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29) 죄 사함을 고백함이 주는 유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29)
죄 사함을 고백함이 주는 유익

제 21 주일(문 56)

요절 :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 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4b)

문 56 : 당신은 ‘죄 사함’에 관하여 무엇을 믿습니까?

답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의를 만족 시키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죄와 내가 한 평생 싸워야 할 나의 죄 악한 본성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그리스도 의를 나에게 선물로 주셔서 결코 정죄함에 이르지 않게 하십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56문에서는 ‘죄 사함’에 관하여 다룬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성도는 누구나 죄 사함에 관해 알고 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죄가 사해진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죄의 교리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사죄의 교리를 생각할 때 하나님으로 부터 어떻게 죄 용서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사죄의 교리를 고백할 때 성도에게는 어떤 유익이 주어지게 되는 것일까?

1. 죄 고백의 순서

먼저 죄를 고백하는 순서에 대하여 서론적으로 생각해 보자. 흔히 사람들은 “예수께서 내 죄를 사해주셨기에 교회에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도신경에서는 먼저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한 이후에 사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해주시는 것”을 차례로 고백함이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순서로 고백하게 될까? 이는 교회가 죄 사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죄를 고백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전제 조건이 말씀으로 인하여 죄를 깨닫게 되는 것인데 이는 교회에서 선포된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그 말씀을 들은 사람의 마음속에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즉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선행되어야만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고 그 말씀을 듣는 자가 성령의 역사로 회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 쉬운 존재이기에 말씀으로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기 전에는 결코 자신의 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도적인 말씀의 선포가 교회에서 있을 때 그 말씀을 통해 죄를 깨달은 개인이 회개를 통하여 사죄의 은총을 간구하게 된다.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21b-23)라고 하셨다.

이처럼 죄 사함이 교회를 통하여 말씀으로 선포되고, 거기에 그 말씀에 따라 자신의 죄를 깨달은 자가 회개를 하게 되는 죄 사함을 고백하게 되므로 사도 신경에서처럼 교회를 먼저 고백한 후에 죄 사함을 고백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2. 죄 사함과 육신의 부활 그리고 영원한 생명

또 한 가지 고백 순서에 있어 강조해야 할 점은 바로 사도 신경에서 보듯이 “죄를 사해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즉 죄 사함이 교회를 선택하는 조건이 아니라,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가 있어야 죄 사함을 할 수 있으며, 이 죄 사함을 고백하는 것은 성도가 반드시 해야 할 평생의 과업이라 하겠다. 이렇게 죄 사함을 받은 성도는 몸의 부활과 영생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육신의 부활과 영생은 죽음 이후의 문제이기에, 성도는 한 평생 사죄를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는 죽음 이전에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주님께 사죄를 요청하며 살아야 하며 죽음 이후에는 그들에게 육신의 부활과 영생이 주어지게 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또 ‘죄 사함’이라는 말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특징임을 잘 나타낸다. 그래서 성도는 항상 죄의 굴레로부터 해방되는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게 된다. 그 이후 이 세상을 떠나면 이제 죄 짓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그리스도 주님과 함께 영원한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리문답 42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것이라면 성도가 또 죽어야 할 이유를 물으면서 성도의 죽음은 성도가 지은 죄를 위한 형벌이 아니라, 오직 지은 죄에 대하여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영생에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다고 가르친다.

이 점에서 성도의 죄 사함을 고백하는 것은 한 평생 신앙생활에서 구하고 고백해야 할 필수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마 6:12)

3.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질문 56에서 죄 사함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 데, 하나는 ‘나의 모든 죄’와 ‘내가 일평생 싸워야 할 나의 죄 된 본성’이라고 한다. 즉 ‘죄 사함’이란 이 두 가지 모두를 기억하지 않으시고 나를 용납하시기 위하여 사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1) 죄 사함의 의미

잘 아는 대로 인류의 조상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말았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죄를 지은 인간을 찾아오셨다. 그러나 은혜로 찾아온 하나님께 인간은 변명과 책임전가로 일관했다. 결과 인간은 하나님의 저주받아 영원한 사망의 길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적시하여 “모든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에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지적하였고(롬 3:23),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10)라고 선언하였다.

