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이 쓴 기독교강요 요약 제1권(8)
칼빈이 쓴 기독교강요 요약 제1권(8)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
제 15 장
피조물인 1)인간의 본성, 2)영혼의 능력, 3)하나님의 형상, 4)인간의 자유의지, 5)인간본성의 본래적인 온전성에 관하여
인간은 몸과 영혼(anima, spiritus)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의 본질이며 비육체적 실체로서 몸 보다 더 고상한부분이다.(1권 XV 6) 칼빈은 우리 몸을 가리켜 감옥 혹은 흙으로 된 집, 육체의 장막이라고 했다. 더욱이 “신적인 요소가 영혼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1권 XV 2)고 할 때 인간의 영혼은 육체와 무한한 질적인 차이가 있다.
(1) 인간의 영혼과 육체
칼빈이 철학자 중 플라톤(Platon, 427-347BC)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나(1권 XV 6) 그의 초기작품이 스토아학파의 철학자 세네카(Seneca)의 관용론(De dementia) 주석이라는 사실을 볼 때 칼빈이 인간의 몸을 과소평가하는 이원론적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한 위격(One Person) 안에 두 본성(신성과 인성)이 상호교류 하듯이 이에 유비하여 한 인간 안에 있는 두 본성(영혼과 육체)의 교류와 통일성을 말한다. 따라서 플라톤적 이원론 및 스토아적 육체경시 사상이 칼빈에게 어느 정도 깃들어 있는 것 같으나 결국 칼빈은 인간을 이해함에 있어 전인적인 한 인간 안의 인격적 통일성 그리고 한 인격 내에서의 두 본성의 교류로 보고 있다.
“영혼은 몸이 아니고 몸은 영혼이 아니다. 영혼의 고유한 특성은 몸에 적용될 수 없고 몸의 고유한 특성은 영혼에 적용될 수 없다. 그리고 전인(全人)이라는 것은 영혼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몸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영혼의 특성이 몸으로 이월 되고 몸의 특성은 영혼으로 이월된다. 그러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은 한 인간이지 여러 인간이 아니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한 인간 안에 한 인격이 있으며 이 인격 안에 두요소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 인격을 구축하고 있는 두개의 상이한 본성이 깔려있다는 것이다.”(1권 XV 6)
인간의 영혼은 주로 두 가지 능력과 기능을 나타낸다. 곧 지성(知性)과 의지(意志)이다. 그런데 지성은 영혼의 지휘 내지는 통치자요, 의지는 항상 지성의 지시와 정보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칼빈은 주로 지성을 mind(mens)로 의지를 heart(cor)로 표현한다. 인간 영혼의 능력은 주로 이 두 가지 기능에 해당된다. 아울러 사랑의 정서, 자비와 인간다움에 대한 느낌,(1권 XV 6) 육체적 성정,(1권 XV 8) 감각적 충동과 욕정,(1권 XV 9) 그리고 감성을(1권 XV 7)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칼빈이 말하는 지정의(知情意)의 지성(知性)과 의지(意志)가 인간 정신의 결정적 요소임을 알 수 있다.
(2) 인간의 영혼
그러면 이제 인간 영혼의 기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 해 보자.
