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63) 교회 머리 되신 그리스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63)  교회 머리 되신 그리스도

   영국 헨리 8세는 1534년 11월 3일 수장령(首長令, Acts of Supremacy)을 공포하여 로마 가톨릭과 단절하고 스스로 영국과 영국 교회의 수장이 되어 국가와 교회에 통치권을 행사했다. https://janetwertman.com/

   제25장 하나님의 교회(2)    

제4항 : 다 같지 않은 유형교회(有形敎會)

4항 이 보편교회는 때로는 더 분명하게 때로는 덜 분명하게 보인다.(롬 11:3,4, 계 12:6,14) 보편교회에 속하는 지역 교회들은 더 순수할 수도 있고 덜 순수할 수도 있다. 이는 복음의 교리를 가르치고 받아들일 때나 의식들을 집행할 때 또는 예배를 드릴 때 그것들이 얼마나 순수하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계 2,3장, 전 5:6.7)

제5항 : 유형교회의 연약성과 불멸성

5항 하늘 아래서는 가장 순수한 교회라도 혼란과 오류에 치우칠 수 있다.(전 13:12, 계 2,3장, 마 13:24-30,47) 일부 교회는 겉으로 전혀 그리스도의 교회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타락할 수 있다.(계 18:2, 롬 11:18-22)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분을 예배하는 교회가 항상 존재할 것이다.(마 16:18, 시 72:17, 102:28, 마 28:19,20)

해설

(1) 보편교회가 분명하게 또는 분명하지 않게 보인다. 

앞서 말한 대로 교회의 외적 상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교회는 결단코 멸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유형교회는 항상 존재할 테지만 늘 똑같이 번성하거나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게 아니다.

달이 차고 기울듯 교회도 때로는 찬란한 빛을 내뿜기도 하고 때로는 구별하기가 어려울 만큼 심하게 흐릿해질 수도 있다. 숫자가 줄어들고 남아 있는 충실한 신자들이 곳곳으로 흩어지거나 박해를 피해 몸을 숨길 수도 있다. 그 결과 가장 분별력 있는 신자조차도 눈에 보이는 교회의 형태를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이 조항은 교회가 항상 온 세상에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반박한다. 구약 시대의 교회는 대부분 우상 숭배로 치우쳤고 아합 당시에는 혹독한 박해가 가해졌다. 엘리야는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오직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 신자를 남겨 두셨으나 그들은 모두 몸을 감춘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을 찾을 수 없었던 엘리야는 ‘오직 나만 남았거늘’(왕상 19:10)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말세에는 여자(곧 교회)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서 광야에 몸을 숨기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계 12:14) 교회는 항상 박해를 통해 억압을 받거나 오류를 통해 오염될 가능성이 있다. 이 두 가지 요인은 교회의 광채와 영광을 종종 흐릿하게 만든다.

(2) 순수한 교회도 때로는 혼란과 오류에 치우칠 수 있다. 

교황주의자들은 교회는 절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무오(無誤)하여 완전한 그런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는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교황인지 공의회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확실하지 않다. 이런 사실은 그들 주장이 아무 근거 없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걸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다. 개인이든 교회든 무오하고 완전하다면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분명하게 밝혀져야 마땅하다. 역사를 대충 돌아봐도 특정 교회가 오류를 저질렀던 수많은 증거를 볼 수 있다. 사실 로마 가톨릭교회만큼 터무니없는 오류를 저지른 교회는 없었다.   85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 1:3)는 어떤 교회를 통해서든 분명하게 또는 분명하지 못하더라도 대대에 걸쳐 면면히 유지되어나갈 것이다. 그러나 오류로부터 안전한 교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3) 참 교회도 항상 세상 존재하며 보존될 것이다.

교회는 숫자가 종종 크게 줄기도 하고 어느 특정 교회는 사탄의 모임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부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참 교회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에덴동산에 처음 설립된 이후 교회는 지금까지 지속돼 왔고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세상 나라는 언제든 멸망할 수 있고 강력한 제국도 폐허로 변했으나 그 어떤 권세나 정권도 교회를 완전히 멸망시킬 수는 없다. 물론 특정한 나라에 설립된 교회가 그곳에서 영구적으로 존속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해와 달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떤 곳에든지 분명 자신을 섬기고 자신의 이름을 짊어질 씨앗을 남겨 두실 것이다.

