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과 칼빈주의 개혁신학의 위기

칼빈 탄생 500주년기념 지상강좌(4)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과 칼빈주의 개혁신학의 위기
1. 루터의 종교개혁의 의미와 한계

calvin-luther종교개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단연코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이다. 1517년 10월 31일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참람한 종교적 거짓과 부패에 맞서 ‘95개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성문에 못 박았다. 그 날 밤 이 회심의 도전장을 내걸고자 두드렸던 망치 소리는 천여 년 동안 어둠속에 방치되었던 진리의 빗장을 여는 울림이 되었다.

‘95개 반박문’은 요원의 들불처럼 삽시간에 유럽 전 지역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종교개혁을 염원하는 이들의 마음을 불붙였다. 당시의 낙후한 인쇄 기술을 감안하면 기적 같은 획기적 사건이었다. ‘95개 반박문’이 종교개혁의 서막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면 루터의 대담하고 소신 있는 종교적 열정과 행동은 종교개혁이라는 마차를 이끄는 용감한 근위병의 모습 자체였다. 루터의 종교개혁 은 세인들조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류의 업적중 하나라고 평가할 만큼 후세에 남긴 그의 업적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지대 한 것이었다.

김병혁 목사
김병혁 목사

하지만 종교개혁을 논함에 있어 우리의 시선을 그에게만 고정시킬 수 없는 몇 가지 중대한 사실들이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빛나는 영광의 순간도 많았지만 어두운 그림자 또한 길게 드리워져 있다.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상 가장 엄청난 영적 다이너마이트의 발화점이 되었지만 엉성하고 거추장스러운 잔해들이 너무 많이 너부러져 있었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웠지만 그들의 잘못된 진리 체계를 허물어뜨릴 만큼 결정적이지 못했다. ‘이신칭의’와 ‘만인제사장’ 같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차별되는 개신교 신학의 금자탑을 세웠지만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또한 교회와 세상을 향한 종교개혁의 남다른 애착과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후대로 접어들면서 세상 세력들의 타협과 절충을 한 까닭에 그의 개혁의지는 현저하게 약화되고 말았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을 ‘미완(未完)의 개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진정한 이유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보다 정밀하고 완성도 있는 이해가 부족하였던 점이다. 루터 개인의 의지는 아니었을지라도 엄밀하지 못하고 철저하지 못했던 그의 신학적 이해는 ‘언약론’ ‘성찬론’ ‘국가론’을 해석함에 있어서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결국 루터의 과도하거나 부족했던 성경해석 방식은 그의 사상적 계보를 잇는 루터주의자들에게 이르러 “성경이 금하지 않는 것은 다 허용한 것이다.”는 식의 보편과 관용의 해석적 틀로서 성경 전체를 이해하려는 신학적 변질의 단초가 되고 말았다. 루터주의자들은 모든 세상 사람을 위한 루터를 만들기 위해 도리어 종교개혁자 루터를 희생시켰다. 이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 칼빈주의에 대한 진실과 거짓