1) 사물을 판별하여 무엇이 자기에게 유익하고 무엇이 자기에게 불리한 가 분간한다.(1권 XV 7)
2) 인간의 지성의 민첩성은 하늘과 땅을 탐구해 들어가며 자연의 비밀을 찾아낸다. 그리고 이 지성과 기억력은 온 역사(secula omnia)를 파악하 여 모든 것을 질서 있게 배열하고 과거의 사건들로부터 미래를 알아 내기도 한다.(2권 XV 1)
3) 지성은 올바른 것, 정의로운 것, 덕스러운 것을 파악한다. 이 지성은 또한 선과 악을 식별하고 양심은 하나님의 심판에 응답한다.(1권 XV 2) 그 리고 이 도덕적 판별기능은 종교적 능력과 결부되어 있다. 바로 이 지성이 종교의 씨앗,(1권 XV 6) 하나님에 대한 직관과(1권 iii.1) 거룩한 자에 대한지각을(1권 iii.1) 지니고 있다. 따라서 지성은 지적인 능력뿐만 아니 라 도덕적, 종교적 능력과 기능을 지녔으며 위의 세 가지 기능 중 이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3) 인간의 의지
인간의 의지(意志)란 위의 세 가지 지성의 기능이 식별하고 판단하여 제공하는 정보에 따라 선택하고 추구한다.(1권 xv.7) 따라서 지성 없는 의지는 맹목적이 되고 의지 없는 지성은 행함이 없다. 그러므로 의지는 지성의 손을 잡고 길을 가야한다. 칼빈은 지성과 의지의 대칭에 관하여 플라톤의 이론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플라톤이 말하는 오관(五官)의 오감(五感)을 인정한다. 이 그릇에는 보편적 감각이 담긴다. 다음에오는 것은 저 오관에 의하여 파악된 것을 식별하는 표상 능력이다. 그리고 나서 오관은 보편적 판단을 수행 하고 끝으로 이성은 오관이 산만하게 생각한 것들을 심사숙고하게 하는 작업을 한다. 그런데 이상 세 가지 영혼의 인식 기능인 이성, 오관 및 표상능력에 대칭을 이루고 있는 세 가지 의욕적 기능이 있다. 즉 이성과 오관이 제공하는 바를 추구하는 기능으로서의 의지능력, 오성과 표상능력이 제시하는 것을 포착하는 능력으로서의 절제 없는 욕망 능력이 그것이다.”(1권 xv.6)
지금까지 우리는 칼빈에게 있어서 영혼의 기능이 지정의(知情意)로 요약될 수 있음을 보았고 그 중에서 무엇보다도 지성(知性)과 의지(意志)가 보다 더 결정적 요소임을 알았다. 그러나 부언할 것은 이 모든 것이 이미 논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견해와 아주 비슷하며 무엇보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인 후기 중세기 스콜라주의자들과 에라스무스(Erasmus) 및 루터(Luther)와 더불어 지성보다 의지에 역점을 두고 있는 데,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가 주지주의(主知主義, intellectualism)로 나간데 반하여 역시 칼빈도 실천적 이성(理性)이라고 할 수 있는 의지(意志)를 강조하고 있음이 확실하다.(2권 ii.13-l6)
(4) 인간의 지성과 의지와의 관계
그러면 칼빈이 보는 자연인의 능력은 무엇을 통해 표현되고 특히 윤리적인 면에서 그 한계성은 어떠한가? 칼빈에게 있어서 지성과 의지 그리고 정서와 감성을 지닌 인간의 성취 가능성과 그 한계성은 어떠한가? 칼빈은 이와 같은 인간이 수학, 물리학 변증학, 의학, 철학, 예술, 법학, 문학, 정치 등 모든 학문을 할 수 있으며 정부를 수립하여 다스리고 가정을 영위해 나가고 사회적인 동물로서 본성상 사회를 다스린다고 한다. 더욱이 법을 제정하고 법적인 원칙 하에서 행동함을 볼 때 모든 인간의 영혼 속에는 어떤 시민성, 덕성 그리고 질서의 씨앗이 보편적으로 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2 권 ii.13-l6)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보편적인 능력 그리고 예리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윤리적인 능력의 한계에 관하여 “비록 건강하고 온전하지는 않으나 선과 악을 분별함에 있어서 보편적인 판단이 있다.”고 하면서,(2권 ⅱ.24) 십계명 중 첫 번째 돌 판에 적힌 계명들에는 상응할 수 없고 다만 두 번째 돌 판에 적힌 계명들에 상응하나 후자에 있어서도 실패할 적이 많다고 한다. “인간은 두 번째 돌 판의(출 20:12 이하) 계명들에 대하여 좀 더 많이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들 사이에 시민사회를 보존하는 것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번째 돌 판의 계명들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도 인간은 종종 실패한다.(2권 ii.24) 칼빈은 로마서 2:14,15을 인용하면서 “인간의 지성이 때때로 의로운 행위들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 보다 날카롭다.”고 주장한다.(2권 ii.22) 이방인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내적인 법 또는 자연법이 명령함으로(2권 viii.l) 행동규범을 알고 있다.(2권 ii.22) 뿐만 아니라 이미 논한 대로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감각, 종교의 씨앗(1권 iii.1) 곧 자연적 신(神) 지식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내적인 법(자연법, 양심법)이 타락과 부패로 인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큼 온전하지도 못하고 온전히 성취 될 수도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말씀을 주셨다. 또한 자연적 신(神) 지식만으로는 참 경건에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칼빈은 1권 iv장 1절 이하에서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에게 오려는 사람들을 위한 길잡이라고 말했다. 성경의 권위 증명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루는 것으로 보아 자연적인 신(神) 지식으로는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구속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구원을 이루시는 성령에 관하여 옳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의 말씀이 주어졌다. 이 같은 인간 타락과 부패에 관한 것은 신학적 인간론이기 때문에 신학적 인간론을 다룰 때 상론하고자 하나 적어도 여기에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인간은 그 능력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지나친 낙관론에 떨어진데 반하여 칼빈은 자연인의 정체를 포착하고 그 능력의 한계에 대하여 분명히 하였다.
