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서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34) 보이는 말씀인 성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34)
은혜의 수단으로서 보이는 말씀인 성례
제 26 주일(문 65-68) – II

요절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 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

문 66 : 성례란 무엇입니까?

답 : 성례는 거룩한 가시적인 표(標)이며 인(印)으로 하나님께서 최종적 인 것으로 약정(約定)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례의 시행으로 보다 더 충만하게 복음의 약속을 선언하시고 인(印)치십니다. 이는 은혜로우신 주께서 십자가에서 단 번에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사죄와 영생을 허락하십니다.

문 67 : 그렇다면 말씀과 성례 둘 다 우리 구원의 유일한 근거인 십자 가위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대한 우리의 믿음 에 초점을 맞추도록 의도되어져 있습니까?

답 :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통하여 가르치실 뿐만 아 니라, 우리의 전체 구원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리스도의 한 번의 희생제사에 달려 있다는 것을 성례로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십니다.

문 68 :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많은 성례를 새 언약 혹은 신약 성경에 서 제정하셨습니까?

답 : 두 가지 입니다. 거룩한 세례(洗禮)와 성찬(聖餐)입니다.

성례(聖禮, the Sacraments)에 대한 바른 이해는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성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 속에 담겨있는 놀라운 진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 풍성한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성례를 미신적인 것으로 취급하여 무슨 신비스러운 마술적인 요소를 담아 시행하기도 한 경우들이 있기에 성례에 대한 바른 인식을 참으로 중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성례란 무엇일까? 질문 66은 이에 대해 “거룩한 가시적인 표(標)이며 인(印)으로 하나님께서 최종적인 것으로 약정하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가시적인 표와 인’(visible signs and seals)이란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즉 성례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눈으로 보도록 허락하신 표식이며,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완성하신 희생 제사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진노를 예수께 퍼 부으시고 대신 이를 믿는 우리들에게 사죄와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구원의 확증을 하시는 자리가 바로 성례인 것이다. 이처럼 성례는 연약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복음의 약속을 눈으로 보고 도장을 눌러 확증하는 거룩한 예식인 것이다.

1. 가시적인 표와 인침

(1) 표식과 도장 찍음

성례를 표(標)와 인(印)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가? 하나님은 성례를 시행하심으로 복음의 약속을 보다 더 충만하고 확실하게 ‘선언’하시고 ‘인(印)’ 치신다. 여기서 선언하심은 표(標)를 설명하는 말이고 인(印) 치신다는 말은 확증한다는 의미이다. 즉 성례는 마치 도로의 표시판(signs)이 운전자로 하여금 안전하고 쉽게 목적지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며 또 서류에 도장을 찍어 효력을 나타내듯이 하나님의 은혜인 복음의 약속을 눈으로 보게 하고 또한 성례에 참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분명한 효력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2) 표와 인의 필요성

하나님이 성례를 통하여 표식(標式)과 인(印)치심의 의미를 담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의 진리를 완벽하게 갖게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복음의 약속을 두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셨다. 먼저는 말씀(설교)이고 다음은 성찬(聖餐)이다. 즉 설교자를 통하여 복음을 설명하시고 성찬으로 통하여 그 말씀을 눈으로 보고 온 마음으로 체득하여 확증케 하신 것이다. 이 얼마나 확실한 구원의 방식인가!

사실 기독교의 구원은 단순히 “예수를 믿으면 구원 얻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약과 구약의 풍성한 말씀들을 해설하고 설명한다고 해도 어떻게 설교를 통해 모든 구속역사의 내용과 그 속에 담겨있는 구원의 비밀을 다 드러낼 수 있겠는가?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성례를 통해 구원의 도리를 보여주시고 또한 인(引) 치어 확증케 하는 것은 참으로 필요한 것이다. 복음이 담고 있는 심오한 진리를 연약한 인간이 다 알 수 없기에 성례를 통해 보여주시고 확신케 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라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성례의 참여 여부를 자신이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성례를 ‘자기의 믿음의 표(標)와 인(印)’으로 보는 데서 기인한다.

66문에서 “성례는 복음 약속의 가시적인 표(標)이며 인(印)”이라고 할 때 이는 비록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지만 세례에서 고백하는 진리의 내용과 성찬에서 고백하는 바는 내가 아니라 바로 예수께서 제정하신 것이며 완성하신 구속의 진리인 것이다.