이제 언급하고자 하는 내용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모든 이들에게서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 시작단계 때는 분명히 루터와 칼빈의 꿈과 목적이 공유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러나 루터주의와 칼빈주의는 처음부터 많은 차이점이 있었으며 그것은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둘 사이의 간격을 벌여놓았다. 루터주의와 칼빈주의라는 용어가 벌써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개신교(Protestant)라는 말이 로마 가톨릭과 다르다는 것을 말해 주듯 ‘칼빈주의’와 ‘루터주의’는 서로 같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사실 루터주의라는 말은 종교개혁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부친 이름이다. 종교개혁을 반대하는 자들 편에서 볼 때 칼빈주의와 루터주의는 같은 종교개혁 세력이면서도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누구나 종교개혁이 루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루터주의라 하지 않고 칼빈주의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개혁의 본질적인 성격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할 때에 루터와 루터주의에게서 머물 수 없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은 내용을 떠나서 루터교회나 타 교단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리 반길만한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처한 보다 심각한 딜레마는 타 교단에 속한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를 장로교회 교인이요, 개혁교회 교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칼빈과 칼빈주의에 대해 냉소적이고 심지어 부정적인 명목상의 칼빈주의자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보수’ 혹은 ‘보수주의’라는 말이 새로운 시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수구꼴통’이라는 낱말로 묘사되듯이 ‘칼빈주의자’ 혹은 ‘칼빈주의’는 시대와 타협할 줄 모르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신앙과 신학쯤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쯤 되다보니 칼빈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교단과 교회 심지어 신학교에서까지도 종교개혁은 언급하더라도 칼빈과 칼빈주의는 너무 강조하지 말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계속적인 종교개혁을 간절히 염원한다고 하면서도 칼빈주의식의 종교개혁에는 고개를 흔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가장 참된 종교개혁을 향한 꿈과 의지가 있다면 루터와 루터주의를 넘어서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있음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목적지에 정확하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칼빈주의자로서 극복해야 할 가장 시급한 내적 장애는 칼빈과 칼빈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배움과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칼빈주의를 표방하는 신학교에서 가장 홀대받는 것이 칼빈이라는 소리가 있을 만큼 칼빈과 칼빈주의는 별로 인기가 없다.

이처럼 칼빈주의를 신학 이념으로 표방하는 교단과 신학교는 많지만 그것을 목회 현장에까지 제대로 적용하고 있는 교회를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쉽지 않다. 칼빈주의 신학은 장로교회의 이념적 근간이요, 사상적 뿌리이다. 삼척동자라도 알만한 상식인데도 장로교 신학교에서 칼빈주의를 강조하지 않고 장로교회 간판을 걸어놓고도 칼빈주의를 말하지 않는 오늘 우리의 교회 현실은 마치 한편의 유쾌하지 않은 블랙코미디를 보는 느낌이다. 왜 이런 모순이 상식이 되어가는 지를 물으면 이렇게들 답한다.

– 칼빈주의는 칼빈 개인을 위한 신학이다.
– 칼빈주의는 세상에 대해 너무 냉소적이고 협소하다. 그래서 21세기 교회의 트랜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 칼빈주의는 성경주의라기 보다는 교리주의다.
– 칼빈주의는 너무 예정론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 칼빈주의는 사변적이지만 복음적이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 칼빈주의에 대해 만연해 가는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들은 대개의 경우 칼빈주의에 대해 정확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의 무지에서 비롯되었거나 칼빈주의를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꾸며낸 교묘한 루머에 불과하다. 칼빈이나 칼빈주의라는 용어가 부담스럽다면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용어들에 관한 오해와 편견이 있다고 해서 그 내용까지 포기해버리는 일은 몸이 더러운 아이를 방에 들이려고 씻긴 후 더러워진 물과 함께 아이를 내다 버리는 꼴이다. 바르게 앎이 없는 사람일수록 주변적인 영향에 동요되듯이 칼빈주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사람일수록 칼빈주의를 쉽게 체념하고 포기한다.
한 가지 되짚고 넘어가자. 칼빈과 칼빈주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칼빈이라는 한 인물의 인격이나 지식이나 능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칼빈과 칼빈주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적 진리가 감추어졌던 암매한 역사 속에서 칼빈이라는 한 인물과 그와 뜻을 함께 했던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진리의 풍성함을 드러내신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주목하자는 것이다.

칼빈주의 신학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칼빈 개인의 신학을 신성시하거나 칼빈주의는 오류가 없는 신학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역사상 가장 순수하고 정밀한 성경 해석의 틀과 내용이 칼빈주의라는 신학 안에 내재되어 있기에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보다 성경적이며, 보다 순수하며, 보다 엄밀한 교회와 성도를 세워나가기 위함이다.

따라서 만약 누구든지 칼빈 개인을 우상화하거나 칼빈주의의 교리를 성경보다 우위에 두거나 칼빈주의에 속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칼빈과 칼빈주의라는 낱말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사악한 이단임에 틀림없다.

