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사

새롭게 읽는 한국교회사(24) 한국에서의 성경번역(구약)

새롭게 읽는 한국교회사(24)
한국에서의 성경번역(구약)

한국 최초로 완역 된 신약전서(1900년), 구약전서(1910년), 성경전서(1911년)
한국 최초로 완역 된 신약전서(1900년), 구약전서(1910년), 성경전서(1911년)

1. 10년 걸린 구약 성경 완역(1900-1910)

한국 최초의 신약 번역본인 ‘신약젼셔’가 1900년 출판된 후 자연스럽게 구약 성경의 번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구약의 ‘시편’ 번역이 시작이 됐데 그 첫 책이 1898년 삼문출판사가 펴낸 피터스(Alexander A. Pieters, 彼得, 1872-1958)의 사역 본 ‘시편 촬요’였다. 촬요(撮要)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이 책은 시편의 전편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시편의 150편 중 저주 시편을 제외 한 62편만을 번역한 역본이지만 한국에서의 구약 성경 번역의 효시가 된다.

시편은 구약 일부가 역간되기까지 8년간 유일한 구약역본으로 사용됐다. 피터스는 한국에 온 유일한 유대인 선교사로서 시편을 번역하기에 적절한 인물이었다. 그는 후에도 구약 성경 번역위원 혹은 수정위원으로 활동했다.

2. 구약 성경 번역 착수

구약성경 한글 번역자들(왼쪽부터) 아펜젤러, 언더우드, 게일, 스크랜튼, 레이놀즈
구약성경 한글 번역자들(왼쪽부터) 아펜젤러, 언더우드, 게일, 스크랜튼, 레이놀즈

1900년 이후 구약 성경도 분담하여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아펜젤러는 창세기, 언더우드는 시편, 게일은 잠언과 사무엘서, 스크랜튼은 이사야서, 레이놀즈는 여호수아서를 각각 맡았다. 그러나 번역 작업은 지체되거나 번역자들이 교체되기도 했다. 또 하디(R A Hardie) 마펫(S A Moffett) 노블(W A Noble) 등의 선교사들이 번역위원으로 선임되었으나 단기간 일하고 사임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약 성경 번역을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레이놀즈와 두 사람의 한국인 김정삼과 이승두에게 구약 성경 번역 책임을 일임했다. 두 한국인이 공식적인 성경번역 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레이놀즈가 거주하던 전주에서 번역작업에 몰두했다.

구약 번역 작업은 10여년이 소요돼 1910년 4월 2일 드디어 번역을 완료했다. 그 결과로 1911년에는 이미 출판된 신약과 구약이 묶어져 ‘셩경젼셔’라는 이름으로 빛을 보게 됐다. 물론 ‘구약젼셔’가 출판되기 이전 낱권으로 창세기, 시편(1906), 잠언, 출애굽기, 사무엘상하, 말라기(1907), 열왕기상하, 이사야서 번역본(1908)이 출판됐으나 이제 이 모든 책들이 한권으로 묶여져 ‘구약젼서’로 간행된 것이다.

미국 성서공회는 이 책을 상(창세기∼역대하), 하(에스라∼말라기) 두 권으로 출판했다. 이것이 한국에서 출간 된 최초의 ‘성경전서’이다. 그래서 2011년은 한글 성경 완역 100주년이 된다. 이 번역본은 성경 원문을 참고했지만 1901년 미국에서 출판 된 미국 표준 역(ASV)을 주로 참고했고, 한문 성경을 참고한 흔적도 짙다. 이 번역이 이루어지기까지 언더우드, 게일, 레이놀즈, 그리고 한국인 김정삼, 이승두의 노고가 컸다.

3. 구약성경 개역 착수

385903번역 성경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성경도 완전한 것은 없다. 어떤 이들은 흠정역 성경은 완전한 것처럼 말하지만 이 책에도 여러 가지 오류가 있었고 계속적인 수정 작업이 필요했다. 최초의 한글성경 완역본 ‘성경젼서’가 출간되자마자 수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히 구약 개역이 시급했으므로 1911년 ‘구약 개역자회’(The Board of Revisers)를 구성했다. 개역작업은 긴즈버그(C. D. Ginsburg, 1908)가 편집한 대영 성서공회 발행의 ‘히브리어 성경’이 사용됐다.

이 작업에 헌신한 이들이 언더우드, 게일, 레이놀즈였다. 성경 언어에 해박했던 레이놀즈는 성경 번역 작업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 사임했다. 언더우드는 1916년 일본에서 세상을 떠남으로써 개역작업도 순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1924년 이후 레이놀즈가 다시 개역위원으로 동참했고 후에는 감리교의 케이블(E M Cable), 하디, 북 장로교의 베어드(W M Baird), 호주 장로교의 엥겔(G Engel) 등이 위원으로 활동했다.

언더우드 사후 개역자회 회장이었던 게일은 조선어풍 번역을 지향했으나 자유역을 지향한다는 오해와 반발로 개역위원직을 사임하고 독자적인 구약 성경 번역에 몰두했다. 그 결과 1925년 기독교 창문사를 통해 ‘신역 신구약전서’(新譯新舊約全書)를 펴냈다. 한국인 조력자 이원모(李源謨), 이창직(李昌稙), 이교승(李敎承)의 도움이 컸다. 이 책이 우리나라 최초의 사역(私譯) 성경전서다. 비록 게일은 개역위원직을 사임했으나 한국성경 번역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4. 신구약 한글 개역성경 출간

이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4년 말 현재 아직도 세계 인구의 60% 정도는 자국어로 번역 된 성경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4년 말 현재 아직도 세계 인구의 60% 정도는 자국어로 번역 된 성경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구약성경 개역 작업은 지체됐으나 피터스, 베어드, 한국인 남궁혁, 김관식, 김인준, 이원모 등이 가담해 이 일을 추진 한글로 신구약 성경 번역을 시작한 지 무려 26년에 걸친 작업을 완료하고 마침내 1936년 ‘구약젼셔 개역 본’이 간행됐다.

이 개역 본을 일부 수정해 1938년에는 보다 완전한 번역본을 출판했다. 신약 개역 작업은 1926년 ‘신약 개역자회’가 조직되면서 시작됐는데, 스톡스(M B Stokes), 윈(S D Winn), 로스(C Ross), 커닝햄(F W Cunningham), 크레인(J C Crane), 레이놀즈 등에 의해 추진됐다. 대본으로는 네슬레의 1898년판 ‘희랍어 성경’이 사용됐다. 1937년 개정을 완료했고 1938년 ‘신약개역’이란 이름으로 발간됐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이 합본돼 ‘성경개역’이 1938년에 출간됐다.

이 공인(公印) 번역 개정 성경이 1952년 ‘한글 맞춤법 통일’ 안에 의거해 수정을 거친 뒤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이란 이름으로 간행됐다. 1956년 다시 새로운 맞춤법에 따라 일부 수정됐고, 1961년에는 815개소의 자구 수정을 거쳤다. 이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하는 신구약 성경이 된 것이다.(*) 글쓴 이 / 이상규(고신대 역사신학 교수) 출처 / 국민일보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