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교리강좌

로이드 존스 교리강좌 (5)

로이드 존스 교리강좌(5)
하나님의 존재와 본성(1)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롬 11:33) 이 감동적인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교리공부에 임하자. 우리는 지난시간까지 전체교리를 공부하기 전에 서론에 대해 마무리했다. 이제 본격적인 교리학습의 진도를 나가야 한다.

1. 하나님에 대한 교리의 중요성

지난 백여 년간 인간이 성경에 접근하는 방식은 그 출발점을 인간으로 설정했다. 이것이 모더니즘과 연관된 것들의 특징이며 모더니즘은 자기 자신과 소위 기원에 대한 심리학적 개념들에 대해 관심을 두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인간에서 출발하여 하나님께 이르려 한다.(자유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바르트 신학)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부터 시작한다.“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궁극적으로 다른 모든 교리의 총합이다. 어느 무엇도 하나님보다 앞에 둘 수 없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또한 이것은 마땅히 하나님 앞에 드려야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바 마땅히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교리부터 출발하지 않는다면 구원의 교리나 죄의 교리를 살펴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우린 성경의 시작인 이 엄청난 진술로부터 시작해야한다.‘태초에 하나님이…’이 주제는 분명 끝없는 주제, 도저히 고갈 될 수 없는 주제이며 하나님의 본성과 존재의 필연적인 결과로 이 주제는 한없이 영원한 세대에서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 잡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교리를 체계화 하여야 하며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일상생활에서 특히 예배에 있어서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존재

(1)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證明)하지 않고 선언(宣言)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선언하지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지 않는다. 창세기는 절대로 그가 존재하셨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확증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선언 한다.“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럼에도 믿지 않는 자들은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이 계신 줄 몰랐다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일반계시로 이미 자연 속에 하나님의 흔적을 남겨주셨기 때문이다.“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 할 지니라.”(롬 1:20)

(2)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논증들

1) 우주론적 논증(cosmological argument)
자연을 근거로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논증 법이다.

2) 목적론적 논증(teleological argument)

질서와 설계로부터 끌어낸 논증 법이다. 만물은 무엇엔가로 귀결된다.

3) 도덕적 논증(moral argument)

선과 악에 대한 의식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논증 법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논증들로는 결코 믿음이 생겨나게 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어느 누구도‘믿음’없이, 또 믿음으로 이끄는‘성령님의 내적사역’없이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없다.“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즉 아무도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선물 없이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논증들은 그 믿음을 뒷받침하고 강하게 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

3.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

(1) 우리의 최고의 필요이자 목표는‘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 성경이 그 존재를 단언하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안다는 것이 가능한가? 성경은 우리에게 있어 최고의 필요는 언제나 하나님을 아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문제가 제기 된다.“하나님의 존재는 믿지만 그분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신론(理神論, deism)이라 하며 이런 가르침은 약 200여 년 전에 유행했다. 오늘날 에도 이런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으나 그 이후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피조물들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이 이신론에 따르자면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진다.

이신론이 완전히 잘못 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가 하나님께로 부터 기대하는 다른 어떤 축복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추구, 노력, 예배의 목표가 하나님으로부터 특정한 체험이나 복을 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복(福)’을 주시는 존재로서의 하나님 외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쓴 책을 보라. 이것은 완전히 잘못되고 전적으로 비 성경적인 것이다.“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마 5:8) 산상수훈중의 이 말씀은 팔복의 하나로 다른 모든 것을 요약하는 것이며 우리가 갈망하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이다.

다음은‘영생(永生)’이란 주제를 한번 생각해보자. 영생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영생이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우리 주님은‘영생’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 하신다.“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그러므로 죄에서 해방되고 우리가 용서받았음을 알고 싶어 하는 것, 우리가 구원 받았음을 알고 싶어 하는 것 등 이 모든 소망은 모두 정당한 것들이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속의 이런 소망들이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것보다 우선시 되는 소망이라면 당신의 전체적인 마음가짐은 대단히 그릇되고 부적절한 것이다.

(2) 하나님의 불가해성(incomprehensibility)

성경은 하나님의 불가해성(不可解性, 이해할 수 없음)을 가르친다. 이 말의 의미는 인간은 하나님을 최종적으로 파악하거나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공부하며 이해하려 애쓰지만 하나님은 불가해한 분이시기에 궁극적으로 최종적이며 완벽한 의미까지 하나님을 결코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 지어다. 아멘.”(딤전 6:1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5:6)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최종적으론 불가해한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는 그분을 알 수 있고 그 분의 가장 중요한 본성까지도 알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불가해성의 교리를 부인하는 말이 아니다.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살펴보자.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부분적인 지식일 뿐이다. 그러나 부분적인 지식일 뿐이라도 그것은 진정한 지식이다. 비록 그것이 완전한 지식은 아닐지라도 진실한 지식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충분한 지식이다. 우리가 이 지식을 갖게 된 이유는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것이 성경 가르침의 주요한 요점이자 목적이다.

우리가 제 2강에서 살펴 본 ‘신인동형론(神人同形論, Anthropomorphism, 인간의 속성, 행동, 혹은 감정 등이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생각을 말한다. 이 단어를 사용할 때는 전통적으로 유비적, 상징적, 은유적으로 사용하였다.)에 대해 다시 논해보자.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마치 자신이 사람인 것처럼 자신을 최대한 낮추시고 말씀 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묘사되시는데 이 또한 하나님 자신의 본성에 대해 알게 하고자 계획된 구절들이다. 또한 여러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종들에게 보여진 환상을 살펴보자.

출애굽기 33장 18-23절을 보면 모세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자신의 손으로 덮고 하나님의 등만을 보도록 허락받았다.“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이러한 환상을 본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잊지 못했다. 성경은 비록 하나님은 불가해한 분이시나 그분의 무한하신 은혜와 인자하심과 겸손하심에 의해 알려질 수 있는 있는 분이라 말씀하신다.(*) < 다음에 계속 >