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요점(5)

< 1부 > 개혁신앙의 원리들

1. 오직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는 원리
2. 하나님 중심의 원리
3. 오직 믿음으로의 원리
4. 신자의 삶 강조의 원리
< 2부 > 개혁신앙의 핵심교리들 21)
1. 성경론(계시론) < 계속 >

1. 성경론(계시론)

(1)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계시란 하나님께서 자신에 관해 숨기셨던 것을 알려주시는 것으로서, 성경 말씀은 그러한 하나님의 계시들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로 나누어지는데, 일반계시는 창조사역에 기초하여 창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계시로서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하지만, 특별계시는 재창조(구속사역)에 기초하며,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들을 구원하려는 목적을 위해 주어진 계시를 가리킨다. 따라서 성경은 특별계시에 속한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 1권에서 일반 계시를 논하면서, 특별계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로마서 1:19 이하에서 바울은 일반계시의 확실성을 말해주는데, 자연과 우주만물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과 영광이 확실하게 전달되어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인간들 안에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죄인 된 인간은 불의한 마음으로 그러한 자연 계시들을 거부하거나 왜곡시키는 가운데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롬 1:18)

바로 그와 같은 인간의 절망적인 상태로부터의 회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해결책으로 제시해주신 것이 특별계시인 것이다. 따라서 특별계시는 치료적인 성격을 지닌다. 칼빈은 안경에 비유해서 특별계시인 성경을 설명한다. 시력이 나쁜 사람도 안경을 쓰고 자연만물의 모습을 바르게 볼 수 있게 되듯이, 죄인 된 사람들도 성경계시(특별계시)를 통해서 자연만물들 속에서 제시되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신성들을 바르게 읽을 수 있게 된다고 보았다.

(2) 성경계시(특별계시)의 성격

성경계시를 신구약의 전 역사 속에서 전체적으로 조망해주는 구절은 히브리서 1:1,2 상이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구절에서 중심주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 즉 계시사건을 말하고 있는데, 1절은 구약에서의 계시를 그리고 2절 상 반절에서는 신약에서의 계시를 비교하고 있다. 그 구절들은 성경계시의 성격들에 대해서 3가지를 말해주고 있다.

1) 계시의 통일성

하나님의 계시는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언제나 동일하신 한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내용들과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계시 말씀들은 모두 같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계시이므로 하나의 통일성을 지닌 계시가 되는 것이다.

2) 계시의 역사성

구약에서의 계시도 이스라엘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속에서 주어졌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는 초역사적인 계시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역사 속에서 주어진 계시인 것이다.

3) 계시의 중심이며 완성 자 되신 예수님

구약에서부터 주어진 하나님의 모든 계시들은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 되신 예수님의 계시’ 안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고 종결된 것으로 봐야한다. 따라서 예수님 이후에는 더 이상 어떠한 형태의 새로운 계시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의 계시 안에서 완성된 성경계시는 그것으로서 인간의 구원과 신앙생활에 필요한 하나님의 뜻이 충족히 담겨있는 계시말씀이 되는 것이다.(성경의 충족성)

여기에서 우리는 현대교회에 새로운 신학적 이탈자인 ‘신사도 운동’의 오류를 지적해볼 수 있다. ‘신사도 운동’은 초대교회에서 활동했던 사도들의 시대는 1세기에 일차 마감되었고, 그 이후 1900년 간 침묵하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 하나님이 새로운 사도시대를 열었다는 주장이다. 그‘신(新) 사도(使道)’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대에 또 다시 새롭게 계시의 말씀들을 주신다는 주장은 히브리서 1:1,2에서 말씀하는 계시에 대한 가르침과는 전혀 맞지 않는 비성경적인 사상인 것이다.

(3) 특별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의 성격

1)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으로 역사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을 만들고, 만물을 조성하는 능력의 말씀이다.(시 33:6)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이 의도하는 바를 언제나 효과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히브리서 4:12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오늘도 신자들이 성경공부를 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대면하고 있는 것이며, 복음전도자는 그 하나님의 능력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롬 1:16)

2) 그것은 또한 의미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는 말씀이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무의미한 초능력’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전달해주는 의미 있는 ‘능력’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위대한 역사를 이뤄내지만, 동시에 그 말씀은 의미 있는 내용을 전달해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 위대한 역사를 이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위대한 역사의 의미들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은 능력만을 바라보고 그 능력의 참 의미는 몰랐기 때문에 어리석은 질문을 했었던 것이다.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들을 통해서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과 계시의 바른 의미들을 깨닫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하겠다.

