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왜 교리공부를 해야 되는가?

7-80년대까지만 해도 목회자들이 교회를 지키기 위해 한국교회는 교리 설교를 많이 했다. 그래서 초기 한국교회의 가장 큰 위협이었던 신비주의 이단들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지켰다. 그러나 Denis Lane 선교사의 강해설교 세미나가 큰 관심을 끌면서 강해설교는 점차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설교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교리공부는 점차 소흘 해졌다. 그러자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이단들이 성경공부 형태로 교회에 침투하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특히 성경공부 중심의 신천지와 같은 이단은 교회에 침투하여 큰 혼란을 주고 성도를 꾀이는 패악한 짓까지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교리 설교와 교리공부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왜 한국교회에서 교리 설교가 외면을 당하는가?

첫째, 교회가 교리는 딱딱하다는 이유로 교리 설교나 교리공부를 소흘했기 때문이다. 교리 설교는 이단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고 신앙기준을 확실하게 제시해준다. 그러나 자칫 교리 설교가 현실 생활과 조금 동떨어진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성경 강해설교가 유행처럼 확산 되면서 그 후 한국교회는 대부분 강해설교가 대세를 이루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고백서나 문답서 같은 것들은 고리타분한 교리서로 외면당했다.

둘째, 포스트모던 시대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교리나 신학의 변증설교는 논리 자체가 선포적이고 일방적이다. 그런데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그런 권위주의적 스타일의 설교를 싫어한다. 그러다보니 목사님들이 그런 설교를 안 하고 성경강해 위주로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양적성장에만 집착하여 설교가 점차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기복, 치유, 평안, 행복과 같은 인간중심의 내용으로 청중들을 즐겁게 하는 데로 흘렀다. 그러나 그 결과 30여년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성경공부 형식으로 위장한 이단들의 공격으로부터 모든 교회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다시 교리강해를 해야만 한다. 그 중에서 가장 모범이 되는 텍스트가 장로교회의 기초 원리요 표준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The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무엇인가?

영국 국왕 찰스 1세가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며 자신이 교회의 머리가 되어서 예배를 간섭하고 성직자를 파송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때 크롬웰을 중심으로 한 의회파가 국왕의 절대 권력을 제한하기 위하여 왕당파와 싸우게 되는데 개신교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종교적 명분을 건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 속에서 의회는 신앙이 깊고 학식이 있는 121명의 성직자와 30명의 평신도로 구성된 웨스트민스터 회의를 소집하여 교회 지도자와 성직자들을 위해서 만든 대요리문답서와 평신도 세례와 입교를 위한 소요리문답서를 완성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훗날 모든 세계의 장로교회의 신학체계와 신앙고백 및 교회 행정 체계를 신앙적으로 정립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만큼 장로교회에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교리요, 신앙의 기준서이다.

왜 모든 교회(성도)의 교리공부가 필수적인가?

이단들이 정통교리를 거부하고 왜곡하여 현혹하는 지금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공부는 성도들이 이단사설 및 종교 다원적 사조의 잘못된 흐름에 저항할 수 있는 신앙의 기초와 신앙의 무장을 갖추게 해준다. 그리고 교회가 더욱 건강해지고 하나가 된다. 요즘 신천지 인단과 같은 이단들이 판을 치고 교회마다 이단의 공격으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교리 공부를 통해서 성도들 스스로 이단에 대한 분별력을 갖고 배격함으로 인단의 교회 침투를 막아 교회는 복음과 신앙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서는 골동품 문서가 아니다. 지금도 모든 교회가 계속해서 교육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강해설교를 잘 해 왔지만 신앙의 균형과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국교회에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 강해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모든 비 진리를 배격하고 이단의 확장을 저지하며 신앙의 순수성과 일치성과 단일성을 보전해야한다. 뿐만 아니라 정통 장로교회의 신앙을 뿌리 깊게 하고 전승하는 본질회복 운동의 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