즉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그리고 포도즙은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象徵)한다. 이처럼 성례는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구원의 복음 내용을 표시하며 인(印) 치시는 것이지 내가 참여하고 안하고에 따라서 그 효력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2. 말씀과 성례와의 관계

이제 좀 더 성례에 대한 성경 말씀을 살펴보기로 하자. ‘복음 약속의 표(標)와 인(印)’이라고 하는 것은 성례가 복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1) 선포된 복음과 그 복음에 대한 믿음의 확증

성령께서는 선포된 말씀에 대하여 우리 속에서 믿음을 일으키시고 그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력한 믿음을 견지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성례를 통해 역사 하신다. 즉 먼저 복음이 선포되고 그에 따른 표식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확증하는 것이 성례임을 의미한다.

이는 성령께서 연약하고 미련한 우리들에게 눈으로 확연하게 보여주시는 성례를 통하여 자신이 믿고 있는바 복음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흔들림 없이 세상에서 거룩한 언약 백성으로서 살아가도록 하게 하시는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성례가 한때 성례 자체가 어떤 특별한 은혜의 수단(手段)으로 인식되어 가르쳐진 시대가 있었다.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는 미신적인 생각 하에서 유아세례를 베풀었고 또 죽어가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면 하나님의 은혜는 그를 구원에로 이끌어 주신다고 믿었고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의 이러한 행위들은 성례가 나타내고 있는 복음 약속의 표(標)와 인(印)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세례와 성찬 그 자체에 어떤 미신적이고 신비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복음의 내용과 그 복음 속에 담겨져 있는 구원의 약속을 가르치기 보다는 성상(聖像)이나 성화(聖畵)와 같은 것을 사용했으며 또한 맹목적으로 예식에 참여만을 성도들에게 강요했다.

이렇게 말씀을 무시하고 그저 하나의 종교적 예식으로 전락한 말씀과 함께 하지 않는 성례는 결코 성경적이 아니다. 성례 그 의식(儀式) 자체만으로는 그 어떤 신령한 은혜를 주지 못하며 시각적인 효과만 드러낼 뿐이다. 이것은 오히려 복음을 가리고 왜곡시키는 거짓 종교 놀음이다. 그러므로 먼저 말씀을 잘 가르치고 그 다음에 성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예식(禮式)에 담아놓으신 구원의 진리를 확연하게 보여주고 확증하도록 힘써야 한다.

만약 이러한 분명한 절차를 배제한 채 세례교인 숫자만 늘리기 위해 혹은 종교적인 신비주의의 일환으로 성찬을 시행한다면 결국 맹신적이고 미신적인 종교행위로 전락하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성례전에 먼저 분명하게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고 이에 대한 고백과 증언의 차원에서 성례는 시행되어야 하며 또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확증되도록 실시되어야 한다.

(2) 성례의 주인(主人)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세례를 베풀고 성례를 시행할 때 물론 사람들이 직접 수종(隨從)들고 참여하지만 그러나 어디까지나 성례의 주체(主體)는 삼위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하다. 즉 세례를 베풀 때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풀고, 성찬을 시행할 때도 성찬 상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그 상에서 나누는 떡과 포도즙도 그 주인 되시는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것임을 항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이 성찬 예식을 제정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 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 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
3. 믿음의 핵심

질문 67에서는 성례를 통하여 믿음의 내용을 확실하게 알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즉 우리가 믿고 있는바 믿음의 요점 즉 복음이 바로 성례 속에 담겨있다는 교훈이다. 이는 성경 66권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성례를 통하여 보이고 성취됨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친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요 5:39)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구약의 모세오경, 역사서, 성문서 그리고 예언서 등 모든 성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으며 복음서는 물론이요, 서신서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를 말씀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례를 통하여 이러한 복음의 진리와 그 내용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고백하고 확증하는 것이다.

4. 두 가지 성례

질문 68에서는 성례의 종류에 대하여 묻는다.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많은 성례를 새 언약 혹은 신약 성경에서 제정하셨는가?” 대답은 주님이 오직 두 가지 성례만 제정하셨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질의응답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는 주 예수께서 제정하신 것만이 성례라는 것이다. 즉 예수께서 친히 받으신 세례와 예수께서 친히 제정하신 성찬 이 두 가지만이 성례이다. 그러나 성경의 이 같은 가르침과 달리 천주교는 7가지 성례를 주장하고 있다.(참고 7성례 ; 세례, 성찬, 고해(고백), 견신-믿음의 확신을 확인, 서품(신부 안수) 결혼, 임종)

이미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세례와 성찬 이 두 가지 성례는 복음의 약속을 더욱 충분하게 나타내고 또 성례 가운데 담겨있는 귀한 구원의 진리 내용을 우리 마음 속 깊이 인치시기 위하여 주께서 친히 참여하시고 또한 제정하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실제로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제정하신 거룩한 표요, 확증하게 하는 인치는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믿고 참여하는 성도들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게 된다.
(1) 구약과 신약의 성례

