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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예배의 정의

개혁주의 예배론
성경적인 예배의 정의

1. 예배의 정의

예배(Worship)라는 말은 ‘가치(Worth)있는 지위’(신분, Ship)에게 적절한 영광과 존경을 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예배는 오직 창조주(創造主)시며 구속주(救贖主)되신 하나님께만 그 합당한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 찌어다.”(시 96:8)라고 하였다. 이를 기초로 레이번 교수는 “예배는 진실로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와 존귀와 찬송과 사랑과 복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으로 믿음으로써 하나님께 모든 것을 돌려드리는 수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즉 기독교의 예배는 타종교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욕구 충족과 의식(儀式)적인 예배와는 다르다. 기독교는 예배의 대상이 확실하며 예배를 드려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약속을 변개하고 식언(食言)하는 불완전(不完全)한 인간이나(민 23:19), 아무 이성 없는 짐승 또는 밝혀지지 않은 어떤 외계적(?) 존재가 결코 인간의 예배 대상이 될 수 없다.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사람을 그의 형상대로 빚으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예배의 대상이 되신다.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께 예배하며 찬송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은 당연한 창조 질서(秩序)요 법칙(法則)이다. 그런즉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사람 된 그 존재적 의미를 바로 찾는 것이요, 창조주의 그 창조 목적을 바로 실현하는 일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 지어다. 할렐루야!”(시 150:6)

(1) 성경적 예배 용어

성경에서 예배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표현에 차이가 조금씩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에는 거의 일맥상통하고 있다.

– 구약에 나타난 예배 용어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곁에 나타났을 때 아브라함이 “몸을 땅에 굽혀 영접한다.(창 18:2), 저희가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영접한다.(창 18:2), 욥이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욥 1:20) 등에 사용된 단어 ‘샤하이’(Shahai)는 ‘굴복하다’, ‘머리 숙이다’, ‘엎드린다’는 뜻으로 구약에만 120회 이상 나온다. 이는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행위를 나타냄으로써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순복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섬긴다는 뜻의 ‘아바드’(Abad)는 예배가 단순히 어떤 예식이 아닌 전(全) 생애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삶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종(에베드)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곧 예배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뜻은 ‘봉사 한다’, ‘섬긴다’라는 말이며 이런 의미에서 유대인의 종교생활은 하나님을 섬기는 삶으로 일관되었다.

– 신약에 나타난 예배 용어

프로스퀴네오(Proskuneo) – 신약에 약 60회 정도 나온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 받으실 때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고 하신 말씀과 또 예수께서 수가 성(城)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라고 말씀하실 때에 사용된 단어이다. 그 뜻은 ‘무릎 꿇다’, ‘허리를 굽힌다’ 등의 존경을 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라트레이아(Latreia) – 이는 예수께서 “다만 그 분만 섬기라.”고 말씀하시며 유혹하는 사단에게 최종 선언하실 때 사용하신 말이다. 이 말은 ‘종으로서 자신의 상전만을 섬겨야 할 신분’을 나타낸다.

레이투르기아(Leitourgia) – 일반적으로 예전(禮典) 또는 의식(儀式)과 관계되며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을 섬기고(빌 2:30), 예루살렘 교회에 연보로 섬기는 일(고후 9:12), 그리스도인의 구제(롬 15:16,27) 등이 바로 ‘레이투르기아’로서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봉사(奉事)를 뜻한다.

호모로기아(Homologia) – 이는 죄의 고백과 찬양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 가운데 시인(是認, Confess)이 이에 해당된다.

(2) 교회적 예배 용어

– 워십(Worship)

이 말은 ‘존경과 존귀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최고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의와 권위를 인정할 때 사용되는 이 말은 영국에서 시장(市長)을 호칭할 때 ‘Your Worship’, 미국에서 ‘Your Honour’등으로 쓰이는 것에서 그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이 말이 종교적 용어로 예배를 지칭할 때는 바로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대한 경의와 권위가 함축되는 것이다.

– 컬트(Cult)

라틴어에서 유래한 종교의식을 나타내는 용어로 “어떤 것을 숭배한다.”는 의미와 이교적 배경의 주술적 요소가 있다. 이 말이 기독교에서 는 거의 외형적 예배 의식을 나타내며 주로 로마 가톨릭의 형식적(形式的)이고 의식적(儀式的)인 면에 사용되고 있다. 한 마디로 제의(祭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종교 의식뿐 아니라 심지어 이단 종파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워십’보다 ‘컬트’는 정형화된 어떤 예배의 틀과 형식을 생각하게 한다.

– 리터러지(Liturgy)

이 말은 예전적(禮典的) 의미를 가리키는 용어로 예전(禮典)을 나타내며 예배의 대부분이 미리 정해진 절차에 의해 드려져야 할 것임을 가리킨다. 세례식, 성찬식 등의 어떤 예식을 가리킬 때 이 용어를 사용하는데 보다 넓은 의미로는 예배의 모든 것을 의미할 때도 있다.

