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 강해 제 4 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웨스트민스터(4)
소요리문답 강해
제 4 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답 :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영이신데(1), 그 존재하심과 지혜와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2)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3) 불변하십니 다.(4)
(1)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요 4:24)
(2)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우리 주는 위대하시 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시 147:5)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 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계 4:8) 여호와께서 그 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 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3)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 시니이다.(시 90:2)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시 93:2)
(4)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말 3:6)
1.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영이시다.
소요리문답 제 4 문은 영이신 하나님의 본질을 정의하고 있다. 하나님은 다른 영적 존재나 사물들과는 구별되는 속성들을 가지신 영이시다. 그러므로 영이신 하나님을 인간의 혼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과 같은 단순한 영이 아니시다. 또 천사도 영적인 존재이지만 성경은 모든 천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는 존재들이라고 말한다.(히 1:14)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간단히 영이시라고만 말하면 영을 가진 또 다른 존재들과 구별 할 수 없게 된다. 만일 이렇게 단순하게 하나님을 하나님 외의 다른 영적 존재들과 같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범신론(汎神論, pantheism, 신(神)과 전우주(全宇宙)를 동일시하는 종교적·철학적 혹은 예술적인 사상체계, 유일신론과 구별 된다)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하나님은 영(The Spirit)이시라고 말할 때 그 의미가 하나님을 다른 만물과 구별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영이신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영
그러면 일반적 의미의 영(靈)이란 무엇인가? 성경은“사람의 사정은 사람 속에 있는 영(靈)외에는 누가 알리요?”(고전 2:11)라고 인간이 영적 존재임을 말한다. 사람이 생각하고 인식하는 것은 영의 작용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람의 영을 하나님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영은 비 물질이다. 영은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지거나 그 무게를 달아 볼 수도 없고 크기를 잴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의 작용인 사람의 생각이나 인식이 곧 사람은 영적존재라는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어떤 말로도 인간의 영을 완전하게 정의하거나 묘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즉 인간의 영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이 질문에 충분히 대답할 수 없음을 시인해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여기에는 영의 신비(神秘)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은 어떤 물질적 실체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과 같은 몸을 가지신 분이 아니며 우리 육신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우리 육신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본 자도 없고 하나님을 볼 자도 없다.(요 1:18, 요일 4:12)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像)이나 그림으로 하나님을 가시화(可視化, 눈으로 볼 수 있게 함)하려는 것은 십계명 중“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4)고 하신 제 2계명을 범하는 죄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물었다.“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사 40:18) 그리고 또“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사 40:26)고 답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은 간접방법이다. 즉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통해 그의 반영(反影)을 볼 때 하나님을 볼 수(알 수) 있다.
아래 그림에서 거울 속에 비춰진 사람을 아담이라고 할 때,
첫째 아담은 살아있는 실체지만 거울 속에 비춰진 아담의 모습은 반영(反影)일 뿐 실제 아담이 아니다.
둘째 그러나 거울 속에 있는 모습은 모두가 아담의 반영(反影)이므로 아담의 실체나 거울 속에 비춰진 아담이나 그 모양은 같다. 하나님과 그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비교하는 것도 이와 같다.
비공유적 속성: 하나님은 인간과 완전히 다르다.
공유적 속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과 같은 바로 하나님의 그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 4 문은 이 같은 두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도록가르치고 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알 수 있다.
3.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은 어떤 속성(屬性)들을 가지셨다. 1) 하나님은 무한(無限)하나 인간은 유한(有限)하다. 2) 하나님은 영원무궁하시나 인간은 일시적(一時的)이다. 3) 하나님은 영원불변(不變)하시나 인간은 가변적(可變的)이다. 무한, 영원, 불변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에 비공유적(非共有的) 속성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인간에게 주시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하나님과 같은 속성들이 있는 데 이것을 공유적속성(共有的屬性)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사람이 타락 전에는 하나님을 닮은 지혜와 능력 등을 주셨다. 이 속성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기를 닮도록 하려고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공유적속성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가장 난해하고 중요한 문제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가 공유적속성을 말할 때에도 아담의 실체와 거울속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그의 형상인 인간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거울 밖의 아담과 거울속의 아담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똑같은 미소인가? 그렇지 않다. 거울 밖 아담의 미소는 실재(實在) 웃음이지만 거울 속의 아담의 미소는 단지 반영일 뿐이다. 거울 밖의 아담의 미소는 더 위대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공유적속성도 마찬가지이다. 지혜, 능력, 거룩 등 하나님은 이 속성들을 인간보다 높은 차원에서 가지고 계신다. 즉 하나님의 지혜는 항상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다. 그의 능력도 마찬가지로 무한하시며 영원하시며 불변하시다. 반면에 인간의 지혜와 능력 등은 항상 유한하며 일시적이며 또한 변한다. 이것은 거울 밖의 아담은 실재하지만 거울 속의 아담은 실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여기서 이 요리문답의 가르침을 이해하려 할 때 생기는 두 가지 질문을 간단히 생각해 보자.
(1) 하나님은 영이시라면서 왜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의 신체를 가진 자처럼 말하고 있는가?
성경에 주님의 손(수 4:24), 주님의 눈들(왕상 15:5)이라는 말이 있다. 또 모세와 다른 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았다(출 24:10)고 했으며, 그 발아래는 청옥을 깐듯하고(출 24:10)라는 등등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런 표현들은 하나님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말로 표현한 것이다. 성경의 많은 곳에서 하나님을 사람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영들인 천사들이 인간의 모양으로 자신을 드러내듯이 그리스도께서도 구약시대에 그리하셨다.(창 18:1-5,16-25) 칼빈은 이것을 신인(神人)으로서 장차 나타나심에 대한 서막이라 했다. 그리고 부활승천하신 후에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지금도 그는 참된 인성을 가지셨다.
(2) 하나님은 불변하신 분이라고 하면서 왜 성경 어떤 곳에서는 마치 하나님이 변하시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가?
창세기 6:6에“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불변하시다면 어떻게 이렇게 탄식할 수 있는가? 성경이 하나님에 대하여 이같이 말한 것은 항상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먼저 변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변화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성경은 마치 하나님이 변하신 것처럼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변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인간이다. 하나님은 항상 거룩하시다. 그러나 사람이 그 태도가 변하여 하나님을 거슬려 범죄 하면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진노로 나타나는데 이때 하나님의 속성이 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하여 범죄 함에 따라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이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든지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딤후 2:13) 즉 그가 행하시는 일들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는 항상 그의 완전하신 본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한 피조물이 악하게 될 때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슬퍼하시게 된다. 하나님 자신의 불변하신 거룩하심을 고려할 때 그러므로 하나님이 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변화에 대한 하나님의 변하지시 않는 속성의 반응 일뿐이다. 영(靈)이신 하나님은 무한(無限)하시며 영원(永遠) 불변(不變)하시다.(*) 글쓴 이(편저자) / 정은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