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신조와 신앙고백 교육 오늘날 그것이 왜 중요한가?

교회의 신조와 신앙고백 교육 오늘날 그것이 왜 중요한가?

신조(信條)는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를 핵심적으로 축약(縮約)해 놓은 것이고 신앙고백(信仰告白)은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를 성경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1. 신 조

개혁교회가 고백하는 중요한 신조에는 사도 신조, 니케아 신조, 아다나시우스 신조 등이 있다. 이러한 신조의 공통점은 그 내용이 성경의 내용과 일치하고 사도들의 신앙을 계승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회와 종말에 대한 기독교 신앙고백을 함축하여 간략하게 정립한 것이라는 점이다.

2. 신앙고백서

신앙고백서는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를 좀 더 세부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교회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교육하기 위한 교육용으로 형성이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까 그 수가 많이 있다. 왜 그러냐면 기독교 안에 여러 교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교파들이 다 신앙고백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신앙고백서를 형성한 교파는 루터파, 성공회 그리고 장로교회 / 개혁파교회 등이다.

3. 신조와 신앙고백서의 차이

– 신조는 먼저 개인적인 고백의 내용으로 사용되어 시제가 1인칭 단수의 개념이다. 반면 신앙고백서는 개인적이기 보다는 교회의 전체의 고백으로 사용되어졌고 그래서 시제가 1인칭 복수이다.

– 신조는 원래 교회의 예배에 사용되도록 되어졌고 신앙고백서는 예배보다는 가르치는데 필요한 문서로서 만들어졌다.

– 신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하나님의 진리에 관하여 기술한다. 인간의 이름과 인간의 오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물론 예외적으로 마리아와 본디오 빌라도라는 것이 있지만) 반면 신앙고백은 폭 넓게 국가에 관하여도 말하며 나아가 이단과 이탈한 신앙 견해에 대해 날카롭게 대항하고 여기에 대한 논박이 있다.

– 신조는 매우 짧다. 그리고 신앙의 중요한 점이 핵심적으로 언급되어진다. 반면 신앙고백서는 매우 광범위하며 신조에서 언급된 진리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 같은 신조와 신앙고백은 모든 교인이 함께 공적으로 고백함으로써 교회가 주 안에 하나라는 신앙의 틀을 이루는 것이다. 그 이유가 신앙은 강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는 자유롭고 양심적인 신앙고백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하나님께 복종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신앙 양심의 자유는 대단히 중요하다. 신앙 양심의 자유는 누가 말한다고 해서 무엇인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자기 자신과의 하나님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고백이 자기 자신의 신앙 양심에 의해 발휘되고 나아가 자신의 삶 속에 실현되어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심이 있느냐 없느냐는 오로지 하나님과 개인과의 문제이다. 그러나 동일한 신앙고백을 통해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기 때문에 그 신앙고백은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신앙고백이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온 교회가 함께 고백할 수 있는 동일한 신조와 신앙고백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의 온 회중이 각자의 신앙 양심에 따라 동의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것이어야 한다. 만약 이것이 되지 않으면 늘 교회가 흔들리게 되고 한 신앙 공동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각 개인의 양심적 신앙고백에 의한 하나 된 교리에 의한 교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회는 늘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 소위 믿음이 좋다는 사람에 의해 혹은 어떤 카리스마가 있는 목사에 의해 교회가 흔들리거나 마음대로 움직여질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바로 온 교회가 이 하나 된 분명한 신앙고백이 이루어지지 못한데 있다. 한국교회의 다양한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 된 것이다. 교회 전체가 진정으로 동일한 신앙고백을 할 때만 교회는 하나이며 교회법이 유효하다. 그러나 각자의 신앙고백이 다르면 성경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 있어 각자 다른 견해로 접근하기 때문에 이는 결국 신앙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신앙의 일치를 위해 온 성도의 동일한 신조와 신앙고백이 필요한 것이다.

4. 신앙고백서를 부인하는 두 형태

하나는 전적으로 부정하는 형태이다. 오직 성경만을 절대적 권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성경의 핵심을 요약 체계화 한 신앙고백을 거부함으로 결국에는 성경을 부정하는 것이다. 주로 자유주의 신앙과 신비주의 신앙에 빠지게 되면 이런 태도를 취하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신앙고백서 채택을 거부하는 것이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고백서의 공적인 채택으로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거나 잘못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만일 이런 것이 아니라면 교회가 동일한 신앙고백에 의한 신앙공동체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무지하거나 아예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보면 정통 기독교는 역사적인 올바른 신앙고백서를 채택하여 성경적인 신앙을 정립하여 왔다. 교회는 동일한 신앙고백을 통해서 동일한 성경적인 신앙이 확립되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신앙고백 없이도 성경에 대한 권위가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그와는 정반대로 분명하고 올바른 성경적인 신앙고백을 채택하지 않는 교회나 개인이 오히려 항상 신앙의 오류에 빠지고 이단들에 의해 흔들릴 위험이 높다.

5. 신조와 신앙고백 교육의 중요성

그러므로 교회는 성경적인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채택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의 영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이 되게 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 형성의 기본이다. 대다수의 한국교회가 신조와 신앙고백서 채택을 무시하고 간판만 걸고 교회를 시작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무질서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한국교회가 신조와 신앙고백을 무시하고 전혀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신앙의 통일성도 질서도 없다.

교회가 신조와 신앙고백을 통해 하나가 될 때 교회의 온갖 혼란스러움이 제거 되며 영적으로 육적으로 질서 있는 교회가 된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어떤 소외됨이 있을 수 없다. 왜냐면 온 성도가 동일한 신앙고백을 통해 신앙이 일치되고 그 신앙고백 안에서 양심의 자유를 가지고 스스로 복종하는 교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치된 신앙의 내용과 그 아래 하나 된 교회 질서가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나아가 신조와 신앙고백을 공부하는 것은 곧 성경을 공부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신조와 신앙고백은 주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 된 성경의 광대한 내용을 가급적 짧은 시간 내에 숙지할 수 있도록 핵심을 함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로마 가톨릭교회처럼 성경의 권위와 신앙고백서의 권위를 동등하게 여기면 안 된다. 신조와 신앙고백서는 성경을 근거로 한 성경을 통해 인정 될 수 있는 권위이지 신적 권위를 가진 성경 위에 있는 권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앙고백서는 언제든지 미완성일 수 있다. 또한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가이드로써의 신앙고백서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또 다른 신앙고백서가 계속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역사적 신조와 신앙고백은 오늘의 한국교회의 침체와 혼란을 극복하고 이단의 침투를 막을 수 있는 중요한 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