지상 교회는 지금까지 이 세상의 권력으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아 왔다. 교회는 불붙은 가시떨기 같지만 절대 불타 없어지지 않는다. 권력과 음모가 힘을 합해 교회를 파멸시키려고 아무리 애쓰더라도 모두 수포가 되고 말 것이다. 주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말씀하셨다.

제6항 :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6항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교회의 다른 머리는 없다.(골 1:18, 엡 1:22) 로마 교황은 어떤 면에서든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께 대항해 자기를 높이고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는 자는 불법의 사람이요 멸망의 아들인 적그리스도다.(마 23:8-10, 살후 2:3,4,8,9, 시 113:6)

해설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머리시라는 명제는 로마 교황이 베드로의 계승자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보편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비롯해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가 자기 영토 내에 있는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주장하는 에라스투스주의(Erastianism)를 논박한다.

만물의 통치권과 주권은 그리스도께 속한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피조물을 자신 뜻대로 자신의 영광을 위해 다스리고 처리할 수 있는 자연적 권한을 지니신다. 또 그분은 중보자로서 성부로부터 보편적 주권을 받으셨다. 에베소서 1:22은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고 했다.    

바울 사도는 이 말씀을 통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중보자로서 만물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언급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의 머리가 되신다. 이 권한이 그리스도께 주어진 이유는 만물을 다스려 교회를 유익하게 하시기 위해서다. 이것이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라는 표현에 담겨 있는 의미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께서는 특별히 자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이 진리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골 1:18)는 말씀 안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육체의 머리에 비유한다. 아울러 에베소서 5:23은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고 선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머리로서 유형 교회를 인도하시고 다스리신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통치자요, 그 어깨 위에 정사를 메셨다.(사 9:6) 하나님은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시 2:6)고 말씀하셨다. 교회를 위해 법을 집행하고, 예배의 규례를 세우고, 교회가 지켜야 할 통치형태를 결정하고, 교회의 직임을 정하고, 그 직임을 맡는 데 필요한 자격 기준을 설정하는 권한이 모두 그분께 속한다.

그리스도는 무형교회에 대해서도 머리로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신다. 골로새서 2:19은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유형 교회와 무형교회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머리이시다. 그러므로 교회는 최고의 입법자이신 그리스도의 권위만을 인정해야 한다. 교회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우리의 왕이시다.”라고 말해야 한다. 머리가 하나 이상인 것은 괴물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런 괴물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몸’도 하나다, ‘주’도 한 분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황이나 군주에게 자신의 교회 머리의 권한을 위임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육체로 지금 하늘에 계시나 대리자를 세우시어 세상에 있는 교회를 다스리게 하실 필요가 없으시다.

그분은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라는 확실하게 약속해 주셨다. 성경이 이렇게 분명함에도 교직자들과 세속 통치자들이 그리스도의 왕적 특권을 침해하려는 대담한 행위가 종종 있었다. ‘불법의 사람’과 ‘멸망의 아들’이 보편적인 수장권과 통치권을 주장하는 오만하고 불경한 태도를 오랫동안 취해왔다.

잉글랜드에서 개혁이 한창일 때 교회의 수장권(首長權)이 로마 교황에서 영국 왕에게 옮겨졌다.(Acts of Supremacy, 首長令, 1534) 헨리 8세가 영국 교회 수장(首長)으로 인정되었고 다음과 같은 법령이 공포됐다.

“왕과 그의 계승자가 세상에 있는 잉글랜드 교회 곧 영국 성공회의 유일한 수장으로 인정되고 받아들여지고 간주 되어야 한다. 그들은 이 나라의 왕권과 함께 교회에 속하고 관련된 모든 것의 수장으로서의 권위에 걸맞은 명예와 위엄과 면책 특권과 이익과 재산은 물론 거기에 합당한 칭호와 명칭을 지니고 그것들을 향유 할 것이다.”(The 25th, Henry Ⅷ,. cap. 1.)

또 왕이 ‘교회 치리’를 행사하는 온전한 권한을 갖고 “대주교와 주교들은 왕으로부터 왕에 의해 윤허(允許)를 받지 못하면 교회 치리권(治理權)을 행사할 수 없다.”라는 법령도 아울러 제정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 초기 ‘머리’라는 은유적 표현이 ‘최고 통치자’라는 말로 바뀌었다. 그러나 두 용어의 뜻은 동일하다. 그녀의 전임자들이 소유했던 권력과 권위가 조금도 포기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적 치리와 교회 모든 치리의 권한은 왕권과 병합되어 통일된다.”는 법령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영국 성공회는 37번째 신조에서 영적 권위를 찬탈하고 그리스도의 주권을 침해하는 불경하고 신성모독적인 행위를 인정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왕의 권위는 잉글랜드의 이 영역을 비롯해 다른 모든 통치 영역에서 지상권을 갖는다. 교회든 일반 사회든 이 영역에 속하는 모든 것에 대한 통치권이 어떤 이유에서든 모두 여왕에게 속해 있다.”