우리 인간은 창조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살아가는 죄인들이다. 처음부터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를 지속적으로 짓고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인간의 운명적 상황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고 진단하였다.

이러한 죄성은 지독한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사망의 길로 끌고 가고야 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이러한 죄의 영향력은 인간을 한 평생 사로잡아 지속적으로 죄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하므로 인간은 한 평생 죄의 용서를 구하는 삶을 살아가 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러한 운명적으로 사망의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인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유일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믿는 구원의 길이다. 사도 요한은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1,2)고 설명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진리를 알게 된다. 그것은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근본적으로 죄에 굴복하여 복종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인 인간을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어떻게 다루시는 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죄의 은총을 이렇게 고백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2-14)

창조주 하나님은 이런 죄성(罪性)에 따른 죽음 가운데 처한 존재인 인간을 아시고 이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것은 인간 스스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운명적 상황을 해결하시는 구원 사역이며, 이는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와 더불어 사망의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을 구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구원의 역사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2,34)고 강력하게 진술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죄 된 인간의 연약성을 예수 안에서 해결해 주셨다. 이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처지를 아시고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이다. 즉 예수 안에서 죄의 깊은 뿌리를 해결하시고, 순간순간 짓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놀라운 사죄의 길을 열어놓으셔서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믿고 고백하도록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다.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 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4)

(2) 기억 지 않으시고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의미

하나님은 비록 우리가 죄악 가운데 있지만, 예수 안에서 우리의 죄악을 기억하지도 아니하시고 온전히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다. 여기서 “기억하지 않지 않는다.” 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나의 모든 죄와 또한 내가 일평생 싸워야 할 나의 죄의 본성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잘 잊어버린다. 그러나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시며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과거 일이나 미래 일이나 그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역사를 통하여 아드님께서 이루신 공로 가운데 우리의 모든 죄와 죄의 본성까지 용서해 주시며 기억하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용서의 시간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룰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진리가 어떻게 성도 각자에게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적용되고 성취되는 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또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표현의 또 다른 개념 속에는 “정죄함에 이르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 포함된다. 질문 56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사죄함과 함께 정죄함에 이르지 않게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서 해결하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기억하셔서 이를 믿는 성도가 정죄에 이르지 않도록 조치하시는 것이다.

여기서의 문제는 성도가 이 점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니까 죄를 지은 다음에 예수의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저 예수를 믿으니 용서를 해달라고 만하면 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죄를 사해 주신다고 생각하는 착각이다. 그리고 그는 그저 죄를 즐기다가 용서를 구하는 행위를 계속해도 괜찮다고 가볍게 생각하게 된다. 단지 회개하면 깨끗하게 씻어 주시고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아전인수 격으로 하나님으로 착각 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 14:10b-12)

이 말씀은 모든 사람 즉 신자까지 포함하여 각각의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이전에 지은 모든 죄들에 대하여 심지어 주님을 고백하고서도 지은 죄까지도 행한 대로 심판받을 것을 경고하고 있는 말씀이다. 단순하게 회개를 하며 용서를 구했으니 하나님은 무조건 사해 주고, 마치 지우개로 잘못 쓴 것을 지워 깨끗하게 하듯이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 다시는 기억조차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사죄의 교리를 아전인수 격으로 생각하는 잘못인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당연히 다 아시고 기억하신다. 그러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변호사 이신 예수께서 계셔서 우리의 죄에 대하여 변호해 주시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 10:32,33)

하나님께서는 심판대 앞에서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았던 자가 예수께서 십자가의 대속의 피를 믿고 회개했음을 변호하셔서 그 믿음을 보시고 그 자가 지은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고 또한 정죄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이것이 사죄의 교리이며 정죄에 이르지 않게 하신다는 의미인 것이다.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고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말을 심판대 앞에서 무조건 통과할 것으로 오해하고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 지 아니하리라.”(렘 31:34)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 제사를 보시고 “죄악을 사해 주신다.”는 의미이며, “기억도 안하신다.”는 의미이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기의 구속을 예언한 말씀이며 또한 주께서 이루실 속죄의 완전함을 가르치는 말씀인 것이다.