물론 엄격한 의미의 인간능력의 한계는 하나님 내지는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에서 드러나지만 이상에서 우리는 르네상스 인문주의로부터 물려받은 인간의 구성에 있어 영혼의 능력 및 기능이 칼빈에게 있어 어떠한가를 보았다. 이는 칼빈에게 발견되는 자연인의 모습이다.
우리는 신학적인 규정 이전의 인간의 모습을 보았고 적어도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지성과 의지 그리고 정서와 감성이 칼빈에게서도 발견됨을 보았다. 그러나 영혼(정신)의 능력의 한계에 관해서는 칼빈도 어느 정도 자연인의 능력범위를 인정하였으나,(물론 인문주의자들의 구원에 관련 된 인간의 능력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지만) 역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과는 달리 훨씬 더 낙관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았다. 이제 우리는 ‘신학적인 인간론’을 펼치기 위하여하 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인간의 모습이 르네상스의 낙관적 인간론에 반하여 얼마나 비관적인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출처 / 기독교강요 최종판(1559년), 저술 및 요약 / 요한 칼빈, 라틴어판 번역 / Paul T. Fuhrman, 한국어판 번역 / 이형기 교수, 크리스천 다이제스트사, 1986. < 다음에 계속 >
칼빈의 하나님 형상(Imago Dei)
위대한 종교 개혁자 죤 칼빈(1506-1564)은 “인간 안에 어느 곳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발견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하나님의 형상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인간의 영혼속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심지어 육체를 포함하여 인간의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영광과 광채가 빛나지 않는 곳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오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회복 될 때 우리 영혼뿐 아니라 육체도 온전히 회복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원래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아담이 부여 받은 순결성은 하나님의 형상의 표현이다.”고 하면서 골로새서 3:10과 에베소서 4:24에 근거하여 칼빈은 결론짓기를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원래 참된 지식, 의로움, 거룩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타락하기 전에는 인간은 완전한 상태로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 하고 있었으나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에 엄청난 파괴적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칼빈은 타락한 인류의 하나님의 형상에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 그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철저하게 ‘도말되었다’(utterly defaced), ‘파괴 되었다’(destroyed)고 말함으로 타락 후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취하는 것 같이 보이나 자세히 연구 해보면 타락한 인간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다고 주장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칼빈은 그의 독자들에게 그들이 미워하는 자들마저도 사랑하라고 권하면서 그 이유를 “그 사람의 악한 의도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인간의 타락이 하나님의 형상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거나 파괴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 하더라도 죄로 인한 오염이 너무나도 심하여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끔찍하게 기형적이 된 형상일 뿐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부패하고 오염된 하나님의 형상은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 질수 있으며,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한 회복은 주님의 재림과 함께 임할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