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순교사화(20) 프랑스에 일어난 대학살
기독교 순교사화(20) 프랑스에 일어난 대학살
3. 프랑스 상파뉴 베시에서 일어난 대학살의 전모
기즈 공작은 주앵빌에 도착하자마자 베시에 있는 개신교도들이 개신교 목사의 설교를 듣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극악무도한 분노에 사로 잡혔다. 1562년 2월말 토요일 그는 베시에 있는 이교도들(개신교도들을 말함)에 대한분노를 좀 더 비밀리에 집행하기 위해 주앵빌을 떠나 2마일 반쯤 떨어진 다마르틴 마을에 숙소를 잡았다.
다음날 대(大) 미사를 드린 후에 200여 명의 무장한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다마르틴을 떠나 다시 베시로 향했다. 그리고 기즈 공작은 함께 간 군인들과 사수들에게 베시를 에워싸도록 명령했다. 군인 대부분은 가톨릭교도들의 집에 숙소를 정했다. 토요일 대(大) 학살이 있기 전 그들이 무기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들은 그러한 음모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왕의 신하로서 공작이 그들을 신사적으로 대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즈 공작은 다시금 모든 군대를 동원하여 개신신교도들에게 끔찍한 만행을 저지를 결심을 했다. 그는 부하들을 로마 가톨릭사원으로 보내 모든 로마 가톨릭교도들은 사원 안에 숨어 있어야하며 목숨을 구하려면 절대 거리로 나오지 말라는 비밀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한 후 기즈 공작은 군인들을 위그노(개신교도)들이 보통 때처럼 예배를 드리려고 모여 있는 커다란 광장으로 진격시켰다.
군인들은 위그노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광장 건물에 불을 질렀다. 그러자 안에 있던 약 1,200명의 위그노들은 겁에 질려 숲으로 도망가려고 건물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순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 문으로 도망쳐 나오는 위그노들은 군인들 칼에 처참히 살해되었고 군인들은 피 묻은 칼로 남자고 여자고 심지어 간난 어린아이들까지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다른 군인들은 발코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그러자 건물 안에 있던 위그노들 중 극히 일부가 지붕을 뚫고 높은 성벽을 뛰어 내려 숲 속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그들은 총에 맞아 부상을 당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거나 목이 잘렸고 팔 다리가 잘린 사람들도 있었다. 대학살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강단에 남아 사람들을 권면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기도하고 있던 목사 모렐이 체포되어 공작 앞에 끌려 왔다.
“이리 와!” 공작이 소리쳤다. “네가 여기 목사냐? 누가 널 그렇게 뻔뻔스럽게 만들어 사람들을 미혹하라고 했지?” 그러자 목사 모렐이 대답했다. “저는 당신처럼 누구를 미혹하는 자가 아닙니다. 저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목사의 대답이 자기의 잔인한 분노를 정죄 한다고 생각한 공작은 목사를 저주하기 시작했다. “복음이 사람들을 이렇게 선동 질 하는 것이냐? 이놈을 당장 시장으로 끌고 가서 교수대에 목을 매달아라!” 즉시 모렐 목사는 군인 두 사람에게 끌려 나갔는데 그들은 그를 아주 거칠게 다루었다.
거리의 무식한 로마 가톨릭 여인들이 목사의 얼굴에 쓰레기를 뒤집어씌우며 소리 질렀다. “저 놈을 죽여라!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죽게 만든 저 목사 놈을 죽여 버려라!” 그러는 동안 공작이 광으로 가자 누군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읽던 큰 성경을 공작에게 주었다. 성경을 받아든 공작은 추기경인 자기 동생을 불러 말했다. “이것 봐! 위그노들의 책을 한 번 봐!” 추기경은 성경책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책에는 좋은 말 밖에 없어요. 이것은 성경 말씀이니까요.” 동생이 성경책에 대해 자기와 의견이 다른 것에 화가 난 공작은 더 화가 나서 말했다. “뭐? 어쩌고 어째? 성경 말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지 1,500년이 넘었는데 이 책은 인쇄된 지 1년밖에 안 되잖아! 그런데 넌 이걸 복음이란 말이냐? 넌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구나!”