3. 루터와 루터주의를 넘어선 종교개혁

그렇다면 우리가 루터와 루터주의를 넘어서 칼빈과 칼빈주의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왜 종교개혁의 의미를 논할 때 이 칼빈과 칼빈주의를 회피해서는 안 되는가? 오늘날 복음주의를 대변하는 루터주의와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칼빈주의가 어떤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바빙크의 진술에 귀 기울여보자. 바빙크는 이렇게 말한다.

“칼빈주의 그리스도인은 신론적으로 생각하나 반면 루터주의 그리스도인은 인간론적으로 생각한다. 칼빈주의 자는 정지 된 역사 안에 머물지 않고 이념 즉 영원한 하나님의 결정에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루터주의 자는 그 입장들을 구원사의 중심에서 더 깊이 하나님의 성장에까지 꿰뚫고 들어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주의 자들은 하나님의 선택(選擇, Election)이 교회의 핵심이고, 루터주의 자들은 칭의(稱義, Justification)가 항상 교회의 항존적 출발이다.
칼빈주의의 첫째 되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에 이르시느냐?’에 있고 루터주의는 그와 대조적으로 ‘어떻게 인간이 축복에 이르느냐?’에 있다. 즉 칼빈주의는 이교주의와 우상에 반대하는 싸움이고 루터주의는 유대주의와 행위 거룩에 반대하는 싸움이다. 칼빈주의 자는 그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결정에 되돌리고 물질(物質)의 원인을 추적하며 앞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에 유익되게 하기 전에는 쉬지 않는 반면에 루터주의자는 현상에 만족하고 그가 신앙을 통하여 부여받은 축복에 안락 하는 자들이다.”(바빙크의 ‘개혁 교의학’ 중에서)

바빙크의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루터주의와 칼빈주의에 대한 한 시대 속에 머문 평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빙크는 이 진술을 하기에 앞서 매우 정교한 필치로 초대교회로부터 20세기 초까지 교회가 처한 역사적 정황과 교리를 구체적으로 더듬은 이후의 결론이다. 즉 칼빈주의의 신학은 사도들의 성경 이해에 충실하였던 초대 교부들의 신학이요, 교부들의 해석을 총망라했던 어거스틴의 신학이요, 종교적 거짓과 부패에 맞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성경적 사상을 가장 적확하게 드러낸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에 대한 총체적인 신앙 고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가장 엄밀한 이해와 적용이 역사적 칼빈주의의 신학과 신앙 속에 담보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터와 루터주의를 비롯하여 다른 교단의 신학과 신앙에 어느 정도의 진정성과 경건성이 보장된다고 할지라도 그 곳에 진리의 닻을 내릴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칼빈이나 칼빈주의에 대한 막연한 환상도 금물이지만 밀도 있는 확신의 결핍 또한 문제다. 칼빈과 칼빈주의에 대한 무수한 오해와 편견은 더 이상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진리를 향해 걸었던 정도(正道)로 나아가는데 장애나 핑계가 될 수 없다.

만약 바빙크와 나의 견해에 동조할 수 없다면 도서관에 가보라.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려보라.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칼빈과 칼빈주의에 관한 수많은 자료와 책들이 이 사실을 증명해 줄 것이다. 칼빈으로부터 개혁교회 3대 신앙 고백(하이델베르그, 벨직, 도르트)의 작성자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작성에 참여한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 그룹, 수많은 청교도들, 바빙크와 박윤선 그리고 일일이 이름을 열거할 수 없지만 오직 하나님께 영광만을 위해 전 삶을 드린 진리의 파수꾼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칼빈주의라는 보석을 캐냈고 칼빈주의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지켜내었다.

그리고 칼빈주의에 대한 그들의 가열 찬 확신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칼빈주의는 종교개혁의 핵심이요 진리체계의 최고봉의 신학으로서 오대양 육대주로 퍼져나갔으며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수되어오고 있다. 하지만 칼빈주의 영향은 교회와 성도에게만 국한 될 만큼 협소하고 제한된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전 영역(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등)에 걸쳐 가장 고상하면서도 근본적인 생의 원리를 제공하였으며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관조와 통찰을 제시해 주었다.