3)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시는 말씀이다.

인간도 자신의 말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 생각, 사상들을 드러내주게 되듯이, 하나님도 그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시며, 그의 계시는 그 분의 성품을 드러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말씀을 통해서 그 분을 만나게 되고, 그의 영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살전 1:5 딤후 3:16 벧후 1:21)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은 곧 그 분을 가까이 하는 것과 같다. 그러한 점에서 성경을 인간의 글이라고만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의 가르침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바울도 만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면전 앞에 서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4) 성경책 숭배(bibliolatary)의 어리석음은 주의하라.

성경이 하나님을 나타내 주는 것이 사실이나 그렇다고 우리는 성경책을 하나님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성경책 자체는 하나님의 존재에 필수적 요소가 아니며, 또한 사도행전 8:18,19의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 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한 것과 같이 성경책의 공간22)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가 세워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 ‘책’ 자체를 신성시하거나 우상시하는 태도는 바른 태도가 아닌 것이다. (물론 성경책을 소중히 취급하고 잘 간수해야하는 것이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즉 우리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지 책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5) 정통신학의 성경관에 대한 신정통주의의 비판은 옳지 않다.

신정통주의 자들은 정통신학자들이 인간이 기록한 인간의 글인 성경을 신적 권위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것이 바로 성경책 숭배(bibliolatry)라고 말한다. 즉 정통신학자들은 인간의 저술인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하려하기 때문에 성경책 숭배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들 즉 성경의 일차적인 의미들을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하는 것은 결코 우상숭배의 죄가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은 인간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계시 말씀이기 때문이다.

4) 성경무오에 대한 현대신학과 복음주의의 이탈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라면 그것은 무오(無誤)한 책이어야 한다. 위의 제 1부 항목 1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그 책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속성들을 고려해볼 때 성경에는 오류가 포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며 전지하신 분이시고,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에는 의도적인 거짓도 무지한 실수도 있을 수 없고 또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실수 없이 죄의 영향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기록되도록 인도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경무오에 대한 신앙은 역사적 기독교회의 신앙고백이었으나 최근 현대신학 그리고 복음주의 안에서도 성경 무오에 대한 왜곡된 태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 인간 이성으로 성경을 비평한 19세기

19세기에 이르러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이성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성경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성경의 권위는 거부되고, 성경을 단순히 인간 저자들의 글로만 간주되어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기준아래 분석하고 비평하였다. 그 결과는 결국 어떠한 초자연적인 계시의 가능성도 인정될 수 없었고, 초자연적인 역사나 이적의 사건들도 거부되는 가운데 신적 영감의 사실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경은 인간의 종교적 감정이나 종교적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된 종교문서라는 동력적 영감설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졌다. 결국 인간의 글이므로 성경이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는 서적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2) 신정통주의 신학의 성경에 대한 오류

신정통주의자들은 19세기 자유주의신학의 성경관이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시켰다고 비판하면서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온 곳은 성경이 전하는 역사적 기독교의 정통신앙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또한 정통신학의 성경관도 비판했다.

특히 칼 바르트(Karl Barth)는 자유주의 신학은 초월적인 하나님의 계시를 간과하고 단지 인간의 사상을 말하는 내재주의 신학으로 전락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즉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들을 배제하고서 단지 인간의 도덕적 교훈을 말하는 인간의 내재적 도덕종교에 머물고 말았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신학 속에는 하나님의 초월적 음성은 사라지고 인간의 음성만이 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칼 바르트는 정통신학의 성경관에 대해서도 인간 저자들의 글을 초월적인 하나님의 계시와 동일시하는 어리석음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성경의 인간 저자들의 글은 단지 하나님의 계시를 증언할 뿐인데 초월적인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의 글과 동일시함으로서 성경책 숭배(Bibliolatry)의 죄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르트의 대안은 성경을 인간 저자의 오류 있는 글로 간주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관점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려 했다. 즉 실존철학의 관점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와의 실존적 만남의 사건 속에서만이 인간의 글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become) 때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