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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과 세속적 세계관 두 세계관은 어떻게 다른가?

기독교 세계관과 세속적 세계관 두 세계관은 어떻게 다른가?

1. 세계관이 왜 중요한가?

421301사람은 누구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세계관에 따라서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공산주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유물사관적인 견지에서 논쟁의 쟁점을 찾는다. 불교를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범신론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불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불교의 세계관이 있고 공산주의자에게는 공산주의 세계관이 있고 기독교 신자에게는 기독교의 세계관이 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건전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 인류에게 유익을 끼치고 어떤 사람은 불량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던지 비뚤어진 방향으로 판단하여 사회에 손해를 끼치게 된다. 이렇게 사람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가정, 국가, 교회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며 인생의 목적과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회에 대처하는 태도와 책임감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2. 세속적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

(1) 세속적 세계관

세계관은 크게 세속적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 두 세계관이 있다. 사람은 모두가 아담의 자손들로 그들의 심성이 어두워져서 무엇 하나 바로 보지 못한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힘으로 사물을 해석하고 판단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기의 힘으로 매사를 판단하려고 한다. 이것이 타락한 죄인의 의식구조이며 아직 거듭나지 못한 일반 자연인이 가지는 세계관이다. 이러한 세계관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은 과거에 살고 간 사람이나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나 앞으로 우리 뒤에 태어나서 이 땅에 살 사람이나 막론하고 모두 조물주를 섬기지 못하고 피조물을 섬긴다.

(2) 기독교 세계관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그들 중에는 피조물이 아닌 조물주를 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일을 당할 때 모든 사건을 자기중심으로 해석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 모든 문제가 발생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시각에서 그 사건의 성질, 원인, 결과 및 대처 방안을 강구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거듭난 사람 또는 중생한 사람이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매사에 하나님을 앞세우며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까닭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하나님의 시각에서 자신과 관계 된 모든 일과 사건을 해석한다.

(3) 두 세계관의 필연적인 충돌

세속적 세계관은 여러 가지로 다양하지만 통틀어서 한 가지로 집약할 수 있는 것은 조물주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으며 자기 자신이 모든 사물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고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같은 세속적 세계관은 모든 면에서 성경적 세계관과 서로 충돌한다.

가령 인간이 어디서 왔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말하지만 세속적 세계관에서는 인간은 자연도태의 원칙에 따라서 하등 동물에서부터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또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로부터 구원이 필요하다고 가르치지만 세속세계관은 죄를 인정하지 않으니 죄로부터의 구원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가르친다.

세속적인 세계관은 피조물을 숭상하지만 성경적인 세계관은 조물주 즉 전능하시어 천지를 만드신 조물주 하나님만 경배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할 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라고 고백한다. 이 짧은 한 절 가운데는 단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만 아니라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주관하시고 관할하시고 통치하고 계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3. 세속적 세계관의 결과

옛날 영국에는 Deism이라는 자연신교가 있었다. 자연신교라는 것은 마치 시계가 돌아가게 하려면 시계의 추를 좌우로 한번 움직여 주면 그 다음부터는 시계가 자기 스스로 알아서 시간을 알려 주는 것과 같은 이치로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지만 일단 창조하고 나서는 하나님이 그 손길을 떼시고 우주의 법칙에 따라서 우주가 움직여 나가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셨다는 학설이다.

이 같은 자연신교는 하나님을 무책임한 존재로 만든다. 창조주가 되심에는 틀림이 없지만 창조하신 피조물을 살피시고 섭리하시고 관할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톤(Isaac Newton)을 훌륭한 크리스천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자연신교를 믿는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18세기의 합리주의를 부르짖던 독일의 수많은 학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신앙은 정통으로 믿는 개혁주의 신앙과는 다르다. 세계관이 다르다는 말이다. 크리스천이라고 스스로 자처하지만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세속적 세계관은 우리들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온갖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목사들은 물량주의에 빠져 있고, 교인들은 기복신앙에 빠져있고, 텔레비전은 기독교를 조롱하고, 폭력, 사기, 공갈과 협박, 미신 등이 난무하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다. 사회전반이 병들어가는 가운데 범죄는 증가하고 살인행위는 보통이고 사람을 죽여도 곧 풀려나와 다시 죄를 짓는다. 성경은 사람은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창세기 9:6에 엄히 명령한다.

세속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피조물을 숭상하는 탓에 성경의 말씀 즉 조물주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외면한다. 심지어 성도들도 성경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모두가 개인 중심이고 개인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며 이로써 만족한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이른바 Values Clarification이라고 하여 무엇이든 어른들이나 다른 사람의 말을 믿지 말고 학생들 스스로 생각해서 옳다고 판단되면 그것이 바로 진리라고 가르친다. 이런 운동은 세속적 세계관의 배경을 타고 미국의 공립학교에 상당히 많이 파급되어 있는데 Beverley Geylean이라는 여자가 도입하여 미국의 공립학교에서는 아무 저항 없이 받아 드려지고 있다. 이것은 바로 학생들에게 뉴에이지 사상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약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는 학생들 본인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 세속적 세계관을 가지고 하나님을 떠나 인본적인 세속세계관을 가지면 개인과 사회를 파괴하는 무서운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학교에서 기독교를 언급하는 것은 미국 헌법을 범하는 위헌이라고 떠들어댄다. 죄악에 물들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패역한 사람들은 세속 세계관을 가지고 자신이 멸망으로 향할 뿐만 아니라 남도 멸망으로 인도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나 세속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실태이다.

하나님을 떠나 세속적 세계관을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필요하다. 그들도 복음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개신교의 유명한 일부 몇몇 목사들은 천주교와도 손잡고 복음을 전해야 된다고 하며 1996년에 ECT(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라는 천주교와 개신교 합동 전도기관을 조직했다. 그러나 이것도 문제가 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떤 복음을 전하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두 종류의 복음이 있음을 말한다. 고린도후서 12장과 갈라디아서 1장에 다른 복음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성경적인 복음이 아니면 복음이 아니다. 변질된 복음은 변질된 복음이다. 변질된 복음은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오로지 진리의 복음만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준다. 로마서 10:17의 말씀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세계관이 지배하는 어두운 세상에 복음이 필요하지만 오늘의 복음은 변질되어 성경적인 복음을 전하지 못하니 변질된 신앙만 팽창하고 있다. 누구를 만나서 신앙토론을 해도 성경적인 믿음과는 거리가 먼 개인의 기호에 맞는 복음만을 믿고 있다. 그래서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창궐한다. 세속적 세계관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물론 외형적으로 보면 복음이 전파되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한국인구 5천만 명중 네 명에 한 사람정도로 예수를 믿는 성도라고 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얼마나 되겠는가? 이전에는 도올 김용옥이라는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서 구약은 필요 없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기독교는 너무 편협하다고 하면서 포용력 있게 다른 종교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남가주에서 유력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Rick Warren 목사는 예배 시에 사람들의 기분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찬송가보다는 세상 방송국에서 흘러나오는 세속 음악을 예배 때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이다.

이 모두 바른 기독교세계관이 아니다.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다.(고후 2:17) 여기서 ‘혼잡하게 한다.’는 말이 원문에는 Kapeleuw이고 이 말은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은다.’는 말이다. 2,000여 년 전 사도 바울이 오늘을 내다보면서 하신 말씀만 같다. 세속적 세계관으로 어두원진 이 세상을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세계관의 빛으로 밝힐 사명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글쓴 이 / 김명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