4. 칼빈주의에 대한 편견과 칼빈주의 몰락 원인

그러나 칼빈주의의 탁월한 진실성과 막강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칼빈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들 예를 들어 삼위일체, 예정론, 언약의 통일성, 도덕법, 주일성수 등은 언제나 다른 신학으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었으며, 세상과의 은밀한 거래를 통해 세상의 권세를 누리려는 교회와 신앙으로부터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 왔다.

또 칼빈주의 신앙이 뿌리를 내리는 곳마다 성경적이면서도 진실한 신앙고백들이 작성되었고 경건의 삶으로 회복되는 놀라운 경험이 나타났음에도 칼빈주의는 박해와 억압의 그늘을 벗어난 적이 없었으며, 진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하는 고난과 위기의 기로에 서 있어야만 했다. 칼빈주의는 성경의 주된 가르침을 벗어난 적이 없지만 세상의 주류 신학으로부터 모함과 질시를 받아야만 했다.

칼빈주의의 역사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사람마다 깨닫게 되는 놀라운 사실 중 한 가지는 칼빈주의는 어느 때에도 보편적이거나 대중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칼빈주의의 내용 자체가 세상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세상의 편 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에서 볼 수 있듯이 칼빈주의는 인간의 전적부패,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선택, 제한적인 속죄,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견인 사상을 주장한다. 한마디로 칼빈주의는 인간의 경험보다 성경의 확실성을, 타협적인 인간 본성보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현상적인 사색보다 계시 의존 사색을, 인간의 공로와 행위보다 오직 믿음과 은혜를 고집한다. 이러한 개혁주의의 강조점은 신학과 신앙과 교회가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세상적이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의 양심과 행동을 불편하게 만든다.

둘째, 칼빈주의가 결코 대중적일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칼빈주 의에 대한 도전 세력들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바빙크의 지적대로 칼빈주의 신학에 대한 부정적인 반향들은 17세기부터 칼빈주의가 몰락하기 시작하였으며 20세기에 이르러서는 몰락이 정착되는 현상이 구체적으로 목격되었다. 칼빈주의를 훼파하기 위한 도전은 수세기동안 신앙의 영역에 제한됨 없이 거의 전방위(全方位, 가능한 모든 영역) 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 칼빈주의를 훼파한 대표적인 사상과 원리들이다.

– 인간의 이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 계몽주의
– 신적 권위와 확신으로부터 탈피를 시도한 – 데카르트주의
– 성경의 객관성보다 내적 주관과 경험을 신학원리로 삼은 – 재세례파
– 구원을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의 작품으로 만든 – 아르미니우스주의
– 언약의 실체를 언약의 경륜의 흐름으로 전락시킨 – 코케우스주의
– 경건한 삶의 추구와 의지를 진리의 핵심으로 대체한 – 경건주의
– 신이 지배하지 않는 사회를 위해 신을 영원의 시간 속 감옥에 가둔 – 이신론
– 인간을 신으로부터 독립적인 존재로 규정한 – 민주주의
– 신학과 교리를 포기하고 교회의 성공과 확장에 몰입한 – 부흥주의
– 이러한 반(反) 칼빈주의나 혹은 비(非) 칼빈주의 세력을 한데 규합 하고 선동함으로써 칼빈주의의 몰락을 주도적으로 이끈 – 복음주의 와 에큐메니칼운동