(3) 예배의 신학적 의미

기독교의 예배는 항상 하나님과 연관하여 이해되고 또 집행되어야만 한다. 예배가 곧 하나님께 대한 합당한 존경과 찬송을 드리는 것이므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 방법을 알지 못하고서는 바른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의 신학적 원리를 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미의 ‘코람 데오(Coram Deo)’가 종교개혁의 한 구호가 된 것은 바로 이 예배 신학적 원리를 적시한 말이다.

– 오직 유일한 예배의 대상이신 여호와 하나님

선지자 이사야는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사 40:25)라고 하였다. 또 주님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0)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어떤 것으로든 제한될 수가 없다는 뜻으로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오직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에 집중해야 함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만 바라고 기대하고 나아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듣고 받아서 그대로 행하는 것으로 그 삶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즉 예배 의식이나 예배당은 마음을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향하게 하는 수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창조주시며 구속주(救贖主) 되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전(神前) 인격의 삶을 사는 것이다.

– 예배 자는 오직 구속함을 입은 백성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예배자의 요건을 말한다. 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자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고 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위인 예배 자가 믿음이 없이는 참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
또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요 4:24)라고 할 때 이는 예배자로서 요건(要件)을 말한다. 곧 예배는 아무렇게 멋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原則)을 따라 드려야 됨을 말한다. 이방인의 예배는 예배자의 필요와 감정이 기준이 되지만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 중심’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오직 구속(救贖)함을 입은 자들만이 드릴 수 있다. 곧 그 안에 하나님의 영(靈)이 있는 자(롬 8:9)들이 드리는 예배다. 예배자의 필수 요건은 대략 다음과 같다.

-믿음(히 11:6 롬 14:3)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고백(요일 1:9 눅 18:3) 하나님은 자기 죄를 고백하는 세리와 같은 자를 찾으신다.
-회개(막 1:15 시 51:17) 하나님이 구하시는 예배는 통회하는 심령의 예배이다.
-기도(엡 3:15 시 17:1)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
-청종(약 1:21 마 8:8) 말씀을 듣는 것이 곧 예배의 중심이다.
-찬양(엡 5:19 시 51:15) 여호와를 찬양함이 예배의 처음이요 끝이다.
-감사(시 50:23 엡 5:20) 여호와의 구속과 섭리를 감사함이 예배의 기초이다.
-거룩(시 96:9 레 19:2)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예배자도 거룩해야만 한다.
-화목(마 5:23,24) 예배하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목해야만 한다.
-희생(고전 5:7 히 9:26) 그리스도의 희생이 없이는 예배가 성립될 수 없다.

-구속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는 예배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신령과 진정’은 ‘영’(in spirit)과 ‘진리’(in truth)라는 말이다. 사마리아 인들은 지식이 없이 마음으로만 드리는 예배를 드렸고, 유대인은 지식은 있었지만 신령이 없는 예배를 드렸다.(요 4:22) 참된 예배가 되려면 신령과 진리로 드려야 한다. 신령과 진리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였다. 기독교에 있어서 진리(眞理)란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킨다. 또 ‘신령(神靈)’은 그리스도의 영(靈, 하나님의 영, 성령)을 말한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靈)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롬 8:10)고 말씀하였다.

그런즉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from) 예수님을 통하여(through) 하나님께(unto) 드리는 예배이다. 예컨대 오직 예수의 영(성령)을 가진 자들만이 드릴 수 있는 예배가 바로 기독교의 예배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는 말씀은 곧 예수를 통한 받으심 직한 예배를 지적함이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통한 예배 행위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의 대속의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을 통한 죄 사함과 영생 그리고 영원한 천국을 믿고, 바라고, 사랑하며(信望愛) 그 말씀에 응답’하는 삶을 말한다.

(4) 예배의 정의

이 같은 모든 의미를 종합해 볼 때 성경적 의미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자존적(自存的) 자세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창조주만을 섬겨야 할 의존적(依存的) 존재라는 사실을 시인하고, 그 합당(合當)한 대상(對象)이신 하나님에게 경배와 복종의 생활이 자기 삶의 근본이 됨을 표시하는 것이다.

예배 신학자 깁스(Gibbs)는 예배를 정의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감사한 마음이 넘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영혼이 쉼을 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훈(Paul Hoon)은 “기독교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사람의 응답이다.”고 하였고 헉스터블(Huxtable)은 “예배는 하나님과 신자 사이의 의사소통이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알아 그 하나님께 감사(感謝)와 사랑(愛情)을 표시하며 자신을 하나님 앞에 헌신(獻身)하는 것이다.

즉 개혁교회의 예배는 “지존 무상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榮光)과 위엄(威嚴)과 존영(尊影)과 거룩의 본질적 가치 앞에 피조물이 엎드리고, 따르며, 섬기게 하고 그 말씀에 충성(忠誠)을 맹약(盟約)하며,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글쓴 이 / 현영훈 목사(고려신학교 연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