유월절
유월절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구약의 성례는 할례와 유월절이다. 할례는 태어난 지 8일이 되는 날 남자 어린아이의 생식기의 표피 끝 을 자르는 예식이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 백 성의 자녀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되는 것 임을 고백하는 예식이며 이를 통하여 언약 으로 주어진 약속과 그에 대한 온전한 순종 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 이러한 고백 가운데 시행되었던 할례의식은 언약의 백성은 누구나 반드시 지켜야 할 예식으로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육신)에 대하여 죽고 새로운 생명(영적)으로 다시 살아가는 언약의 백성임을 고백하여 실시한 구약 성도들의 표식(標式)이며 인침이었다.

뿐만 아니라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가리키고 있다. 모세를 통해 출애굽 당시 제정하신 이 유월절은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그 집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죽음을 보지 않고 살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받음을 예표 하는 사건이다.

신약은 바로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흘리신 보혈로 구원하시는 길을 여셨음을 가르친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여기서 확인되듯이 구약에서는 두 가지 성례 모두에서 피가 있어서 할례를 실행할 때 피를 흘리는 것이나, 유월절에 양의 피를 흘리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 백성을 위하여 흘리신 보혈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에서의 성례 즉 주께서 친히 참여하시고 제정하신 성례에는 피가 없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그 복음을 믿는 자에게 참여시키시며 기념하게 하시려는 의도로 주어진 성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은 예수께서 제정하신 성례에 참여함으로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산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거룩한 언약식에 참여하여 주님의 구속의 사역을 기념할 뿐 아니라 장차 다시 오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구약이나 신약에서 시행되는 성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핵심을 가르쳐 줄 뿐 아니라, 그 성례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한 가지의 믿음으로 살아가며 소망하도록 하게 하시기 위함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신약 시대의 성도들의 믿음의 완성의 의미가 중요함을 이렇게 강조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 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11:39,40)

(2) 세례

세례
세례

세례(洗禮, Baptism)는 예수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친히 세례 요한에게 세 례를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 여 친히 죄인의 자리에서 받으신 성례이다. 이렇게 세례가 의미하는 바처럼 우리 예수께 서는 친히 죄인이 되시어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서 구원의 길을 확실하게 이루셨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성도들에게 세례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3-5)

즉 세례란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을 고백하며 성도가 주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 새 생명을 얻었음을 고백하는 예식이다. 즉 세례는 죄 씻음을 통한 사죄를 고백할 뿐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한 존재로서의 연합의 개념이 담겨있는 성례이다.

(3) 성찬

성찬
성찬

예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 기 전 유월절 잔치를 제자들과 함께 가지시 며 새 언약 예식을 제정하셨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 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 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

이 예식을 제정하신 주께서는 주의 오시는 날까지 계속할 것을 명하셨고 그래서 초대교회는 모일 때 마다 이 거룩한 예식을 거행하여 주님을 기념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성찬(聖餐, the Lord’s Supper)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원 진리를 전하고(설교), 그 구속사건 속에 담겨있는 진리 즉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들을 예수와 함께 연합시키시는 예식 즉 세례와 성찬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삼으신다. 이는 말씀 계시와 행위 계시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계시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근거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교회는 이 두 가지 성례(聖禮)를 시행함으로 성령께서는 이 예식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믿음의 표를 주시며 하나님의 언약 백성 됨을 확증시키시어 복음에 순종하고 헌신하도록 하셔서 참된 구원의 은총을 주시는 것이다.

결론

믿음이란 결코 막연한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2천여 년 전에 일어난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만이 아니라, 그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 예수께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사건임을 복음을 듣고 성령님께서 그 복음을 나의 마음속에 믿도록 역사하셔서 주님과 함께 연합한 존재로서 주님의 언약 백성 됨을 찬양하고 주를 기념하며 장차 오실 주님을 믿고 대망하는 고백과 확증을 하는 그 것이 믿음이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에 참여하는 것이 성례이다.

그리하여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강력하게 언약의 백성 된 성도들에게 서로 믿음의 공동체로서의 신실한 사랑의 교제를 나눌 것을 당부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2-25)

이러한 말씀의 차원에서 우리가 성례에 참여하여 예수와 연합된 언약백성임을 고백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속에 온전한 구원의 은총을 선물로 풍성하게 주실 것이다. 글쓴 이 / 박병은 목사(덴버 둘로스장로교회 담임)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