5. 칼빈주의 미래의 비관과 낙관

만일 우리가 칼빈주의라는 신학적 배경 안에서 교회를 이루어가고 있으며 스스로를 칼빈주의 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러한 사상들이 칼빈주의의 몰락에 얼마나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우리의 신학과 신앙에 얼마나 치명적인 오류를 생산해 내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교회와 신앙은 역사적 상황과 분리될 수 없다. 칼빈주의의 발흥과 성장과 몰락의 과정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주의 자에게 있어서 역사를 바르게 조망하는 역사적 안목이란 가히 필수적이다. 하물며 칼빈주의 교회를 이끄는 목사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끊임없는 역사적 반성과 통찰을 통해 칼빈주의의 정체성을 바르게 확보해 가는 일은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만큼 중요한 목회자의 책임인 동시에 의무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칼빈주의의 몰락의 그림자가 오늘날 우리 시대에 길게 드리워져 있으며, 우리는 부지부식(不知不識) 간에 매우 가파른 내리막길로 치달아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종교개혁을 외치며 칼빈주의를 말하는 많은 이들이 이 상황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칼빈주의를 표방하는 신학교와 교단에서조차 칼빈주의 신학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가속되어가고 있다.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그토록 수많은 칼빈주의 자들이 결코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었던 신학 주제들이 교단과 강단으로부터 밀려나고 있다. 칼빈주의 신학을 지탱하고 참된 교회의 연합을 도모해주던 역사적 신앙고백은 한낱 과거의 빛바랜 추억쯤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장로교 신학교와 교회가 더 이상 신학과 교리를 강조하지 않는 사이 타 교단과 교회 간의 실제적인 신학적 구별 점은 사라지고 상호간의 관용과 화합이 교회를 평가하는 최고의 가치 기준으로 자리잡혀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의 구호만 가득한 종교개혁이란 교단의 영향력 강화와 교회의 외적 성장과 확장 그리고 목회자 개인의 목회 비전과 성도 개인의 종교적 성취감을 고무시키기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해 있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분명한 자각과 통렬한 반성과 뼈를 깎는 갱신(更新)의 노력 없이는 칼빈주의의 미래를 낙관하기 힘들다. 하지만 여전히 종교개혁이 우리에게 화두(話頭)로 주어진 이상 언제라도 참된 종교개혁에로의 적극적 가능성은 열려있다. 모든 시대의 종교개혁이 우리 주님의 주권가운데 있다는 사실은 이 땅에서 칼빈주의 자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확실한 희망이 된다. 참된 종교개혁의 역사를 돌아보는 사람마다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종교개혁의 환상을 포기하게 될 것이며, 우리 안에 남겨진 종교개혁의 거룩한 과업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확신 하건데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한 종교개혁의 전통은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교회를 향하신 변함없는 바람이요 요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에도 종교개혁은 계속되고 있다. 참된 말씀 안에서 죄악을 통회하며 자신을 부정하며 성실과 정직으로 말씀에 깃댄 삶속에서 거룩한 말씀의 선포가 있으며 성례와 권징의 정당하고 바른 시행을 통해 참되게 세워지는 교회 속에서 역사적 칼빈주의의 신학적 유산을 소중히 여기며 말씀 앞에 부끄럼 없는 목회자를 배출하는 선지 동산에서 종교개혁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나고 있다. 이렇게 종교개혁의 생명이 살아 숨을 쉬는 한 칼빈주의는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글쓴 이 / 김병혁 목사(솔리데오글로리아교회 담임, SDG 개혁신앙연구회 대표)
< 참고 : 루터와 칼빈이 신앙적으로 다른 점 >
– 성만찬 교리 / 칼빈은 1541년 ‘성만찬 소고’에서 다섯 차례 루터를 인용 하 면서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을 비판에는 두 사람이 일 치 했다. 그러나 루터는 실재적 임재(공재설, Consubstantiation), 츠빙글리는 기 념설(Commemoration), 칼빈은 영적 임재(Spiritual presence)를 각각 주장했다.

– 영혼 기원론 / 루터는 유전설을 주장하고 칼빈은 창조설을 주장했다.
– 인간의 구성요소 / 루터는 영, 혼, 육 3분설, 칼빈은 영혼, 육 2분설을 주장했다.
– 말씀과 성령 / 루터란들은 성령은 말씀을 도구로 역사한다고 보며(말씀이 더 중요), 칼빈주의 자들은 성령이 말씀과 함께(cum vervo) 역사한다고 본다.

– 교회론 / 로마 가톨릭 신부로 출발한 루터가 로마 가톨릭에 대해 약간 모호 한 입장이나 칼빈은 성례와 말씀 선포에 있어 로마 가톨릭과 분명하고 명료 하게 다른 의견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