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미국 청교도로부터 시작된 감사절의 근대적 유래

미국 청교도로부터 시작된 감사절의 근대적 유래

본래 감사절(感謝節)의 유래는 구약시대 맥추절(麥秋節)이다. 맥추절은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 밀(wheat) 추수가 끝날 무렵 추수한 것 중 우량품들로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 감사제다.(출 23:16, 34:22) 그러나     그 근대적 유래는 북미(North America) 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Puritans)로부터 유래한다. 청교도(淸敎徒)들은 잉글랜드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 대륙으로 건너온 경건한 신앙인들이었다. 청교도(puritan)은 ‘정화하다’, ‘깨끗하게 하다’, ‘순결하게 하다’라는 의미이다.

1. 청교도들이 북미로 오게 된 역사적 배경

(1) 헨리 8세의 박해          

헨리 8세(Henry 8, 1491-1547, 재위 1509-1547)는 아내 캐더린(Catherine)과 이혼하고(1527) 앤 보레인(Anne Boleyn)과 재혼했다. 헨리 8세는 이 일로 로마가톨릭으로부터 파문(성찬 참여 정지 등)을 당했으나 생애 동안 로마가톨릭의 교리를 신봉했다. 그는 또 1534년 ‘수장령’(首長令) 즉 자신을 잉글랜드의 왕인 동시에 영국 교회의 머리라고 하면서 교황청과 관계를 단절하고교황은 영적 문제에 권리가 없음을 선언했다.

(2) 메리 1세 여왕의 박해

메리 1세 여왕(Queen Mary Ⅰ, 1516-1558, 재위 1553-1558)은 헨리 8세의 첫 아내 캐더린(Catherine) 딸로 고집불통에다 아주 잔인한 여왕이었다. 그녀는 폴(Paul) 추기경의 도움으로 잉글랜드의 로마가톨릭으로의 회귀를 도모했다. 그때 이를 반대하는 개신교 지도자들 토마스 크램머(Thomas Crammer), 라티머(Latimer), 리들리(Ridley) 등과 약 200명의 감독, 학자와 남녀 성도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모두 300여 명을 화형(火烈)시켰다. 그때 청교도들은 제네바, 취리히,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망명하게 됐다.

(3)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중립

엘리자베스 1세 여왕(Elizabeth 1, 1533-1603, 재위 1558-1603) 메리 여왕에 이어 왕위에 즉위한 후 1559년 4월 29일 아버지 헨리 8세처럼 수장령(The Acts of Supremacy)을 공포했다. 즉 자신을 종교와 정치에 유일한 통치자임을 공포한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와 둘째 부인 앤 볼레인(Anne Boleyn)의 사이에 태어날 딸이다.          

영국 교회(Anglican church)는 왕이 교회의 머리요, 교회의 감독들은 왕을 대신하여 교회를 다스리기 때문에 감독교회(Episcopal Church)라고도 부른다. 이같은 잉글랜드 정부와 국교회는 상호 결탁하여 정교분리 원칙을 요구하는 청교도들을 탄압하여 투옥 고문 등으로 핍박했다.

그리하여 청교도들은 헨리 8세, 메리 1세, 제임스 1세(1600-1649), 찰스 1세(1625-1649) 때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아메리카로 많이 떠났는데, 1620-1640년 사이 북미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약 22,000-50,000명에 달했다. 그들은 잉글랜드를 떠나기 전 나라는 있어도 왕이 없는 곳, 교회는 있어도 교황이 없는 곳,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곳, 기름진 땅과 밝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도착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2. 102명의 청교도와 메이플라워호

최초 북미 대륙 발견은 1492년 스페인의 콜럼버스(Columbus, 1446-1506)였고 북미로 처음 이주한 사람들은 영국 청교도들이었다. 이들을 가리켜 순례자의 조상들(Pilgrim’s fathers)이라 부른다. 이들은 1600년대 초기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Atlantic Ocean)을 건너 미 대륙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도 1620년 102명의 청교도가 메이플라워호(102 Puritans and Mayflower II)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 대륙으로 이주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청교도들은 영국 남해안 플리머스(Plymouth) 항구서 1620년 8월 5일(오늘날 8월 15일) 스피드웰(Speedwell)호와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미 대륙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초반에 배가 고장 나 물이 새 다시 귀항했다. 한 달 후인 1620년 9월 6일, 결국 메이플라워호만 25명 선원과 102명 청교도가 승선하여 미국 동해(대서양) 중부 지방 버지니아(Veirginia)를 목적지로 삼고 재차 출발했다. 남자 78명과 여자 24명 등 전체 102명이 출발했으나 항해 도중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출생했다.

그들은 그해 11월 11일 버지니아 대신 미국 동북부 매사추세츠 케이프 코드(Cape Cod) 해안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5일간 주위를 답사한 후 11월 16일 현재의 플리머스(Plymouth)에 정착했다. 63일간 3,400마일(5,440km)의 밀고도 긴 그리고 위험한 항해 끝에 돛을 내렸다.

그들은 잉글랜드를 떠날 때 항구인 플리머스 이름을 본떠 그곳을 플리머스라 명명했다. 미국 동해안은 항상 북서풍이 불기 때문에 남쪽 버지니아로 가려던 배는 북쪽 매사추세츠에 도달했다. 그들은 토요일에 도착했으나 주일을 지키기 위해 길고도 지루하고도 위험한 항해를 거쳤음에도 주일을 배 안에서 보냈다.        