대학살이 자행되는 동안 공작의 나팔수가 공격 나팔을 불었다. 붙잡힌 위그노들 가운데 몇몇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자 살인자들은 비웃는 소리로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지금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데 너희들 그리스도는 지금 어디 있지?” 그러면서 군인들은 50,60여명의 위그노들을 칼로 찔러 죽였다. 붙잡힌 자들 중에는 부상자가 250명이 넘었고 그들 중 어떤 이는 죽었고 어떤 이는 다리를 어떤 이는 팔을 또 어떤 이는 손가락이 잘려 있었다.
교회당으로 들어가는 문에 달려 있던 자선함 속에는 12파운드가 들어 있었는데 난리 통에 떨어져 나가 땅에 굴러다녔다. 그리고 모렐 목사는 단단히 묶어 자루 속에 넣은 채 물에 빠뜨려 버리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모렐 목사는 위그노들에게 동정적이었던 포르테인 왕자의 끈질긴 탄원에 따라 1563년 5월 8일 석방되었다.
4. 포위 중 상세르에서 일어난 사건
체르지방 루아르 강 둑에 위치한 도시 상세르는 개신교 신자들이 1573년 피난처를 찾아 도망 온 장소였다. 그러나 그들은 4월 초부터 대적 자들에게 독 안에 든 쥐처럼 꼼짝 할 수 없게 포위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곧 양식이 부족해져 주민들은 성안에 있던 모든 당나귀와 노새들을 모아 최소한으로 공동분배를 했지만 한 달도 못되어 다 먹어 버렸다. 그러자 포위 되어 있는 개신교도들은 말과 개들을 죽였다. 그것도 다 바닥이 나자 그들은 고양이, 쥐, 두더지 등 어떤 짐승이든 눈에 띄는 대로 잡아먹었다. 그것들도 다 먹어 치우자 그들은 황소, 암소 가죽, 양가죽, 양피지, 낡은 구두, 소뿔, 말굽, 양초, 밧줄, 말안장, 가죽 띠 등으로 연명을 했다.
6월 말이 되자 포위 된 지역 안에는 더 이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온갖 종류의 풀을 뜯어다가 겨에 섞어 먹었다. 12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은 기아를 견디지 못해 거의 다 죽어 갔다. 10살 난 아이가 죽게 되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를 보면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그 아이는 자기 부모를 보며 말했다. “엄마! 내가 굻어 죽는다고 왜 그렇게 울어요? 나는 빵을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엄마에게 빵이 없다는 걸 저도 잘 알아요.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우리 감사하기로 해요. 거룩한 사람 거지 나사로도 굶어 죽었잖아요? 성경에서 읽었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그 아이는 죽어갔다.
그래도 그 때까지 사람들이 다 굶어죽지 않은 것은 일할 말 몇 마리와 어린 아기들에게 우유를 먹이기 위한 6마리의 젖소를 남겨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 남은 젖소들마저 잡아 먹어버렸지만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 대적 자들의 손에 죽은 사람은 84명이었지만 굶어죽은 사람은 500명이 넘었다. 사람들은 굶어 죽는 고통보다 차라리 대적자의 칼에 맞아 주는 것이 났겠다고 성(城) 밖으로 나갔는데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살해되고 어떤 사람은 감금되었다.
포위망을 뚫거나 더 버틸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고 모든 사람들은 오직 죽음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왜냐하면 그렇게 고통을 당하는 그들에 대해 어느 정도 동정적이었던 프랑스 왕이 그들이 그렇게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악착스럽게 버티는 것을 보고는 화가 치밀어 그들을 반드시 사로잡아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 버리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군대의 총 지휘관인 앙주 공작이 폴란드 왕으로 추대되어 그 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적 자들은 다음을 기약하고 포위망을 풀고 스스로 물러나버린 것이다. 이렇게 이 사건의 승리는 포위되었지만 끝까지 자신들의 믿음을 수호했던 개신교도들에게 돌아갔다.(*) 출처 / 기독교순교사화(존 폭스 원저, 머리 킹 편저, 생명의말씀사)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