일부 성직자들은 세상 통치자를 교회의 머리 또는 최고 통치자로 인정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그 호칭의 진정한 의미를 적당히 에둘러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칭호에 영적 치리권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로써 잉글랜드 교회가 에라스투스주의의 속박 아래 얽매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많은 증거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여왕이 주교(主敎) 임명권이 있고 여왕의 윤허(允許) 없이는 성직자 회의를 소집할 수 없으며 100년 이상 성직자 회의가 중단되거나 거의 폐지되다시피 해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교회가 이같이 손발이 꽁꽁 묶인 채 이단(異端)을 제거하고 권징(勸懲)하는 일에 아무런 영향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확연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스코틀랜드 교회는 개혁 당시부터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유일한 머리가 되신다는 교리를 담대하게 주장했고 또 실천을 통해 철저하게 옹호했다. 그것은 2차 개혁의 가장 중요한 핵심 원리였다. 그것은 교회의 유일하신 왕이요 머리이신 그리스도 왕의 특권을 옹호하고 군주가 교회의 영적 자유를 통제할 수 있다는 에라스투스주의 영향력을 저지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이를 위해 많은 성도가 옥에 갇히거나 망명길에 올랐을 뿐 아니라 들판이나 형틀 위에서 피를 흘렸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그리스도의 수장권이 분명하게 진술되어 있지만 안타깝게도 ‘왕위 계승 혁명’(Revolution Settlement)을 통해 이 중요한 원리를 효과적으로 지켜 내지 못했다. 스코틀랜드 교회의 설립을 가져온 1952년 조례는 그리스도의 수장권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지 못했고 총회의 그 어떤 결의서에서도 이 원리를 공식적으로 주장한 적이 없었다. 왕이 수장권을 노골적으로 주장하지도 않았고 교회가 그것을 양보하지도 않았으나 왕이 수장권을 행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총회가 왕의 명으로 해산되거나 정회(停會)되는 일이 거듭됐다. 그런 가운데 총회가 1703년 그리스도의 수장권과 교회의 고유한 권위와 장로교 정치 제도의 신성한 권리를 주장할 목적으로 조례의 초안을 작성했으나 여왕의 명령을 받은 행정관의 제재로 돌연 해체됐다. 그러나 그런 조처에 대해 교회가 항의 의사를 표명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평신도 목사 임명권’(부유한 평신도들이 지역 교회의 목회자를 임명하는 권한-역주)은 여러 차례 폐지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었는데 그로 인해 교회의 독립성이 더욱더 침해되었고 교회의 영적 문제들이 세속 세력에 의해 지배되는 결과를 낳았다. ‘평신도 목사 임명권’이 목회자가 없는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교회의 수장권과 그 맥락이 동일하다. 다시 말해 그 권한은 교회의 수장권과 동일한 원리에 근거하기 때문에 딱히 옹호할 수도 없고 단죄할 수도 없다. 왕이 그런 권한을 행사할 경우는 특히 그렇다.

 최근 교회의 영적 독립을 옹호하기 위한 투쟁이 있었고 그 결과 스코틀랜드 교회가 분열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런 사건들만 보더라도 에라스투스주의에 입각해 교회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고 행사하려는 정부의 집요한 의지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교회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가 ‘시온의 왕’으로 교회의 유일한 머리가 되신다는 진리를 줄곧 굳게 고수해 왔다는 분명한 증거를 보여 주었다. 그들은 이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계 12:21) 이보다 더 고귀한 투쟁이나 고난의 명분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배하려는 사람들은 그분의 권한을 찬탈하는 불경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충실한 신민들은 충성을 다해 오직 그분만이 교회의 유일한 지배자요 통치자라는 사실을 힘써 외치고 교회와 교회의 유일하신 왕이요 머리이신 그분을 욕되게 하는 주장이나 시도를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출처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로버트 쇼 저, 조계광 역, 생명의 말씀사, 2014 < 다음 >   

