분하게 납득하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말씀에 의하여 말씀을 가지고 증거 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에 의해서이다.(요일 2:20,27, 요 16:13-14, 고전 2:10-12, 사 59:21)

< 해설 > 따라서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는 이미 성령에 의하여 영감 된 진리이기 때문에 ‘성령의 내적인 증거’(칼빈의 주장)가 없이는 우리에게 확신 있게 들릴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양 무리는 성령이 성경을 통하여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요 10:27)

이상 다섯 가지는 성령과 성경말씀에 관하여 언급하며, 다음 다섯 가지는 성경해석의 문제를 논한다.

6.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 신앙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에 관하여

1)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모든 계획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거나
2) 아니면 선하고 적절한 추론에 의하여(필연적인 결론에 의해) 성경에서 연역될 수가 있다.
3) 그러므로 이 성경에다 성령의 새로운 계시에 의해서든지 혹은 인간들의 전통에 의해서든지 아무 것도 어느 때를 막론하고 더 첨가할 수가 없다.(딤후 3:15-17, 갈 1:8,9, 살후 2:2)
4) 그러나 말씀으로 계시되어 있는 그러한 것들을 구원론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하나님의 성령의 내적 조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 다.(요 6:45, 고전 2:9-12)
5)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교회의 정치에 관하여는, 인간적인 활동이나 단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어떤 격식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6) 이러한 격식들은 반드시 준수되어야 하는 말씀의 일반적인 법칙들을 따라서, 본성의 빛과 기독교인의 신중한 사려 분별에 의하여 정해져야 하는 것이다.(고전 11:13-14, 14:26,40)

< 해설 > 성경은 중심 메시지를 갖는다. 성경은 모든 종류의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지는 않는다. 성경은 백과사전이 아니다. 성경은 인문, 사회과학, 예술, 자연과학, 수학, 물리학 등의 물음에 대하여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요, 이와 같은 학문적 차원의 내재적(內在的) 진리들과 결코 같은 차원의 진리일 수 없다. 그 중심 내용은 ‘하나님의 영광, 인간의 구속, 신앙, 그리고 기독교적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에 관한 메시지이다. 성경은 이 중심 메시지 이외에 ‘하나님 예배와 교회정치에 관한 일반적인 규정들’도 내포하고 있으니 이와 같은 것들은 기독교인의 양식에 따라 사용 될 수 있다.

7. 성경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가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명백 하거나,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분명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벧후 3:16)

1) 그렇지만 구원을 얻기 위해서 알아야 하고, 믿고 지켜야 할 필요가 있 는 것들은 성경 안에 여러 곳에 아주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고 밝혀져 있기 때문에
2) 유식한 사람뿐만 아니라 무식한 사람일지라도 통상적인 방법을 적당하게 사용하기만 하면 그것들을 충분하게 이해할 수가 있다.(시 119:105,130)

8. 히브리어로 되어 있는 구약성경(히브리어는 옛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용한 원어)과 헬라어로 되어 있는 신약성경은(헬라어는 신약 성경이 기록될 당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국제어)

1) 하나님에 의해 직접 영감 되었고
2) 또한 하나님의 비상한 보호와 섭리에 의해 예나 지금이나 순전하게 보존 되었기 때문에
3) 그러므로 신임할 만하다.(마 5:18)
4) 그러기에 모든 종교적 논쟁에 있어서 교회는 최종적으로 성경에 의존 해야 하는 것이다.(사 8:20, 행 15:15, 요 5:39,46)
5) 또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은 성경을 가질 권리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6)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도록 명령 받았지만 (요 5:39) 성경의 원어를 모든 사람이 아는 것은 아니다.
7) 그러므로 성경은 성경이 전수(傳受) 된 모든 나라의 자국어로 번역되 어야 한다.(고전 14:6,9,11-12,24,27-28)
8)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풍성히 거하게 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합당한 방법으로 예배할 수 있게 하며
9)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를 통하여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골 3:16, 롬 15:4)

< 해설 > 7, 8은 성경해석의 두 가지 접근을 서술한다.

1) 하나는 이미 논한 성경의 중심 메시지인‘신앙과 행위’ 혹은 ‘구원과 기독교적인 삶’을 성경해석의 출발로 삼는 것이다. 이 중심 메시지는 설교, 세례, 성만찬, 성경읽기, 기도 등 은총의 수단들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로 학식이 있는 자에게나 없는 자에게나 분명히 이해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성경의 중심 메시지인 동시에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주관적으로도 성경의 중심 메시지이다. 성경해석자는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무엇보다 이 중심 메시지를 이해하고 삶의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 즉 ‘신앙과 행위’ 혹은 ‘구원과 기독교적 삶’이 그 다음 단계의 성경해석의 출발이요,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즉 히브리어, 희랍어, 성경 본문의 문제,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역사적 배경 등에 대한 이해는 기독교인 됨을 전제한다.

2) 그래서 두 번째 접근방법은 위에서 말한 것이 성경 중 분명한 중심 메시지라고 볼 때 이것보다 덜 분명한 다른 부분들은 이 중심 메시지에 비추어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해야 하고 이미 경험한 구원의 신앙과 성경의 중심 메시지를 파악하고 이 신앙 내용에 유추(analogia)하여 다른 부분들을 이해해야 한다. 성경 중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미 이해된 부분에 의하여 이해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9. 성경 해석을 위한 무오(無誤)한 법칙은 성경 자체이다.

1) 그러므로 어떤 성경 귀절의 참되고 완전한 의미에 대하여 의문이 생긴 때에는(참되고 완전한 의미는 여럿이 아니고 하나뿐임)
2) 보다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다른 귀절을 통해서 연구하고 알아내야 한다.(벧후 1:20,21, 행15:15-16)

< 해설 > 그래서 가장 훌륭한 성경해석자는 성경 자신이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성경해석 원리이다. 사회학적 원리나 심리학적 원리와 같은 성경 밖으로부터 온 낯선 원리들이 아니라 성경 자체로부터 끄집어 낸 원리들이성경을 다시 해석하는 원리가 되어야 한다.

10. 최고의 재판관(裁判官)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성령 외에는 다른 아무도 될 수 없다.

1) 이 재판관에 의하여 종교에 관한 모든 논쟁들이 결정되어야 하고
2) 교회회의의 모든 신조들과, 고대 교부들의 학설들과, 사람들의 교훈들과, 거짓 영들(private spirits)이 검토되어야 하며
3) 그의 판결에 우리는 순복해야 한다.(마 22:29,31; 엡 2:20; 행 28:25)

< 해설 > 따라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성령께서만이 최고의 판단자이시다. 말씀과 성령의 긴밀한 연결은 이성과 교회의 전통을 존중하는 로마 가톨릭교회나 영국 성공회, 그리고 말씀을 떠나 성령만을 강조하는 좌경화 종교개혁 계통을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