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2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의 유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2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의 유익
요절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문 45 :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얻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답 : 첫째, 그는 자신의 부활로 죽음을 극복하시고 그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위하여 얻으신 의(義)에 우리가 동참할 수 있도록 합니다. 둘째, 이제 우리도 그의 능력으로 새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 셋째, 그리 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요리문답 17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고백하는 바를 공부하게 한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기독교만이 갖고 있는 최대의 사건이며 구원의 메시지이다. 이 세상의 그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리인 것이다. 부활을 믿는 것은 기독교도들 만이다. 그래서 모든 신실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고백하며 자신의 부활 역시 믿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고백하며 이 부활의 진리가 주는 의미는 무엇이며, 또 이를 믿고 고백할 때 얻는 유익은 무엇일 지를 살피도록 하자. 요리문답은 3가지를 가르쳐 준다. 즉 과거적 차원에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얻게 되는 의(義)를 믿는 성도들에게 적용하여 그 부활에 함께 참여시키는 유익이 있고, 현재적 차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부활의 능력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는 점에서의 유익이 있고, 미래적 차원에서는 장차 예수와 함께 누릴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게 하는 유익이 있다. 즉 성도가 예수의 부활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 부활의 신앙이 주는 유익을 나누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먼저, 사도신경(Symbolum Apostolicum)의 예수께서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라는 표현에 관한 것이다. 이 때 ‘사흘 만에’라는 표현은 ‘72시간 만에’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금요일 오후에 돌아가셔서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이 시간으로 따져 볼 때 72시간이 아닌 36-40시간 정도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라틴어 사도신경에서는 72시간으로 말하지 않고 사흘 째 되는 날(tertia)이라고 했고, 영어 사도신경에서도 셋째 날(on the third day)에 부활하심을 고백한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이 점을 유의해야 할 줄 안다.
1. 부활의 역사성
사실 지금도 사후(死後) 부활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은 후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그래서 예로부터 예수님의 부활도 다양한 이론으로 부인하려고 시도해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려는 다양한 주장들은 기절설(십자가의 극심한 고난에 기절한 예수님이 서늘한 무덤에 안장되니까 다시 살아났다는 주장), 도난설(죽은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가서 다른 데 숨겨두고 부활을 전파했다는 주장), 환상설(제자들이 너무도 스승을 연모한 나머지 집단적으로 환상을 보았다는 주장) 등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성경의 다양한 증언들로 인해 철저하게 파괴될 뿐이다. 그 일례로 예수의 제자가 아닌 사도 바울이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는 바를 보면 그 역사성은 충분히 증명된다고 믿는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3-8)
뿐만 아니라, 성경은 인간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게 부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의 죽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부활의 진리를 실제적으로 보여주셨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당시 성도들에게 전혀 생소하지 않도록 해 주시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실제로 부활이 발생했을 때 그 사실을 믿고 받아드리도록 하기 위하여 마르다에게 부활의 믿음을 갖도록 강력하게 촉구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그리고 사도 바울도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고전 15:16)라고 부활의 역사성과 실제성을 강력하게 논리적으로 주장했다. 과연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 부활의 진리를 믿으시는가?
2. 부활신앙이 성도에게 주는 유익
(1) 첫 번째 유익: 예수님의 부활과 그리스도인이 누리게 되는 의로움
먼저 요리문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죄의 권세인 죽음을 이기셨고, 그 죽음으로 인하여 얻으신 의로우심에 부활을 믿는 성도들에 참여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 일어난 예수의 부활 사건을 믿는 성도들의 영적 신분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를 규정하는 진리다. 즉 부활하신 주님의 의(義)는 부활의 진리를 믿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영적 유익이다.
예수께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진노를 친히 다 받으시고,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이 되어 죄인 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충족시키신 것이다. 이를 믿는 자는 하님으로부터 더 이상 정죄당하지 않고 의로운 자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딤전 3:16)
이렇게 부활에 대한 초대교회의 고백은 참으로 확실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이 엄청난 사건에 완전히 매여 이 진리를 전파하는 것을 그들의 최대의 사역으로 생각했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예루살렘성전 설교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이렇게 고백적으로 증언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2) 그리고 그는 그의 서신에서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라고 증언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의 부활과 성도의 영적 신분의 변화와의 깊은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예수 부활을 믿고 고백하는 자들의 영적 유익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예수의 부활은 죄로 인해 죽었던 자들을 구원하여 살려 주시려는 하나님의 긍휼의 역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예수의 부활사건은 바로 죄인 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일으키신 하나님 편에서의 열심이었다는 사실이다. 성도는 반드시 이 점을 알아야 한다. 그 내용은 무엇인가? 바로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얻게 되신 의에 동참한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이 진리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죄를 도저히 묵과하실 수 없기에 그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셔야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기에 인간을 심판하여 영원히 죽게 하실 수 없으신 분이시다.
이 난제를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심으로써 해결하셨다. 이 예수의 십자가 형벌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며,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죄 없으신 아들에게 죄를 물으시고 그를 정죄하여 십자가에서 처형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셨다. 예수께서 우리 대신 정죄 받으신 것이다. 그는 실로 인간의 모든 죄를 몸소 담당하셨다. 그 분께서는 세상 죄를 담당하신 어린 양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렇게 죽은 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인생인 데 하나님은 그 죽은 예수를 성령으로 다시 살리셔서 그가 의로운 자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이 모든 과정과 이유를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1)
또한 이 예수의 부활은 그의 신성과 관련하여 그 자신이 하나님 아들이심을 선언하는 의미하신 것이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롬 1:3,4) 이로써 이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는 이를 믿는 우리로 하여금 그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는 은혜가 있으며, 이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강력한 혜택인 것이다.