에라스투스주의(Erastianism)

교회 역사에서 항상 논의되는 문제는 ‘교회정치’와 ‘교회론’이다. 교회개혁을 부르짖으려면 꼭 되씹는 주제가 또한 ‘교회정치’다. 초대교회를 총결산했던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는 그의 인생을 마무리하기 전 두 가지 주제에 매진했는데 하나는 ‘교회론’이고 하나는 ‘은혜론’이었다. 전자는 도나투스와 후자는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이었다.(그림, 에라스투스주의)     90

중세교회 타락을 알리면서 개혁을 부르짖은 체코의 얀 후스(Jan Hus, 1372?-1415)가 당대의 신학자들과 논쟁했던 것이 ‘교회론’이었고 그보다 먼저 중세교회와 논쟁했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도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었다. 이런 가운데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러 종교개혁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교회정치’였다. 이들의 후계자들이었던 스코틀랜드 언약도나 청교도 역시 ‘교회정치’에 큰 관심을 가졌다.

1642년부터 1649년에 있었던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다룬 큰 주제는 ‘교회정치’였다. 그전 1571년 대륙에서 개혁교회들이 박해받는 가운데 한자리에 모였는데 엠던총회(Emden, 1571)라고 한다. 이 총회에서 신앙은 ‘벨직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및 ‘제네바 교리문답서’를 채택하고 또 ‘교회정치’는 ‘장로교정치’를 채택했다. 교회 정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감독제도, 회중정치, 장로정치이다.

감독제도에서 떠오르는 인상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성공회이다. 감독이 주도하는 교회를 말한다. 그런데 이런 교회 형태에 두 신학 사상이 있으니 하나는 고올주의(Gallicanism)이다. 이 사상은 군주(君主)나 국가 최고 권력이 로마 가톨릭교회를 지배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황지상주의(Ultramontanism)로 이것은 고올주의와 반대로 교황이 통치하는 것이다.

고올주의는 다시금 셋으로 나뉜다. 에라스투스주의(Erastianism), 페부르니우스주의(Febronianism), 요셉주의(Josephinism)이다. 고올주의는 프랑스에서 교황지상주의는 독일에서 발생했다. 그중에서 프로테스탄트에서 일어난 고올주의는 에라스투스주의였다. 이 사상은 하이델베르크에서 시작해 청교도에게 영향을 끼쳐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도 큰 논제가 되었고 후에 스코틀랜드 교회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볼 때 감독제도에 해당이 되는 ‘교회정치’이나 장로교도가 쉽게 치우칠 수 있다는 사상이라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91

에라스투스주의는 스위스 의사며 신학자 토마스 에라스투스(Thomas Erastus, 1524-1583)로부터 나온 사상이다. 이 사상의 핵심은 국가가 ‘교회정치’를 주도해 국가가 교회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작금에 일어난 강남 S교회나 사당동에 있는 한국의 가장 큰 신학대학교인 C대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용역들을 동원하거나 국가의 판결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문제 해결은 쉽게 되었으나 교회 내에 지혜 있는 자가 얼마나 없었으면 국가가 교회에 대해 뭘 안다고 국가 권력에 의존 교회와 신학교 문제를 해결했는가?

이것은 바로 에라스투스주의에서 나온 사상이다. 결국에 이것은 ‘장로정치’를 해야 할 장로교회가 ‘감독정치’를 채택한 영국의 성공회를 닮겠다는 꼴이다. 참으로 종교개혁자들이 탄식하며 실소할 일이다. 이는 가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법원으로 향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의 개혁을 부르짖는 자들이 기껏 해 외치는 것은 도덕적 회복이다. 이것은 개혁이 아니라 사회적 관점에서 본 혁명일 뿐이다. 이것이라도 바로 서기를 바라는 점에서는 이해가 되더라도 정말 근시안적 사고라고 여겨져 안타까울 따름이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교회처럼 되어가는 한국교회를 갱생시키는 길은 본래의 모습을 찾는 길 외에는 없다. 그것은 온 교회가 고백한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바로 교리교육이다. 이제 교리교육을 회복해 장로교 정체성을 찾을지는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계속 촉구하면서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교회를 보며 비판만 할 게 아니라 물에 빠진 자들을 한 명이라도 구출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한 명씩 가르치며 자라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빼내야 한다. 이것은 제2의 종교개혁이 아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이며 실천이다.(*) 글쓴 이 / 라은성 교수((총신대학교 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