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요점(8)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요점(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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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 개혁신앙의 원리들
1. 오직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는 원리
2. 하나님 중심의 원리
3. 오직 믿음으로의 원리
4. 신자의 삶 강조의 원리
< 2부 > 개혁신앙의 핵심교리들
A. 성경론(계시론)
B. 신론(神論) < 계속 >

B. 신론(神論) (3)

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성격들(26호)
2. 하나님의 고유적(절대적) 속성들(28호)

3. 하나님의 보편적 속성들

앞서 살펴본 하나님의 고유적 속성들과 달리 보편적 속성들은 피조물들에서도 어느 정도 반영되는 속성들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도덕적 속성과 같은 여러 가지 속성들이 언급될 수 있으나, 주로 지적 성격의 속성 중에 전지성과 지혜로우심의 속성을 중심으로 논하려 한다.

(1) 전지하심(Omniscience)

이 세상과 인간에 관한 모든 사실들을 알고계신 속성을 가리킨다.(삼상 2:3, 욥 21:22, 사 40:14,28, 시 139:3-6) 성경의 하나님은 깊이 숨겨진 일들도, 아주 작은 일들도, 죄와 악함도, 마음의 생각과 장래 일들도 모두 알고계신 하나님이시다.

1)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앞으로 발생될 모든 일들까지도 포함하는 전지성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사건들이 발생되기 전에 이미 확실하고 완전하게 그 사건들을 알고 계신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지식과는 다르다. 인간의 지식은 사건 발생 후에야 그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즉 인간의 지식은 사건의 발생과 변동에 따라 형성되는 지식이지만, 하나님의 지식은 오히려 그 분의 지식에 의해 미래 모든 일들의 발생이 결정되는 지식이다.

2)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지식은 분석적(Analytic)이지만, 인간의 지식은 종합적(Synthetic) 지식이다.

즉 인간의 지식은 시간이 흐름(경험)에 따라 축척 형성되는 지식이라는 점에서 종합적이지만, 하나님의 지식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토록 동일하며 완벽한 지식이다.

달리 표현하면 이 세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이 세상일들을 알 길이 없지만, 하나님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 세상 것들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 밖에 하나님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전지하심이란 단순히 앞으로 발생될 여러 가지 가능 성들에 대한 지식이라고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전지성은 실제로 그 시점에서 발생될 사건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계신 지식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전지성은 하나님의 선지하심(fore-knowledge)을 포함한다는 말이다. 성경의 선지자들의 예언이나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의 교리들은 하나님의 선지성(先知性)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하나님의 선지성(先知性)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충돌하는 것으로 보고 다른 대안들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 성경의 가르침을 떠난 해석이 되곤 한다.

중세의 한 신학자는 ‘중간지식’(middle- knowledge)이라는 개념으로 해답을 찾으려 했다. 이 개념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인간의 자유의지가 이룰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다 알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지성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에 대한 지식만 의미하지 않고, 실제로 발생될 사건 즉 인간이 행동하게 될 것도 정확하게 알고 계신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지하심을 이해할 때 인류역사가 온전히 그 분에 의해서 결정되며, 섭리되며 또 진행된다는 성경적 가르침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예언과 예정에 대한 가르침이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열린신학자(open theology)들이 또 다시 성경적인 작정이나 예정교리들을 반대하면서, 하나님의 선지성(先知性)에 대해 이견(異見)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는 하나님도 알지 못하시며 인간들처럼 미지의 세계를 열어 가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하나님의 선지(先知)하심을 받아들이면 인간의 자유의지가 바르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전지성이란 선지하심(fore knowledge)을 포함하는 전지(全知)라고 해야 한다.

실제로 성경의 문맥 안에서는 하나님의 작정과 선지성(先知性)의 개념이 인간의 인격적인 활동에 장해물이 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요셉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창세기 45:1 이하에 보면,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애굽에 팔았던 것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그것은 형들이 시기심 속에서 행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진행된 일이었다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29462이 부분에 대한 성경적 관점은 이런 것이다: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의 손길이 진행되고 있으나, 그 안에서 활동하는 인간들은 로버트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적 활동을 – 의지의 자유로운 결정과 행동을 –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중세의 중간지식(middle-knowledge)의 신학자들이나 현대의 열린신학자(open theology)들의 염려처럼 하나님의 주권이나 선지성(先知性)을 말하게 되면 반드시 인간이 로보트와 같이 행동하게 된다는 등식은 잘못된 명제임을 알아야 한다.

4)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심이 성도들 삶에 주는 실제적 교훈들

성도의 삶에 있어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대한 바른 이해는 그들로 하여금 모든 비밀한 죄나 가식적인 신앙생활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들을 다 지켜보시며 알고계신다고 할 때 우리는 언제나 신전의식(神前意識, Coram Deo, 하나님 앞에서)을 가지고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어떠한 가식적인 신앙태도도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다.(욥 31:1-4,34:2, 마 6:4,6, 18)
(2) 지혜로우심

보편적 속성 중 지적인 성격의 속성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우심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실 뿐만 아니라, 지혜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1) 지혜로우심은 전지하심과 함께 하나님의 지적인 속성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그 두 가지 속성들은 서로 구분된다.

지식은 이론적인 차원의 것이라면, 지혜는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서 어떻게 행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해주는 실천적인 차원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전자는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유될 수 있는 성격의 속성이라면, 후자는 인간의 의지와 관련되어서 이해되는 속성이다.

2)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지혜로 창조하셨다고 말하며,(잠 8:22 이하, 요 1:1-3; 고전 1:24, 골 1:15) 그 분의 통치와 섭리 그리고 구원의 계획들도 모두 하나님의 지혜로 역사하셨음 을 말해준다.(히 1:3; 고전 1:24,30)

사실 하나님의 지혜가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 현장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의 현장이다.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들 중에서 가장 큰 범죄의 사건(최대의 인간 범죄는 하나님을 죽인 사건일 것이다.)을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축복의 사건(영생의 축복을 가져오는 구원사건)으로 변화시키셨던 것이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지혜로우심의 속성을 통해서 신자가 얻을 수 있는 실천적인 교훈은, 신자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어 확신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정하여 지혜롭지 못한 사랑으로 주어진다면, 우리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지혜로우심 속에서 주어지므로, 우리를 위해서 모든 가능한 방법들 중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롬 8:28)(*) 글쓴 이 / 김광열 교수(총신대 신대원 조직신학)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