4. 그리스도의 의를 나누어주심

속죄(贖罪)의 진리는 단순히 사죄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이미 주님은 이를 위해 이 같이 우리를 초청 해 주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아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가 사해진다. 죄의 무거운 짐이 예수 안에서 벗겨진다. 그 무서운 죄의 형벌을 해결 받을 수 있게 된다. 그 이유는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죄의 핵심은 내가 지은 죄를 직접 고백하고 회개할 수 있는 길이 예수 안에서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우리 죄를 회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고 말씀했다. 즉 예수를 우리 대신 정죄하셔서 십자가에서 처형하심으로 그를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의로운 존재가 되도록” 취급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 주시는 방식이다. 즉 하나님은 예수께서 완성하신 의(義)를 이 진리를 믿는 성도에게 나누어 주셔서 죄인인 성도를 의로 여기시는 것이다. 이것이 칭의 교리에 있어서 핵심 진리이다.

이 사죄의 은총이 얼마나 중요하고 기쁜 일인지 다윗은 이렇게 회개와 사죄의 은혜를 고백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3-5)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2)

죄인 되었던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은총을 사모하여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할 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완성하신 의의 혜택을 회개하는 죄인에게 적용하셔서 받아 주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실한 성도는 항상 참회하는 마음과 신실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나올 때 이 놀라운 사죄의 기쁨을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맛을 보셨는가? 이러한 영적 체험이 진정으로 있어서 풍성한 거듭남의 신앙을 누리고 있으신가? 정말로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5. 사죄의 과정

어떻게 사죄의 과정이 진행되는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義)를 근거로 회개하는 자에게 적용하시어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기 바란다.

(1) 우리의 죄악을 폐기하심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9)

(2) 우리의 죄악을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심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1)

(3) 그리스도의 의로 우리를 덮어 깨끗하고 흠이 없게 하심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5-27)

이 말씀들은 예수에게 모든 죄를 담당시키고 그 죄에 대하여 정죄하셔서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고 또한 이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주께서 이루신 이 구속의 진리를 믿고 고백하는 자에게 주께서는 말씀으로 정결하게 하시는 작업을 끊임없이 교회를 통하여 수행하시고 계시는 주님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6. 현실과 믿음 – 갈등하나 승리함

그런데 이 죄가 얼마나 인간 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지 심각하다. 바울은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죄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하는 지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 7:21-24)

놀라운 관찰력이다. 이러한 죄의 실존적 문제를 고민해 보신 적이 있는가? 율법을 완전히 지키려 했던 바울은 자기 속에서 계속하여 꿈틀거리는 죄악의 깊은 뿌리를 보았다.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죄 성을 본 것이다. 스스로 수양을 쌓고, 선을 행하여 해결하려고 한다 하더라도 해결될 수 없는 죄의 깊은 속성을 본 것이다. 그는 이 해결되지 못하는 죄 문제를 오직 예수 십자가를 통하여서만 해결될 수 있음을 깨닫고 이렇게 선언하였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가?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이 놀라운 선언이야 말로 참된 자유요, 기쁨이요, 축복이다. 비록 속고 속이는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지만, 죄와 죄책에 대한 양심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복을 성도는 받았고 또한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이며 복음의 능력이다.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7,18)고 말씀하셨다.

결 론

용서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영(靈)의 사람이 되었다. 그러기에 참된 자유와 기쁨과 주어진 신분의 회복을 통해 어느 것으로부터도 제재 받지 않고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기에게 주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7,9)

참된 구원의 진리를 알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는 참된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성도는 더 이상 죄 가운데 얽매어 행동의 제약을 받음이 없이 자유와 기쁨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와 백성이 된다. 주께서는 성도로서 누리는 특권과 혜택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2,36)(*) 글쓴 이 / 박병은 목사(덴버 둘로스장로교회 담임)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