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의 삶

에베소서 5:18-21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의 삶

빛의 자녀로서의 삶은 한 마디로 ‘성령 충만의 삶’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한다. 여러분은 성령 충만한가? 그 성령 충만은 어떤 의미인가? 흔히 말하는 성령 충만은 방언을 하고 각종 은사를 행하고 능력 있는 기도의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1. ‘성령 충만’과 ‘성령 세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고백하는 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의 역사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성령 하나님은 죄인들을 부르셔서 말씀으로 변화시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게 하신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진리를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는 가운데 분명히 알게 되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여기서 물(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구원의 역사를 그에게 계시하시는 한 과정으로 놀라운 환상을 경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육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행 10:9-16)

이 환상을 경험한 베드로는 자신을 초청한 이방인 고넬료에게 가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건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때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셔서 베드로 자신이 오순절 다락방에서 체험한 것과 같은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이방인인 그들에게 임함을 목격했다. 그리고 이는 그들에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되심을 고백하는 이방인들에게 거리낌 없이 세례를 베풀어 준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 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행 10:44-48)
베드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행위 즉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고 교제를 나누었다고 힐난하는 동료들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를 설명했다.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6-18)

우리는 여기서 ‘성령의 세례’란 성령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하게 역사하셔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하시는 구원의 사역 즉 영생을 얻게 하시는 회개의 사역임’을 알 수 있다. 이를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즉 성령의 인(印) 침과 성령의 세례 혹은 성령을 마심이라는 표현은 모두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2. 성령 충만의 삶

본문 18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여기서 문법적으로 이 구절에 두 개의 명령으로 되어있다. 즉 술 취하지 말 것과 성령 충만을 받을 것 이 두 가지 명령이다. 이 둘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으며 또한 차별성이 있다.

술과 성령의 유사성은 무엇인가? ‘술기운’에 의하여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하듯이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성령의 기운’ 지배받는 것이다. 그러나 차별성이 있다. 술의 지배를 받는 자는 자신의 의지가 자유롭지 못하여 이성을 잃은 상태가 되지만,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이성적으로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매우 이성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술 취함은 방탕한 것이다. 방탕(asotia, excess)이란 말은 이 당시 에베소에서 대중적으로 디오니수스(Dionysus) 신을 섬기는 자들이 그들의 종교 의식에서 ‘술에 취하는 것이 신의 계시를 받는 것’으로 알고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한다. 그 결과 어떤 행동이 나오겠는가? 술 취한 사람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의 모습은 어떤가?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19-23)

그러므로 성령의 세례를 받은 성도는 내주 하시는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살전 5:19),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하며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만 한다. 이런 차원에서 성령 충만은 성령 세례와 다른 것이다. 즉 성령 세례는 처음 예수를 고백할 때의 성령의 역사(고전 12:3, 13)를 의미하는 단회적인 것이라면, 성령 충만은 성령의 전적인 지배를 받아 계속적으로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상태를 의미한다.

3. 성령 충만한 삶의 모습

그러면 사도 바울이 말하는 성령 충만한 성도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19-21) 이 문장은 네 개의 현재 분사 즉 지속적으로 행하여야 할 4가지의 동사로 행동 지침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은 ‘화답하라, 찬송(노래)하라, 감사하라, 복종하라’는 것이다.

(1) 교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엡 5:19a)

교회에서는 예배 시 많은 찬송을 부른다. 독창이 아니라 합창이며 교창(交唱)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시 95:1,2)

교회생활에 있어서 이 찬송은 교회 공동체의 교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교창(交唱) 즉 화답하여 찬양하고 교제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취급했다. 흔히 찬송을 곡조 붙은 기도라고 한다. 서로 기도하고 서로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인가? 성령 충만한 사람은 이렇게 시, 찬미,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공적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koinonia, fellowship)를 매우 중시하여 성도 간에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2) 경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b)

여기서 노래하며 찬송하라는 것은 하나는 목소리로 다른 하나는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시편을 통하여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 지어다.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 지어다.”(시 18:1,2)

구약의 성도들은 모든 노래와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했다. 이 때 건성으로 할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양하라는 것이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진정으로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속의 은혜를 찬양하며 경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이다.

(3) 감사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20)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서 또 하나의 특징은 항상 감사하는 모습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 항상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어서 감사하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범사’란 ‘모든 일’이란 의미가 아니라 조건적인 범위를 갖고 있다. 그 범위는 바로 이어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인 것이다. 이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8:28에서 말씀하고 있는 차원에서 하게 되는 감사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즉 성도의 감사는 삶 속에서 얻어지는 그 어떤 혜택과 유익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러한 구원의 기쁨과 감격 속에서 살아가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기리고 그것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감사하는 삶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성도는 삶 속에서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생활인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4) 복종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성령 충만한 성도의 삶의 모습은 ‘피차(서로) 복종함’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자신의 영권(?)을 믿고 강압적이고 주장하는 태도로 거만하고 공격적이고 남을 무시하는 태도로 주장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성령 충만한 성도의 모습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가운데’ 서로 복종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성령을 베풀어 주시는 바로 그 주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겸손하고 온유하게 섬기라는 것이다. 즉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게 하시는 주님을 섬기는 성도이기에 그 앞에서 섬길 것을 명령하는 것이다. 여기서 ‘피차’라는 의미는 사회를 구성하는 각종 조직에 있어서의 성도로서의 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원리라 하겠다. 그것은 앞으로 주어질 5장, 6장의 가정, 사회에서 성도의 삶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 된 우리는 말씀으로 거듭나 성령 충만해야만 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다. 그러면 성령 충만 하라는 명령에 충실하게 따라야 할 것이며 이는 그 어떤 은사를 추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항상 사도 바울이 명한 네 개의 현재분사 즉 지속적으로 행하여야 4가지 행동 지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성도 간에 삶 속에서의 거룩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찬양하는 아름다운 교제에 힘써야 한다.

– 하나님을 마음으로부터 찬양과 경배를 하여 예배드려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하 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성도로서 피차 복종하며 섬기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결 론

여러분은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있는가? 그것은 쉽게 생각하여 방언을 말하고, 은사를 추구하고, 그 어떤 성령의 능력을 얻기 위한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라는 말씀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삶 속에서 겸손과 온유로 성도들과 함께 깊은 사랑을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항상 찬송과 기도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섬기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요약 적으로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글쓴 이 / 박병은 목사(덴버 둘로스장로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