그들은 항해 중에 계속 찬송을 불렸다. “우리는 대부분 시편을 찬송으로 불렀다. 주일은 모두 찬송만을 불렀다. 그리고 기도를 많이 했다.”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청교도 개척자들은 신대륙 도착한 후 형언할 수 없이 난관에 봉착했다. 11월 중순에 도착한 그들은 강풍과 눈보라 치는 혹독한 추위, 질병과 식량 부족, 원주민들의 냉대, 들짐승들의 위험, 거할 곳 하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결국 그해(1620-1621) 겨울 2-3개월 동안 102명 중 절반 이상이 죽었다.

혹독한 겨울에는 하루에 2,3명 씩 죽어 나갔다. 생존자는 50명뿐이었고 그들 중 다수가 지치고 건강이 쇠약해지고 질병으로 신음했다. 그러나 6,7명의 건장한 사람들이 땔감을 마련하고 침실을 만들고 병자들을 간호하며 병자들과 노약자들의 옷을 빨아 입히고 칠면조와 사슴 등을 사냥하여 고기를 조달하는 등 자발적으로 헌신했다. 이들 경건한 청교도는 굳건한 믿음 위에 마음을 하나로 통일한 불굴의 의지를 지녔다.

엄동설한도 지나고 따스한 봄이 오자 생존한 청교도들은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가꾸어 여름을 거쳐 가을에 기대 이상의 넘치는 추수하게 됐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감사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시 126:6) 엄동설한에 황무지에서 살아남은 것,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여 주신 것, 미 대륙 개척자들로 삼아 주신 것 등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렸다.

청교도들은 북아메리카로 건너온 다음 해인 1661년 가을 하나님께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추수한 첫 곡식들과 채소들 중 최고 우량품들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들은 기도 중에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와 여러 친구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 보다더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나이다.”라고 기도했다. 이렇게 청교도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 추수 감사예배를 드렸다.        

첫날인 주일은 온종일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며 말씀으로 묵상했다. 둘째 날은 각 가정이 칠면조, 감자, 옥수수 등의 요리를 서로 나누며 친교 했다. 셋째 날은 인디언 추장 마사소이트(Massoit) 등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친교 했다. 이때 90명의 원주민 인디언들은 칠면조 구운 요리와 호박파이(pumpkin pie)를 가져와 함께 나눴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고기와 호박파이를 먹게 됐다.

청교도들은 통나무들을 잘라 먼저 교회를 지었다. 그러고 나서 학교를 지었고 그 후에야 자기들의 살 집을 지었다. 이 같은 청교도들이야말로 북아메리카의 개척자들이요 진정한 믿음의 선조들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신대륙에서 신앙의 자유를 주심을 무한 감사하며 철저한 주일 성수, 십일조, 경건 생활을 했다.

3. 감사절 제정과 공포(公布)

(1) 1623년 7월 30일, 월리엄 브래드포드

월리엄 브래드포드(William Bradford) 매사추세츠주 지사는 1623년 7월 30일 매년3일간 감사절로 지킬 것을 공포했다. “순례자들이여! 위대하신 아버지께서 올해도 우리에게 옥수수, 밀, 완두콩, 호박, 채소들을 풍성하게 주셨고, 산림을 울창하게 하시고, 바다의 물고기들과 조개들을 풍성하게 주셨고, 짐승들의 습격에도 우리를 보호하셨고, 온갖 유행병과 질병으로부터 우리 생명을 살려 주셨고, 우리 양심의 지시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총독인 나는 모든 청교도가 그대들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1623년 11월 29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회관에 모여 목사님의 설교를 경청하며 이 모든 축복을 내려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2) 1789년 10월 3일,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 임기 1789-1797)은 1789년 10월 3일 감사절을 온 국민이 감사하는 국경일(National Day of Thanksgiving)로 공포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것과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과 그가 베푸신 복에 감사하는 것 그리고 그의 보호하심과 호의를 겸손히 간구하는 이 모든 것은 모든 나라의 임무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미합중국 국민은 오는 11월 26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헌신하기를 추천하며 이에 서명한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1975년 1월 1일 재차 감사절을 국경일로 공포했다. “나 조지 워싱턴 미국 대통령은 모든 종교적 단체와 교파 그리고 미연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오는 2월 19일 목요일을 감사와 기도의 날로 정하고 지키기를 강력히 권고한다.”

(3) 1863년 10월 1일, 아브라함 링컨

 미국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 임기 1861-1965)이 제안하고 의회가 가결하여 이를 대통령이 공포했다. “그러므로 나는 미국 각처에 있는 나의 동료 시민들과 외국 땅에 거하는 사람들이 매년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감사절( Thanksgiving)로 지키며 하늘에 계신 은혜로우신 아버지께 찬양을 드리기를 요청합니다.”

결론

우리는 어떻게 감사할까? 영어로 감사는 ‘thanksgiving’이다. 즉 드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할 수 없는 그 구속(救贖)의 은혜, 우리 언어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 생명, 건강, 신앙의 자유, 의식주 등을 받았으니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이 은혜를 어떻게 무엇으로 보답을 할까?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7)(*) 글쓴 이 / 조영엽 박사(총신 신대원 M.Div., Th.M.., 미국 Faith 신학교 D.Min.. 미국 Grace 신학대학원 Ph.D.,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조직신학, 주경신학, 현대신학, 장로회총회신학연구원(성경보수) 교의신학, 주경신학, 현대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