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모든 사람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죄책감을 가진다. 첫째는 인류에게 전가된 아담의 원죄(原罪) 때문이고, 둘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서 가지게 되는 자범죄(自犯罪) 때문이다. 이러한 죄인들이 그들의 죄책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구주로 믿는 믿음을 통해서 뿐이다.
이렇게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을 통하는 길만이 유일한 길이라면 그렇다면 예수님에 대해(복음) 전혀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그들은 지금 지옥에서 고통당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도 바울은“예!”라고 한다. 복음이 사람들에게 전해졌는데 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방법이 없다.(롬 10:14-17) 사도 베드로 또한“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예외 없이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복음의 빛 아래에 산적이 없었던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들 보다는 덜 엄격한 심판은 받을 것처럼 말씀하셨다.“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7,48)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복음을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심판을 받지 않는 다는 말씀인가?
그렇지 않다. 찰스 핫지는“사람은 그들이 각각 즐겼던 바로 그것에 의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는 각자의 범한 죄에 달린 것이지 복음을 들었느냐 듣지 못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심판의 근거는 그들의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는 행위 때문이다. 이방인들은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새긴 법(양심)을 범함으로 하나님 앞에 예외 없이 다 죄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복음이 그들에게 전해지고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한 그들은 망할 수밖에 없다.
죄인은 절대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상관없이 스스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선택한 사람들을 예수의 복음을 통해서 구원을 하신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서 외적으로 그들을 부르시고(외적 부르심), 전달된 메시지를 그들이 믿을 수 있도록 내적으로 성령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는다.(내적 부르심)“주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13,14)
그러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도 심판 받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예수님을 영접하거나 거절할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던 사람들을 지옥의 저주를 받게 할 만큼 하나님은 불의하신 분이 아니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또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그들은 복음을 듣지 않아도 버림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동시에 복음을 듣게 하기 위해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고 모순 된 주장을 한다. 논리적으로 보면 선교사를 파송해야만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곧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도 예수님을 거절하는 사람들은 저주와 심판이 따른다는 것이다.
로마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사람은 근본적으로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문제 이전에 아담의 원죄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이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 받는다면 먼저 복음을 들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구원 받아야 한다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선교사의 파송은 절대적으로 불가피한 것이다.
복음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사람들(유아, 정신박약아 등)의 구원에 대해서는 성경이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아담의 후손으로 구원의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롬 5:12-19)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 불의한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정당한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하나님의 섭리가 그들을 위하여 예비 되었는지 우리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John H. Gerstner, Lorrain Boettner, Hodges와 같은 신학자들의 사견처럼“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명백하게 말하지 않는 한 유아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넓게 생각하지 말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만일 그들이 천국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서이지 결코 그들이 결백하거나 또는 죄책이 전혀 없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같은 논리로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만일 구원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서이지 결코 그들의 의(義)나 공로 때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자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구원이 없다고 대답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문제들을 직면할 때에 우리는 신명기 29장 29절의 말씀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참고서적 : Romans David N. Steele P&R P. 87-88 칼빈주의 예정론 로레인 뵈트너 도서출판 베다니 Predestination John H. Gerstner Soli Deo Gloria 내세론 윌리암슨 새순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