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이단들 그들은 어떤 존재인가?
한국 기독교 이단들 그들은 어떤 존재인가?
한국에는 기자가 아는 재림 주(主)가 10여 명이 된다. 이중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OOO님’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다. 교주의 이름으로 넣어 ‘주기도문’ 형식으로 만들어서 암송하는 단체도 있다. 예를 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 OOO님”이라며 교주의 이름을 넣는 것이다.
한국에는 이단에 빠진 사람을 2백만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2009년 현재) 1백만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숫자는 알 수가 없다. 그들이 인구조사를 할 때 종교 란에 ‘이단’이라고 쓰지 않는 다음에야 그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가 있다. 처음부터 이단에 빠지고 싶어서 빠진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여신도 성폭행, 강제추행 등의 죄목으로 10년 형을 선고받은 JMS(정명석)라는 이단이 있다. 이 세상에 누가 그런 교주 밑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겠는가? 아무도 없다. 2008년 12월경에는 방송 3사가 여신도에게 붙은 귀신을 쫓아낸다며 폭행을 하다가 사람을 죽인 교회가 있다고 보도했다. 그 교회 신도들은 죽은 신도가 부활한다며 18일간 함께 생활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경찰에 일제히 검거됐다. 정말 어느 누가 처음부터 이런 단체에 다니고 싶어서 다니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이 세상에 이단에 빠지고 싶어서 가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그런데 왜 빠지는 걸까? 답은 하나다. 이단이 뭔지 몰라서 빠진다. 그래서 한국교회 기독교 이단을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단(異端)이라는 말은 ‘다를 이(異) 끝 단(端)’으로 ‘끝이 다른 것’이다. 이 말은 이단의 겉모습을 설명할 때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이단들의 겉모습은 정통 기독교와 거의 다를 바가 없다. 같은 성경을 보고 같은 하나님을 찾는다. 같은 찬양과 기도드린다. 우리와 똑같이 사도신경을 외고 구원을 얘기한다. 그런데 끝은 완전히 다르다.
기자는 이단 단체 신도들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 그들은 정말 모두 ‘정신병자’들일 거라 생각했다. 그 선입견은 취재 몇 번에 깨졌다. 서울 신당동에 있는 한 이단 단체를 취재차 방문했었다. 그 단체 홍보요원이 나를 맞이했다. 여신도였는데 내가 지금까지 취재하면서 그처럼 예쁜 이단 여성은 아직 보지 못했다. 또 다른 이단 단체를 방문했을 때다. 해맑고 너무도 순수한 대학생 한명이 나를 맞았다. 나는 그가 이단 단체에서 생활하는 게 안타까워 물었다. “언제부터 다녔나?” 그가 말했다. “모태신앙이다.” 여기서 모태 신앙은 뱃속에서부터 교주를 하나님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이 같이 이단들의 겉모습은 우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예쁘고 매력적이고 멋있을 수도 있다.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이단이라는 헬라어 하이레시스(hairesis)는 ‘고집’(固執) 또는 ‘선택’(選擇)을 의미하나 이것이 나중에 ‘당파’(黨派), ‘종파’(宗派)의 뜻으로 발전했다. 그 의미는 성경에서 당파(행 5:17), ~파(행 15:5, 28:22), 편당(고전 11:19)으로 나타난다. 이 용어의 의하면 거짓된 교리를 기초로 해서 당파를 짓는 것을 이단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초대 교회 이후로 복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를 통해 참 복음이 회복됐다.” “이 시대의 목자들은 완전히 타락해서 진리가 없고 이젠 말세의 사명 자를 통해서만 진리의 말씀을 받을 수가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짜 가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120% 진짜 이단이다.
거짓 분리와 파당은 때로 걷잡을 수 없는 극단으로 치닫기도 한다.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공동체를 운영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세계 최대 집단 자살극은 ‘인민사원’이라는 단체에서 일어났다. 원래 본거지가 캘리포니아였던 ‘인민사원’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 아프리카 정글로 본부를 옮겼다. 내부적으로 성(性) 폭력, 재산 갈취, 학대 등 비리가 자행됐고 이런 그들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에서 하원의원이 찾아가자 인민사원측은 그를 살해했다. 가이아나 주 정부군이 이들을 급습했다. 그러자 ‘인민사원’의 신도(?) 914명이 모두 집단 자살로 최후를 마감했다. 로버트 치알디니는 ‘설득의 심리학’에서 만일 그들이 가이아나의 폐쇄된 정글 속에 있지 않고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그대로 있었다면 이런 집단 자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단체의 폐쇄성이 ‘인민사원’ 이단들을 극단으로 몰아갔다는 지적이다.
성경에서는 이단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 1) 이단 그들은 공통적으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否認) 한다.
그런데 이단들도 멍청이가 아니다. 부인을 해도 그냥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순진하게 말하지 않는다. 말을 살짝 바꾼다. 그래야 사람들이 속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2천 년 전의 메시아이고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으니 하나님이 쓰시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런 말이 예수를 부인하는 말이다. “예수님의 영이 나의 육신을 입고 다시 오셨다.” 이런 말은 이단들이 쓰는 상투적인 표현이다. 이 말은 육은 사람이지만 내 속에 예수의 영이 재림했다는 표현이다. 정통 교회에서 말하는 성령의 내주하심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이단이란 본질적으로 항상 교리적인 문제로서 성경과 역사적 정통 교회가 믿는 교리를 변질시키고 바꾼 다른 복음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이 말은 기독교 정통 교리에무식한 교인은 이단의 사냥 목표요 먹이 감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 만큼 이단을 물리치는 데는 기독교 정통교리가 중요하다.
기자에게 가끔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매일 이단만 취재하다보면 이단 교리의 영향을 받지 않는가?” 사실 이단 교리서를 읽다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 논리와 교리가 아주 그럴 듯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써먹으면 이단 교주가 될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단 교주를 취재할 때 이런 일도 있었다. 내 머릿속에 아주 찰나의 순간 “정말 OOO 씨가 하나님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스친 적도 있다. 소름 돋는 기억들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이단과의 영적 싸움이 치열하다. 그것은 주님 재림의 때가 정말 가까웠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단에 대해 알면 알수록 취재하면 할수록 성경 말씀만이 진리임을 깨닫게 된다. 내가 만난 이단에 빠진 자들의 공통점은 그들 대부분은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제대로 체계 있게 해본 적이 없고 기독교 정통교리에 대해서는 들어 본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교회 온갖 행사와 프로그램에만 정신없이 바빴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이단에 빠지지 않고 성경대로 성령 안에서 예수를 믿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 은혜 너무도 감사하고 감사하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단의 끊임없는 미혹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능력이 됨을 확신한다.(*) 글쓴 이 / 정윤석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