(2) 두 번째 유익: 새로운 생명의 삶의 혜택
생각해 볼 때, 죽음을 해결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강해질 수밖에 없다. 전법(戰法)에 배수진(背水陣) 전법이 있다. 군사들로 하여금 죽음 이외에는 선택한 여지가 없음을 확인하고 죽기로 싸우도록 하는 최후의 전법이다. 죽음을 정리한 자는 죽고 사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오직 전쟁 그 자체만을 위하여 싸울 뿐이다. 그때 위대한 승리가 보장된다.
이와 같이 예수의 사람들은 바로 이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고 실망하고 좌절하였다. 그들은 주님이 죽자 낙망하여 낙향하였다. 그러나 예수 부활의 사실이 확인되자 그들은 용기를 갖고 부활의 증언자의 삶을 살았다. 특히 예수를 은 30개에 팔고 자책이 되어 자살한 가룟인 유다를 대신하여 제자를 보충할 때 그 자격요건을 보면 제자들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행 1:22) 즉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할 사명을 인식한 자들이었다.
과연 예수의 부활을 믿고 고백하는 성도는 어떠한 삶을 살게 될까? 사도바울은 이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영적 신분의 영광스러움
부활을 고백하는 성도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산자로 영광스러운 영적 신분을 획득한 자들이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4-6)
2) 새 생명의 삶
부활을 고백하는 성도는 부활 생명으로 살아가는 새 생명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3) 하늘을 향한 삶
부활을 고백하는 성도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고 사는 소망의 삶을 산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1-4)
4) 구별된 삶
부활을 고백하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도 구별된 삶을 살아간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5-10)
이렇게 부활을 고백하는 성도의 삶은 현재의 삶 속에서 구별된 삶으로 죄 된 이 세상 가운데서도 예수와 연합되어 변화된 영적 신분을 간직한 자로써 장차 완성될 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사모하며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생 속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자이다. 그것은 단순한 종교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식을 추구하며 그 지식을 따라 살아가고자 힘쓰는 인생인 것이다.
(3) 세 번째 유익: 부활을 통하여 영생을 고백하는 삶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확실한 보증이 된다. ‘부활의 영광스러움’이란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 살기에 합당한 몸으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육체적인 현재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 영광스러운 나라에서 살기에 합당한 형태로 변화된 영성체(靈聖體)로 변화될 것이다.
성도는 앞에서도 강조하였지만, 자신의 실제적인 부활을 고백하는 자이다. 즉 지금 이 순간에 죽어도 다시 예수 안에서 살아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이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새롭게 영생을 누릴 것을 믿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 놀라운 진리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밝히며 강력하게 권면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0-22)
이 얼마나 놀라운 비밀스러운 말씀인가! 그 영성체는 전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모습이 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천국에서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몸이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하며 부활체의 신비스럽고 영광스러움에 대하여 언급하신 적이 있으시다.(마 22:24-30)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도 육의 몸이 있듯 또한 영의 몸도 있다(고전 15:44)고 하면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1-53)라고 부활의 비밀을 밝히 설명하였다.
한편 이 부활의 진리는 놀랍게도 그저 성도를 천국에 보내기 위한 진리를 넘어서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작정하시고 시행해 오신 바 구원의 완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사도 바울은 이 놀라운 진리를 밝히 설명한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4) 이 복음은 현재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
오늘날 교인들은 그저 교회에 나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위로받고 치유 받고 능력 받아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 즉 많은 돈과 높은 직위와 능력 있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부활의 진리는 그러한 신앙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장차 변화될 영광스러운 부활체를 갖게 하여 완성될 그 신비스럽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하게 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신실한 성도는 예수와 함께 또 그 예수 안에서 이루어질 자신의 부활을 확신하고 그 예수께서 장차 재림하시어 이루실 예수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을 믿는 자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그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다시 환원하여 드림으로써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왕국이 회복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계시하는 구원의 진리인 것이다. 신실한 부활신앙은 바로 이러한 진리를 진정으로 고백하는 자들이 갖는 진리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 부활을 고백하여야만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다. 구약의 성도 모두가 이 신앙 안에서 살아왔으며 소망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의 구원이 개개인의 고백의 차원을 넘어 전 구속역사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이 함께 완성되는 구원임을 강조하며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39,40) 그렇다. 부활신앙은 장차 완성될 그 나라의 영광스러움을 사모하게 하고 모든 성도들이 함께 누릴 영광스러운 나라를 바라보게 한다.
정말로 그 나라에 참여하는 것은 영광스럽고 보배롭다. 그 자리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자리이다. 사도 요한이 본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그 나라의 주인 되시는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하셨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요계 21:3-5)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6)
결 론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를 성도되게 하는 가징 기본적인 진리이며, 성도로써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며, 성도가 장차 누릴 영광스러운 부활체에 대한 보증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유익은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와 함께 붙어있음으로써 맺게 되는 것으로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누리시는 그러한 영광스러움으로 함께 나누게 되는 구원인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즉 시간을 초월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누리게 되는 신비스럽고 거룩한 구원의 진리를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진리로써 이를 실제로 역사상 일어나게 하시고 그 진리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계시하심으로 예수와 함께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도록 하신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누리게 되는 구원을 가장 압축하여 보여주고 또한 믿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부활의 진리 가운데 우리가 초대받았고 또한 그 부활을 누리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활신앙의 유익을 생각하여 예수와 연합된 부활을 확실히 믿고 그 신앙으로 철저히 무장하여 그 영광스러운 나라에서 다 만나 뵙기를 소원한다.(*) 글쓴 이 / 박병은 목사(덴버 둘로스장로교회 담임)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