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사

이야기 한국교회사(3) 루비 켄드릭의 조선 사랑

뿌리 없는 나무는 없다 / 이야기 한국교회사(3)
루비 켄드릭의 조선 사랑

 

Rubye Rachael Kendrick(1883~1908)
Rubye Rachael Kendrick(1883~1908)
양화진에 있는 그녀의 무덤
양화진에 있는 그녀의 무덤

교회의 근간을 세우며 이 땅에 뼈를 묻고 잠들어 있는 선교사들의 묘지공원인 양화진에 가면 25세의 젊은 나이로 조선에 와서 불과 8개월 만에 생을 마감한 여선교사 루비 켄드릭(Rubye Rachael Kendrick1883~1908)의 묘비를 보게 된다. 여기에“만일 내게 천의 생명이 있다면 그 모두를 조선에 바치리라.”라는 비문이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루비 켄드릭은 미국 텍사스 남감리회 소속의 독실한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소녀시절부터 불신자들을 향한 영혼구원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는 청년회의 대표가 되었고, 1907년 9월에 남감리회 여자 외국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마침내 조선선교사로 내한 하였다. 그는 첫 선교지인 개성에서 조선말을 배우면서 아동교육을 담당하는 선교사역을 시작하였다.

1908년 엡윗 청년회가 텍사스에서 선교대회를 열고 있을 때였다. 조선에서 사랑이 가득 담긴 편지 한통이 도착했다. 당시에는 조선에서 미국으로 편지를 보내면 일본을 거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선박으로 다시 미국 내에서는 육로를 통하여 수개월씩 걸려서 전달되었다. 켄드릭의 선교사활동보고는 이렇게 전달되곤 하였다. 켄드릭은 조선에서의 선교활동에 대하여 진지하게 글을 썼다. 조선의 기후를 비롯하여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소개하는가 하면 인심이 넉넉한 조선 사람들을 극찬하면서 하루빨리 이들에게 복음이 들어가 행복한 나라가 되기를 염원하는 내용으로 꽉 들어찼다.

그러면서“내게 천의 생명이 있다면 그 모두를 조선을 위해 바치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 편지를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엡윗 청년회가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한 일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더 열심히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이튿날 루비 켄드릭이 세상을 떠났다는 전보가 도착되었다. 편지는 수개월을 걸려서 전해지지만 전보는 즉시 전달된다. 급 전보를 받은 엡윗 청년회 모두는 큰 충격에 빠졌으며 대회장은 온통 울음바다로 변했다.

루비 켄드릭은 개성에서 맹장염에 걸려서 서울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던 중 조선선교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25세의 나이로 꽃다운 청춘을 낯선 땅에서 마감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만일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들에게 열 명씩, 스무 명씩 조선선교사로 오라고 일러 주십시오.” 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텍사스 엡윗 청년회 선교대회장에 전달되었고 그 자리에 참석한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선교의 불씨를 지피기에 충분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들 중 20여 명이 마침내 조선선교사로 지망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선교헌금을 모아 매년 선교비로 지원하기로 하였다.

루비 켄드릭이 부모에게 보낸 편지

아버지, 어머니! 이곳은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예수님을 영접한지 일주일도 안 되는 서너 명이 이 나라 관리들에게 끌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곳은 토머스 선교사와 제임스 선교사도 순교를 당한 땅입니다. 선교본부에서는 모두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그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아직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오히려 전도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모두가 순교를 할 작정인가 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밤에 나도 모르게 유난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설렙니다. 어머니! 외국인들을 죽이고 기독교를 증오한다는 소문 때문에 내가 선교사 지망을 하고 출발하려던 그때, 부두에까지 나와서 저를 끝까지 말리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제 눈에 어른거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 많이 부탁합니다. 사랑하는 딸 루비가 조선에서

054“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 라.” 루비 켄드릭은 땅 끝까 지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25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 선교의 원대한 꿈을 안고 낯선 땅에 왔지만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꽃다 운 청춘을 조선을 위해 바치 며 이 땅에 뼈를 묻었다. 그 러나 그녀의 죽음은 결코 헛 된 것이 아니라 땅에 떨어져 썩어지므로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처럼 많은 열매로 승화되었다. 한국교회가 오늘날 선교역사 100여년 만에 5만 교회 1,000만의 성도로 급성장하는데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음을 믿으며 감사한다.

이처럼 믿음의 선조들의 헌신과 순교의 터전 위에 세워진 한국교회가 세계인들이 부러워할만한 기독교국가로 발전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강조한다. 우리는 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믿음의 선조들이 헌신하고 희생으로 일구어 온 터전을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가꾸어 가면서 다른 먼 나라 낯선 부족에게까지도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준다는 사명감으로 세계 선교에 정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루비 켄드릭이 우리에게 물려준 값진 교훈이며 우리의 사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